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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기회(2) (73/270)
  • 뜻밖의 기회(2)

    “그래서, 생각은 해봤나요?”

    주안의 말은 가벼웠지만, 그것을 듣는 동민에게 그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네. 고민해서 제가 짜보긴 했습니다만…….”

    “좋아요. 한번 들어볼까요?”

    기다렸다는 듯 말하는 주안을 보며 동민은 설명 전에 잠시 숨을 골랐다. 그의 눈 밑에 있는 거뭇거뭇한 흔적은 어젯밤을 꼬박 새면서 준비한 그의 노력을 보여주는 듯했다.

    “어제도 말씀드렸다시피 예상되는 부천 유나이티드의 전술은 비대칭적인 4-4-2, 혹은 상황에 따라서는 중앙의 이호원 선수를 중심으로 변형된 4-3-3에 더 가까운 모습도 있습니다. 이는 사이드라인으로 넓게 벌려주는 우측 윙과, 반대로 중앙에 가깝게 좁게 들어와 패스를 이어주는 좌측 윙의 움직임에서 비롯됩니다. 이를 막아내고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서는…….”

    동민이 생각한 것은 비대칭적인 상대의 공략을 위해선 성남 페가수스 또한 비대칭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발 빠른 상대 우측 미드필더는 좌측 윙백인 이문성을 내려서 측면의 뒤 공간을 막고 중앙 미드필더에 마재호를 넣어 측면을 향하는 패스를 억제한다. 좌측의 박주현은 직접 슈팅이나 돌파 대신 패스에 집중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직접 누군가를 붙이기보다는 이정호로 하여금 패스를 받을 공격수와 패스 길목을 차단하게 만든다.

    ‘서로 다른 움직임의 두 측면 미드필더만 막아내면 부천 유나이티드의 공격의 질은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대로 우리 입장에서 공격할 때는 장진운을 이용해서 중원에 밀집된 압박을 넘기는 롱패스를 이용하면 오히려 뒤를 노리기 쉽고. 이거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어. 상대를 생각하면 가장 집중해야 할 훈련은 한영수와 조민석 두 공격수가 어떻게 장진운의 롱패스를 받아서 빠르고 확실하게 공격을 해나갈지니까.’

    동민은 밤샘으로 너덜너덜해진 머리로 주안에게 설명을 마쳤다. 주안은 동민의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을 열었다.

    “좋아요. 꽤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군요.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오히려 좋은 공부를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동민을 보면서 주안은 미소 지었다. 한창 자기 멋대로 움직이려 하던 동민이 이제는 이렇게 그를 잘 따르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흡족하게 느껴졌다. 주안은 이제야 자신이 이 귀찮은 녀석의 목줄을 다룰 줄 알게 된 느낌이었다.

    ‘그렇게 귀찮았던 놈이 이렇게 되었단 말이지. 이놈도 결국 자기 이익이 겹쳐지니까 이러는 거겠지만 예전을 생각하면 감개무량할 정도야. 앞으로도 잘만 구슬린다면 이런 식으로 계속 이용할 수 있을 테니.’

    주안은 지금 동민이 자신을 따르는 것이 자신에게 감화되었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주안이 그의 능력을 펼칠 기회만 준다면 동민은 한동안은 그를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주안은 그렇게 그의 고삐를 잡을 자신이 있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예, 고생했어요. 아 참, 잠시만요.”

    나가려고 할 때 또다시 그를 붙잡는 주안의 목소리에 동민은 고개를 돌렸다.

    “저녁에 있을 훈련 때에 나는 중요한 약속이 있어서 참석 못 할 거예요. 장민호 씨에게 미리 다 이야기해 두겠지만 전술이나 다음 경기 준비에 대해서 장민호 씨가 물어보거나 한다면 알아서 대답해 줘요. 지금 나를 제외하고는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동민 씨니까요.”

    “예? 그게 무슨…….”

    생각지도 못한 주안의 말에 동민은 놀라 되물었다.

    “방금 들은 게 맞아요.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오늘 훈련은 내가 참여하지 못하니까 장민호 씨한테 맡긴다고요. 그리고 혹시나 장민호 씨가 잘 모르는 점이 있다면 그건 동민 씨가 보충해 주세요. 그리고 내일 훈련 보고서 작성해 주시고요.”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던 동민은 그것이 맞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끄덕이고 주안의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훈련까지 불참석해 가면서 도대체 뭘 꾸미고 있는 거지, 저 인간은?’

    동민은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었다.

    “감독님? 구단 관련해서 도저히 시간을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가신다고 하던데. 동민 씨한테 전술 쪽은 더 자세하게 설명해 놨다고 하시던데 무슨 일인지는 말씀 안 하셨어?”

    민호는 동민의 물음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 말씀은 하셨는데 혹시 더 자세한 이야기가 있었나 해서요. 팀 훈련에 감독님이 안 계신 건 생각도 못 해서…….”

    “아무래도 구단 위쪽 이사진이나 그런 쪽에서 호출인가 본데 어쩔 수 없지 뭐. 팀 훈련 있는데 억지로 호출하는 그쪽이 잘못된 거지만. 그래도 경기 준비 자체는 확실하게 하고 계신 거 같으니까 오늘 하루 정도는 괜찮을 거야. 그쪽 일 끝나는 대로 돌아오신다고도 했고.”

    민호의 말에 동민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뭔 인간들이 지난 시즌에도 가끔 이런 일이 있었는지 익숙한 반응이람.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감독 그 인간은.’

    그는 다시 한번 생각해도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가장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 경기 준비를 동민에게 맡기다시피 하고 팀 훈련조차 빠질 정도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동민 씨는 다행이네.”

    “예? 무슨 말씀이세요?”

    동민은 잠깐 생각에 빠져 있다가 민호의 말에 한 박자 늦게 대답했다. 민호는 그런 동민의 반응에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만 해도 감독님한테 미운 털 단단히 박혀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은 감독님이 다음 경기 전술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해 줄 정도로 신임받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자랑은 아니지만 나 외의 다른 사람들한테 그렇게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아니, 나한테도 이야기 안 하고, 혼자서 생각하고 나머지 일을 떠넘기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

    민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가 보기에는 이렇게 빠르게 주안의 신임을 얻은 동민이 신기하기만 할 뿐이었다. 동민이 무안한 듯 말없이 애매하게 웃고 있자 그는 말을 이었다.

    “사실 동민 씨 처음 들어왔을 때 나나 몇몇 코치들은 얼마 못 버티고 밀려서 중고등부 쪽에만 집중하게 될 줄 알았거든. 감독님 태도 바꾸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서 말이야. 동민 씨 실력을 감독님이 그만큼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겠지. 아무리 해도 돌아보게 만들지 못하는 경우도 있거든.”

    “아하하, 잘 봐주셔서 감사하죠.”

    민호의 칭찬에 동민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런 이야기가 오고 간 건 둘째 치고, 다음 경기 전술을 나한테 미리 말해준 게 아니라 내가 말한 걸 그대로 쓴 거니까…….’

    동민은 민호의 말에 속으로 불평하느라 말을 끝마친 민호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보지 못했다.

    “상대는 지금 6위에 머물러 있는 팀이에요. 어처구니없는 실수만 하지 않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으니 큰 부담감 가지지 말고 평소 하던 대로만 하면 됩니다. 지금 1위인 부산 FC 하고 2점밖에 차이나지 않으니 따라잡을 수 있도록 합시다. 이상.”

    라커 룸 안에서 주안은 평소처럼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동민은 그런 주안을 보면서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경기 직전까지 경기 준비가 아니라 뭔가 통화를 하고 있던 걸 보면 분명히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개인적인 사정인가?’

    결국 주안은 조금도 바꾸지 않고 동민이 이야기했던 대로 경기 준비를 했다. 주안의 개입 없이 자신이 생각한 전술을 시험할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가슴 뛰는 일이었지만, 주안이 자신이 말한 대로만 준비한 채 다른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모습을 보자 오히려 어딘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는데. 이 인간은 대체 뭘 생각하고 있는 건지… 아니, 됐다. 나까지 괜한 것에 휘말릴 순 없어. 내가 짠 계획이니 경기에 집중해야지.’

    동민은 고개를 젓고 주안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주안과 관계없이 오직 그 혼자서 생각한 전술이 프로 레벨에서 먹힐 수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첫 시험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다행이네. 딱 예상대로라서.’

    경기가 시작되고 경기장을 바라보던 동민은 자신의 예상과 조금도 다르지 않게 나온 상대 진영을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박주현]

    22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7.3/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0.1/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공을 받고 멈춰 서서 주위를 살핌

    특성:

    장점 - 타고난 골잡이, 왼발의 마법사

    단점 - 없음

    현재 컨디션: 6/10

    [김현진]

    26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1.3/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1.1/20

    선호하는 플레이: 우측면을 따라 드리블 선호

    특성:

    장점 - 스프린터, 두 개의 심장

    단점 - 느린 판단력

    현재 컨디션: 7/10

    ‘패스와 활동량을 바탕으로 중원을 도와주는 역할의 박주현, 반대편에서 빠른 발과 탄탄한 체력을 바탕으로 위아래로 오르락내리락거리는 김현진. 두 양 날개에 중앙에는 수비력 좋은 이호원에 황창준. 지난 경기 승리로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로 변화 없이 나설 줄이야.’

    상대에 따라 큰 변화 없이 비슷한 전술을 쓴다는 것은 그만큼 그 전술에 자신이 있고 익숙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반대로 상대방도 대응법을 들고 나오기 쉽다는 단점 또한 존재했다.

    지난 안양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그것을 잘 알고 있는 동민이었기에 지난 경기와 변화가 없는 부천 유나이티드의 모습에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우리 쪽에서 대비를 안 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아니면 송원진의 빈자리를 박주현이 대신하고 있는 지금 상태로는 바꾸기도 쉽지 않다는 이야기인가. 뭐, 어느 쪽이든 우리한테는 좋은 일이지.’

    동민의 웃음는 더욱 짙어졌다. 그러나 이내 그 미소는 조금 복잡한 미소로 변했다.

    ‘주현이한테는 미안하지만 이번은 확실히 이쪽의 승리야.’

    혹시나 경기에 영향이 있을까 봐, 일부러 경기 전에 주현을 찾지도 않고 빠르게 자리에 앉아 그쪽으로는 시선도 주지 않던 동민이었다. 그런 마음은 주현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 그 또한 경기 전부터 동민 쪽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경기가 시작되길 기다리고 있었다.

    ‘저렇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녀석인데 부여받은 역할 때문에…….’

    동민은 다시금 마음속에 안타까움이 들어찼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주현을 생각하다가 자신에게 온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다른 건 나중에 생각하자. 지금은 이 경기 이기는 거에 집중해야 해.’

    꽉 쥔 주먹이 그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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