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 잡는 두 사람의 분업
“앞선 두 경기에서 이겼다고 자만하면 안 됩니다. 우리가 시즌 초반을 잘 시작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상대도 2연승을 거두고 있으니까요. 상대도 시즌 초반부터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주안의 목소리는 평소보다도 딱딱했다. 이제 곧 벌어질 경기의 중요성을 다시금 선수들에게 깨닫게 하듯 그는 천천히 힘을 주어서 말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지난 시즌 막판에 안양 타이거즈에게 졌던 것을 잊지 말고 노력해 주실 바랍니다. 이상.”
주안은 말을 마치고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시즌 첫 경기랑 두 번째 경기는 승리하긴 했지만 상대가 비교적 약팀이었던 고양 캣츠랑 인천 유니콘즈. 이번 경기야말로 이번 시즌의 첫 시험대가 되는 건가. 강팀이라고 부를 만한 팀과의 경기는 이번이 처음이니까. 이번에 지기라도 하면 팀 사기에도 영향이 클 것 같은데. 홈인 이상 이기거나, 적어도 비기기라도 해야 지금까지 이어지던 좋은 흐름을 그대로 끌고 갈 수 있어.’
동민은 벤치에 앉아 몸을 푸는 양 팀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오늘은 시즌이 시작되고 세 번째 경기인 안양 타이거즈와의 경기가 펼쳐지려 하고 있었다.
조금 전 주안이나 지금 보고 있는 선수들 모두 이전의 시합보다는 꽤 긴장된 모습이 역력했다. 그 이유는.
‘긴장할 만하지. 상대가 안양 타이거즈, K2리그의 오랜 터줏대감이면서 동시에 지난 시즌 K2리그 준 우승팀이니까. 거기다가 지난 시즌 맞대결 성적은 1무 1패, 두 번의 경기에서 단 한 번도 이기질 못했던 팀이기도 하고. 홈경기라고는 하지만 상대가 상대인 만큼 불안해. 나도 최대한 머리 굴려봤지만 역시 여기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지 제대로 된 방법이 떠오른 게 아니니까. 상대한테 우리가 100퍼센트 확실하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은 안 들어.’
어딘가 얼어 있는 성남 페가수스에 비해서 안양 타이거즈는 벤치나 그라운드의 선수들이나 비교적 여유로워 보였다. 첫 경기에서 지난 시즌 3위였던 전주 드래곤즈를 홈으로 불러들여 1 대 0으로 신승을 거두고, 그다음에는 충주 원더러스에게 4 대 1이라는 대승을 거둔 만큼 자신감이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서 이쪽은 같은 2연승이라고는 해도 두 번 다 약팀 상대였으니 비교하면 쫄리긴 쫄린단 말이지. 불안한 건 어쩔 수가 없어.’
동민은 슬쩍 시계를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 경기 전에 남아 있는 포인트를 누군가에게 써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자신이 감독으로서 맡고 있는 팀이 아닌 이상 현재 포인트 수급은 불가능하고, 고작 2가 남아 있는 포인트를 이런 경기에서 쉽게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가능하면 내가 감독으로서 직접 경기를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포인트 수급 방법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지금 그런 걸 기대해 봐야 소용없겠지. 당장 뭔가 없던 방법이 팅 하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동민은 머리를 흔들어 그런 생각을 몰아내고는 곧 들려올 심판의 휘슬 소리에 맞춰 진형을 갖추는 선수들을 직시했다.
‘그래, 지금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나 확실히 해야지.’
동민은 경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빠르게 상대팀을 훑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깐 동안 상대를 돌아본 동민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며 머리를 감싸 쥘 수밖에 없었다.
‘저번 경기 때처럼 공격적으로 나오질 않은 건가. 이거 잘못하면 진짜 크게 당하겠는데.’
안양 타이거즈의 앞선 두 경기 내용은 비슷했다. 리그에서도 손꼽힐 만한 중원 자원들을 가진 그들답게 미드필더 구역에서부터 상대방을 압살하고, 상대의 공격 기회를 사전에 차단하면서 끊임없이 상대 진영에 머물며 공격을 만들어가는 형태였다.
그래서 성남 페가수스가 들고 나온 작전은 단순했다.
중앙을 아예 내주고 뒤로 물러나 수비 블록을 쌓아 수비에 집중한 뒤, 이정호의 직선적인 롱패스나 측면 공격으로 빠르게 역습을 노리는 것. 지난 상하이 레인저스와의 경기 후반전에 했던 4-4-2의 변형 방식. 그것이 동민의 확실한 분석을 바탕으로, 수비에 자신 있는 주안이 취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장점을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전술이었다.
‘저번 시즌에 맞대결에서 한 번도 이기질 못한 것도 거의 중원에서 맞불 놓았다가 되려 밀려 버린 탓이 컸으니까 택한 방법인데… 애초에 저 인간 성격상 지난 시즌에는 취하지 않았을 방식이기도 하고. 저 고집불통이 자기가 알아서 한 수 접을 리가 없겠지.’
문제는 그렇게 상대의 전술을 예측해서 카운터를 생각하고 나온 그들이지만 정작 상대의 전술은 그들의 예상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었다.
그전까지 안양 타이거즈 주 포메이션은 2명의 중앙 미드필더와 1명의 공격형 미드필더를 두는 4-2-3-1 포메이션이었다. 그리고 그 중앙에서 공격을 이끌던 공격형 미드필더를 동민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강만엽]
28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3.0/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3/20
선호하는 플레이: 공을 받고 멈춰 서서 주위를 살핌
특성:
장점 - 플레이 메이커, 절묘한 위치 선정
단점 - 깃털 몸
현재 컨디션: 6/10
위치는 달라도 성남 페가수스의 중심축이자 플레이 메이커인 장진운과 비교했을 때에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 실력 있는 선수라는 것을 동민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안양 타이거즈의 중원에 강만엽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대민]
26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2.8/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1/20
선호하는 플레이: 전방 압박 선호
특성:
장점 - 강철 몸, 정확한 태클
단점 - 느린 판단력
현재 컨디션: 7/10
[조민섭]
30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2.6/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4/20
선호하는 플레이: 슬라이딩 태클 선호, 동료의 앞쪽으로 스 루패스를 선호
특성:
장점 - 정확한 패스, 빠른 발
단점 - 트러블 메이커
현재 컨디션: 6/10
세 명 중 두 명의 모습은 이미 동민이 알고 있는 선수였다. 든든한 수비력으로 중원의 안정감을 가져가는 오대민과 강만엽에게 집중되는 수비를 함께 풀어나가는 조민섭. 그 두 명은 강만엽과 함께 안양 타이거즈가 자랑하는 중원을 구성하는 3명의 미드필더였다. 그러나 그중 강만엽의 모습은 없고 동민이 처음 보는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염웅진]
22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2.7/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0.8/20
선호하는 플레이: 오버래핑을 자제하고 후방에 머무름
특성:
장점 - 절묘한 위치 선정
단점 - 부정확한 패스
현재 컨디션: 8/10
조민섭과 오대민의 뒤에 있는 그를 보면서 동민은 확실하게 자신들의 실책을 깨달았다. 안양 타이거즈의 포메이션은 평소와 같은 4-2-3-1이 아니었다. 두 명의 중앙 미드필더 뒤에 염웅진이라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둬서 공격의 창의성을 다소 희생하더라도 안정성을 높게 만드는 4-3-3에 가까웠다.
‘1, 2라운드 경기에서는 얼굴 한 번 안 비춘 선수를 갑자기 선발로 꺼내들 줄이야. 이래서는 투톱을 이용해서 포백하고 미드필더 사이 공간을 이용하려고 했던 전략이 말짱 꽝인데.’
성남 페가수스가 노린 상대의 약점은 번갈아 가며 강만엽을 지원하러 올라오는 두 중앙 미드필더가 교대할 때 수비 지원이 약해진다는 것이었지만, 이렇게 아예 뒤에서 버티고 있는 선수가 있는 한 효과가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투톱 중 하나로 나선 한영수가 머리로 공을 떨궈 준다고 해도 그 공을 받고 움직이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원정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안전을 추구할 줄은 몰랐어. 지난 시즌이나 저번 두 경기 모두 홈, 원정 가리지 않고 공격적으로 나왔었는데 갑자기 왜 이런 식으로 들고 나온 건지 모르겠네.’
동민은 자신의 예상이 빗나간 것을 보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그 고민은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주안에게도 전해졌다. 동민과 같은 능력이 없다고 해도, 그 또한 상대가 들고 나온 전술을 모를 리가 없었다.
‘뒤쪽이 불안한 걸 내버려 두고 공격에 힘을 주느니 차라리 조금 답답해도 안정성을 추구하겠다, 이건가. 저놈의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어. 저번 시즌에 봤던 모습과도 많이 다른데…….’
주안은 초조한 기분을 감추려 작게 손가락을 비틀었다.
밀어붙이려는 상대와 웅크렸다가 카운터를 노리는 성남 페가수스라는 주안과 동민이 예상했던 그림은 무너져 버렸다.
경기 양상은 뒤에 염웅진이라는 확실한 안정 장치를 세우고 덤비는 안양 타이거즈와 수비에 치중하면서 몇 번 노리는 역습들조차 모두 막혀 버리는 성남 페가수스라는 관객들이 보기에 답답한 형태로 흘러가고 있었다.
‘서로 물리고 물렸네.’
전반전도 어느덧 30분이 지났지만 양 팀 다 이렇다 할 좋은 찬스는 나오지 않고, 그저 성남 페가수스 팀의 진영 근처에서 공이 돌고 도는 지루한 경기만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것을 보며 동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물론 상대에 대해서 걱정한 건 우리 팀이 더 컸지만 그렇다고 홈에서 이렇게 답답한 경기를 계속하는 것도 좀 너무한데.’
상대가 아무리 저번 시즌 준우승팀이고 성남 페가수스보다 강팀이긴 해도 이런 식으로 제대로 된 반격 한 번 하지 못한 채 지루하게 볼만 돌리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었다.
‘너무 늦기 전에 뭔가 방책을 세워야 하는데…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어느 한쪽에서 실수가 나오는 순간 바로 골 찬스고, 그 한 골이 경기 결과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커. 그리고 그 실수를 할 게 우리 팀일 확률이 적다고는 못하지.’
상대인 안양 타이거즈가 염웅진이라는 카드를 이용한 4-3-3을 언제부터 준비했고 연습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지금 성남 페가수스가 하는 4-4-2 또한 그들에게 가장 익숙한 옷은 아니었다. 많은 연습을 했다고는 해도, 선수들에게 가장 익숙했던 쓰리백 전술에 비하면 실수가 나올 확률이 높았다.
‘양쪽 다 익숙한 전술이 아니지만 그나마 포백이라는 수비 진형 자체는 유지한 상대와는 다르게 아예 전체적으로 뒤바뀐 우리 쪽이 더 변화가 크고. 상하이와의 경기에서도 결국 후반 막판에 가서 실수로 실점했는데 이번에도 그럴지도 모른단 거야. 빨리 뭔가 대책을 생각해봐야 할 텐데.’
동민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대책을 강구했다.
그러나 전반전이 끝나는 것을 알리는 심판의 긴 휘슬 소리가 그라운드에 울려 퍼질 때까지 동민의 머릿속에서는 이렇다 할 결론이 나지 않았고, 주안의 지시도 따로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경기는 지루한 힘 싸움뿐인 0 대 0이라는 결과로 전반전을 마치고 하프타임에 들어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