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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그리고... (43/270)

첫 만남 그리고...

“이게 더 나은가? 아님 그냥 아까 입었던 걸 입어야 하나? 아니면 그냥 앗싸리 저걸 할까? 돌겠네.”

동민은 침대 위에 늘어놓은 몇 가지 셔츠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고민하고 있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주말은 순식간에 지나갔고, 그가 그렇게 기대하던 월요일이 되었다.

“너 어제 다 골라놓고 잔 거 아니었어? 대체 옷 고르는 데 얼마나 시간을 쓰는 거니?”

아침부터 옷을 두고서 고민하는 동민을 보며 어머니는 한심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랬는데 아침에 다시 보니까 또 뭔가 느낌이 달라서요. 팀 전체를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조금이라도 더 깔끔해 보이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그 뭐야, 첫 인상이 좋아야 그 인상이 쭉 가죠. 괜히 혹시나 이상한 걸로 밉보이긴 싫고.”

과거로 돌아오기 전에는 기본적으로 겉모습에 신경을 안 쓰고 살던 그였지만 사람들 간의 만남에서 남들에게 보이는 인상이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는 너무나도 알고 있었다.

‘마지막 식당 알바 잘린 건 거의 100% 겉모습 때문이었다고 해도 될 정도였으니까. 이번엔 그때 같은 상황은 절대 만들면 안 되지.’

그는 과거로 돌아오기 전날에 있었던 일을 오랜만에 생각해 내고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때는 절망적이기 그지없던 상황이었지만 이젠 아주 먼 옛날 있었던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생각하는 것만 해도 가슴을 파고들 듯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지금은 별 느낌이 없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사실 과거가 아니라 미래지만.’

동민은 거기까지 생각하고는 다시 눈앞의 옷에 시선을 돌렸다.

“어떤 게 더 깔끔해 보여요? 대충 그냥 딱 보기에.”

“그 흰색이 제일 나아 보인다니까. 어젯밤에도 다섯 번은 물어봤을 거다.”

어머니는 어젯밤부터 몇 번이나 반복된 문답에 지친 모습이었다.

“그거 계속 신경 쓸 시간에 빨리 준비나 하고 나가. 그러다가 길 막혀서 늦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옷 번지르르하게 입고 지각하는 사람보다 옷이 좀 후줄근해도 시간 잘 맞추는 사람이 훨씬 더 이뻐 보이는 거야.”

“다른 것도 후줄근하진 않잖아요. 아, 어쨌든 알았어요. 이걸로 할게요.”

결국 동민이 집을 나선 것은 원래 계획보다 5분 늦은 시각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강동민이라고 합니다!”

동민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앞에는 성남 페가수스의 감독인 황주안와 단장인 광호가 서 있었다.

주안은 마른 체격에 큰 키를 한 중년으로 그의 하얀 머리와 날카로운 매부리코는, 먹이를 매섭게 노려보는 성마른 독수리를 연상시켰다. 그런 느낌은 차분해 보이는 광호의 곁에 있으니 더욱 커졌다.

“반가워요. 감독을 맡고 있는 황주안이에요. 정 단장님한테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젊은 나이인데도 재능이 있어서 단장님이 기대를 많이 하고 계신다고요.”

“과한 칭찬이십니다.”

주안의 말에 동민은 입으로 새어 나오려는 미소를 감추고 짐짓 겸손을 떨며 말했다.

그러나 그런 동민을 보며 주안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립 서비스에 대한 구분은 탁월하네요. 그 기대에 부디 부응해 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만약 내가 그쪽 일이 필요하면 이야기할 테니 이따가 뵙겠습니다.”

주안의 공격적인 말에 동민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그가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이, 주안은 등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동민에게서 멀어져 갔다.

“아하하, 황 감독님은 원래 말하는 스타일이 좀 저런 편이에요. 항상 딱딱하게 말하고 툴툴거리는 타입인데, 너무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뭐 동민 씨야 이 감독님 밑에서 배워서 저런 스타일은 좀 익숙하시겠지만요. 어쨌든, 동민 씨가 뭔가 실수해서 그런 게 아니라 원래 저런 분이거든요.”

당황하는 동민을 보며 광호가 열심히 설명했다. 주안의 성격을 원래 어느 정도 알고 있던 광호조차도 자신의 앞에서 동민에게 이렇게 대할 줄은 몰랐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첫 만남에서 동민이 주안에 대해 느낀 것은 광호의 이야기와는 많이 달랐다.

‘감독님하고 비슷한 스타일이라고? 글쎄 전혀 아닌 것 같은데…….’

병렬은 곱게 말을 안 할 뿐이지, 처음 보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흉보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칭찬이 적고 말투와 태도가 퉁명스럽다곤 해도 주로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이나 오래 본 사람들에게나 그렇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예의를 차리곤 했다. 무엇보다 병렬은 저런 온도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말을 하지 않았다.

‘뭔가 영 아니꼽게 보고 있는 모양인데… 아무 이유도 없이 저런 식으로 사람을 대할 리가 없잖아.’

자신이 앞으로 몸을 담게 될 팀의 감독이 자신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결코 좋은 이야기가 아니었다. 광호는 아니라고 말했지만 동민은 자신이 뭔가 잘못한 것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고민해도 떠오르는 점이 없었다.

‘이거 무슨 일이 시작부터 꼬여 있는 느낌이냐…….’

동민은 마음속으로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침부터 들떠 있던 기분이 반대로 깊숙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자신이 가장 많이 접촉하고 배워야 할 사람의 첫인상이 영 좋지 않았다.

“동민 씨, 신경 쓰지 마세요. 황 감독님, 말은 저렇게 해도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요. 일단 계약서 쓰고 연습장으로 가보죠.”

“아,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신경 쓰는 거 아닙니다. 제가 잘 하면 또 보는 눈길이 달라지시겠죠, 뭐. 하하”

광호의 말에 동민은 애써 웃음으로 다시 마음을 잡고 광호의 뒤를 따라갔다.

‘그래, 돌아오기 전에 아르바이트할 때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사이가 좋았던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지금이야 다른 사람은 덜 봤어도 적어도 단장 한 명은 나한테 감정이 좋은 것 같으니 그때보다 상황은 훨씬 좋고. 내가 열심히 해서 잘하다 보면 나아지겠지. 돌아온 첫날부터 그때처럼 되지 말자고 다짐했잖아.’

돌아오기 전, 다른 이들에게 무시당하고 따돌려지기 일쑤였던 것을 생각하며 그때와는 다르다고 동민은 스스로에게 말했다.

‘계약서란 거 처음 봤네. 이런 식으로 되어 있는 거였구나.’

동민은 의자에 앉아 자신의 앞에 놓여 있는 종이를 꼼꼼히 읽고 있었다.

‘아르바이트할 때엔 계약서 안 쓰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으니까. 편의점이나 레스토랑 서빙이면 대충 종이 쪼가리 하나 던져주고 제대로 읽기도 전에 사인하는 경우가 많았으니 뭐.’

정식으로라면 아르바이트도 전부 계약서를 쓰고 일해야 했지만, 취업에 실패한 채 굴러다니던 동민이 찾을 만한 일들은 계약서도 안 쓰고 사람을 쓰는 일이 비일비재했기에 동민이 계약서라는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저번에 말씀드린 대로 계약 자체는 유소년 팀 코치로 하지만 실제 주로 맡아주실 부분은 1군 팀의 전술 분석입니다. 계약 기간은 2년이고요. 아, 계약 기간이 생각보다 짧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계약 기간이 끝날 쯤이면 아예 정식으로 1군 팀 코치로서 계약하려고 일부러 그때까지 잡아놓은 거니까요. 그러니 계약 기간 동안 A급 지도자 자격증을 따시는 쪽이 좋고, 팀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드리겠습니다. 그 외에 혹시 다른 궁금하신 점 있으십니까?”

동민의 눈이 계약서에 박혀 있는 사이, 그의 귀는 속사포처럼 빠르게 들려오는 광호의 말을 듣고 있었다.

“아, 그런 이야기도 계약서에…….”

“아뇨, 이건 따로 명시하기 힘든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냥 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전부터 몇 번을 강조하지만 저나 구단에서는 동민 씨의 재능에 대해서 기대하고 있고, 그를 위해서라면 충분히 지원할 생각이 있습니다.”

광호는 그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 말은 동민에게 자신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었다.

“네, 알겠습니다.”

동민은 광호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떠올리며 꼼꼼히 계약서를 읽었다. 광호에게 들은 이야기 외에 다른 별다른 것은 없었기에 동민은 펜을 들었다.

‘이걸로 정말 시작이네.’

동민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펜으로 빈칸에 자신의 사인을 써넣었다.

“이걸로 정식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동민 씨의 능력을 최대한 펼쳐주시고 성장하시길 바라겠습니다. 그게 서로를 위해서 가장 좋은 일이잖아요?”

“그렇죠.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내미는 광호의 손을 잡고 흔들면서 동민은 마음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럼 이제 시간도 얼추 맞을 테니 연습장으로 가볼까요? 지금쯤이면 연습도 다 끝나가니 전부 만날 수 있을 겁니다.”

광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앞장서 발걸음을 옮겼다.

“오늘부터 전술 분석을 맡아 도와줄 강동민 씨입니다.”

“강동민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광호의 소개에 동민은 큰 목소리로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연습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몇몇 선수들은 아직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 단장님이 몇 번 이야기한 그 사람인가.”

“되게 젊어 보이는데.”

“그러게. 수연 코치, 연배가 코치랑 비슷해 보이는데?”

“아…….”

주위 선수들이나 코치들의 반응은 굉장히 환영하는 분위기까진 아니어도 꽤 호의적인 분위기였다.

‘응? 방금 뭔가 익숙한 이름하고 목소리가 스쳐 지나간 느낌인데?’

동민이 고개를 돌려 그 목소리의 주인을 바라보려는 찰나 주안이 말했다.

“나는 아까 소개했으니 생략하고, 여긴 수석 코치인 장민호입니다. 나는 잠시 정 단장님이랑 할 이야기가 있으니 다른 사람들은 이 친구가 소개해 줄 거예요. 앞으로도 신세 많이 지게 될 테니 지금부터 잘 지내는 게 좋겠죠. 단장님, 다음 시즌 영입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아, 알겠습니다. 자리를 옮기죠. 동민 씨, 그럼 잘 부탁합니다.”

주안은 옆에 있던 작은 덩치의 날렵해 보이는 사내에게 떠넘기듯 동민을 맡기고 광호와 함께 빠른 발걸음으로 사라졌다.

“하이고, 또 저러신다니까. 반가워요. 장민호라고 해요. 혹시 나이가 어떻게…….”

“올해 스물넷입니다.”

“그럼 편하게 말할게. 어쨌든 잘 부탁해. 앞으로 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감독님한테 듣는 일이 많겠지만 지금 본 것처럼 말투라고 해야 하나, 태도가 좀 저러시니까 나한테 듣는 경우도 많을 거야.”

민호는 마치 안지 오래된 사람처럼 편안하게 말했다.

그런 방식이 방금 전의 주안의 차가운 태도와는 상반되게 느껴져서 동민은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저쪽은… 아, 아니다. 잠시만. 자리를 옮기는 편이 낫겠지. 선수들은 일단 다 씻고 휴식, 코치진들은 일단 다 모여주세요.”

아직도 옆쪽에 가만히 서 있던 선수들을 전부 보내고 민호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일단 저쪽에 가서 이야기하자. 감독님은 이런 건 직접 하셔도 될 텐데 떠넘기는 게 너무 심하시다니까.”

한숨을 쉬며 푸념을 하는 민호의 뒤를 따라서 스태프진과 동민은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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