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돕고 싶은 마음(1) (78/270)
  • 돕고 싶은 마음(1)

    “방금 말씀하신 한수연 씨 관련 이야기인데요. 어제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감독님이랑 뭔가 이야기를 하는 것 같던데 분위기가 좀 싸해서요. 두 분 어제 무슨 일 있었나요?”

    동민의 말에 민호는 노골적으로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괜히 자신이 입을 잘못 열어 이야기를 꺼냈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아니, 뭐 그거야 감독님이랑 수연 씨 둘 사이의 일이고 나도 자세히 본 건 아니라서 잘 모르겠는데……. 뭐 본인들이 알아서 잘 하겠지. 다른 사람들이 이러니저러니 끼어들 일이 아니잖아.”

    말을 흐리는 민호의 모습을 보면서 동민은 그가 제대로 짚었다고 확신했다. 동민의 마음속 미소가 더욱 짙어지면서 말의 고삐를 더욱 잡아챘다.

    “아아, 그래도 어제 꽤 가까운 곳에서 보시지 않았나요? 저는 잠시 자릴 비우는 바람에 자초지종을 모르겠어서요. 민호 코치님 말처럼 감독님이 저를 신뢰하시면 감독님이랑 수연 씨 사이에는 제가 제일 가깝지 않을까 싶어서요. 안 그래도 평소에 수연 씨 도움을 많이 받았는데 이럴 때 좀 돕고 싶어요.”

    자신이 했던 말을 그대로 들고 나오는 동민을 보면서 민호의 표정은 더욱 굳었다. 그제야 그는 동민이 자신을 콕 집어 물어본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눈앞의 청년은 나름대로 머리를 굴릴 줄 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글쎄, 난 잘 모르겠어서. 그리고 두 사람이 전부터 아는 사이라고는 들었지만 그렇게 무턱대고 끼어드는 건 좋은 행동은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다가 괜히 조용히 사그라질 일이 커지기라도 하면 오히려 더 안 좋지 않겠어?”

    “끼어들다니요, 저는 혹시 제가 모르는 오해라도 있나 해서요. 제가 존경하는 감독님이랑 나름 전부터 알고 있던 수연 씨랑 혹시나 사이가 안 좋아지기라도 할까 봐 그랬죠. 에이, 더 일 커지거나 할 게 있겠어요?”

    “…어쨌든 난 잘 몰라. 경기 끝나고 이래저래 정신 사나운 거 동민 씨도 알잖아. 차라리 직접 물어보지 그래?”

    “그렇겠네요. 괜히 신경 쓰이게 해서 죄송해요. 혹시 제가 도울 일이라도 있나 해서 그랬어요. 아, 그리고 보니 저번 경기에서 이정호 선수가…….”

    동민은 굳은 얼굴의 민호에게 웃으면서 사과하고는 다른 곳으로 이야기를 돌렸다.

    ‘정확히 뭔진 몰라도 아무 일도 없는데 괜히 오해를 만든다, 같은 말이 아니라 일이 커지니 뭐니 하는 이야기가 툭 나오는 걸 보면 대충 뭔가 일이 있긴 있고, 저 사람은 무슨 일인지 알고 있다는 뜻 같은데. 감독이 무슨 짓이라도 저지른 건가.’

    동민은 민호와의 대화가 끝난 뒤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서 생각에 잠겼다. 뭔가 알고 있을 듯한 민호를 찔러본 것은 정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히 둘 사이에서의 잠깐의 말다툼이나 주안의 평소 같은 말투 때문에 있던 일이라면 굳이 그런 말이 나올 필요는 없을 터였다.

    ‘그래도 이걸론 두 사람 사이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가 없는데. 역시 직접 물어보는 것 말고는 확실하게 알 방법은 없나. 아니면…….’

    그는 책상에 엎드려 한숨을 내쉬었다. 수연을 돕고 싶어도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이상 돕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 참 답답하네. 아니면 다른 사람들한테도 한번 말을 붙여봐야 하나.”

    동민이 머리를 긁적이고는 다시 모니터에 시선을 돌리려던 찰나, 문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동민 씨,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

    “예? 아, 들어오세요.”

    물을 열고 들어온 것은 그를 계속 고민하게 만든 당사자인 수연이었다.

    “감독… 님이 어제 경기에 관해서 이야기하실 게 있다고 부르시던데요.”

    수연은 어제 있었던 충돌이 없던 것처럼 평소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태도와 표정으로 말했다.

    “좀 이따 메일 보내두려고 했는데… 알겠습니다. 그런데 수연 씨 어제는……,”

    “정말 아무 일 아니에요. 감독님이 원래 말이 조금 험하시잖아요. 그냥 잠깐 짜증 낸 것뿐이고 또 금방 풀렸으니까요.”

    수연의 말에 동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수연이 이렇게 시치미를 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녀가 이렇게 나오는 이상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네. 자꾸 여쭤봐서 죄송해요. 그냥 제가 뭔가 도울 수 있는 게 있다면 돕고 싶어서…….”

    “아뇨, 정말 괜찮아요.”

    동민의 말에 수연은 애써 시선을 돌리며 차갑게 말했다. 어서 잊어버리고 싶은 일에 자꾸만 머리를 들이미는 동민의 행동은 그녀에게는 껄끄럽기 그지없었다. 그렇게 시선을 돌리던 그녀의 눈에 동민의 컴퓨터 모니터가 들어왔다.

    “아, 이건 어제 경기 보고서인가요?”

    그녀는 어색해지는 분위기를 바꿔보려 입을 열었다. 대화의 방향을 바꾸려는 그녀의 말에 동민도 곧바로 대답했다.

    “그렇죠. 어제 이기기는 했지만 상대 선수, 박주현한테 휘둘린 게 너무 컸으니까요. 그 전 경기나 전반전에 보인 모습만 생각하다가 후반전에 그렇게 바뀔 줄은 몰랐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전반전하고는 다르게 후반전에 들어서는 예전에 제가 기억하던 박주현 선수 그대로의 모습이더라고요. 동민 씨도 틀릴 때가 다 있네요.”

    동민의 씁쓸함과 자랑스러움이 섞인 대답에 수연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상대 팀이지만 그녀가 기억하고 있던 것과는 다른 주현의 모습은 그녀에게도 씁쓸한 모습이었기에 다시 예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더 후련했다.

    “정말로 그렇게 갑자기 바뀔 줄 몰랐거든요. 부천 유나이티드 이한성 감독이 고집하던 전술이랑은 전혀 다른 움직임이라 아예 달라졌으니까요. 대체 무슨 바람이 분 건지…….”

    동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고는 말을 이었다.

    “거기다가 그렇게 변할 걸 알고 있었어도 막상 상대하는 걸 생각하니 이렇다 할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더라고요. 뭔가 제대로 된 방안이 생각나면 감독님한테 이야기라도 하는데 말이에요.”

    지금 주현을 지도하는 한성을 제외하면 주현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는 동민이지만 막상 지금 수비진으로 주현을 확실히 막아낼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성남 페가수스의 수비진이 약한 것도, 주현이 리그에서 손꼽히는 특출한 공격수인 것도 아니었다. 주현이 좋은 테크닉과 감각을 지녔다고 해도 나이에 비해서 좋은 것이고,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큰 것이지 지금 당장 리그 최고에 설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동민이 주현을 상대하는 방법을 제대로 떠올리기 힘든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오히려 너무 오래 알았다는 게 흠이지.’

    동민이 능력을 얻고 처음으로 이끈 팀에서도 주축을 맡고 있던 주현의 존재는 그에게는 너무 익숙해서 오히려 상대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활용하겠다 하는 거라면 예전에 많이 해왔지만 그 녀석을 상대하는 건 이번에 처음 겪는 일이니까.’

    주현의 활용 방법에서 정반대인 그를 막는 방법으로 바뀐 것이 동민의 발목을 잡는 것이다.

    “어제는 급하게 이정호 선수를 일대일 마크로 붙이는 방법을 써봤지만 후반전 경기 내용을 보면 그것도 정답은 아닌 것 같고,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되거나 비슷한 타입의 선수들을 어떻게 할지 고민이 되네요.”

    그런 동민의 표정을 보면서 수연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말했다.

    “박주현 선수를 잘 아시는 거 아니었어요?”

    “계속 그 녀석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하다가 반대로 상대하려고 생각하니 뭔가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일단 감독님한테는 아예 수비 간격 조절을 토대로 촘촘하게 좁히는 쪽을 이야기해 보려고 하는데 훈련도 그렇고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꺼내봐야 할지 모르겠네요. 제대로 된 방안 없이 적당히 이야기한다고 한 소리 할 것 같은데.”

    멋쩍은 듯 말하는 동민을 보면서 수연은 미소를 지었다.

    “이건 제 생각인데요…….”

    수연의 입에서 나오는 말을 들으며 동민의 눈은 고민에 빠져 있던 사람의 것에서 점차 반짝이기 시작했다.

    “어서 와요. 어제 경기 때문에 불렀는데… 혹시 다른 일로 바쁜데 오라고 한 건가요?”

    “아뇨, 괜찮습니다. 마침 어제 경기 보고서도 드릴 겸 말씀드리려고 했거든요.”

    수연과의 대화가 끝난 후, 동민은 주안의 방에 들어서며 말했다. 주안은 평소보다 밝아 보이는 표정의 동민을 보며 말을 시작했다.

    “어제 경기는… 일단 고생했어요. 내가 한번 기회를 주려고 생각을 했는데 후반전 마지막에 꽤 고전하긴 했지만 확실히 승리한 건 칭찬할 만하죠. 잘했네요.”

    “감사합니다.”

    ‘어제 경기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거의 내가 제시한 대로 했던 것 같은데… 뭐 이 인간 이러는 게 하루 이틀인가. 이러고선 곧바로 주현이한테 끌려 다니던 일을 어떻게 대응한 거냐고 대응방안 짜내라는 소리나 하겠지.’

    동민은 주안의 칭찬에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면서도 애써 미소를 지었다. 주안은 동민이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후반전에 상대 박주현 선수에게 휘둘리는 것은 좀 생각해 볼 만한 문제 같은데. 대응 방안 같은 건 생각해 봤죠?”

    “그럼요.”

    동민은 예상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주안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니 측면에서부터 직접 흔들어대고 득점력까지 있는 박주현 선수 같은 움직임은 아예 다른 선수들이 다 같이 거리를 좁혀가면서 막아내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선수들을 상대할 때마다 한 명씩 수비를 붙여봐야 큰 효과를 보긴 어려울 테니까요.”

    주안은 동민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봤다. 방금 한 그의 말이 마음에 들고, 들지 않고를 떠나 그 방안의 효용성을 생각하는 듯했다.

    “동민 씨가 봤을 때에는 그 박주현 선수가 우리 수비진이 아예 작정하고 나와도 막아내기 힘든 선수라고 보고 있는 건가요? 내가 보기에는 어제 우리가 고전한 것은 그 선수가 대단한 것보다는 전반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움직임에 당황한 탓이 더 크다고 보는데요.”

    “아뇨, 그 정도의 선수는 아니지만 나중에 다시 만났을 때 위협적인 선수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그 선수 외에 그런 득점력 있는 측면 공격수를 대비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리그 진행에 있어서 상하이 레인저스와의 경기 때처럼 다른 선수들을 무시하고 특정 선수들에 집중해서 막는 것보다는, 전체적인 수비진을 구성하면서 막아내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수 비간격 조절이나 위치에 대한 훈련이 더 필요하다는 이야깁니다. 그런 훈련을 더 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상대 선수에게 또 휘둘릴 수 있으니 미리 대비해야 한단 거죠.”

    의구심을 가지는 주안에 비해서 동민의 말은 단호했다. 처음에는 고개를 젓고 있던 주안도 그런 동민의 태도에 결국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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