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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진 그들의 관계 (84/270)
  • 달라진 그들의 관계

    “어렵네, 참.”

    동민은 방 안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참 여러 번 보지만 저 정신 나간 수비를 지금 인원들로 확실하게 뚫어내는 방법이 생각이 안 난단 말이야.”

    그는 지금 저번 전주 드래곤즈의 경기 영상을 보면서 얼마 뒤로 다가온 그들과의 FA컵 8강전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아무리 다음 주에 리그 경기에서 미리 본다지만 그걸로 해답을 찾을 수 있을까.’

    동민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이걸로 전주 드래곤즈의 경기는 저번 시즌 경기까지 대부분을 찾아본 거지만 지금 성남 페가수스의 경기 스타일로 그들의 수비를 확실하게 뚫을 만한 방법은 생각나지 않았다. 오히려 보면서 더욱 굳어진 생각은 한 가지였다.

    ‘일단 이번 주 리그 경기에서는 우리 팀이 이기기 힘들겠는걸. 특히 저번 시즌 경기를 봤을 때 감독이 평소 스타일대로 한다면 더더욱 이기기 힘들겠지…….’

    동민은 씁쓸한 표정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 주안이 들고 나오던 전술대로 한다면 성남 페가수스는 전주 드래곤즈의 수비를 뚫을 가능성이 희박했다.

    물론 그것이 전주 드래곤즈가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양 팀이 평소에 추구하던 전술로 보았을 때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았다.

    ‘작년 우승 팀인 인천 FC나 저번에 상대했던 안양 타이거즈보다도 오히려 상대하기 곤란해.’

    성남 페가수스의 전술의 기본적인 틀은 안정적인 수비를 바탕으로 하고 점유율을 가져가며 경기를 지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술의 핵심은 장진운이라는 것은 성남의 경기를 한 경기라도 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다 인정할 것이었다.

    후방에서부터 패스를 넣어주며 공격의 시발점을 만들고, 때로는 직접 올라가 위협적인 장면을 창조해 내는 그의 존재는 주안이 추구하는 ‘공격적이면서 동시에 안정감은 가지는 쓰리백’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문제는 상대가 그런 한 명의 에이스 정도는 무력화시키기 참 좋다는 거지…….”

    반대로 전주 드래곤즈의 전술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확실한 압박 수비와 빠른 역습’이었다. 그물을 치듯 촘촘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하프라인부터 착실하게 압박해 상대의 공격을 끊어내고, 곧바로 빠른 역습으로 전환해 골을 뽑아내는 스타일이다.

    ‘한마디로 90분 내내 경기를 주도해 나가다가도 안 풀려서 골을 못 넣으면 상대 역습에 뒤통수에 구멍 나게 얻어맞을 수도 있단 거지. 백날 천날 공 가지고 돌리고 돌려도 정작 골은 못 넣고 역습에 당해서 지면 그것만큼 억울하고 열받는 일이 어디 있겠어.’

    게다가 그들의 가장 큰 장점은 한두 명의 선수에게 경기력이 오락가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성남 페가수스에서 장진운의 컨디션이 나빠지거나 혹은 아예 그가 빠졌을 경우에는 공격의 시작부터 흔들리는 데 반해, 전주 드래곤즈는 그런 점이 없었다.

    누구 한 명에게 의존하는 일 없이 팀원 모두가 하나가 되어서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공격에서 수비로, 수비에서 공격으로 움직였다.

    그리고 그들은 상대의 에이스를 틀어막는 것이 탁월했다.

    ‘상하이 레인저스하고의 경기 때 웨인 베인스까지 틀어막던 걸 봤으니까. 후반전에 교체 투입된 파블로가 아니었다면 정말 끝까지 막아냈을지도 모를 일이지. 에이스 한 명에 의존하는 팀이었다면 그 경기의 승리자는 전주 드래곤즈가 되었을 거야.’

    전반전뿐이지만 드리블과 개인기가 뛰어난 베인스마저 꽁꽁 묶어내던 전주 드래곤즈의 협력 수비라면 장진운을 막아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도 않은 일이었다.

    실제로 저번 시즌 전주 드래곤즈와 성남 페가수스의 두 번의 맞대결은 모두 장진운이 꽁꽁 묶여 단 한 점도 내지 못한 성남 페가수스의 패배로 끝났다.

    “감독이 이번에 어쩌려나… 내가 결정하는 게 아니지만.”

    동민은 혼잣말을 내뱉고 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벌써 오후 3시에 가까워져 있었다.

    “정신없이 보고 있다 보니 이 시간이네. 빨리 마무리 짓고 다녀와야겠다.”

    동민은 보던 동영상을 끄고 화면을 바꾸었다.

    “강동민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노크를 하고 안에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동민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에는 주안이 그가 들어온 것을 눈치채지 못하기라도 한 것처럼, 눈조차 마주치지 않은 채로 무심하게 책상 앞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이 어딘가 기묘한 상황에도 동민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익숙한 것을 보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무심하게 들고 있던 서류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다음 경기 상대인 전주 드래곤즈에 대한 보고서입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말을 마치고 동민은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방 밖으로 향했다. 물론 그의 뒤에서 주안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일은 없었다.

    ‘확실히 잡아먹을 듯이 살기가 느껴지는 것보다야 이런 무시가 편하네.’

    동민은 방을 나와 문을 닫으며 속으로 말했다. 주안은 동민과의 담판이 있던 이후로 꼭 필요한 말이 아니고는 단 한마디도 그에게 하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그가 마치 존재하지 않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예 무시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동민은 주안이 차라리 무시를 해주는 편이 훨씬 편하다고 느끼는 중이었다.

    ‘이걸로 일단 일도 끝났고, 돌아가서 아직 확인 못 한 영상이 있는지 찾아봐야겠네. 그리고 나면 수연 씨랑 이야기해서 내일 팀 훈련 때 어느 부분을 중점적으로 볼지도 생각해 봐야겠다.’

    동민이 주안과 내기를 시작하고 하고 있는 일은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주안에게 오기 전에 하고 있던 FA컵 8강전을 대비하는 일, 그리고 나머지 하나가 지금껏 해온 것처럼 경기 상대 팀 분석 후에 주안에게 보고서를 내는 일이다.

    그와 완전히 갈라서게 된 이후, 주안이 보고서를 읽는지 아닌지도 모르지만, 동민은 일을 계속하고 있었다. 또한 주안도 그런 동민을 굳이 말리려 들지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그걸 가지고 더 꼬투리 잡을 수도 있으니까. 위험할 수 있는 건 미리미리 대비해 둬야지. 조용히 있다가도 뭘 가지고 난리를 칠지 모르는 인간이니. 아니면 그냥 가져올 필요 없다는 말조차 하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르지만.’

    동민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음?”

    그가 다시 전주 드래곤즈의 수비를 어떻게 뚫어낼지 고민을 하면서 발걸음을 옮기자 어느새 앞쪽에서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민호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주안을 만나러 오다가 동민을 마주친 듯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던 그는 뭔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 머뭇거렸으나 이내 빠른 걸음으로 그를 지나쳐 걸어갔다.

    “저 양반도 참…….”

    민호뿐만이 아니었다. 이제는 팀 훈련에 찾아가면 다른 코치들도 모두 그와 수연에게는 꼭 필요한 말이 아니면 거의 꺼내지 않았다.

    동민은 복잡한 미소를 지으면서 과거의 일을 떠올렸다.

    “무슨, 생각이야?”

    주안과 내기를 결정한 저녁, 민호가 퇴근을 앞두고 자료를 정리하던 동민의 방에 들어와 물었다. 그는 급하게 달려온 듯 숨을 헐떡거리면서도 강렬한 눈으로 동민을 쏘아보며 물었다.

    “뭐가요?”

    동민은 갑자기 찾아와 말의 앞뒤를 잘라먹고 물어보는 민호의 모습에도 냉정하게 되물었다. 주안과 이야기를 한 이상 늦든 빠르든 민호가 찾아올 것이라는 예상을 미리 해뒀기에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

    ‘감독이랑은 아까 전에 이야기했으니 생각보다는 좀 늦게 찾아온 것에 가깝지.’

    그런 동민의 모습에 민호는 답답해 미치겠다는 듯 숨을 채 고르지도 못하고 말을 쏟아냈다.

    “무슨 생각으로 어제 이야기하고 곧바로 감독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한 건지 묻는 거야! 동민 씨는 왜 그렇게 가시밭길을 못 만들어서 안달인 건데? 아예 이쪽 일 죄다 관둘 생각이라도 한 거야?”

    민호의 목소리에는 어째서 이런 일을 저질렀냐는 책망과 분노, 그리고 조금이지만 동민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섞여 있었다.

    “수석 코치님도 아시잖아요.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걸.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고치자고 말하는 게 가시밭길 만드는 게 됩니까?”

    동민의 대답에 민호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짚었다.

    “그게 잘못된 거라도 가만히만 있으면 동민 씨나 우리나 별 탈 없는 거 알잖아. 왜 알 만한 사람이 그렇게 고집을 부리고 있는 거야? 내가 어제 미리 이야기까지 해줬는데.”

    “그래서 제가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어려서 감정적일 수는 있어도 그런 식으로 실력 있는 다른 사람을 내버리고서 자기 자리 생기길 기다리고 싶지만은 않다고요. 그리고 감독님 성격은 저보다 수석 코치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 이미 감독님한테 이야기 한 이상 그 사람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절 내쫓고 싶어 할 거예요. 이제 와서 제가 무릎을 꿇든 석고대죄를 하든 받아줄 일 없을걸요.”

    웃으면서 사실을 고하는 동민의 말에 민호는 결국 고개를 떨궜다. 주안에게 왜 그런 소리를 동민에게 했냐며 왕창 깨지고 결국 동민이 일을 저질렀다며 뛰어오긴 했지만, 그도 지금 상황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저 어제 자신이 해준 충고를 듣지도 않고 오늘 곧바로 이런 일을 터뜨린 동민에 대한 원망과 나름대로 마음에 들었던 동민에 대한 걱정으로 곧바로 뛰어온 것이다.

    “…그러네. 이렇게 뛰어올 이유가 없었는데. 이미 저질러 버렸으니 감독님 성격상 없던 일로 해주겠다 같은 그런 소린 죽어도 안 하겠지.”

    민호는 힘없이 대꾸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가 지금까지 알던 주안의 성격상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을 가만히 둘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동민에게서 등을 돌렸다.

    동민이 뒤로 돌아 걸어가는 민호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다가 잠시 시선을 돌릴 무렵, 그는 문득 뒤를 돌아 동민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하나 확실한 건 동민 씨, 아니 너 진짜로 후회할 거야. 그리고 난 분명히 말리고 싶었어.”

    민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게는 벌써부터 팀을 나선 이후 주안에 의해 안 좋은 소문만 잔뜩 퍼져 어느 팀에도 가지 못하고 방황하는 동민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그는 그 말만 남기고 동민의 대답은 듣지도 않은 채로 방을 나섰다. 그리고 동민 또한 그 말에 대한 대답은 그가 방 밖으로 나간 지 한참이 지나도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사람 자체는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감독이랑 너무 오래 봐서 그런가. 현실적으로 그냥 넘어가자는 이야기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됐다. 저 사람하고도 더 이상 이야기할 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동민은 이미 빠르게 사라진 민호에 대한 생각을 고개를 털며 그만두고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그에게는 아직 할 일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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