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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격의 후반전 (36/270)
  • 반격의 후반전

    “좋아, 상대의 실수에서 시작되긴 했지만 그 실수를 만들어낸 것도 우리야. 이 한 골을 지키면서 역습을 노린다면 우린 충분히 우승할 수 있어. 힘내자!”

    동민은 흥분한 목소리로 선수들에게 말했다.

    전반전 종료 직전 벌어진 상대의 실수로 경기는 1 대 0으로 기울어져 있는 상태였다. 다시 말해, KFC는 우승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간 것이다.

    “후반전까지만 집중력 잃지 말고 확실하게 끝내자. 우리는 우승할 수 있어. 골만 내주지 않으면 우승이야. 알았지?”

    동민의 목소리는 우승이 가까워졌다는 사실에 떨리고 있었다.

    “그래. 힘내서 집중하자. 저번 연습 경기보다 상황 훨씬 좋잖아. 저번에도 이겼는데 이번에 못 이기겠어?”

    “그래, 조금만 더 힘내자.”

    “우승이 코앞이야!”

    동민의 흥분이 전염된 듯 다른 사람들도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온 우승에 마음이 들뜨고 있었다.

    그러나 동민은 그 탓에 깨닫지 못했다.

    저번 연습 경기에서 그들을 괴롭혔던 존재는 홍시원뿐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깜빡 잊고 있던 것이다.

    “아까 경기 직전에 분명히 말했을 텐데. 잊어버렸어?”

    “아닙니다.”

    “너하고 형규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이 곧바로 위기라고 했었지. 정신 안 차릴 거야?”

    광규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후반전에는 절대 그런 상황을 만들지 마라. 그리고 시원이, 너.”

    광규는 자책감에 입술을 깨무는 진우에게서 시선을 돌려 시원을 바라보았다.

    “너도 마찬가지야. 네가 진우한테 멀리 떨어질수록 진우가 널 압박에서 꺼내기 힘들어진다. 압박이 들어오니까 허둥지둥 한 패스에서 실점이 나온 거야. 안 그래? 거리 유지 똑바로 하고 먼 쪽만 신경 쓰지 말고 진우랑 형규 위치 계속 확인해라.”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시원의 말에 광규는 슬쩍 한숨을 내쉬고는 분위기를 바꿨다.

    “뛰고 있던 너희들이 더 잘 알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렇게 유리한 상황은 아니다. 효과적인 공격은 적었고 실책에서 나온 골로 1 대 0으로 스코어는 벌어져 있어. 그렇지만.”

    거기까지 말하고 광규는 말을 잠시 끊었다.

    선수들은 그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예상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저번 연습 경기에서 저쪽 팀은 그렇게 두 골을 내주고도 그 경기를 이겼다. 기억하지? 그걸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어. 우리는 고작 한 골만 내줬을 뿐이야. 후반전에 확실하게 가서 경기를 뒤집어라. 상대가 했던 일을 우리가 못할 리가 없잖아.”

    광규의 말은 사실을 이야기하듯 담담했지만 동시에 듣는 사람들의 마음속을 간질이듯 자신감을 이끌어내고 있었다.

    자신의 말이 선수들 한 명 한 명에게 영향을 주는 것을 보며 그는 그중 한 명을 지목했다.

    “정윤석, 후반전은 제대로 뛸 체력 남겼지?”

    “네. 뛸 수 있습니다.”

    “그럼 됐다. 전반전에 체력 비축해 둔만큼 저쪽 수비진을 마음대로 휘저어 봐.”

    광규의 입에는 차가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후반전이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던 동민의 기분은 순식간에 부서져 버렸다.

    “뭐 이런…….”

    허탈감에 말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동민이 우승의 꿈에 부풀어 잊고 있던 상대 팀의 7번, 정윤석이 순식간에 게임을 바꾸어버린 것이다.

    첫 골은 홍시원의 패스를 받은 정윤석의 단독 돌파에 이은 골이었다.

    전반전 내내 여유 있던 정윤석의 템포에 익숙하던 조민혁은 급작스럽게 바뀐 정윤석의 속도에 따라가지 못하고 그를 놓쳐 버렸다. 그리고 그는 조민혁의 빈자리를 급하게 막으려 달려오던 경태와 진규를 제치고 가볍게 골문 안으로 공을 밀어 넣은 것이다.

    수비진이 모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허수아비로 만들어 버린 골인 만큼 그들의 충격은 컸다. 그리고 그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신영대의 두 번째 골이 터졌다.

    이번에도 홍시원에서 시작된 패스는 정윤석을 향했고, 정윤석은 아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어수선한 수비진의 빈틈으로 패스를 찔러 넣었다. 그리고 신영대에 그 패스를 놓칠 만한 공격수는 존재하지 않았다.

    ‘순식간에… 2 대 1로 역전당했어?’

    스탠드에서 보고 있던 동민조차 어리둥절하게 만들 만큼 신영대의 공격을 빠르고 강렬했다.

    동민은 눈앞까지 다가왔던 우승이 신기루처럼 멀어지는 광경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뭐지? 전반전에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았는데. 컨디션도, 전체적인 스테이터스도, 장단점도 그대로인데 갑자기 사람이 바뀐 것처럼… 바뀌어?’

    그제야 동민은 위화감을 깨달았다.

    전반전 내내 윤석이 있던 상대 좌측이 조용했던 이유를 드디어 알게 된 것이다.

    ‘정윤석의 단점은 종잇장 체력, 저번 경기에서도 전반전만 뛰고 체력 관리차 교체했었지. 전반전에 조용했던 건 후반전을 뛸 체력을 남기느라 그랬던 건가.’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듯한 충격에 동민은 머리가 멍해졌다.

    동민이 흥분에 빠져 잊고 있던 또 한 명의 에이스와 광규가 그를 무너뜨린 것이다. 정윤석의 활약은 나머지 팀원들의 움직임조차 가볍게 만들었고, 불안하던 홍시원과 중원은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아떨어지며 공격을 이끌어 나갔다.

    이와는 반대로, 연이은 실점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은 동민뿐만이 아니었다. 팀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반전 내내 전방을 뛰어다니면서 함께 압박하고 볼을 탈취하려던 경수와 영진은 무의미한 움직임만 늘어났고, 종환조차 기동성을 잃었다.

    ‘이건… 내 탓으로 전부 망친 건가. 전반전에 눈에 띄지 않았다고 상대 에이스를 잊고 있었던 탓에…….’

    동민은 자책감에 빠져 입술을 깨물었다.

    전부 자신 탓에 우승을 놓치는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분했다. 그는 주먹에 힘을 주고 선수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았다. 모두들 힘이 빠진 듯 제대로 경기를 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결국 준우승으로 끝나는 건가…….’

    동민조차도 점점 포기라는 단어를 떠올리려 할 때,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주현이었다.

    “여기!”

    컨디션이 좋지 않아 첫 골에서의 패스 외에는 제대로 된 활약을 하지 못하고 있는 그였지만, 그래도 그의 열정은 떨어지지 않았다. 다른 선수들도 동민도 모두 흔들리는 가운데에서도 주현만은 아직 돌파구를 찾으려 하고 있었다.

    ‘박주현…….’

    동민은 그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가장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혼자 무너지지 않고 있는 그를 보면서 동민은 머릿속에서 포기라는 단어를 지웠다.

    ‘그래, 난 포기하면서 살던 생활에서 벗어가고 싶었던 거잖아! 여기서 또 무너진다면 그때랑 다를 게 없어.’

    동민은 절망에 빠져 있던 머리를 필사적으로 움직였다.

    지금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지금 상황에서의 문제점은 첫째, 연이은 실점으로 다들 집중력과 사기가 떨어졌다는 점. 둘째, 수비진을 뒤흔드는 정윤석. 셋째, 완전히 분위기를 타버린 상대 팀. 이걸 바꾸려면…….’

    동민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결국 안 되는 건가.’

    종환은 분함에 이를 갈았다.

    전반전에 얻은 골로 상승된 분위기는 완전히 가라앉았고 그도 힘이 빠져 버렸다. 언제나 심한 말로 팀원들을 타박하면서로 등을 밀어주려던 그조차도 절망적인 분위기에 입을 열지 못했다. 측면에서 주현이 혼자 노력하는 듯했지만 그것도 곧 사그라진 불꽃처럼 유약한 움직임일 뿐이었다. 그때.

    “다들 정신 안 차려?”

    동민의 목소리가 그라운드 전체에 퍼졌다.

    “정신 놓지 마! 종환이 형 전방 압박 아예 관둘 거야? 10분 만에 늙기라도 했어? 늙다리처럼 운동장에서 기어 다니고 있을 거면 당장 나와! 바꿔 버리게! 영진이랑 경수 너네도 마찬가지야! 내가 그따위로 생각 없이 뛰어다니라고 중앙에 둔 줄 알아? 수비진 다들 멍 때리지 마! 경기 안 끝났어!”

    동민은 자극적인 표현들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죄다 누구한테 뺨이라도 맞았어? 아직 시간 남았단 말이야, 이 머저리들아!”

    “이게 누구보고 머저리래!”

    동민의 불같은 말이 종환의 심기를 건드렸다.

    “누가 늙다리야 이 자식아! 저기 진짜배기 늙다리 있구먼!”

    “그럼 뛰어! 곧 죽을 것같이 골골대지 말라고! 지금 뛰는 거 보면 늙다리 맞잖아!”

    사람이 바뀐 듯 열을 내는 동민을 보면서 종환은 가슴을 짓누르던 절망이 날아가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자신이 왜 힘없이 경기장에 있었는지 잊어버렸다.

    비단 종환뿐만이 아니었다. 평소와는 다른 동민의 태도에 다른 사람들도 점차 절망에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좋아, 첫 번째는 클리어. 다음은 휘젓고 다니는 저 녀석을 봉쇄하는 일이다.’

    동민은 날카로운 눈으로 윤석을 보았다.

    “재원이 형 지금 바로 준비해. 민혁이 형이랑 교대할 거야. 깊숙하게 들어가서 상대 풀백이 아예 움직이지도 못하게 해버려. 그리고 영우 형 보고 저쪽 7번 공 잡기도 전에 싹 다 차내 버리라고 해. 저 사람은 공 안 잡았을 땐 별거 아냐. 아까 골 넣은 것도, 어시스트도 전부 공 잡고 나서 뛸 때까지 시간이 있었어. 영우 형 스피드면 저쪽 드리블 시작하기 전에 붙을 수 있어.”

    윤석의 움직임에는 전부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 공을 잡기 전이 아닌, 잡고 나서부터가 그의 플레이의 시작이었다. SFC의 현준이나 그의 팀에 있는 주현과는 달리 오프 더 볼(공을 가지지 않았을 때의 움직임)이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가 공을 잡을 수 있도록 움직여 주는 다른 동료들, 특히 풀백의 지원이 필요했다. 그러나 지금의 김영우는 풀백에게 압박을 주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둘째, 공을 잡고 나서 드리블을 시작할 때까지 전체를 둘러보는 시간이 필요로 했다. 첫 골에서는 전반전 내내 계속된 그의 느린 템포에 맞추던 민혁이 놓친 탓이 컸고, 두 번째에는 수비진이 어수선한 탓에 그 시간을 그대로 흘려보낸 것이다.

    이것은 윤석을 막아내는 방법이지만 반대로 상대가 윤석이 아닌 다른 루트의 공격 라인을 고른다면 위험한 작전이다. 그러나.

    ‘저쪽 7번이 활동 시작한 이상 저쪽으로 공이 몰리는 게 당연하겠지. 지금까지 팀의 두 에이스 중 하나니까 전반전에 체력관리를 위해 공을 잘 안 보내려 할 때도 눈이 먼저 저쪽으로 향하던데. 다른 공격 루트를 찾아도 지금껏 윤석을 의지해 온 이상, 곧바로 바꾸긴 쉽지 않을 거다.’

    지금껏 그래온 이상 다른 사람을 찾으려고 해도 먼저 윤석이 눈에 띌 것은 자명했다. 그럴 때 다른 사람을 찾을 시간도 주지 않고 몰아친다면 공은 자연스럽게 윤석에게 향한다.

    ‘거기서 다른 사람 찾을 시야가 되는 괴물은 8번뿐. 8번에 대한 압박을 이종환까지 포함시켜서 빡세게 하면 조차도 쉽지 않겠지. 저 7번이 공을 잡아도 드리블 시작하기 전에 끝낸다. 김영우가 풀백으로 나서면 공 잡고 나서 둘러볼 시간에 달라붙을 수 있고, 심재원이 상대 풀백한테 부담을 주면 풀백의 지원은 끊어진다. 그러면 분명히 막아낼 수 있어.’

    동민은 윤석을 노려보면서 생각했다.

    ‘남은 건 분위기를 바꿔 버리는 일인데 역시 분위기를 바꾸려면 골이나 적어도 아쉬운 찬스라도 만들어야 해. 잠시 선수 교체로 경기를 멈춰도 근본적으로 스코어가 밀리는 건 어쩔 수 없어. 결국 이럴 때의 카드는…….’

    동민은 빠르게 생각을 마치고 벤치 멤버들을 바라보았다.

    “진호 형도 준비해.”

    진호는 동민의 말에 긴장 섞인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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