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경기의 결과는 (50/270)
  • 경기의 결과는

    “상하이 쪽에서는 하프타임에 완전히 바뀌었네.”

    후반전을 알리는 휘슬이 울린 후 동민은 흥미롭다는 표정을 하며 경기장을 보고 있었다. 전주 드래곤즈의 멤버는 한 사람도 바뀌지 않고 나온 반면, 상하이 레인저스는 하프타임 동안 4명이나 되는 인원을 교체한 상태로 등장한 것이다. 양 팀이 합의한 숫자만큼 교체를 할 수 있는 친선전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번에 4명이나 되는 인원의 교체라니, 아예 팀을 반쯤 깡그리 바꾸겠다는 소리잖아. 게다가…….’

    동민의 시선은 교체로 들어온 사람들에게 고정되었다.

    ‘어쩐지 전반전 멤버들은 좀 부실하다 했더니 1.5군으로 치른 거였나. 그럼 그렇지. 친선전이라고 주전 선수들 중에서 실질적인 에이스급은 다 빼놓았던 거네. 웨인 베인스야 영입해 온 지 얼마 안 되었으니 발을 맞춰볼 겸 넣은 거고. 그러면 지금부터가 상하이 레인저스의 본모습에 가깝단 건데…….’

    새로 들어온 선수들은 확실히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노리겠다는 린델 감독의 말이 단순한 허풍이 아니란 것을 보여줄 만큼의 실력이 있었다.

    ‘대충 적합도만 따지면 12,7, 12.6, 13.1이라… 적합도만 보면 거의 K리그에서도 상위 수준 선수들인데. 물론, 적합도만으로 선수의 실력을 평가할 순 없지만. 그중에서도 우측 윙에서 뛰고 있는 저 사람은…….’

    그리고 그 4명 중에서도 가장 동민의 눈길이 가는 사람이 있었다.

    [파블로 다 실바]

    27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4.4/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3.5/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우측면에서 안쪽으로 드리블 선호

    특성:

    장점 - 드리블러, 트릭스터

    단점 - 트러블 메이커

    현재 컨디션: 6/10

    ‘포지션 적합도가 13.5에 장점은 드리블러랑 트릭스터라… 드리블하고 개인기로 혼자 휘젓고 다니는 타입인가. 다른 사람들도 다른 사람들이지만 저 사람이 나오고 나니까 상하이의 공격이 확실히 달라졌어.’

    베인스가 있던 좌측에만 집중되던 공이 반대편인 우측에도 전개되기 시작하자 전주 드래곤즈의 수비는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측면에서 직접 볼을 몰고 올라가 화려한 개인기로 수비수들을 속이는 파블로의 존재는 전주 드래곤즈의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베인스도 전반전이랑 움직임 자체가 달라진 느낌이고…….”

    파블로의 존재 때문에 좌측면에 몰려 있던 수비수들이 분산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베인스 본인의 움직임도 동민이 보기엔 전반전보다 훨씬 자연스럽고 활발해 보였다. 전반전 내내 무력한 모습을 보이며 짜증이 늘어가던 그의 모습과는 다르게 지금의 베인스는 뭔가 이를 악물고 뛰는 듯한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저게 빅 리그들을 거친 경험 많은 감독의 힘인가…….’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갑자기 바뀌어 버린 상하이 레인저스의 모습을 보며 동민은 새삼스레 마크 린델이라는 감독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선수들을 거치며 경험을 쌓은 감독인지 알 수 있었다.

    ‘전반전에 저쪽에서 들고 나왔던 계획은 굉장히 좋긴 했지만 결국 방법은 있다.’

    후반전이 시작하고 15분이 지난 시각, 아직 스코어는 1 대 0으로 전주 드래곤즈의 우위였지만 마크 린델의 마음속은 평안했다. 경기장의 분위기가 전반전과는 사뭇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반전 내내 하던 것처럼, 상하이 레인저스가 점유율을 가져가면서 공격을 진행하고 전주 드래곤즈가 그것을 막아내는 모습이었지만 단 한 가지가 달랐다. 그것은 전주 드래곤즈의 제대로 된 역습이 후반 시작 후 단 한 번도 나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베인스 단 한 명에게 공이 집중되는 일이 없어졌으니 상대 선수들이 압박해야 할 범위는 늘어나고, 그 결과 우리 팀의 패스 루트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 패스를 내줄 곳만 찾는 다른 선수들과 달리 파블로는 몇 명이나 되는 수비를 끌고 다니면서 혼란을 줄 수 있으니까.’

    베인스 외에는 드리블이나 허를 찌르는 패스로 공격을 이끌어 갈 만한 선수가 없었던 전반전과는 달리, 지금은 우측면에서 직접 공을 운반할 수 있는 파블로가 존재했다. 베인스가 이적해 오기 전의 상하이 공격진을 이끌던 실질적인 에이스답게 그 또한 혼자서도 수비진을 무너뜨릴 수 있는 선수였다.

    빠른 스피드와 강한 킥력, 확실한 골 감각, 좌우 윙과 최전방을 가리지 않는 멀티 플레이어라는 점 등으로 상대 수비를 무력화시키는 베인스와는 달리, 남미 선수답게 화려한 개인기와 드리블로 무장한 파블로는 단독 돌파나 페인팅 모션으로 상대 수비진을 뒤흔들고 있었다.

    그 둘의 비슷하면서 다른 특징은 전반전 내내 단단했던 전주 드래곤즈의 수비진을 양쪽 측면에서부터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팀에 두 명의 크랙(혼자서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정도로 기량이 출중한 선수)이 존재한다면 그걸 막기는 쉽지 않다. 둘 중 한쪽에 신경이 쏠리는 순간, 다른 한쪽에 당하게 될 테니까. 전반전처럼 베인스에 집중하다가는 파블로의 돌파가 이어질 테고, 파블로를 막으려니 베인스에 대한 압박이 다소 줄어들 수밖에 없어. 전반전에는 나름 선전했는데… 이건 어떻게 막으려 할지 모르겠군.”

    린델은 초조한 모습으로 선수들에게 지시를 하고 있는 홍진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와서 처음에 놀라긴 했지만 아직 상대가 되긴 이르다. 그래도 유럽도 아닌 아시아의 2부 리그에서 이런 팀을 만날 줄은 몰랐는데. 이런 팀이 2부 리그에서도 우승이 아닌 3위뿐이었다는 것이 놀랍군. 만약 저 감독을 훨씬 더 어릴 적에 만났다면 코치로 데려오고 싶었을 텐데.’

    그는 자신이 유럽에 있었을 때를 생각하며 아쉽다는 듯 미소 짓고는 이내 표정을 바꾸며 말했다.

    “그래도, 지금 이거하곤 이야기가 다르지만.”

    결국 계속해서 이어지는 상하이의 공격이 결실을 맺은 것은 후반 25분이 되었을 때였다.

    우측면에서 드리블로 수비진을 농락하며 파고든 파블로가 길게 넘겨준 공은 걷어내려는 센터백의 머리를 스치며 페널티박스 끝 쪽으로 날아갔고, 마치 그 자리에 공이 올 것을 알고 있던 것처럼 서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웨인 베인스였다.

    그는 단 한 번의 볼 터치로 공을 잡고 그대로 몸을 돌리며 발리슛을 시도했고 그 공의 궤적은 그대로 휘어져 골대 좌측 구석으로 빨려들어 갔다.

    전반전의 미미한 활약을 보며 자신이 늙었다고 말하던 관객들을 모두 열광에 빠뜨리는 멋진 마무리였다.

    그렇게 한 골이 나오고 나서부터 분위기는 완전히 상하이 레인저스의 품으로 넘어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단단했던 전주 드래곤즈의 수비진에는 균열들이 생겼고, 전반전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잔실수들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전반전에 전주 드래곤즈가 내놓은 압박 전술에는 결국 두 가지의 약점이 있던 거구나. 하나는 양 측면이든 다른 곳이든 동시에 두 군데 이상에서 저런 식으로 흔들어 버리면 선수들의 동선이 점점 더 흐트러진다는 점.’

    전주 드래곤즈가 보여주던 협력 수비는 물론 강력했지만, 동시에 문제 또한 존재했다.

    수비수가 주로 마크해야 하는 공격수를 따로 정하지 않고 전원의 간격을 유지하며 위험지역에서 측면으로 몰아내는 것이 그들의 수비 방식이지만, 좁은 지역 내에서 여러 명의 공격수가 움직이면 어쩔 수 없이 수비수들의 눈은 각 공격수에게 고정되기 쉽다. 그리고 그렇게 되는 순간 그들이 자랑하던 수비의 그물은 풀어지고 제각각의 실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파블로와 베인스라는 저 두 크랙은 저런 방식이 아니더라도 완전히 막기가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조합이지만. 처음부터 지역 수비만을 위주로 한 방식이기 때문에 더 힘들어졌겠지. 파블로가 들어온 이후 수비수들끼리도 조금씩 동선이 꼬이고 있었으니까.’

    동민은 파블로가 들어와 우측면을 휘저으면서부터 전주 드래곤즈의 그물형 수비가 찢어지는 것을 보았던 것을 떠올렸다.

    “나머지 숙제 한 가지는… 결국 집중력하고 체력이었나.”

    홍진은 후반 37분, 상하이 레인저스의 역전 골이 나오자 입술을 깨물며 되뇌었다.

    첫 골 이후로 급격하게 흔들리던 수비가 결국 치명적인 실수를 낳은 것이다. 센터백인 오창준이 측면으로 내주던 공이 상하이 레인저스의 공격수인 장 웨이펑의 발에 걸렸고, 장 웨이펑의 스루패스를 받은 웨인 베인스가 여유 있게 골키퍼의 키를 넘기는 로빙슛으로 멀티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아무리 훈련을 거듭해도 선수들도 사람인 이상 90분 내내 집중력을 발휘하긴 힘들어. 그래서 계속해서 긴장감을 심어주던 건데… 결국 그렇게 해도 어쩔 수 없는 거였나.’

    홍진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계속해서 선수들의 정신 무장을 주문하고, 상대를 분석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술을 채택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져 가는 체력과 산만해져 가는 집중력은 그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전반전에 슈퍼스타인 웨인 베인스를 비롯한 상대 팀을 무력화시켰으니 어느 정도는 목적을 달성했지만… 그래도 이왕 상대랑 제대로 붙는 거 꼭 이겨서 시즌이 시작하기도 전에 깔끔하게 팀을 만들고 싶었는데… 역시 마음대로 되질 않는구나.’

    홍진은 씁쓸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이 승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결국 경기는 그대로 종료되어서 웨인 베인스의 두 골로 상하이 레인저스가 2 대 1의 스코어로 승리했다.

    “양 팀 다 친선전이라고 생각하기 힘든 경기력이었네. 전반전에는 전주 드래곤즈의 압박과 협력 수비를 통한 역습, 후반전에는 베인스와 파블로라는 두 특급 크랙을 이용한 상하이 레인저스의 공격인가… 전후반이 아예 극과 극으로 갈렸구먼.”

    경기장을 나서며 동민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조금 전의 경기에서 느꼈던 긴장감과 감동에 압도되어서 아직까지 여운이 남은 탓이었다.

    ‘내가 전주 드래곤즈의 감독이었다면, 혹은 상하이 레인저스의 감독이었다면 그런 경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을까?’

    상대의 에이스를 막아낼 촘촘한 수비를 구성하는 것도, 전반전까지 부진했던 슈퍼스타의 경기력을 뒤바꾸며 경기를 뒤집는 것도 아직 그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배울 게 차고 넘치는구나.”

    마치 푸념과 같은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지만 그 말을 하는 동민의 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주안의 지시에 급하게 준비하고 내려와 본 경기였지만 경기가 끝나고 난 지금은 진심으로 직관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팀의 장단점을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같은 건 제쳐두더라도, 지금 이런 감정을 느끼진 못했을 테니까.’

    동민은 다시 터미널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자신도 모르게 재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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