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승전, 그 희망의 전반전
경기의 시작을 알리는 휘슬이 울리자마자 동민의 눈은 바쁘게 경기장을 훑었다.
‘저번 경기랑 선수가 달라진 건 저 두 사람인가.’
동민의 눈이 시원과 함께 중원을 구성하는 두 사람에게 고정되었다.
[유진우]
21세
잘 쓰는 발 : 오른발
성장 가능성 7.7/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6.2/20
선호하는 플레이 : 몸싸움 선호
특성 :
장점 - 두 개의 심장, 강철 몸
단점 - 부정확한 패스
현재 컨디션: 8/10
[오형규]
20세
잘 쓰는 발 : 오른발
성장 가능성 7.4/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6.0/20
선호하는 플레이 : 전방 압박 선호
특성 :
장점 - 스프린터
단점 - 좁은 시야
현재 컨디션: 6/10
‘중원에 패스가 안 되는 녀석하고 시야가 좁은 녀석을 둔다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저번 연습 경기에서 홍시원 대신 나왔던 사람보다 스테이터스도 떨어지는 걸 보면 분명히 후보였을 텐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선발로 내보낸 거야?’
생각지도 못한 상대의 중원에 동민은 불안감이 엄습했다.
‘물론 패스의 질이나 그런 면이 떨어진다면 지금 우리 팀 중앙 미드필더진이 움직이기 더 쉬워지지만, 그렇게 좋게만 생각하기엔 뭔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저 사람이 결승전까지 안일하게 나올 것 같진 않아.’
오늘 KFC의 중원을 맡고 있는 사람은 영진과 경수, 수환 세 명이었다. 공격형 미드필더가 본래 자리인 영진과 경수를 앞쪽으로, 중앙 미드필더인 수환을 아래쪽으로 내려 4-3-3 진형에 가까운 구성을 꾸민 것이다.
‘공격형 미드필더이면서 활동량이나 수비 가담이 나쁘지 않은 둘로 하여금 최대한 앞쪽에서 끊어내고, 곧바로 파고드는 양 측면을 이용한다는 계획인데… 저쪽도 중앙 미드필더 세 명을 둘 줄은 몰랐는데. 이러면 숫자 싸움에서 그렇게 우위에 설 수가 없어.’
동민은 개인 능력이 더 뛰어난 신영대 이기에 그들에게 익숙한 본래 전술로 나올 거라 예상했지만 그의 예상은 시작부터 빗나가 버렸다.
“이건… 아냐, 아직 경기 시작 직후야. 지켜보자. 오히려 지금 봐둬야 할 건 상대만이 아니니까. 포인트로 컨디션을 올릴 만한 사람들을 찾아야지.”
동민의 눈은 쉴 새 없이 선수들을 보고 있었다.
‘이종환, 이영진, 박주현, 최시영에 한 명 더 뽑는다면 정수환인가. 대부분 어제 4강 경기까지 주로 많이 뛰던 사람들이 컨디션이 낮은데. 역시 무리했던 건가. 역시 예상했지만 체력문제가 크네. 마지막까지 고전하지만 않았어도…….’
정수환을 제외한 4명은 컨디션이 6을 넘지 못하는, 평소보다도 훨씬 낮은 컨디션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래 전반전 안이나 하프타임에 기회가 될 때마다 컨디션을 올려줘야 하는데. 일단은 위치상 제일 가까운 최시영부터 올려볼까.’
동민은 시영에게 눈을 고정했다.
[최시영]
23세
잘 쓰는 발 : 왼발
성장 가능성 6.9/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5.9/20
선호하는 플레이 : 좌측 측면 돌파 선호, 터치라인을 따라 드리블 선호
특성 :
장점 - 불굴의 투지
단점 - 발재간
현재 컨디션: 3/10
[기본 포인트 : 0]
[얻은 포인트 : 5]
[현재 포인트 : 5]
[1 포인트로 강화 가능]
“강화하겠어.”
그 말과 동시에 동민은 이차주의 컨디션을 올릴 때와 주현의 특성을 지울 때 보았던 문장과 비슷한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포인트 사용 조건 : 열의를 다한 말로 상대를 감동시킬 것]
‘뭐야? 조건이 저번이랑 다르잖아? 저번에는 분명 신체 접촉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냥 랜덤인가? 아니면 사람마다 다른 건가?’
저번과는 다른 문장에 동민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열의를 다한 말로 상대를 감동시키라니 이게 뭔 헛소리야?! 아니, 예시를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감독이지 무슨 웅변하는 사람인가. 하아, 돌겠네.’
하지만 사용 조건을 본 이상 그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못살아, 정말.’
동민의 마음속 깊은 한숨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고 사라졌다.
“시영이 형! 잠시만! 이리로 와봐!”
“응?”
터치라인 근처에 서 있던 시영은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동민의 목소리에 터치라인을 향했다.
“왜? 뭔데? 뭐 전술 변화라도 있어? 아니면 누구한테 말이라도 전할까?”
“아, 그게…….”
전술 변화를 예상하고 달려온 시영이 본 것은 평소와 다르게 어딘가 붉은 얼굴을 하고서 우물거리는 동민이었다.
“뭔데? 빨리 이야기해. 경기 중인데 계속 여기 서있을 순 없잖아.”
“그러니까…….”
시영의 재촉에 얼굴을 이리저리 돌리던 동민은 결국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하아, 모르겠다. 형, 난 형을 믿어. 지금까지 잘 해왔지만 오늘도 형은 충분히 잘 할 거야. 체력적으로 좀 지쳤을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더 힘내줘. 꼭 이겨서 우승하자고.”
“갑자기 뭐야? 내가 그렇게 지쳐 보였냐? 조금 힘들긴 하지만 그렇게 신경 쓸 정도는 아냐. 괜찮아. 갑자기 부르길래 뭔 소린가 했네. 걱정 마, 인마.”
동민은 자신의 머리를 짜내서 말한 감동 멘트가 순식간에 무시당한 것에 당황했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 뭐냐. 잘 해보자는 그런 말인데.”
“아까 이미 말했잖아. 우리들은 다 네 전술을 믿는다고. 그만큼 최대한 열심히 할 테니까 그런 걱정 말고. 신경 쓰기는.”
“아니, 그것도 아니고, 아 진짜!”
결국 동민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소리쳤다.
“무조건! 가서! 이기라고! 알았지?!”
“어……?”
급작스러운 억지 그 자체인 동민의 말에 시영은 잠시 멍하니 그를 바라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하이고, 알았다 인마. 이길게, 이겨. 뭘 말하고 싶은지 알겠으니까 더 말 안 해도 돼. 그러니까 거기서 잘 봐둬. 뭔가 바꾸게 되면 불러주고. 지금처럼 시답지 않은 소리로 부르는 건 하프타임까진 좀 참아주라.”
그 말을 마치고 시영은 뒤로 돌아 경기장 안으로 향했다.
그런 시영을 보면서 결국 사용 조건을 만족시키지 못했다며 깊은 한숨을 쉬려던 동민은.
“응?”
눈앞에 보이는 글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강화 조건 충족]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포인트를 사용했습니다]
[현재 포인트 : 4]
‘조건을 충족했다고……? 방금 그 말이? 진짜? 잘못된 거 아냐?’
동민은 글자를 보다가 눈을 돌려 시영을 바라보았다.
[최시영]
23세
잘 쓰는 발 : 왼발
성장 가능성 6.9/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5.9/20
선호하는 플레이 : 좌측 측면 돌파 선호, 터치라인을 따라 드리블 선호
특성 :
장점 - 불굴의 투지
단점 - 발재간
현재 컨디션: 10/10
‘저 형 성격 진짜 이상해!!’
충격에 빠진 동민의 마음속 고함 또한 한숨과 마찬가지로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고 조용히 가슴속에 묻혔다.
동민은 잠시 충격에 빠졌던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수환을 불러 컨디션 강화에 착수했다.
다행히 이번 조건은 저번과 같이 ‘신체 접촉을 통해 강한 충격을 줄 것’이어서 잽싸게 어깨를 한 대 치는 것으로 성공했지만, 문제는 세 번째인 주현의 컨디션을 올리려 할 때에 벌어졌다.
[박주현]
20세
잘 쓰는 발 : 왼발
성장 가능성 18.8/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7.8/20
선호하는 플레이 :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특성 :
장점 - 타고난 골잡이, 왼발의 마법사
단점 - 없음
현재 컨디션: 4/10
[기본 포인트 : 0]
[얻은 포인트 : 3]
[현재 포인트 : 3]
[1 포인트로 강화 가능]
[현재 경기에서 컨디션을 강화할 수 있는 최대한도에 달했습니다. 더 이상 컨디션을 강화할 수 없습니다.]
“이런 미친…….”
경기당 컨디션을 올릴 수 있는 것은 두 명이 최대였던 것이다.
‘장난하냐! 이럴 거면 처음부터 그렇게 나왔어야지, 한도에 도달하고 나서 보이냐! 이럴 줄 알았으면 정수환 대신에 박주현부터 강화했지! 공격의 핵심이자 에이스가 컨디션이 영 아닌 상태인데 어떻게 공격을 제대로 전개하냐고!’
동민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상대 진영에서의 압박을 통한 최대한 빠른 역습을 내세웠지만, 측면에서 단신으로 수비진을 흔들 수 있는 에이스인 주현의 존재는 다른 사람들과 비할 게 아니었다. 그런 주현의 낮은 컨디션은 동민에게는 악재 그 자체였다.
동민의 마음속 절규는 컨디션의 강화가 불가능하다는 것 외에 또 다른 골치 아픈 것을 깨닫자 더욱 커져갔다.
그의 눈은 시영과 중앙에서 발을 맞추어 뛰고 있는 진우와 형규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상대가 왜 저 둘을 내보냈는지 이제 확실하게 알겠네. 하여간 저 여우 같은 인간이…….’
그는 이를 갈며 광규를 째려보았다.
선수들의 컨디션 강화에 신경을 쓰느라 늦게 알아챘지만, 패스와 시야라는, 미드필더로서 커다란 단점이 있던 그들의 활용도가 이제 눈에 보인 것이다.
‘이쪽에서 홍시원한테 집중 견제를 넣을 걸 예상한 거네. 한 명은 홍시원을 보호하고, 나머지 한 명은 미친개처럼 전방 압박에 집중한다. 이게 무슨 변태 같은 짓이야. 중앙에서의 볼 전개를 홍시원한테 다 맡기면서 두 명을 홍시원 부속품처럼 활용하네. 주 패스 루트는 하나면 된다 이거야?’
광규가 꺼내놓은 작전은 홍시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의존도를 더욱 높이고, 그에게 향하는 압박을 막고 최대한 분산시키는 것이었다.
‘아예 내 생각을 읽듯이 맞불처럼 나왔어. 저걸 막지 않으면 미리 생각해 둔 전술은 무용지물일 텐데. 신나게 굴러가는 저 톱니바퀴를 어떻게 망가뜨린담…….’
동민은 순식간에 두 배로 커져 버린 고민을 안고 끙끙대고 있었다. 그러나 경기는 그의 고민과는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동민이 상대 중원을 보면서 머리를 붙잡고 있는 상황에서 전반이 끝나기 직전, 그 중원의 실책이 나온 것이다.
“어라? 저거 뭐야?”
빠른 압박에 시원이 진우에게 돌린 공이 그대로 주현이 있는 측면으로 흐르고 말았다. 아무리 지금 컨디션이 좋지 않다고 해도 그런 좋은 기회를 놓칠 주현이 아니었다. 주현은 곧바로 반대편의 영우에게 공을 길게 전달했고, 영우는 공을 받자마자 재빠른 크로스로 공격을 이어나갔다. 영우의 크로스는 수비진의 커트로 막히는 듯했으나, 숨 가쁘게 달려온 경수가 골문 구석을 노리고 찬 슈팅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렇지!”
예상치 못한 행운에 동민은 기쁨의 함성을 내질렀다.
저번 연습 경기에서는 KFC가 연속으로 벌어진 수비 실수로 이른 시간에 두 골을 내주고 시작했었지만 이번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그때와는 다르게 이번엔 신영대의 실수로 KFC의 첫 골이 터진 것이다.
상대의 중원 조합을 깰 묘책을 고민하던 동민은 갑자기 터진 첫 골에 여간 기쁘지 않았다. 예상외의 행운이 깊어져만 가던 그의 고민을 덜어준 것이다.
‘이대로 끌고 가기만 하면 희망이 보인다. 어쩌면 후반전에 걸어 잠그면서 마음이 급해진 상대한테 역습을 노리는 방법을 써도 될지 몰라.’
동민의 가슴이 승리에 대한 기대로 부풀고, 동시에 전반전을 마치는 휘슬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