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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과는 다른 결과 (76/270)
  • 예상과는 다른 결과

    “박주현, 저거 뭐 하는 거야?”

    한성은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후반전 시작 후 한동안 자신의 지시대로 중원에 머물면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주로 맡고 있던 주현이 어느샌가부터 그 움직임을 달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을 잡고 줄 곳을 찾는 대신 직접 공을 몰고 상대 측면을 노리는 모습을 보면서 한성은 눈썹을 찡그렸다.

    ‘하여간 어린 녀석들은 그놈의 객기가 문제라니까. 이래서 어린 것들은…….’

    그는 주현이 지시하지 않는 플레이를 하는 것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어린 선수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경기가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 본래 계획에서 벗어나 버릴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멘탈이 약한 선수들은 아예 경기에 대한 집중력을 잃고 자멸하거나, 반대로 자신이 끌려가는 경기를 해결하겠다면서 무리한 플레이 끝에 오히려 팀을 망치는 경우도 있다. 쉽게 말해 경기가 어려울수록 팀을 뒤흔드는 존재인 것이다.

    ‘의외인 건 나름 조용하고 노력만 하는 녀석인 줄 알았던 박주현이 반대로 게임을 뒤집어보려고 할 줄이야. 저 녀석 성격상 차라리 자멸을 하면 자멸을 했지 저런 식으로 무리하게 나갈 줄은 몰랐는데.’

    한성은 그런 주현의 모습을 보면서 주의를 주거나, 계속되면 아예 교체하는 것을 고려했다. 한 경기에서 패배하는 것보다 어린 선수 한명 이 팀 분위기를 망치는 것이 그에게는 더욱 큰 실책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

    공이 나가면 주현을 부르려 하던 한성의 입은 굳어버렸다.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경기가 흘러가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껏 비교적 후방에 머물면서 패스에 집중하던 박주현의 돌파에 안정적이던 성남 페가수스의 수비진은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현이 공을 잡으면 아예 돌파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지우고 다른 선수들과 패스할 공간을 막아내던 성남 페가수스의 수비진은 예상치 못한 주현의 돌파에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고, 그것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기회가 찾아오게 만들었다.

    ‘저 녀석 저런 식으로 움직일 수도 있던가?’

    한성은 주현의 움직임을 보면서 주현이 그가 지금껏 생각하지 못한 타입의 선수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자신의 전술에 선수를 맞추는 타입인 그로서는 처음 보았을 때의 주현이 애매하기 그지없었다. 구단에서 재능 있는 선수를 찾았다며 그에게 이야기했을 때, 한성은 주현을 보고 속으로 한숨을 쉬며 그를 어느 위치에서 이용해야 할지 이미 마음을 정했다.

    최전방 공격수를 하기에는 탄탄한 피지컬을 가진 것도, 빠른 속도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공격적인 우측면 미드필더를 맡기에는 순간적인 스피드가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결국 한성이 정한 주현의 위치는 경기를 풀어주는 좌측면 미드필더인 송원진의 백업 자리였다. 그 이후로 그가 주현에게 보는 것은 얼마나 드리블이 좋은가, 수비진을 뒤흔드는 가가 아니었다. 얼마나 시야를 넓게 보느냐, 어떤 패스를 하는가가 그가 주현을 바라보는 기준이었다. 다른 것들을 잘한다고 해도 그가 주현에게 지시한 플레이에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러나 지금 주현의 모습은 그가 지금껏 중요시하던 패스와 시야, 템포 조절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직접 공을 끌고 측면에서 안팎으로 움직이며 수비진의 붕괴를 야기시키고, 다른 공격진의 마크를 혼란시키는가 하면 직접 슈팅까지 시도하면서 좌측면에서부터 경기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고 있었다.

    처음에는 예상치 못한 주현의 플레이에 다른 선수들도 혼란스러워 보였지만 이내 주현이 만들어내는 분위기에 올라타듯 점점 더 손발이 맞기 시작했다. 주현이 좌측에서 안쪽으로 돌파해 들어가면 두 명의 공격수는 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려 들어가면서 수비를 끌고 가고, 우측의 김현진은 사이드라인으로 빠져 공을 내줄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하는 것이다.

    ‘이건 내가 구상한 전술이 아닌데… 팀 훈련 때에도 이런 식의 움직임을 따로 연습한 적은 없었어. 그러면 지금 이런 움직임은 대체…….’

    한성은 성남 페가수스를 몰아붙이는 부천 유나이티드의 공격진들을 보면서 혼란에 빠져 있었다. 지금껏 자신의 전술 안에서만 움직이도록 강조하고, 그것을 토대로 팀을 운영하던 그에게 선수들이 자신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움직이는 지금의 상황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한 장면이었다.

    ‘…지금 이 상황은 내가 만든 게 아니야. 만들었다면… 저 녀석이 만들어낸 건데…….’

    그의 눈에는 또다시 상대 우측 수비수를 제쳐내고 빠른 크로스를 올리는 주현의 모습이 들어왔다. 22살의 어린 선수 한 명이 지금껏 자신이 생각하고 고집했던 전술의 틀을 무너뜨리고 전혀 다른 공격을 이끌고 있었다.

    갑작스레 달라진 부천 유나이티드의 모습에 성남 페가수스도 이정호를 전담 마크로 붙이면서 측면에서 막도록 발 빠르게 대응했지만 넘어온 분위기를 되돌리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후반 38분, 박주현의 추격 골이 터졌다. 좌측면에서 안쪽으로 파고들어 왔고 곧바로 안쪽으로 패스를 찔러 넣었다. 이를 오명진이 막아냈지만 튕겨 나온 공을 박주현이 이번에는 직접 슈팅으로 골대에 넣어버린 것이다.

    “쟤는 대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동민은 골을 넣자마자 공을 들고 센터서클로 달려가는 주현을 보면서 허탈하게 말했다. 후반이 시작되고 얼마 후 갑자기 바뀐 주현이 수비진을 뒤흔들기 시작하자 경기의 분위기는 그가 바꾸기 힘들 정도로 뒤집혀 버렸다.

    ‘이정호랑 구영준 두 사람을 붙여서 측면으로 몰아내려고 했는데 그마저도 풀어내고 나머지 공격수들이 있을 공간까지 만들어내는 저게 괴물이지.’

    동민은 최대한 막아보려 했지만 애초에 주현이 패스에 집중할 것을 염두해 두고 그것을 틀어막을 포메이션으로 나온 이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내가 너무 만만하게 본 건가. 박주현이 저렇게 될 것도 어느 정도 대비를 했어야 하는데… 그나저나 갑자기 플레이 스타일이 예전처럼 바뀐 이유는 뭐지? 상대 벤치 쪽에서도 박주현한테 뭔가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하는 모습은 보질 못했는데.’

    동민은 관자놀이에 손을 대며 투덜거렸다. 후반전에 크게 바뀌지 않은 전술을 들고 나오는 부천 유나이티드를 보면서 동민은 처음에 안심했다. 그러나 혹시나 박주현이 다른 역할을 맡게 되지 않을까 상대 벤치 쪽을 계속 확인하고 있었던 그였지만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은 채로 갑작스레 박주현의 움직임이 달라진 것이다.

    ‘거기다가 저쪽 감독의 반응이나 다른 선수들도 처음에 제대로 발이 맞지 않고 당황하던 걸로 봐선 의도된 건 아닌 것 같은데… 저 상황이 지금 박주현 혼자서 만들어낸 거란 소린가? 아무리 예전부터 저 녀석이 경기를 뒤바꿀 만한 녀석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건 대체…….’

    동민이 KFC를 이끌 때 주현에게 가지고 있던 생각은 팀이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충분히 그 상황을 바꿔줄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동민은 그 생각을 다시 한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박주현의 골로 한 점을 만회하긴 했지만 부천 유나이티드가 동점을 만들기에는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했고, 경기는 2 대 1이라는 점수 차 그대로 끝났다.

    비록 패배했지만 후반전에 훨씬 강팀으로 평가받는 성남 페가수스를 밀어붙인 광경은 팬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기 충분했다. 무엇보다 저번 경기에 이어서 두 경기 연속 골을 기록한 주현에 대한 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그들의 격려의 박수 속에서 주현은 라커 룸 쪽을 향했다.

    “박주현.”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한성이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만 해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것을 한성에게 직접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그였지만, 막상 경기가 끝나고 그를 직접 마주하자 아까 했던 각오는 눈 녹듯 사라지고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가 알고 있는 한성은 골을 넣었다고 자신의 전술에 맞지 않는 움직임을 하는 선수를 너그럽게 이해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 경기를 승리로 이끌더라도 본인의 전술에서 멀어지면 매섭게 호통을 치는 쪽이 그가 지금껏 알고 있는 한성의 모습이었다.

    “감독님. 그, 오늘 경기는… 그러니까…….”

    주현의 입속에서는 아까 가지고 있던 각오는 다 사라지고 변명만이 뒤섞여 돌아다녔다. 어떻게 이야기를 하면 겨우 얻은 선발 출전의 기회를 날려먹지 않을 수 있을지 그가 머리를 굴리고 있을 때 한성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잘했어.”

    “네?”

    의외의 말에 주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저 말이 한성의 입에서 나온 말이 맞는지, 극도의 불안감에 자신의 귀가 이상해진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그러나 그런 주현의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성은 말을 이었다.

    “미안하다. 너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선수였던 모양이야. 앞으로는 너에 대해서 더 생각해 보고 더 맞는 역할을 주도록 할게. 네가 어떤 자리에 더 잘 맞는지 생각해 보도록 할 테니까.”

    한성의 말에 이번에야말로 주현은 까무러칠 듯한 충격을 받았다. 한성은 지금 자신의 전술을 수정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건넨 것이다.

    “가, 감독님? 방금 그 말씀은…….”

    “단, 오늘 같은 행동은 가능하면 자제해라. 다른 팀원들이 네 움직임에 맞춰서 같이 변화했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만약 네 급작스러운 변화로 손발이 안 맞았다면 후반전에 한 골을 마뇌하기는커녕 그 이상으로 실점의 빌미가 되었을지도 모르니까.”

    “…네, 알겠습니다.”

    주현의 대답을 들은 한성은 만족한 듯 자리를 떴다. 그리고 주현은 얼떨떨한 기분으로 혼자 그 자리에 서서 방금 있던 일이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고 있었다.

    ‘자기 전술 안 바꾸고, 전술에 대해서 그렇게 깐깐하기로 유명한 감독님이 나한테 맞는 자리를 다시 찾아보겠다고? 진짜?’

    주현에게 방금 한성의 이야기는 믿기 힘들 정도로 그에게 좋은 말이었다. 그의 꼭 쥔 주먹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고, 그의 표정에는 환희가 가득했다.

    ‘해냈다!’

    주현은 마음속으로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그가 어떤 일들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중에서도 어떤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지 보여주겠다던 그의 생각은 한성에게 제대로 전해진 것이다. 주현은 처음으로 리그 경기에 나서서 어시스트를 하고 이겼던 지난 경기보다 이번 경기가 더 값진 것처럼 느껴졌다.

    “대단하네. 패스에만 집중하다가 갑자기 그렇게 돌변할 줄 몰랐어.”

    이 상황에 집중하느라 그는 그를 향한 또 다른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뭐야, 상대 팀이라고 이젠 아예 못 들은 척하려고? 경기도 끝났는데 너무 매정한 거 아냐?”

    “음?”

    주현이 고개를 들자 동민이 웃으며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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