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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위한 필수 조건 (58/270)

승리를 위한 필수 조건

‘선발 명단에서도 대충 짐작이 갔지만, 상하이 쪽은 확실히 저번 전주 드래곤즈 때 나왔던 벤치 멤버들로 거의 다 채워져 있네. 전주보다 우리 쪽을 더 무시한 건가. 그나마 다행이긴 한데 뭔가 조금 자존심 상하는데.’

동민은 상하이 레인저스 진영을 보면서 왠지 모르게 자존심 상해하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냐, 아냐. 지금 먼저 중요한 건 저쪽이 아니니까.”

동민은 재빠르게 눈을 굴려 이정호와 이주성을 찾았다.

‘일단 이주성부터인가.’

[이주성]

25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1.2/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0.9/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정확한 슈팅 선호

특성:

장점 - 넓은 시야, 정확한 패스

단점 - 느린 판단력

현재 컨디션: 5/10

[기본 포인트: 0]

[얻은 포인트: 6]

[현재 포인트: 6]

[1포인트로 강화 가능]

동민은 이제 눈에 익은 글씨를 바라보며 작게 속삭였다.

“강화한다.”

[포인트 사용 조건: 긴장이 풀려야 한다.]

‘뭐야? 이번엔 되게 짧고 덜 구체적이네. 이놈의 포인트 사용 조건은 참지 멋대로란 말이야.’

동민은 주성의 포인트 사용 조건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예전에는 ‘열의를 다한 말로 상대를 감동시킬 것’이라던가 ‘신체 접촉을 통해 강한 충격을 줄 것’ 같은 묘하게 구체적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신경 쓰이는 조건들이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갑자기 툭 긴장을 풀어줘야 한다고 하면 대체 내가 어째야 하냐. 가서 어깨 두들겨 주고 그런 걸로 잘 풀리진 않을 테고. 이럴 거면 차라리 예전처럼 구체적인 쪽이 좋았을 텐데. 이놈의 조건은 대체 뭘로 결정되는 건지를 모르겠네.’

동민은 속으로 실컷 투덜대면서도 머리로는 어떤 방법이 잘 맞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이 대학 시절 KFC 감독을 맡아 본선에 가기까지와 비슷한 시간을 보냈지만, 많이 친해졌던 그들과는 달리 주성을 포함한 몇 명은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아니, 최소한 말인지 행동인지 뭔지 그런 거 정도는 써줘도 좋잖아. 그래야 그걸 토대로 어떤 방식으로 할지 머리를 굴리지! 무슨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이게 뭐야!’

동민은 누구에게 향하는 건지 모를 짜증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잡아 뜯었다. 몇 초 동안 그러고 있다가 혹시나 뭔가 다른 힌트라도 보일까 싶어 눈을 떠보니 어느새 다른 글자들이 자리해 있었다.

[강화 조건 충족]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포인트를 사용했습니다]

[현재 포인트: 5]

‘응?’

갑작스레 생긴 글자에 눈이 피곤한가 싶어 동민은 눈을 비비고 주성을 다시 보았다.

[이주성]

25세

잘 쓰는 발: 왼발

성장 가능성 11.2/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0.9/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정확한 슈팅 선호

특성:

장점 - 넓은 시야, 정확한 패스

단점 - 느린 판단력

현재 컨디션: 10/10

“진짜 올랐잖아? 나 이번엔 아무것도 안 했는데? 진짜로 말도 안 걸고 있었는데 됐다고?”

동민은 경악에 차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을 내뱉었다.

옆에서 수연이나 민호가 쳐다보는 것이 느껴져 바로 사레가 들린 척 기침을 했지만 동민의 머릿속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뭐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완료라고? 잘못 본 건가 했는데 포인트도 확실히 하나 줄어 있는 데다가 컨디션도 10이야. 정말로 내가 아무것도 안 했는데 오른 거잖아.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동민은 지금 벌어진 일이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고민을 하려던 찰나, 조금 전 보았던 강화 조건이 떠올랐다.

[포인트 사용 조건: 긴장이 풀려야한다.]

‘다시 생각해 봐도 내가 무언가를 하라고 적혀 있진 않았지. 혹시 이주성 저 녀석이 가만히 두면 알아서 긴장이 풀리는 타입이라면…….’

거기까지 생각하던 동민은 그 생각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강화 조건이 충족되었을 리가 없었다.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다 있다냐. 복권이라도 사란 이야기인가… 아, 이럴 때가 아니지.’

뜻밖의 행운이라 해야 할지, 예상 밖의 사고라고 해야 할지 모를 일에 당황하던 동민은 곧바로 다음 타깃인 이정호를 찾아냈다.

[이정호]

26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1.0/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0.8/20

선호하는 플레이: 몸싸움 선호

특성:

장점 - 절묘한 위치 선정, 빠른 판단력

단점 - 서툰 태클

현재 컨디션: 6/10

‘이쪽은 딱 평범한 컨디션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올려두는 게 더 낫겠지.’

동민은 마음을 정하고 눈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이정호의 컨디션 강화 관련이 눈에 들어왔다.

[기본 포인트: 0]

[얻은 포인트: 5]

[현재 포인트: 5]

[1포인트로 강화 가능]

‘마음먹은 이상, 당연히 해야지. 이거 하나로 내가 이 팀에서 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가 결정될 수도 있으니…….’

동민의 말이 되지 못한 문장이 머릿속에서 흩어지고 그 아래에 있던 글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포인트 사용 조건: 강렬한 말로 마음을 자극시켜 사기를 올려야 한다.]

‘이번에는 또 꽤나 구체적인 조건이네. 아까 같은 날로 먹기는 아니란 건가.’

동민은 머리를 긁적이며 어떤 말을 해야 사기를 올릴 수 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뭔가 칭찬을 할까? 그러기엔 평소랑 그렇게 다르지 않아서 앞에 있는 강렬한 말이라는 게 걸리는데…….’

결국 몇 분 동안이나 이 말 저 말 고민하던 동민은 마음을 정하고 사이드라인 근처에서 재빠르게 정호를 불렀다.

“무슨 일이시죠? 감독님이 뭔가 지시 사항이 있으셨나요?”

동민은 그 말에 고개를 젓고는 아주 약간의 죄책감을 가슴속에 품은 채 거짓말을 고했다.

“그게 아니라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마음에 걸려서요. 저번에 전주 드래곤즈랑 상하이 레인저스랑 경기가 있었을 때 말인데 요…….”

동민은 과장을 섞어 최대한 정호의 자존심을 건드리도록 말했다.

“웨인 베인스 선수가 저번 경기 이후에 인터뷰 끝나고 하는 말이 ‘고작 2부 리그 선수들이랑 경기하려고 한국 온 게 마음에 안 든다, 다음 경기도 친선전이라고는 하지만 이벤트전이니 자기는 나갈 이유도 없는 거 아니냐.’ 하는 식으로 말을 하더라고요. 그땐 그냥 농담인가 했는데 오늘 벤치에 앉아 있는 거 보니까 진짜 그런 생각 가진 거 같아서요. 솔직히 우리랑 경기 남아 있는데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게 기분 좋을 일은 아니니까요.”

“…저 사람이 그랬다고요?”

동민의 말에 정호는 표정을 굳혔다.

‘이주성도 그렇지만 이정호도 보기엔 차분해 보이는데 성격 참 급한 타입이란 말이지. 팀에 성격 급한 사람들이 많은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동민은 표정을 굳히고 상하이의 벤치를 노려보는 정호를 보며 내심 미소 지었다. 그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정호는 동민의 거짓말에 불같은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예, 그리고 오늘 선발 명단 보니까 상대 감독도 전주 드래곤즈보다 우리 팀을 더 얕보고 있는 것 같아요. 그때 못 보던 선수들도 나온 걸로 봐선… 이야기 안 하려고 했는데 제가 다 자존심이 상해서…….”

동민은 일부러 말끝을 흐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런 동민의 반응은 그가 예상한 대로 정호의 이마에 핏대가 서게 만들기 충분했다.

“저 늙다리가… 감독님이나 명진이 형도 그거 알아요? 저 짱깨 놈들이 우리 개무시한단 거?”

“아뇨, 아직 이야기는 안 했는데…….”

“그럼 됐어요. 우리 아저씨 기분 상할 일 안 만드는 게 낫지. 감독님한테도 말하지 마요. 저 사람 성격 더럽게 안 좋으니 아마 길길이 날뛸 게 분명할걸요. 저놈들 생각을 고쳐먹게 해줘야지.”

동민은 이를 갈면서 자신의 자리로 뛰어가는 정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강화 조건 충족]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포인트를 사용했습니다]

[현재 포인트: 5]

‘참 성격 급한 건 감독 판박이라니까.’

동민의 입가에는 가벼운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보기보다 급한 정호의 성격을 떠올리고 생각한 작전이었지만, 이렇게까지 잘 먹힐 거라고는 그 스스로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든 내가 하려고 한 일들은 끝났어. 나머진 저 둘이 얼마나 잘 해주느냐, 그리고 저 사람한테 달린 건가.’

동민의 눈은 벤치에서 자신을 날카롭게 노려보는 주안을 바라보았다. 동민이 정호와 주성의 컨디션을 올려놓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들을 직접 지휘하는 것은 주안이라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더럽게 못 미덥지만 이럴 때는 어쩔 수 없지 뭐.’

동민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면서도 주안을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몸이 가벼운데.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주성은 공을 건네받으며 몸을 돌렸다. 오랜만에 나서는 경기에 몸이 굳었던 것도 잠시, 긴장이 풀리자 왠지 평소보다 쉽게 몸이 움직여지고 있었다. 공은 자연스럽게 발에 달라붙고, 내주는 패스는 자신의 생각보다도 더 정확하게 동료들에게 전달되었다.

‘걱정했었는데 이렇게 몸이 가볍다면 연습한 이상으로 해낼 수 있겠는데.’

상대 팀의 에이스라 견제하던 웨인 베인스나 파블로도 없는 상황에 그의 마음은 더 가벼워졌다.

“어디 감독한테 지금껏 연습한 걸 보여줘 볼까.”

주성의 입가에는 자신감 가득한 미소가 자리 잡았다. 동시에 자신이 이 위치에 있는 것이 얼마나 자신에게 맞는 옷인지 새삼 알 수 있었다.

예전보다 아래쪽으로 내려와 있는 위치는 동료들을 볼 여유를 더 만들어줬고, 예전 같으면 달려드는 상대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허둥지둥 넘겨주었을 패스는 한 번 더 생각하고 확실한 찬스를 만들어줄 수 있는 패스들로 바뀌었다.

‘그 코치, 말하는 건 엿 같았긴 했는데 확실히 성과는 있었던 거냐.’

이것이 자신에게 맞는 역할이라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주성은 가벼운 몸을 이끌고 뛰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주안은 경기를 바라보며 속으로 욕을 내뱉었다.

주성과 정호의 움직임은 자신이 상상한 것보다 더 가볍고 확실하게 게임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아래로 내려와 공을 받는 주성은 저번 시즌에 보여줬던 모습보다 훨씬 여유로운 태도로 공을 잡으며 공격의 물꼬를 트고 있었고, 반대로 앞으로 나서는 정호는 빠른 판단으로 공을 내주면서 상대의 압박을 풀어내고 있었다.

‘그 빌어먹을 애송이가 말한 거랑 비슷하게 흘러가는데. 상대가 아무리 에이스들을 빼고 가볍게 나왔다고 해도 초반부터 이렇게까지 압도할 만큼 쉬운 팀은 아닐 텐데.’

아무리 가볍게 나왔다고 하더라도 상대인 상하이 레인저스는 C리그 중상위권 팀이다. 그러나 지금 성남 페가수스는 그런 팀을 상대로 초반 15분 동안 경기를 주도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경기력의 중심에 주성과 정호가 있음을 그는 부정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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