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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되는 두 사람 (49/270)
  • 상반되는 두 사람

    ‘아직까진 잘하고 있지만 전반전에서 한 골이라도 뽑아내야 할 텐데.’

    전주 드래곤즈의 감독인 손홍진은 뛰고 있는 선수들을 바라보며 상대의 대응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친선전이라지만 이 정도로 나온 이상 저쪽도 그냥 손놓고 무력하게 경기를 끝내려 들진 않을 거야. 팀의 주축이 되는 웨인 베인스가 아무것도 못하는 상태로 그냥 두기엔 자존심이 상할 테지. 자신들은 이벤트 매치 같은 느낌으로 잡은 친선전에 이렇게 달려들 거라곤 생각 못 했겠지만.’

    홍진의 생각 그대로 친선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 정도로 빡빡하게 준비하고 나서는 것이 드문 일일 수 있지만 그에겐 그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다.

    ‘얼마 전 K리그와 K2리그의 승강제가 발표된 이상 다른 K2리그 팀들도 승격을 노리는 건 기정사실이겠지. 거기다가 승격만 문제가 아니야. 승격 이후를 생각하면 어떻게든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어야 해.’

    얼마 전, 한국프로축구연맹과 한국축구협회에서 관계자들의 소문으로만 돌고 있던 K리그와 K2리그의 승강제를 정식으로 발표한 이후, K2리그의 팀들은 모두 분주해졌다.

    K2리그에서 K리그로의 승격은 단순히 한 단계 더 높은 리그로 올라간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중계조차 안 되는 K2리그와는 달리 K리그에서는 중계료로 꽤 큰돈이 들어오는 데다가 관중의 규모도 이미 차원이 다르다고 할만 했다.

    지난 시즌 K리그 팀들을 제치고 FA컵 8강이라는 호성적을 낸 전주 드래곤즈는 이미 K2리그 팀들 중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그래서 상하이 레인저스와의 친선전을 큰돈을 들여가면서까지 진행시킨 거지. 저쪽에서 웨인 베인스라는 슈퍼스타를 데려오면 관객들도 많아질 테고. 그런 경기에서 K2리그의 팀이 요즘 뜨고 있는 상하이 레인저스를 잡거나, 적어도 전혀 밀리지 않는 게임을 한다면 인지도는 늘 수밖에 없어.’

    그것이 바로 전주 드래곤즈가 이번 친선전을 철저히 준비해 온 이유였다. 든든한 모기업이 없는 그들로선 구단 운영을 위해 인지도와 그에 따른 관객들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도 허술하게 준비하진 않았겠지만. 어쨌든 여기서 어떻게든 상대를 잡는다. 웨인 베인스에 대한 분석은 이미 충분히 했으니 이렇게만 흘러가다가 선제골이 나오면 충분히 잡아낼 수 있어.’

    홍진은 또다시 공을 끌고 들어가려다 세 명에게 에워싸이는 웨인 베인스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인혁이 너 간격 똑바로 안 맞춰! 성태 너는 미리 공 받을 수 있게 옆에서 뛰기 시작해야 할 것 아냐!”

    그의 목소리를 들은 선수들은 더 눈을 빛내며 뛰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상태에서도 오히려 선수들에게 더 많은 것을 주문하는 그를 알기에, 그의 재촉이 오히려 자신들이 지금 잘 해내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전반전도 어느새 반 이상 지날 무렵, 경기는 동민의 예상대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전주 드래곤즈의 수비를 뚫지 못한 웨인 베인스가 다시 공을 잃었고, 전주가 앞으로 길게 전달한 공이 전체적으로 밸런스가 앞으로 쏠려 있었던 상하이의 수비를 뚫고 공격진에 전달된 것이다. 그리고 그 한 번의 찬스는 결국 골로 결실을 맺었다.

    ‘진짜 끔찍할 정도로 튼튼한 수비에 재빠른 역습이네.’

    동민은 골을 넣고 기뻐하는 전주 드래곤즈의 투톱을 바라보며 수첩에 적기 시작했다.

    [주형규]

    27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3.4/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1/20

    선호하는 플레이: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특성:

    장점 - 스프린터

    단점 - 기름 발

    현재 컨디션: 8/10

    [안대민]

    24세

    잘 쓰는 발: 오른발

    성장 가능성 12.3/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0.2/20

    선호하는 플레이: 정확한 슈팅 선호,

    특성:

    장점 - 골 게터, 스프린터

    단점 - 좁은 시야, 제공권 장악 불가

    현재 컨디션: 6/10

    ‘촘촘한 수비로 상대 라인을 끌어올리도록 만들고 그 뒤로 긴 패스를 전달, 그다음 빠른 공격수 둘로 하여금 골을 만드는 거네. 확실히 리그에서 만나면 조심해야 할 역습이야. 특성에서 보면 침투로 먼저 공을 받거나 수비를 끄는 건 주형규, 마무리는 주로 안대민이라… 저 팀 감독이 자기 선수들을 완전히 파악하고 움직이는 게 틀림없네.’

    방금 전의 골 장면에서도 뒤를 노리는 긴 패스를 받으며 수비진을 무너뜨린 건 주형규, 마무리 지은 것은 안대민이었다.

    ‘특성을 안 보고도 저런 역할을 딱 맞게 맡긴 건가? 만약 그게 맞다면 진짜 무서운 사람인데. 저 둘뿐만 아니라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야. 최대한 저 전술에 맞는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어. 저들이 아니라 다른 선수들로 같은 전술을 짠다고 해도 지금만큼 효과적으로 해내지 못할 정도로.’

    특성을 볼 수 있는 동민이야 어떤 역할에 누가 어울리는지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각 선수에 맞는 역할을 맡긴 전주 드래곤즈의 감독에게 그는 전율을 느끼고 있었다.

    ‘아니면 그 역할을 맡긴 선수에게 계속해서 훈련을 시켜서 그 특성을 습득시킨 건가? 만약 그런 거라고 해도 대단한 건데… 전주 드래곤즈라는 팀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선수들이 아니라 저런 맞춤형 전술을 짜내고, 그 전술에 맞는 선수들을 위치시킨 저 감독이야.’

    저번 시즌 경기 영상을 보았을 땐 그저 수비 조직력이 뛰어난 팀이며 역습을 위주로 경기하는 팀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지만, 직접 경기를 보고 있으니 그 생각을 버릴 수밖에 없었다.

    ‘저런 팀이 저번 시즌 3위밖에 하지 못했다고? 그게 가장 믿지 못할 일인데.’

    동민은 저 정도로 전술적으로 완성된 팀이 지난 시즌 3위라는 사실이 놀라웠다. 동시에 얼마 후면 저런 팀들을 상대해야 한다는 생각에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아니, 나중 일은 뒤에 생각하고… 저런 자기 진영에 버스 두 대쯤 세워놓은 것 같은 팀을 과연 상하이 레인저스가 뚫을 수 있을까.”

    웨인 베인스라는 주 공격 루트가 묶여 버린 이상, 상하이 레인저스가 이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점점 더 줄어들어 갔다.

    그 생각은 동민뿐만 아니라 경기를 보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그리고 분위기는 전주 드래곤즈에게 완전히 넘어간 상태로 하프타임을 맞이했다.

    “지금까지 분위기는 크게 신경 쓰지 마라.”

    친선전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축 처진 분위기로 라커 룸에 들어온 상하이 선수들이 들은 첫 말이었다.

    마크 린델은 통역사를 통해 말했다. 전반전에 상대방에게 완전히 밀린 경기를 한 것은 다름 아닌 그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벼운 친선전이라고 생각하고 100퍼센트 전력을 쓰지 않은 것이 이런 결과를 만든 것이다.

    “친선전이라고 너무 안일한 태도를 취한 것 때문에 끌려갔을 뿐 너희가 상대에 비해서 실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거기서 린델은 잠시 말을 끊고 베인스를 바라보았다.

    아시아 무대에서의 첫 경기가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자 그는 꽤나 당혹스러워 보였다. 그런 베인스를 향해 린델은 입을 열었다.

    “베인스, 네 실력은 예전에 유럽 무대에서 널 상대했던 내가 잘 알고 있다. 넌 고작 저 정도 선수들한테 막히는 삼류 선수가 아니야. 후반전에는 저 정도 수비진은 충분히 휩쓸고 다닐 수 있을 거다. 설렁설렁 뛴다는 생각은 그만둬라. 네가 아직 건재하다는 것은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 이대로 경기가 끝나면 또 사람들은 ‘웨인은 늙었어. 유럽은커녕 이젠 아시아 무대에서도 못 써먹는다니까. 이제 은퇴하고 고향에 가서 펍이나 차리는 게 낫지 않나’라며 조롱할 텐데.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건 아니겠지?”

    린델은 일부러 베인스의 속을 긁어대는 말을 하며 도발하고 있었다. 웨인 베인스라는 전 슈퍼스타가 아무리 노쇠했어도 저런 2부 리그 수비수들에게 이 정도로 무력하게 밀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다.

    베인스가 전반전 내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상대에게 붙잡혀 있던 이유는 상대의 전술이 좋고 그의 기량이 떨어진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그 스스로 마음을 다잡지 못한 탓이라는 것을 이 노감독은 알고 있었다.

    “나머지 인원들도 마찬가지다. 경기 시작할 때 말했던 가볍게 하라던 말은 내 실수다. 상대는 비록 2부 리그 팀이라지만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다. 정신 똑바로 차리도록. 그리고 곧바로 후반전부터의 전술을 설명할 테니 똑바로 듣도록. 량, 지금부터 말하는 걸 조금도 틀리지 않고 선수들에게 전해줘요.”

    린델은 통역사를 보고 말을 끝맺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경험 많은 노감독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전반전에 상대 공격을 틀어막은 것은 잘했다. 다만, 인혁이 너 아까 상대 24번 세 번이나 놓쳤어. 민규 너도 마찬가지야. 다들 잘 들어, 단 한 번이라도 자기 영역에서 들어오는 사람을 놓쳤다가는 기껏 압박해 놓고 상대한테 공 줄 곳을 다 내주는 셈이야. 그랬다간 너희들은 죽어라 뛰는데 상대 공격은 조금도 안 막히고 매끄럽게 흘러가게 되는 거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헛짓거리가 된다 이 말이다. 그렇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확실하게 자기 영역에 들어온 상대 놓치지 말고 공 줄 곳을 최대한 줄여. 그렇게 측면으로 빼고 거기서부터 달려들어서 잡아내라고.”

    홍진은 선수들이 라커 룸에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말을 시작했다. 전반전 내내 그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잘 해내고 있던 전주 드래곤즈 선수들이지만 아직 칭찬을 하기에는 너무 일렀다.

    “그리고 이건 아까도 말했지만 무조건 혼자 상대하려고 하지 마. 혼자 뛰어들다가 벗겨지면 네 공간만 망가지는 게 아니고 전부 흔들린다는 생각을 해라. 중간에 구멍 난 그물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처럼 우리 수비도 마찬가지야. 단 한 명이 흐트러지기 시작하면 전부 그 자리를 메꾸려다가 무너지기 십상이야. 알겠어? 성태, 너는 특히 명심해 둬.”

    “네, 알겠습니다.”

    잘한 것에 대한 칭찬 대신 단점에 대한 꾸중이 먼저 나오는 방식이었지만 그들에게는 이것이 익숙했다. 그리고 이런 홍진의 방식이야말로 몇 년간 계속해서 중하위권에 머물던 전주 드래곤즈를 저번 시즌 3위까지 올라가게 만든 원동력이기도 했다.

    “그리고 아직 경기 안 끝났어. 전반전에는 우리를 얕본 것도 있어서 쉬웠겠지만, 후반전은 전혀 다를 거야. 단 한순간도 방심하지 마라. 이건 단순한 친선전이 아니야. 우리가 이번 시즌에 승격할 수 있을지 알아보는 전초전이다. 이 경기에서 형편없는 모습을 보여줄수록 우리 승격 가능성도 줄어든다고 생각해라. 알아들었지?”

    “네! 명심하겠습니다!”

    홍진은 마지막까지 그의 방식으로 선수들을 독려하며 말을 마쳤다.

    그렇게 경험 많은 노장 감독과 선수들을 휘어잡는 중년 감독의 대결은 후반전으로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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