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 첫날의 악몽(1)
“피곤하다…….”
동민은 침대에 몸을 던지고 한숨과 함께 혼잣말을 내뱉었다.
수연의 안내가 끝난 뒤에 있던 가벼운 환영 인사도 지나고 동민은 어느새 자신의 집에 돌아와 있었다.
첫 출근이라는 상황에 몸이 지친 것도 한몫했지만 피곤의 가장 큰 원인은 그 것이 아니었다.
“그 여자 말 안 들었으면 더 좋았을 걸…….”
동민의 머릿속에는 아직도 아까 수연에게서 들은 말이 떠돌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선수들 독려하는 걸 보고 동경했다니 나 참…….’
자신을 동경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조금도 가슴이 뛰지 않았던 것은 그 동경했다는 모습이 자신의 모습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탓이었다.
‘그때 나뿐만 아니라 전부 다 분위기가 게임을 포기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지. 나만 해도 경기를 뒤집을 방법을 생각하는 것보단 하 감독님한테 당했다고 얼빠져 있던 상황이었으니까.’
한동안 잊고 있던 그때를 생각하며 동민은 쓰게 웃었다.
주현에게 영향을 받아 한 행동이 수연에게는 자신의 모습으로 보였다는 사실이 그의 양심을 찔렀다.
“그전까지 계속 형들한테 한 소리씩 먹어가면서 고친다고 고쳤는데 아직도 이러네.”
사실 이렇게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그때 수연의 말이 머릿속
을 가득 채웠다.
자신의 능력에서 벗어난 일이나 상황에 몰릴 때마다 그의 내면에서는 자꾸만 30대 중반의 동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잘하는 것도, 자신감도 모두 사라져 피해망상만 가득하던 그때의 동민이 현재의 동민을 밀쳐내고 자리를 대신했다.
“이런 건 언제쯤 고쳐질까…….”
과거로 돌아온 지 2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이럴 땐 달라지지 않았다며 그는 쓰게 웃었다. 어느새 자신의 꿈에 가까워지고 있으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 남은 미래의 동민이 뛰쳐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됐다. 내일부터는 제대로 일해야 할 테니 빨리 씻고 자야지. 아이고…….”
동민은 고개를 저어 자꾸만 머릿속에서 떠도는 수연의 말을 쫓아 보내고 동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차가운 물로 씻고 자리에 눕고 싶었다.
복잡한 마음으로 방문을 열자 부모님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 잘 다녀왔어?”
“언제 오셨어요? 오셨으면 말씀을 하시지.”
“아까 전에 왔는데 네가 혼잣말 하면서 침대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거 보고 뭔가 일이 있겠지 싶어서 그냥 내버려 뒀지. 오늘 다녀온 게 좀 피곤했나 보다 하면서.”
어머니의 말에 동민은 얼굴을 붉혔다.
시계를 보자 자신이 들어온 지 벌써 한 시간이 넘게 지난 뒤였다.
‘뭐야, 침대에 굴러다니면서 잠깐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래?’
그는 어느새 휙 지나가 버린 시간을 보고 다시 어머니를 보며 투덜거렸다.
“그래도 좀 불러줬으면 좋았잖아요…….”
“뭘 그러니. 어쨌든 오늘 일은 어땠어? 사람들은 괜찮았고?”
자신이 아직도 학생인 것처럼 물어보는 어머니를 보면서 동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신경 안 쓰는 것처럼 텔레비전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는 아버지도 광고 방송에 채널이 고정되어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일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면 확실히 그때하곤 다른데 말이야.’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그에게 부모님과의 시간은 껄끄러운 가시방석과도 같았다. 부모님이 그를 대하는 태도도 안타까움이 묻어나왔고 그 또한 자괴감과 열등감에 그들과의 대화를 바라지 않았다.
부모님이 이야기를 하자고 할 때마다 가능한 방에 틀어박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상황은 천지 차이라고 느껴졌다.
‘사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내가 두 분 보기 창피해서 더 멀어졌는지도 모르지, 아니, 그게 맞겠네.’
자신이 했던 행동들이 떠오르면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스스로를 가두고 있었는지 새삼 깨달았다.
“괜찮아 보였어요. 생각 못 했는데 얼굴 아는 사람도 있었고.”
“응? 그건 또 무슨 말이니?”
“그게…….”
동민은 한동안 부모님에게 오늘 하루에 대해서 이야기하고는 늦은 시간에야 잠들었다.
“오늘 제가 할 일은 그럼…….”
“우리 선수들 잘 모를 테니까 한번 훈련하는 거라도 보지 그래요? 아직 시즌 초라고 확실한 주전은 안 정했으니 두 팀 나눠서 해보려고 하거든. 우리 팀을 알아야 상대 팀을 알아도 거기서 어떻게 할지 나름 생각이란 걸 하고 나한테 이야기를 하지. 본인도 단장한테 단순히 비디오만 보는 것보다는 직접 보는 게 더 정확할 거라고 말했다면서. 그럼 우리 팀도 직접 봐야지. 안 그래요? 아니면 그렇게 요청까지 했으면서 직접 보는 거에 자신이 없나? 설마 그런 건 아닐 거 아녜요? 내가 틀렸나?”
“아, 그렇… 죠.”
다음 날, 동민은 여전히 속을 긁는 황주안의 말에 억지웃음을 지으며 답했다. 어떻게 본 지 이틀째 되는 사람의 속을 이 정도로 비꼬면서 긁을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로 주안의 말은 하나하나 신경을 거슬렀다.
“그럼 정해졌네. 어차피 시즌 시작되기 전에는 연습 경기뿐이고, 그 연습 경기도 일단 며칠 남았으니 오늘은 훈련 살펴보고 그거에 대해서 나한테 정리해 줘요. 이상. 더 말해줄 정도로 이해력이 나쁘진 않잖아?”
그 말을 남기고 주안은 몸을 돌려 버렸다. 그리고 동민은 그런 주안의 등 뒤에 대고 다른 사람들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가운데 손가락을 올리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냈다.
‘아냐, 본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약간 사람 대하는 게 서툰 타입일 수도 있는 거지. 그리고 단장님도 저 사람한테 많이 배우라는 이야기했었으니까. 처음 태도는 저래도 실력은 장난 아닐 수도 있지, 암. 그렇고말고. 아니, 그래야만 해.’
웃는 얼굴로 이를 간다는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동민은 연습장으로 향했다.
“괜찮아. 감독님 원래 처음 보는 사람들한테 태도가 좀 그래. 선수들한테는 그래도 덜 그러긴 하지만.”
민호가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달래주었지만 도무지 동민은 그 말이 위로로 들리지 않았다.
‘선수들한테는 덜 그런다고? 당연히 그러면 안 되겠지! 저런 식으로 선수들 사기 팍팍 죽여 놓는 감독이 어디 있어? 그것도 국가 대표까지 뛰던 경험 많은 양반이 대체 왜 저런대? 아니, 생각해 보니 무슨 저런 사람이 미디어에서는 한국 국가 대표의 맏형이니 카리스마니 그런 소리를 듣던 거야? 막 대하면 다 카리스마고 맏형인가?!’
머릿속에서 온갖 말이 다 튀어 다니고 있었지만 동민의 입으로 나온 것은 단 한마디였다.
“아, 그렇군요.”
동민은 자제심을 담아 말했다.
‘아무리 내 기분이 나쁘고 저 황주안이라는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던 것이 전부 깨졌다고 해도, 입에서 나올 말과 아닌 말은 구분해야 하는 것이 어른이지. 암. 그리고 결국 지금 내 상사인데 욕을 하면 내 손해지…….’
이럴 때는 자신이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 일하면서 구박받고 기피당하던 존재라는 것이 차라리 고마울 정도였다.
‘그런 경험 없었으면 꼴랑 이십 대 중반 들어가는 사람보고 참으라고 하기에는 좀 힘들겠지.’
동민은 계속해서 속으로 이를 갈면서도 웃는 표정을 유지시키려 애썼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신경 쓰지도 않고 주안은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 걷고 있었다.
‘확실히 알고는 있었지만 프로의 훈련은 다르긴 다르네.’
동민은 선수들이 훈련하는 것을 보면서 새삼스레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볼을 다루는 것도, 공격 시에 움직이는 것도 자신이 하고, 보던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지도자 자격증 준비하면서 보기도 봤지만 그래도 내가 이 팀의 일원이라고 생각하니 느낌이 달라.’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동민의 눈은 바쁘게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는 선수들을 오갔다.
[장진운]
27세
잘 쓰는 발 : 오른발
성장 가능성 13.9/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7/20
선호하는 플레이 :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특성 :
장점 - 플레이 메이커, 정확한 패스
단점 - 유리 몸
현재 컨디션: 6/10
[오명진]
31세
잘 쓰는 발 : 왼발
성장 가능성 12.8/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8/20
선호하는 플레이 : 수비진 컨트롤
특성 :
장점 - 강철 몸
단점 - 부정확한 패스
현재 컨디션: 7/10
‘미리 어떤 선수들인지 알아보기야 해뒀지만 확실히 현역 프로는 다르지. 아무리 유망한 고등학교 선수니, 현역 선수였던 지도자 지망생이니 해도 레벨이 아예 다르구먼. 그리고 아까 감독은 어느 쪽이 주전이 될지 확실하지 않다고 했지만 아무리 봐도 조끼 입은 쪽이 주전이잖아. 스테이터스가 대충 2 이상은 차이 나는데.’
동민은 그라운드를 누비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테이터스를 빠르게 머릿속으로 집어넣고 있었다.
아무리 2부 리그라고는 해도 프로인 이상 지금까지 그가 주로 보던 사람들과는 차이가 있는 스테이터스에 동민의 머릿속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괜찮긴 한데 역시 문제점이라면…….’
동민은 수첩을 꺼내고 한 가지씩 적기 시작했다.
‘첫 번째, 황주안 감독이 경기에서 어떤 전술을 쓸지 모르겠지만 지금 훈련으로만 보면 주전은 3-5-2 같은데 그렇게 하기엔 왼쪽 윙백이 발이 느려도 너무 느려.’
동민은 다시금 주전 격으로 보이는 윙백들을 노려보았다.
[마재호]
28세
잘 쓰는 발 : 왼발
성장 가능성 11.2/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7.8/20
선호하는 플레이 : 경기 템포를 조절
특성 :
장점 - 정확한 태클, 캐논 슈터
단점 - 느린 발
현재 컨디션: 7/10
[이영준]
30세
잘 쓰는 발 : 오른발
성장 가능성 12.1/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1/20
선호하는 플레이 : 우측면을 따라 드리블 선호, 정확한 슈팅 선호
특성 :
장점 - 빠른 발, 두 개의 심장
단점 - 좁은 시야
현재 컨디션: 8/10
‘좌우측 윙백이 너무 차이가 큰 거 아냐? 그나마 주전으로 보이는 윙백 자원 중 한 명의 단점이 느린 발이라니. 이런 선수를 데리고서 쓰리백? 거기다가 나이에 비해서 적합도는 꽝인데? 프로 레벨이라고 하기 애매할 정도의 적합도라고. 조끼를 안 입은 후보 선수들로 그 자리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훈련에서부터 아예 다른 포지션이거나 안 맞아 보이고… 마재호를 좌측 윙백으로 썼다간 좌측 뒤 공간 탈탈 털리는 거 아냐? 뒤로 한번 찔러주거나 드리블 좋은 윙만 만나면 아주 자동문이 따로 없겠는데?’
동민이 보기에 마재호는 안 그래도 많은 활동량과 빠른 발이 필요한 쓰리백에서의 좌측 윙백을 맡기엔 스피드가 너무 부족해 보였다. 측면 공격에 취약한 경우가 많은 진형과 포지션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동민이 보기에 마재호를 주전으로 쓰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였다.
‘대체 황주안 감독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아니면 연습은 이렇게 하고 실제 경기에서는 다른 운영을 할 생각인가?’
동민의 머릿속에는 의문만 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