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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으로 가는 길 (32/270)

결승으로 가는 길

각자의 생각을 뒤로하고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

계속해서 현준이 이끄는 SFC의 공격을 KFC의 수비진들은 어떻게든 막아내고 있었고, 최전방에 서서 이를 지켜보는 진호는 이를 악물고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초조해져 가는 것은 SFC 측이었다. 현준을 시작으로 남은 두 장의 교체 카드를 모두 공격을 위해서 사용했지만, 후반전이 끝나가는 지금까지도 결국 골은 나오지 않았다.

현준은 점점 더 줄어드는 시간에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공격적으로 다 달리자니 저쪽 키 큰 공격수 때문에 나오질 못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수비진은 계속 내린 상태로 나랑 규현이랑 몇 명으로 계속 공격하자니 자꾸 마지막에 막히고. 경기 참 어렵네.’

상대 미드필더의 압박을 벗겨내면서 현준은 파고들 공간을 찾았다, 그러나 파고들 공간을 보이질 않고 오히려 곧바로 자신에게 달려드는 시영이 눈에 들어왔다. 결국 그는 계획을 바꿔 크로스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 될 듯 될 듯 안 되는구먼. 남은 시간도 그리 많지 않을 텐데 대체 이걸 어쩐다?’

현준은 자신의 크로스를 또다시 몸으로 막아낸 시영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반 초반에 농락당한 것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시영은 정말 쉬지 않고 그에게 달라붙어 있었다. 처음 한두 번이야 또다시 가볍게 제치고 지나쳤지만, 아무리 제쳐내도 몇 번이나 그런 상황이 계속되자 제아무리 현준이라도 피곤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체력도 안 좋아서 교체로 나왔는데 이렇게 계속 달려드니 힘들 수밖에. 저 친구는 지치지도 않나. 확실히 어린 게 좋긴 좋아. 하이고야.’

실력으로는 부동의 주전 멤버로 꼽힐 만한 그였지만 체력이 좋지 않은 점 때문에 후반전에 나와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조커 역할을 하고 있는 현준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계속된 시영과의 몸싸움과 밀착 수비, 그리도 전체적인 집중 견제로 후반전이 채 끝나기도 전에 슬슬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이러다간 정말로 질지도 모르겠는데… 어디 마지막까지 더 힘을 써볼까. 엇차.’

현준은 드로잉으로 받은 공을 끌고 다시 골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또다시 시영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이 친구도 참 포기란 걸 모르나 본데. 여러모로 젊구먼. 부럽네.’

현준이 아까처럼 페인트로 시영의 자세를 무너뜨리고 골문으로 전진하려는 찰나, 그의 몸은 균형을 잃고 그대로 넘어졌다.

‘어라?’

넘어지는 와중에 그의 시야에 보인 것은 태클로 공을 빼내어 가로채는 시영의 모습이었다.

‘드디어 됐어! 이거다!’

시영은 이제 지쳐서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만 아니었더라면 큰 소리로 웃고 싶었다. 후반전 내내 몇 번이나 당한 저 망할 아저씨의 페인트에 드디어 속지 않고 공을 뺏어낸 것이다.

‘그나저나 마음만 같아서는 상대 측 골문 앞까지 달리고 싶은데… 이번 경기에 너무 무리했나.’

공을 뺏어낸 것은 좋았지만 시영은 달리는 와중에도 흔들리는 자신의 다리를 느낄 수 있었다. 아무리 이를 악물어도 흔들리는 무릎은 머리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힘이 빠져 넘어질 것만 같은 다리를 재촉하며 그는 전방을 훑어보았다.

‘공격 숫자가 많지 않으니 가능하면 최전방에 다이렉트로 빠르게 내주랬지.’

시영의 눈에 상대 페널티박스 앞에서 시영을 보며 골문으로 내달리는 누군가의 모습이 보였다.

마지막 남은 힘을 다 짜내듯 다리에 힘을 주고 공을 차내며 시영은 소리쳤다.

“야! 진호야!”

진호는 시영의 고함을 들으며 빠르게 골문으로 질주했다.

후반전 내내 수비에 치중하던 KFC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기회였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난 계속 종환이 형이나 주현이한테 밀려 나서 벤치만 지키고 있을 거야.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줘야만 해. 이번만큼은 놓칠 수 없어!’

그의 눈에는 시영의 패스가 아주 천천히 떨어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옆에서 함께 달리며 자신의 어깨를 밀어내는 수비수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그의 시야에는 오직 자신의 앞쪽으로 떨어지는 공과 자기 자신, 둘뿐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제발!’

공이 떨어지는 것을 보며 진호는 초조했다. 그대로 계속 뛰었다간 공은 약간의 차이로 그의 앞을 지나 골키퍼의 손에 잡힐 것만 같았다. 그것을 보고 있자, 생각보다 그의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는 넘어지듯 앞쪽으로 몸을 날렸고, 그의 머리에 맞은 공은 골문 구석을 향해 빠르게 빨려 들어갔다.

동민은 진호의 골에 기쁨과 놀라움을 함께 느끼고 있었다.

진호를 넣으면서도 사실 골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방에서 스피드랑 제공권으로 상대 수비 전진이나 막아주는 정도로 생각했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진호가 추가골을 넣어 상대의 추격 의지를 꺾어버린 것은 동민에게 기쁜 오산이었다.

종환에게 밀려 거의 경기에 나오지 못하던 진호에게 거는 기대는 거의 없었기에, 그는 새삼스레 선수들이 자신의 생각처럼 움직이지만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호의 골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동민을 포함한 KFC 선수들의 함성이 그 뒤를 따랐다. KFC가 2 대 0이라는 스코어로 결승에 진출한 것이다.

동민은 아직도 승리의 흥분이 가시지 않은 선수들을 모아두고 입을 열었다.

“다들 잘했어. 이제 남은 건 결승 하나뿐이야. 축하해”

동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 그 말은 짧지만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결승에 올라간다는 기쁨도, 자신의 생각보다도 잘해주었다는 고마움도 모두 짧은 그 말 속에 담고 동민은 잠시 말을 멈췄다.

“결승 올라간 정도로 벌써 그러면 안 되지. 내일 지게 되면 너 200만 원 휑하니 날아가잖냐. 지금 그렇게 마음 놓았다가 내일 피눈물 흘릴라.”

경태가 너스레를 떨면서 말했지만 그 목소리도 떨리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본선에 나가는 것도 겨우 운이 따라줘서 올라갔던 그들이 결승까지 올라갔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다.

“내버려 둬. 돈 나가는 게 쟤지, 우리야?”

빈정대는 종환도 평소보다 말에 날이 덜 서 있는 것이 느껴졌다. 모두들 숨겨보려 했지만 결승행이라는 성과는 그들의 가슴을 벅차게 만들고 있었다.

“거참 너무하네. 아무튼 다들 수고했어. 수비진은 본선 첫 클린 시트지? 오늘은 거의 내내 상대 공격진이 매서웠는데 완벽하게 막아냈어. 특히 시영이 형은 오늘 집에서 푹 쉬어. 마지막까지 상대 공격 끊으면서 추가골 만들어낸 건 형 덕이 크니까. 오늘 무리해서 내일 못 뛰면 큰일이니까 집에서 좀 풀어주고.”

동민은 시영이 체력과 집중력이 고갈되어 가는 후반 막판까지 상대 공격진을 묶어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만약 거기서 시영이 흔들렸다면 경기 결과는 정반대로 달라졌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진호 형은…….”

동민은 고개를 돌려 진호를 보았다.

후반전, 그것도 일부만 뛰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승리에 기뻐하는 그의 표정은 그가 지금까지 얼마나 절박하게 경기에 나서고 싶어 했는지 말해주는 듯했다.

“그 한 번의 기회를 안 놓치고 골로 만든 건 대단했어. 말했다시피 형은 종환이 형이랑 다른 타입의 공격수니까 자신을 가져. 그리고 전술에 따라서 이번처럼 형도 활약할 수 있으니까 날 믿어줘. 이번 같은 상황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종환이 형보다 형이니까.”

동민의 그 말에 진호의 미소는 더욱 커졌다.

“어째 진호를 칭찬하는데 날 욕하는 것 같은 요상한 기분이 드는데. 내가 이상한 거냐?”

“누가 좀 전에 심보를 곱게 쓰지 않아서 그런 거 아닐까? 혼자 생각 좀 해보라고.”

뒤쪽에서 투덜대는 종환에게 한마디 하고는 동민은 생각에 잠겼다.

골을 넣는 것까지 기대하지 않았던 동민에게 진호의 골은 예상외의 행운과도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 골이 진호에게 어떠한 느낌을 주는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이번 골로 김진호도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겠지. 이종환한테 완전히 밀려서 벤치에 있던 김진호가 생각 외로 잘 해준다면, 전술 변화에 따라서 이종환과 김진호를 골라서 쓸 수도 있어. 내가 최종적으로 원하는 ‘상대에 맞춰서 변하는 축구’를 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일이야. 스피드와 연계, 그리고 높이를 선택할 수 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한 동민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이번 경기로 동민이 얻은 수확은 매우 컸다.

단순히 결승전에 올랐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본의는 아니었지만 일찍 뺀 이종환과 이영진, 박주현의 체력적인 이득, 그리고 김진호로 인한 전술 변화의 유연성과 수비진의 첫 클린 시트까지.

‘거의 종합 선물 세트로 주셨구먼. 경기 내내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지만 이 정도면 깔끔하지.’

끝까지 무실점으로 상대의 공격을 잘 막아내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바로 실점할 정도로 조마조마한 상황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거기다 후반 초반에 있었던 슈팅이 골대 맞은 건 진짜 운이 따라줬던 거지. 만약 그게 들어갔으면 전술 변화고 뭐고 순식간에 분위기 넘어가고 다들 정신 줄 놓고 경기는 망했겠지.’

생각만 해도 오싹한 광경에 동민은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다시 선수들을 보았다.

“어쨌든 다들 고생했어. 결승 상대는 내가 알아볼 테니까 다들 먼저 들어가. 내일 결승전 앞두고 있으니 오늘은 곧바로 푹 쉬고 내일 보자. 어제 오늘 연달아서 경기를 하고 있으니 본인이 느끼든 못 느끼든 지쳐 있을 거야. 웬만하면 바로 쉬자고. 알았지?”

“그렇게 말 안 해도 쉴 거다. 온몸이 아프다니까, 온몸이.”

“그건 형이 늙어서 그런 거고. 어쨌든 다들 수고했어.”

동민의 말을 마지막으로 선수들은 다들 지친 몸을 이끌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남은 것은 내일 결승 상대를 알아보려 남은 동민뿐이었다.

“안 봐도 신영대일 것 같지만. 웬만해선 거기가 질 거라는 생각이 안 드는데. 좀 세야지 결승에 없을 거란 기대를 하지.”

점심 때 4강 대진표에서 익숙한 이름을 보았던 동민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연습 경기에서 그들을 상대로 역전승을 거두긴 했지만 그는 그것이 상대가 연습 경기라고 방심했던 결과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내가 머리를 굴렸다고는 해도, 후반전에는 그쪽에서 그대로 경기 유지하면서 끝내려고 스스로 차포 떼고 경기한 거나 다름없는 상태였으니까. 만약 그쪽이 제대로 경기한다면 과연 이번에도 이길 수 있으려나… 자신이 없는데.’

“말해주려고 왔더니 이미 예상하고 있었나. 아까 있던 도박 같은 교체도 그렇고 역시 감은 좋구나.”

머리를 부여잡고 신영대와의 경기를 걱정하던 동민은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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