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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에이스 (59/270)

두 명의 에이스

“이 나라 팀들은 다들 친선 전을 친선 전으로 안 보는 건가? 저번 팀도 그러더니만 아예 칼을 갈고 나오는데.”

상하이 레인저스의 감독인 마크 린델은 경기 흐름을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전주 드래곤즈와의 경기를 겪고 난 이후인데도 또다시 간편하게 준비를 한 자신의 실수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이번 상대인 성남 페가수스 감독은 그런 타입이 아니라고 들었는데…….’

스카우터가 말했던 것에 따르면 이런 친선경기에서 쓸데없는 자존심을 세우는 타입은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그의 생각이 틀렸던 모양이다.

“선발 명단에 상대 핵심 선수라는 장진운이 안 나와서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착실하게 전술 변화를 들고 나올 줄이야.”

스카우터에게 들었던 상대 전술의 핵심이 없는 상황에서도 성남 페가수스는 경기를 압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이주성과 이정호, 두 명이 있었다.

‘상대 42번과 24번, 저 둘이 지금 가장 문제야. 특히 24번은 들었지만 저 42번은 들어보지도 못한 선수였는데…….’

둘은 중앙 수비수와 뒤로 처진 중앙 미드필더라는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면서 경기를 풀어나가는 중이었다.

‘중앙 수비수인 24번이 앞으로 나서면 42번이 뒤로 빠져서 그 공간을 메우고 동시에 경기의 흐름을 만들어낸다. 그렇다고 전방에서 압박하면 나머지 선수들에게 공을 돌리면서 다시 재정비, 고작 전술 실험이라는 수준이 아닌데. 핵심 선수가 안 나왔다지만 더 귀찮으면 귀찮았지 더 쉽진 않겠어.’

상대의 공격을 방해하기 위해서는 한 명이 아닌 두 명을 견제해야 하는 이상, 그 난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것을 행할 선수들이 주전급이 아닌 선수들이 대부분인 만큼 상대를 끊어내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이 나라에 와서는 두 번이나 선택을 강요받는구먼. 미리 준비한 대로 부담 없이 경기를 계속할 것인가, 아니면 이렇게 준비한 상대를 전력으로 이기려 들 것인가. 정규 경기도 아니고, 상대가 신경 쓰이는 팀도 아닌 상황. 친선 전에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만드는 건 드문 일인데.’

린델은 가만히 그라운드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중국으로 돌아가서 시즌이 시작되고 있을 경기들을 생각하면, 가능한 한 주전급 선수들에게 휴식을 취하게 하고 다른 선수들로 경기를 치르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열이면 열 모두 그렇게 대답할 것이고 그 스스로도 그 의견에 100퍼센트 동의한다. 그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인 것이다.

그러나 쉽게 그 방법을 택할 수 없는 이유는.

‘저번 경기가 있고 나서 은근히 신경 쓰인단 말이지.’

분명 자신은 치열하다는 말을 넘어 긴장으로 가득 찬 유럽 생활에 지쳐서 금전적으로든, 심리적으로든 비교적 여유 있을 동아시아로 온 것이지만 그 생각은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전주 드래곤즈와의 경기가 있던 그날부터 린델의 마음은 조금씩 들썩이기 시작했다.

이미 다 타 꺼졌다고 생각했던 나무에 불씨가 다시 옮겨 붙듯, 지쳐서 다 사라졌다고 생각한 강한 경쟁심이 조금씩 마음에 되살아나고 있었다.

‘이런 친선전까지 경쟁심을 불태우는 건 젊었을 적에나 했던 것 같은데… 뭔가 어려지는 것만 같군.’

결국 린델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동안 성남 페가수스의 선제골이 터졌다.

골키퍼에게 건네받은 공을 주성이 길게 측면으로 내줬고, 그 공은 다시 중앙의 정호에게 연결되었다. 그리고 정호는 역습을 위해 앞쪽으로 쏠려 있던 상대 수비진이 제대로 정비되기 전에 전방으로 빠른 패스를 했고, 그 패스는 그대로 골키퍼와의 일대일 찬스가 된 것이다.

저번 경기에서도 그랬지만 앞쪽으로 쏠려 있다가 다시 밸런스를 잡는 것이 미숙한 것이 실점의 이유였다.

“역습을 노리든 계속해서 공격을 하든, 역시 공격 옵션이 줄어들다 보니 전체적으로 앞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단 건가.”

린델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저번 경기 실점 이후 선수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줬지만 그렇게 쉽게 고쳐질 문제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파블로와 베인스 두 명의 크랙이 없는 상황이 이런 친선전을 제외하면 그리 자주 오는 것도 아닐뿐더러 지금 당장 그 대책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실점은 고민하던 린델의 마음을 정하는 결과를 낳았다.

“…베인스, 예정을 변경한다. 파블로 너도 마찬가지다.”

린델은 경기를 뒤바꿀 두 명에게 몸을 풀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그것은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미리 경기의 흐름을 바꿀 것이라는 그의 생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마크 린델이라는 노감독은 뛰어난 전술가는 아니었다.

그보다 더 혁신적이고 뛰어난 전술들을 보여준 감독들은 과거에도 꽤 많았고, 현역 감독들 중에도 존재했다.

그는 또한 대회마다 대부분의 트로피를 모두 쓸어 담는 타입의 감독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여러 팀들을 맡아왔지만 한 시즌에 두세 개의 트로피를 가져간 적은 적었다. 그런 타입의 감독이라면 얼마 전 한 시즌에 6개의 트로피를 가져가 역사상 최고의 팀을 만들어냈다는 찬사를 받는 대머리 감독이나, 신경질적인 성격이 트레이드마크지만 결과만은 확실히 낸다는 젊은 감독들이 유명했지, 그는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긴 감독 생활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나름대로 성공적인 감독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꾸준하다는 점이다. 오랜 감독 생활 동안 뚜렷한 전성기는 없었지만, 어느 팀을 가든 팬들이 바라는 어느 정도 이상의 성과는 계속해서 내는 것은 분명 그의 최대의 강점이었다. 화려함은 부족해도, 누구도 낮게 평가할 수 없는 점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팬들도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또 한 가지는 팀에 어떤 선수가 있든 그 선수들을 활용하는 전술을 짜내고, 큰 트러블 없이 팀을 이끈다는 점이다. 팀의 슈퍼스타인 선수들은 보통 그들이 팀의 중심이 되길 원하고 자신의 주관이 강하지만, 그런 선수들과 큰 잡음 없이 안정적으로 팀을 이끄는 것은 그를 명장이라고 칭할 수 있는 근거였다. 그 점은 다시 말해 어떤 타입의 선수라도 확실하게 동기부여를 이끌어낸다는 것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장점들은 상하이 레인저스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베인스, 파블로. 저번 경기에서 너희들의 공존 가능성을 충분히 보았다. 아니, 공존 가능성을 넘어 최고의 크랙 두 명이 함께 경기를 뛰면 만들어낼 수 있는 시너지 효과가 어떤 것인지를 보았다고 생각한다. 이번 경기에서 다시 한 번 그것을 확인하게 해다오.”

평범해 보이는 말도 그의 입에서 나오면 선수들의 마음을 움켜쥐는 말이 되었다. 그것이 이 노감독의 능력이었으며 지금껏 그가 명장이라는 말을 듣는 원동력이었다.

“우리 팀이 어째서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의 우승 후보로 꼽히는지 제대로 보여줘라.”

“당연한 말을 하네. 이 늙은 아저씨는 모자랄지도 모르지만 나는 혼자라도 거뜬하다니까. 저번 시즌 에이스가 누구였다고 생각하는 거야? 고작해야 저번하고 같은 2부 리그 팀인데. 내가 가서 신나게 휘저을 테니 보기나 하라고.”

린델의 말에 파블로는 너스레를 떨면서 대답했다. 건방진 말로 들릴 수 있지만 그만큼의 실력을 가진 그의 말에, 린델 또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네가 그렇다면 기대해도 되겠군.”

“그 말은 나에 대한 도전이라고 봐도 될 것 같네. 어린 친구가 옛날 일만 이야기하고 있기엔 아직 뛸 시즌이 많이 남아 있을 텐데. 너무 일찍부터 과거에 목매달고 있으면 안 좋을걸.”

그리고 그 말에 반응을 한 것은 백전노장이라 칭할 만한 웨인 베인스였다. 선수로서 전성기의 나이에 접어들고 있는 파블로지만 그가 보기에는 아직도 어린아이 같아서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이 아저씨가 아직도 날 잘 모르네, 저번 경기에서 골을 넣었던 것도 다 내가 활약한 덕 아냐?”

“어이구, 그렇게 말하면 결국 스포트라이트는 내가 받았다는 건데.”

“파블로, 자신감 넘치는 건 좋지만 너무 긴장 풀지 마라. 그리고 베인스, 내가 너한테 맡긴 건 팀의 중심축이 되어달라는 거지 장난만 계속 받아주라는 이야기가 아니었어.”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는 두 사람을 진정시키면서 린델은 말을 이었다.

“너희가 할 일은 저번 경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양 측면에서 수비를 흔들고, 틈을 만들어 공격을 시작하고, 마무리 짓는다. 너희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을 테니 부상에 유의하고.”

진지한 그의 말에 두 사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전반 35분, 10분이 남은 전반전 동안 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린델의 수가 펼쳐졌다.

‘벌써 나오는 건가. 그냥 가볍게 지나갈 줄 알았는데 선제골 먹은 게 자존심이 상하기라도 한 건가.’

주안은 교체로 나오는 파블로와 베인스를 보면서 두통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뺏기지 않고 경기를 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경기를 압도하고 있었지만 저 둘이 나온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전주 드래곤즈의 수비진마저 뒤흔들었다는 두 크랙을 완벽하게 틀어막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묘기였다.

‘그 얼치기 놈도 결국 마지막까지 막아내는 건 실패했다고 했으니… 차라리 정규 경기였다면 틀어막기라도 하지. 보여주기도 중요한 이런 경기라니.’

현역 시절 내로라하던 수비수였던 경험 때문인지 수비의 안정감만큼은 자신 있어 하는 주안이지만 그조차 한 수 접어줄 정도로 수비수들 간의 거리 조절이나 위치에 민감한 손홍진을 떠올리며 주안은 이를 갈았다.

그런 홍진이 이끄는 전주 드래곤즈도 결국 저 두 명으로 시작되는 상하이 레인저스의 공격을 다 막지 못하고 두 골을 허용하며 역전패 당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더욱 골치가 아파왔다.

내용은 상관없이 이기기만 하면 되는 경기라면 자존심이고 뭐고 틀어막아서 이기려 할 테지만 이 경기는 달랐다.

‘그놈의 승격 문제만 아니면 아무 고민할 필요도 없는 건데 젠장. 단장 그놈은 뭔 승격 이후 인지도를 위해서는 지금부터 보여줘야 하니 마니를 말하는 거야. 하여간 도움이 안 되는 새끼 같으니.’

차라리 처음부터 밀렸다면 동민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씌우고 내쫓기 좋은 상황이었겠지만, 주성과 정호의 활약으로 초반 분위기를 잘 탄 탓에 그렇게 하기에도 애매한 상황이었다.

‘저쪽에서 주전 선수가 나오자마자 밀렸다고 하면 그 건방진 놈 탓하기에도 이상한 상황인데… 이걸 대체 어떻게 해야 한담.’

주안은 아무 말도 없이 조용히 입술을 깨물며 어떻게 해야 이 귀찮은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은 한참이나 굳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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