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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과 결정 (54/270)
  • 혼란과 결정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한 건데? 그걸 받아들였어? 아니지? 만약에 그걸 오케이 했으면 넌 진짜 미친 새끼고, 당장 한강에 뛰어들어야 할 새끼야. 정신머리가 나가도 아예 확 나가 버린 놈이라니까? 진짜 아니지?”

    종환은 신랄하게 동민에게 쏘아붙였다.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하는 그의 눈빛은 욕을 내뱉는 입과 다르게 걱정만이 들어차 있었다.

    “얌마, 맞는 말이긴 해도 말이 좀 심하잖아. 뛰어들 거면 한강까지는 말고 동네 실개천 정도로 해라. 어쨌든 그래서 어쨌어? 진짜 거기서 알았다고 하거나 그런 거 아니지?”

    종환을 나무라면서도 경태 또한 다음에 동민의 입에서 무슨 이야기가 나올지 걱정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 둘을 바라보며 동민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대답이고 뭐고 그 말만 하고 나서 감독은 곧바로 나가 버렸고, 그 이후로는 아예 그걸 내가 받아들였다는 식으로 기정사실화해서 말하던데.”

    “야이, 븅딱 같은 새끼야!”

    동민의 말에 종환과 경태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넌 그걸 말이라고 하는 소리야?! 아니, 넌 진짜 등신이냐? 호구야? 그걸 왜 가만히 있었어? 그 늙다리 새끼 찾아가든 뭐든 해서 그딴 개소리하지 말라고 후려갈겼어야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는데 뭔 대화야, 대화는!”

    “야, 니네 팀 어디랬지? 그 정신 나간 늙은이 전화로 쪼아대고 인터넷에 올려서 아주 개차반을 만들던가 해야겠다. 그 이상한 꼰대 놈은 진짜 이해를 못 하겠네. 그 늙은이는 속이 개미 눈알만 하대? 내가 보기엔 그냥 니가 지한테 대고 이야기한 게 배알이 꼴리니까 그 지랄 한 거야. 꼰대도 그런 꼰대가 어디 있어. 야, 그냥 그때 그 단장한테 이야기해 버려. 감독이 이렇게 개쓰레기처럼 구는데 대체 일을 어떻게 하고 배우냐고. 자기가 데려왔으면 어느 정도 방파제는 만들어줘야 할 거 아냐. 생각해 보니 단장 그 인간도 이상하네.”

    두 명은 자신의 일처럼 분통을 터뜨리며 한 사람은 핸드폰을 들었고, 다른 한 사람은 동민에게 열변을 퍼붓기 시작했다.

    “아니, 하지 마. 내가 잘린다고 정해진 것도 아니고 감독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어쩌면 내가 그 사람 뭔가를 크게 건드렸을 수도 있고. 그리고 단장한테든 누구든 이야기할 수도 없잖아. 시즌 시작 목전에 앞두고 팀 분위기 다 망가질 텐데.”

    “니가 건들긴 뭘 건드려. 니가 건드린 건 그 새끼 알량한 자존심밖에 더하겠냐? 거기다가 그전부터 너한테 대하는 태도가 개판이었다면서. 적어도 그때 니가 잘못한 게 아니잖아. 원래 인간 성격이 그렇게 사이코 새끼인가 보지. 그리고 분위기 망가지기는 염병할, 사람 망가지는 것보단 분위기 망가지는 게 차라리 낫겠다.”

    종환은 제대로 열이 오른 듯 쉴 새 없이 욕을 내뱉으며 있는 대로 술을 들이켜고 있었다.

    경태와 종환 두 사람은 어제 감독과 트러블이 생겼다는 동민의 연락을 받고 잠시 나왔다가 홧술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경태는 성남 페가수스 팀과의 계약을 선택하기 전에 한참을 고민하던 동민을 떠올리며 가슴이 무거워졌다. 감독이나 다른 스태프들과의 관계를 가장 걱정하고 생각하던 동민의 등을 강력하게 떠밀던 것이 자신이기에, 이런 일로 힘겨워하는 동민을 보면 자신의 탓도 포함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경태는 씁쓸해진 기분을 감추려 소주잔을 기울였다.

    “진짜 뭐 그딴 인간이 다 있는지 모르겠네. 너 그럼 어쩌게?”

    두 사람을 진정시키는 데 세 병의 소주가 이용되고 나서야 이야기의 흐름은 주안에 대한 욕설이 아닌 동민의 행동으로 바뀌었다.

    “글쎄, 일단 확실한 건 내가 이야기했던 일이라는 거니까. 내가 책임지고 코치해 봐야지. 잘될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그래서 가능성이 0퍼센트는 아닐 거야.”

    동민은 조금 쳐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말에 종환은 또다시 욕을 내뱉으며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댔고 경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없는 거야?”

    “아니, 그렇다기보다는 일단 난 직함상으로는 전술 분석관이지 코치가 아니니까 다른 사람들 눈치가 보이기도 하고. 다른 선배들 앞에서 ‘감독이 이런 말을 해서 이 선수는 제가 맡겠습니다’라고 할 수도 없잖아.”

    동민은 민호를 필두로 하는 다른 코치진을 떠올려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감독의 태도가 퉁명스럽다고는 해도 자신이 겪은 일을 그들이 100퍼센트 믿어줄 것 같지는 않았다.

    ‘뭐가 어떻든 감독이랑 더 오랫동안 보고 일하던 사람들이고. 민호 코치 그 사람은 그렇게 싱글싱글 웃고 있다가도 한번 돌아서면 무서울 것 같으니까.’

    동민은 머릿속으로 화가 난 민호를 상상하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야, 그러고 보니까 너 거기에 그때 그 여자 코치도 있다고 하지 않았냐?”

    생각에 빠진 동민에게 술에 취해 혀가 한창 꼬부라지는 중인 종환의 말이 다가왔다.

    “응?”

    “예에, 전에 우리 봤던 그 뭐시기 뭐야, 아 그래 BU. 부광 유나이티드인지 부산 유니버시티 였는지 거기 매니저였던 여자가 코치로 있다면서. 그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할 순 없어?”

    “아…….”

    동민은 머리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주안과의 일이 있고 나서 충격에 제대로 된 무언가를 하기가 힘든 것은 사실이었지만 현재 팀 내에서 가장 가까운 동료의 존재까지 잊는다는 것은 스스로도 창피한 노릇이었다.

    “수연 씨라면…….”

    동민은 수연에게 이 일을 상담하는 것을 상상해 보았다.

    ‘괜찮지 않을까? 감독하고 사이가 그렇게 좋은 것도 아니고, 오히려 비슷한 처지 때문에 나랑 더 가까우니까. 게다가 전술 쪽에 매일 묶여 있다시피 하는 나하고는 다르게 훈련에서 선수들을 직접 가르치기도 하니까 이정호 훈련에도 용이할 테고.’

    “딱인데? 지금까지 아예 생각 못 하고 있다가 형 이야기에 떠올랐어.”

    “뭐? 에라이, 븅신 새끼야. 그나마 낫네. 그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해. 감독 그 인간이 그 여자한테도 거지같이 대한다며. 둘이 손잡고 해서 그 늙다리 새끼한테 한 방 처먹이면 되겠네. 딱 좋잖아.”

    종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동민은 사소한 의문이 떠올랐다.

    “종환이 형, 근데 우리 팀에 그 여자가 코치로 있다는 거랑 감독이 그 사람한테도 안 좋게 대했다는 거 내가 형한테 말 한 적 있었나?”

    근래에 술을 그렇게 먹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머릿속에서는 종환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기억이 없었다.

    “응? 아니.”

    “뭐? 그럼 그런 이야기를 어떻게 알아?”

    동민의 물음에 종환은 가볍게 검지를 펴고 자신의 옆자리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초반부터 빠르게 술을 들이켜다가 어느새 잠들어 버린 경태가 편안한 얼굴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이 인간이 전화로 다 말해주던데?”

    종환의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한 말에 동민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세워졌다 사라져 갔다.

    “그래서 어쩐다고?”

    완전히 취해 버린 경태를 택시에 태우고 두 사람은 밤거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내일부터 당장 시작해 봐야지. 감독이 언제부터 하란 말은 없었지만 다음 주에 당장 있을 상하이 레인저스하고의 친선경기만 생각해도 가능한 한 빨리 끝내야 할 것 같거든. 수연 씨한테도 이야기해서 최대한 도와달라고 해보고.”

    동민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아까는 뭔가 한심하게 말해서 미안해. 그래도 형들 덕에 생각이 좀 정리됐어. 잘 안 되면 책임지라고 했는데 잘되면 끝이지 뭐. 이 기회에 항상 날 업신여기던 감독한테 이미지도 바꿀 수도 있고.”

    동민의 말에 종환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서 있다가 입을 열었다.

    “뭔가 되게 기분 나쁜 인간이네. 아까 나나 경태 형이나 말했던 것처럼 그 인간이 니가 지한테 대하는 게 기분이 나빠서 그런 식이다, 면 차라리 괜찮은데.”

    “응? 다른 원인이 또 있을까 봐?”

    “만약에 그 늙다리가 너한테 가진 감정이 ‘이 꼬맹이가 말하는 게 겁나 재수 없네’, 이런 게 아니라 혹시나 질투 같은 그런 거라면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게 아닌가 싶어서.”

    그 말을 하던 종환을 붉은 볼을 긁었다.

    “아니, 됐다. 뭐 그럴 일이 있겠냐. 술 먹었더니 헛생각만 늘었나 보다.”

    종환의 실없는 소리에 동민도 그저 웃으며 넘어갔다.

    “이 형도 취하긴 취했구먼. 다들 들어가자고. 내일도 일 있는 건 죄다 마찬가지잖아.”

    “일 있는 전날에 부른 놈이 누구였는지부터 확인해 봐라, 이 대가리 나쁜 놈아.”

    종환의 말에 동민은 할 말이 없어져 머쓱하게 머리를 긁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나도 이제 가본다. 일 잘되길 바라고 정 그 늙다리 안 되겠으면 나나 경태 형한테 이야기해. 인터넷에 다 올려서 그 늙다리 감독 꼭 조져놓고 만다. 아니면 구단에 죽어라 전화 테러를 해서라도 한 방 먹여놓을 테니까.”

    “알았으니 괜한 걱정 말고 들어가, 좀.”

    동민은 끝까지 주절대는 종환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지만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어제 주안과 이야기를 한 직후나 오늘 까지도 머리가 복잡하게 꼬여 들어가는 기분이었는데 그 두 사람과 이야기를 하고 나니 좀 풀린 느낌이었다.

    처음 광호에게 제의를 받았을 때에도 경태를 만나고 나니 생각이 정리되었던 것처럼, 이번에도 함께 떠들고 푸념을 하는 동안 스스로 많이 진정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내일 당장 수연 씨한테 이야기해서 도와달라고 하고 이정호 연습에 들어가자. 못할 건 또 뭐야. 그 빌어먹을 감독이 책임을 져야 할 거라고 했지, 그 책임이 뭔지도 말 안 했으니 쫄 필요도 없잖아. 힘내자.’

    동민은 흐린 밤하늘을 보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수연의 목소리가 복도 안을 울려 펴졌다.

    “쉿. 그렇게 크게 이야기할 만 한 건 아니잖아요.”

    동민은 자신이 처음 왔을 때와는 상황이 역전된 것 같다는 생각에 웃으며 좌우를 둘러보았지만, 마침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 훈련을 동민 씨가 맡아서 하고, 그게 제대로 안 되면 동민 씨가 책임을 져야 한다니요? 그건 대체 무슨 소리예요?”

    수연의 말에 동민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답했다.

    “그날부터 감독님이 유난히 더 싫어하는 것 같더라고요. 제가 뭔가 모르는 사이에 저질렀나 보죠 뭐.”

    어차피 하겠다고 마음먹고 나니 동민의 마음은 평온하다 못해 여유롭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아니, 그게 가능해요? 아무리 이정호 선수가 전진 패스를 많이 시도하고, 발재간이 나쁘지 않다고 해도 지금까지 하던 플레이하고는 느낌이 다르잖아요. 그런 식의 변화가 하루아침에 되는 것도 아니고요.”

    수연은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동민은 그런 수연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 짓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전 수연 씨 도움이 필요해요. 저 혼자서는 선수들을 제 쪽으로 끌어당기기도 쉽지 않으니까요. 그 감독한테 한 방 먹이고 정신 차리게 만드는 걸 도와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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