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KFC의 감독과 성남 페가수스의 전술분석관 (71/270)

KFC의 감독과 성남 페가수스의 전술분석관

‘설마 설마 했지만 진짜로 이렇게 상봉하게 될 줄이야.’

다음 날, 부천 유나이티드의 경기를 직접 확인하러 온 동민은 선발 명단을 보면서 헛웃음을 지었다. 본래 부천 유나이티드의 좌측 윙을 맡고 있던 송원진의 급작스러운 부상으로 그 자리에는 급하게 자리를 메꾼 2군 선수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나 참…….”

동민은 주현의 이름을 보면서 정말로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라고 새삼 생각했다. 성남 페가수스와의 경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주현의 포지션 경쟁자가 부상으로 빠지게 되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주현이가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볼까. 덤으로 다음 경기에서 우리가 어떻게 그 녀석을 막아내야 할지 힌트도 얻어야 하고.’

어제 훈련 전까지 경기 영상들을 보면서 고민해 뒀던 송원진의 대응 방법을 수첩 속에서 깔끔히 비우고 동민은 곧 펼쳐질 경기에 집중했다. 이윽고 양 팀 선수들이 그라운드로 나오자 동민은 그중에서도 익숙한 얼굴을 찾을 수 있었다.

대회 이후로 둘 다 각자의 일로 바빠 직접 만나 얼굴을 볼 기회는 없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임을 생각해서 동민은 그가 크게 변한 것이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자신의 기억 속 주현과 지금의 주현은 달라 보였다.

빈말로라도 큰 덩치는 아니었지만, 경태 같은 선배들에 비하면 가냘파 보일 정도였던 예전과는 달리 단단해 보이는 몸과 스포츠 컷으로 짧게 자른 머리는 자신이 알고 있던 주현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그동안 프로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변화였다.

그리고 가장 큰 차이점은 표정이었다. 동민이 [소심함]이라는 특성을 없앤 이후 조금씩 자신감이 생기던 주현이었지만, 그는 기본적으로 말수가 많지 않고 어딘가 뒤로 물러나려는 분위기를 가진 청년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라운드에 서 있는 주현에게선 더 이상 그런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보고서야 동민은 깨달았다.

지금 저곳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알던 소심한 동생이 아니었다. 자신의 꿈을 그라운드에서 펼치려 노력하고 다가온 단 한 번의 기회도 놓치지 않으려는 프로 축구 선수였다.

‘이거 괜히 가슴 뻐근해지네. 좋아, 어쨌든 상대 팀이고 다음 경기에 나올 확률이 높은 이상 나는 대비를 해야 하니까. 개인적인 감정은 일단 접어둬야지.’

동민은 기억 속을 뒤져 과거에 그가 보았던 주현의 스테이터스를 떠올려 보았다.

[박주현]

20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8.8/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7.8/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특성:

장점 - 타고난 골잡이, 왼발의 마법사

단점 -

현재 컨디션: 7/10

‘다시 생각해 봐도 끔찍하게 무서운 성장 가능성이네. 어떻게든 막을 수 있을까… 18.8이라니 리그 어디를 둘러봐도 그만큼의 성장 가능성을 가진 선수는 없을걸.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가까운 건 웨인 베인스인데 애초에 그 사람은 젊었을 적에는 유럽, 아니 전 세계적으로 날리던 슈퍼스타였으니까. 그랬던 박주현이 과연 지금은 어떻게 변했으려나.’

동민은 새삼 주현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에 등골이 오싹했다. 아직도 주전 선수가 아닌 것을 생각하면 성장 가능성만큼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불안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심판의 휘슬로 경기가 시작할 때까지 떨리는 손을 모으고 기대감으로 눈을 반짝이며 주현의 스테이터스가 보이기를 기다렸다. 이윽고 경기가 시작되자, 지난 2년 동안 바뀐 주현의 스테이터스가 그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박주현]

22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7.3/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0.1/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공을 받고 멈춰 서서 주위를 살핌

특성:

장점 - 타고난 골잡이, 왼발의 마법사

단점 - 없음

현재 컨디션: 7/10

“뭐야, 저게?”

동민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2년 만에 다시 본 주현의 스테이터스는 자신이 상상하던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장 가능성은 오히려 예전보다 소폭 낮아졌고,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도 아직 어린 나이라지만 성장 가능성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아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동민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선호하는 플레이였다.

‘공을 받고 멈춰 서서 주위를 살핌? 선호하는 플레이에 왜 다른 거랑 안 맞는 저런 게 들어가 있어?’

동민은 선호하는 플레이라는 것이 스테이터스에 생겨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정호와 이주성의 경우를 본 이후 잘 알고 있었다. 단순히 그 선수가 그 플레이를 자주 시도하는 것으로는 선호하는 플레이로 남기 어려웠다. 실제로 수비 지역을 자주 다른 동료들보다 앞쪽으로 잡을 때가 많은 이정호조차도 그것에 관련된 선호 플레이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예전에 없었던 ‘공을 받고 멈춰 서서 주위를 살핌’이라는 선호 플레이는 정말 죽어라 연습해서 저 플레이가 아예 몸에 배었다는 이야기인데… 어째서 수비 틈 사이로 침투하는 것과 동시에 있는 거지?”

동민의 기억상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라는 것은 공격수의 스테이터스에 주로 있던 플레이였다. KFC의 이종환이 그랬던 것처럼 최전방에서 움직이는 공격수 역할이나, 전주 드래곤즈의 발 빠른 공격수였던 주형규처럼 전방에서 폭넓게 움직이는 선수들에게 존재하던 것이다.

반대로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이나, ‘공을 받고 멈춰 서서 주위를 살핌 은 미드필더에서 공격을 조율하는 선수들에게 주로 있던 플레이였다. K2리그에서 손에 꼽히는 미드필더인 강만엽이나 장진운이 대표적인 선수로, 그들의 역할은 주로 공을 잡고 공격을 전개시키거나 창의적인 패스를 넣어주는 것이었다.

지금 주현은 그런 두 가지의 상반되는 선호하는 플레이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다.

‘아니, 지금 생각하면 예전에 처음 봤을 때부터도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랑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이라는 상반되는 선호하는 플레이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 괴리감이 더 커진 느낌인데. 저 녀석 대체 2년 동안 무슨 일이 있던 거지? 다쳤었다는 이야기도 못 들었는데?’

동민은 표정을 굳히고 자신의 이해의 범주를 넘어버린 주현의 변화에 의문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의문은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풀릴 수 있었다.

‘그래, 사실 부천 유나이티드의 기본 전술을 떠올려 보면 간단한 문제였어. 어제까지 그렇게 영상을 봐놓고 당황하니까 그걸 떠올리질 못하다니.’

부천 유나이티드의 기본 전술은 4-4-2 포메이션을 바탕으로 했지만 좌우의 윙이 가지는 움직임은 특이했다. 한쪽 윙어가 수직으로 오르내리며 빠르게 공격을 주도한다면, 다른 한쪽은 중앙 미드필더들을 도와 넓게 움직이며 직접 패스를 내주거나 패스를 내줄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역할을 맡고 있는 것은 좌측 윙 자리의 주현이었다.

“결국 저 팀 전술에 맞춘다고 저 녀석을 저렇게 만든 거구만.”

동민은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듯 말했다. 자신이 본 선수들 중 가장 재능 있던 선수가 잘 맞지 않는 전술에 억지로 끼워 넣어지는 바람에 오히려 성장 방향을 잃고 방황하게 된 것이다.

동민은 까닭 모를 불쾌감에 이를 악물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모든 감독들은 본인이 원하는 전술이 있고, 그 전술에 전수들이 맞게 움직이기를 원한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선수들 개인의 움직임이나 플레이는 제한하는 것이 지극히 상식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납득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차라리 저 녀석이 저 플레이에 맞지 않아서 다른 팀으로 갔으면 더 나았으려나. 하필 저런 본인한테 안 맞는 플레이까지 습득할 정도로 재능이 있던 게 오히려 악수였을지도 몰라. 본인 성장 가능성까지 점점 떨어뜨려가면서 그 플레이에 적응할 정도로.’

동민은 씁쓸한 얼굴로 주현을 바라보았다. 중앙 미드필더들과 함께 공을 잡고 넓게 움직이면서 공격을 만들어내는 것도 준수해 보였지만, 결국 본래 그 자리에서 움직였을 송원진의 대타 수준에 불과했다. 동민 자신이 감독으로서 이끌면서 전율을 느꼈던 화려하게 빛나는 플레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다시 공을 받고 움직이는 주현을 보면서 그에게 가장 어울리는 역할은 역시 측면에서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는 공격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저렇게 시간을 다 잡아먹게 만들어 버리니까 예전에 있던 폭발력 있는 플레이가 나올 리가 있나…….”

동민은 푸념을 내뱉으며 주현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만약 주현이 자신이 생각한 만큼 성장해 있었다면 다음 경기에서 만날 성남 페가수스의 전술 분석관으로서는 불안하기 그지없었겠지만, 지금의 상황을 보면 강동민이라는 개인으로서는 차라리 그게 나았을 거라는 생각조차 들었다. 경기를 보는 동민의 눈에는 아까와 같은 기대감은 사라지고 그저 부천 유나이티드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상대 팀인 고양 캣츠의 대응에서 배울 점은 없는지 알아보는 무감정함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전반전 중반, 주현이 공을 잡고 오프사이드 트랩을 펼치려는 수비 라인의 바로 뒤를 노리는 로빙 스루패스로 어시스트를 만들어냈을 때에도, 동민의 마음속에는 기쁨과 자랑스러움보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그가 기억하는 주현의 모습이라면 방금 같은 상황에선 그런 성공 가능성 낮은 패스보다는 측면에서 직접 공을 몰고 들어가서 수비를 끌고 공간을 만들어낸 후 내주는, 더 확실한 찬스를 만들어냈을 거라 확신할 수 있었다.

“흠, 결국 이렇게 끝인가.”

심판의 휘슬 소리가 전후반 90분의 경기가 끝났음을 알리자 동민은 가만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경기는 주현이 로빙 패스로 만들어낸 골로 부천 유나이티드의 1 대 0 승리로 끝났지만, 동민은 새롭게 탄생한 팀의 영 스타인 주현의 이름을 열창하는 홈팬들의 무리에서 조용히 빠져나왔다.

지금처럼만 성장해도 주현은 충분히 K리그를 넘어 어쩌면 유럽 무대에서도 통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만, 반대로 이대로 가면 자신이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주현은 사라지는 것 같아서 기뻐할 수 없었다.

자신이 가장 아끼던 선수이자 후배의 모습에 동민은 마냥 기뻐할 수도, 아쉬워만 할 수 도 없게 된 채 복잡한 심정이었다.

성남 페가수스의 전술분석관은 마음속으로 안도하고, 전 KFC의 감독은 아쉬움의 한숨을 쉬면서 부천 유나이티드의 홈 경기장을 뒤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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