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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관계 (63/270)

변하기 시작하는 두 사람의 관계

상하이 레인저스와의 친선경기가 끝나고 다음 날, 동민은 주안의 호출을 받고 주안의 방문 앞에 섰다. 잠시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힌 그는 방문을 두드리고 입을 열었다.

“강동민입니다. 찾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들어오세요.”

변함없이 감정이 없는 차가운 주안의 목소리를 듣고, 동민은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동민은 주안과 마찬가지로 차갑게 물었다. 어제 경기에서 주안이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인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해도, 그와는 도저히 좋게 말할 수가 없었다. 실력을 떠나서 자신과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주안 또한 같았다.

“일단 앉으세요. 계속 서서 듣는 건 본인 선택이지만 올려다봐야 하는 내가 목이 아파서요. 동민 씨가 앉으면 될 걸 내가 목 아프면서까지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요?”

동민은 주안의 말에 의자에 앉으며 마음속으로 투덜거렸다.

‘앉으라는 말을 더럽게 비비 꼬면서 말하네. 하여간 성질머리 하고는. 그냥 앉아서 이야기하자고 말하면 될 걸 가지고.’

나가면서 보이지 앉는 각도에서 가운데 손가락이라도 올려줄까 잠깐 고민하고 있는 사이 주안이 입을 열었다.

“지난 경기.”

“예,”

어떻게 하면 티 안 나게 욕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동민은 주안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어제 경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자 곧바로 그의 입으로 시선을 돌렸다.

주성과 정호의 활약이나 경기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았을 때나 꽤 만족스러운 경기였다고 스스로 생각하지만, 눈앞의 이 사람은 어떤 것을 꼬투리 잡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컸다. 동민에게 주안이란 움직임이 무엇이 부족했다느니 하면서 그가 생각지도 못한 점을 찔러들어 올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난 경기에서 이주성과 이정호의 훈련이나 그전에 줬던 보고서 모두 도움이 됐네요. 고생했어요.”

동민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주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기엔 믿기 힘든 칭찬의 말이었기 때문이다.

“말 내뱉는 것에 비해서 일은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일까 봐 걱정했는데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그러나 곧바로 이어지는 말에 자신의 귀가 멀쩡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좋게 이야기하려다가도 이런 식으로 탈선하는 것이 주안다웠다.

‘그럼 그렇지. 이 인간은 좋은 이야기도 좋게 이야기할 인간이 아니지. 애초에 기대할 건덕지도 없었는데 말이야. 뻔할 뻔 자였어.’

그는 도발하듯 던지는 주안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저 슬쩍 고개만 숙여 듣고 있다는 어필만을 취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주안은 살짝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을 이었다.

“어쨌든 지난 경기에서 무승부를 거둔 건 동민 씨가 나름대로 일을 잘해준 결과니 지난번에 있었던 일은 잊어드리도록 하죠. 단, 그런 식으로 끼어드는 일은 앞으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니까 한 번쯤 눈감아 주는 거지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일은 없었으면 해요. 또다시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서로 좋은 상황은 안 벌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아시겠습니까?”

“…알겠습니다. 지난번의 무례는 사과드리겠습니다.”

동민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비록 주안에게 한 방 먹인다는 목적을 확실하게 성취하지 못했지만, 상대측에서 먼저 불문율에 붙이겠다는 말을 한 이상 그가 받아들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 말하는 투가 아무리 마음에 안 들어도 어쩔 수 없단 말이지. 저쪽에서 먼저 손 내민 거나 마찬가지고. 이럴 때 괜히 더 자극하다가는 진짜로 폭발할지도 모르니까. 잘된 거야, 잘된 거.’

그는 푸념인지 자기 자신에게 하는 위로인지 모를 말을 속으로 내뱉었다. 그리고 그런 동민의 태도가 싫지는 않았던 듯 주안은 엷게 웃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그럼 다음부터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 없이 잘해보도록 하죠. 그만 나가봐요. 앞으로 더 열정적으로 일해주시길 바랄게요. 얼마 안 있어서 시즌이 시작되면 다른 팀들을 분석하느라 바빠질 테니까요. 앞으로도 잘 부탁합니다.”

“네, 그럼 실례했습니다. 나가보겠습니다.”

동민은 옅은 미소를 짓고 있는 주안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고는 곧바로 뒤를 돌아 방 밖으로 나섰다.

“분명히 잘 풀린 일인데 저 인간 말투 때문에 기분이 더럽네.”

동민은 주안의 방을 나서 문을 닫자마자 주위를 둘러보고 방 안에 있을 주안을 생각하며 양손의 가운데 손가락을 올렸다. 분명히 그가 바라던 대로 상하이 레인저스와의 친선경기를 통해서 주안이 자신을 무시하지 못하게 한다는 목적은 달성했지만, 기분은 자신이 상상했던 통쾌함과는 거리가 있었다.

동민은 찝찝한 기분을 지워 버리려는 듯 자판기로 향하고는 곧장 버튼을 눌렀다.

“하여간 저 늙은이는…….”

시원한 탄산음료가 이 찝찝한 기분을 달래주길 바라며 동민이 단숨에 들이켤 때, 뒤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동민 씨, 여기서 뭐 하세요?”

주안에 대해서 투덜거리려다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놀라 켁켁거리면서 뒤를 돌아보자, 수연이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콜록, 콜록. 아, 안녕하세요. 콜록, 콜록.”

“괜찮으세요?”

“아, 콜록, 예. 괜, 콜록, 아요.”

목구멍을 따갑게 찔러대는 탄산에 눈물이 핑 도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동민은 간신히 수연을 보고 말할 수 있었다.

“감독한테 호출받아서 잠깐 들렸다가 나오는 길이에요.”

“호출이요? 혹시 어제 경기 때문에….”

“아, 괜찮아요. 잘 끝났으니까요. 나름대로의 칭찬 비슷한 이야기도 들은 것 같고. 이 정도면 만족스럽죠.”

주안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그것도 칭찬으로 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동민은 말했다. 동시에 들어도 기분이 나쁜 말을 칭찬이라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은 애써 눌러 담았다.

“그래요? 다행이네요. 솔직히 걱정하고 있었는데.”

“안 그래도 도와주신 수연 씨한테는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만나서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수연 씨 덕분이에요. 저 혼자서는 전체적으로 어떻게 훈련을 짤 지만 생각하고 세세한 건 떠올리지 못했을 테니까요.”

“제가 뭘요. 어쨌든 잘 끝나서 다행이에요.”

웃으며 감사를 표하는 동민에게 수연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동민은 그런 수연을 보고 함께 웃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주안의 말 때문에 상했던 기분이 수연과 말하면서 나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주안의 말투야 평소부터 알고 있던 것이으니까. 그제야 수연의 도움까지 받아가면서 짜낸 계획이 잘 맞아들어 갔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실감 난 것이다.

만약 동민이 다른 사람의 표정 변화에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면 그 웃음에 어딘가 그늘이 져 있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것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닌 이상 그가 눈치 챌 일은 없었다. 더군다나 기분이 나아져 조금 들뜬 동민이 그것을 눈치 챌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수연 씨는 여기서 뭐 하세요? 감독이 불렀나요?”

동민은 이야기를 돌려 그녀에게 물었다. 그가 알기로 민호를 포함한 다른 코치들은 지금 어제 있던 경기와 관련해서 주안에게 올릴 보고에 대해 회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주안이 이 타이밍에 그를 부른 이유이기도 했다. 만에 하나 이야기가 길어지더라도 다른 사람들과 겹칠 일 없이 둘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미 끝나가는 일이라도 일을 키우지 않으려 하던 그다웠다.

동민은 생각할수록 교활한 사람이라며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아… 저는 그, 심부름 때문에 잠시 나왔어요. 저도 곧 들어가 보려고요.”

그 말을 하는 수연의 웃음 속 그늘은 더욱 짙어졌지만 이번에도 동민은 주안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고 그대로 지나가 버렸다.

“아아, 어쨌든 감사합니다. 나중에 제가 도와드릴 일이 있다면 꼭 말씀해 주세요. 꼭 도와드릴게요. 제가 먼저 도움 받았는데 도와드려야죠.”

“괜찮아요.”

“아뇨, 정말로요. 받기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 알겠습니다. 그럼 들어가 볼게요. 나중에 또 봬요.”

“네. 나중에 뵐게요.”

수연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하고는 먼저 자리를 떴다. 동민은 먼저 걸어가는 수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시던 콜라를 마저 마시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주안의 방을 나올 때까지 찝찝하던 마음은 어느새 조금 풀린 듯 발걸음이 아까보다 가벼웠다.

“그래서 잘 끝났다고?”

“그런 거지 뭐. 말은 아니꼽게 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된 거잖아. 형이나 종환이 형이 말했던 것처럼 난리 칠 일도 없었고.”

“결국 안 했잖냐.”

동민은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주안의 방을 나오면서 들었던 찝찝한 기분은 수연과 이야기하면서 잦아들더니 이제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그래, 아무튼 니가 그러면 됐지 뭐. 그래도 홧술 마시자고 불러낸 게 아니라서 다행이네. 아까 문자 보고서 혹시나 일 잘못된 건가 하고 얼마나 쫄렸는지 아냐? 문자로 툭 ‘형 술이나 한잔하자.’ 그러면 그게 좋은 소식인지 나쁜 소식인지 어떻게 아냐고.”

경태는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퇴근 시간대가 다 되어서 술이나 한잔하자는 동민의 문자를 보고 걱정을 하던 그였다.

“아니, 애초에 그랬으면 부르지도 않았지. 이렇게 술 마실 시간에 당장 감독님한테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고민부터 했을걸. ‘감독님이 소개시켜 주셔서 들어간 성남 페가수스에서 들어간 지 한 달 만에 그쪽 감독이랑 거하게 한판 하고 쫓겨났습니다. 죄송합니다.’ 이렇게 그대로 말했다간 내 목숨이 남아나질 못할 테니까. 감독님 성격이면 일단 내 머리부터 후려치실 게 안 봐도 비디오다, 비디오.”

동민은 오버하면서 말했다. 술이 오른 듯 그의 목소리는 평소와는 다르게 높아져 있었다.

“감독님? 아, 너 전까지 지도해 주시던 분 이야기구나. 난 또 지금 너희 팀 감독인 줄 알았지. 왜 똑같이 부르고 그러는 거야? 지금 너희 팀 감독도 있는데 듣는 사람 헷갈리게끔.”

“감독님을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건데 뭐. 그리고 헷갈릴 일이 어디 있어, 이 양반아. 내가 다른 말 안 붙이고 감독님이라고 부르는 건 그분뿐인데. 어쨌든 그 인간도 이제 말로 시비야 걸겠지만 앞으로 무시할 일은 없을 것 같고, 만세지 뭐. 기분 좋은 날이니까 술이나 마시자고.”

“이건 내일 일 있으니까 가볍게 맥주나 한잔하자더니, 마시는 건 내일이 없는 인간처럼 마시는구먼.”

“됐어, 됐어.”

동민은 말을 마치고 신이 나서 맥주를 들이켰다. 그런 동민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리던 경태도 웃으며 맥주를 입으로 옮겼다.

내일부터 또다시 같은 일상의 반복이겠지만 동민에게는 이제야 정말로 팀에 합류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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