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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을 극복하라 (28/270)
  • 약점을 극복하라

    “4강전은 SFC, 상동 조기 축구회인가. 아예 모르니까 어떤 식으로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거 아냐?”

    동민은 음료수를 마시며 불안한 듯 말하는 경태에게 고개를 돌렸다.

    “뭘 새삼스레 그래? 미리 알고 준비했던 경기가 얼마나 된다고 그래. 평소처럼 잘하면 이기고 못하면 지는 거지 뭐.”

    동민이 대답하기도 전에 반대편에서 신랄한 종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동민은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 작게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었다.

    “미리 알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어쩔 수 없잖아요. 종환이 형 말이 틀린 것도 아니고, 지금까지 미리 준비한 경기보다 아닌 경기가 더 많았으니까 별로 다를 건 없어요. 전술이나 그런 쪽은 내버려 두고 다들 체력이나 회복해야죠. 이따가 또 뛸 거 생각하면 지칠 텐데.”

    어제 한 경기, 오늘 연속으로 두 경기. 게다가 이기면 내일 결승이라니, 본선 일정이 너무 빡세다며 동민은 마음속으로 투덜거렸다.

    “다들 괜찮을걸. 체력이야 우리보다 조기 축구회 하는 아저씨들이 더 힘들 텐데 뭘. 거기다 체력 훈련을 안 한 것도 아니니까. 힘들어할 사람은 해봐야 반오십도 꺾인 늙은이 한 명 정도 아냐? 산소호흡기 붙여줘야 하나.”

    “고작 2년 차이 나는데 취급은 완전 늙은이네. 너도 이십 대 중반이잖아, 인마. 이게 꼭 지는 나이 안 먹는 줄 알아요.”

    “그 2년이 얼마나 큰지 알면서. 형 저번에 술 마실 때도 1년 전 하고 몸이 달라서 더 못 마시겠다며? 아니면 요즘 들어서 못 마시는 게 아니라 예전부터 못 마시는 거던가?”

    종환의 야유에 경태는 할 말을 잃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이 두 명도 지치긴 지칠 텐데. 후보 선수들로 체력 관리를 한다고 쳐도 전부 쉬게 할 수도 없는데… 상대가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겠고, 젠장.’

    체력 문제를 생각하자 동민은 머리가 복잡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런 동민의 기분을 깨뜨리듯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응? 잠시만요.”

    계속해서 경태를 놀려먹으려는 종환에게 손짓을 하며 핸드폰을 보자 어머니라는 글자가 액정에 떠올라 있었다.

    “여보세요. 어머니?”

    원래는 오늘 경기를 보러오시기로 한 동민의 부모님이었지만, 아침에 급한 일이 생겨 오시지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동민이기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응, 아들. 경기는 어떻게 됐니? 이겼어?”

    “그럼 당연하죠. 이따가 세 시에 4강전 할 거예요.”

    “그래, 다행이구나. 장소는 그때 말했던 그대로니?”

    어차피 오늘은 일 때문에 못 온다고 했던 두 분이기에 동민은 물어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렇죠, 그건 그런데 왜요? 오늘은 일 때문에 못 오시는 거 아니었어요?”

    “아니, 네가 감독으로 대회에 한다는데 늦어도 가야지. 이따가 4강전은 어떻게든 시간이 맞춰 갈 테니 힘내렴.”

    어머니의 따뜻한 목소리에 동민은 마음이 놓이는 것을 느꼈다.

    “바쁘신데 너무 무리하실 필요 없어요. 내일 우승까지 스트레이트로 쭉 올라갈 거니까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마셔요. 아, 먼저 끊을게요.”

    동민이 전화를 끊고 나자 나머지 두 사람이 가만히 동민을 보고 있었다.

    “왜 갑자기 사람을 그렇게 봐요?”

    어딘가 근질거리는 두 사람의 표정을 보며 동민은 물었다.

    “아니, 그 뭐야… 이따가 꼭 이겨야겠다 싶어서.”

    “나이 스물둘 먹어도 부모님 오신다니까 좋아하는 걸 보니, 너희 부모님 앞에서 지면 안 되겠다 이 얘기지.”

    어떻게든 돌려서 말하려고 하는 경태의 말을 자르고서 종환이 말을 스트레이트로 쏘아냈다.

    “예? 뭐요?”

    “아니, 부모님 오신다니까 표정이 확 풀렸잖아.”

    “확 풀렸다 정도가 아닌데.”

    “아니, 이 형들이 뭔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동민은 경태와 종환의 말에 얼굴을 붉히며 소리쳤다.

    감독으로서 팀 앞에 선 상황이 아닌데도 반말을 할 정도로 그는 그 말에 당황하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온 이후 오히려 왠지 모르게 점점 더 정신연령이 어려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동민의 마음속 한구석에 고개를 들었다.

    동민은 두 사람과 의미 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자, 이제 이번 경기만 이기면 결승이야. 오전에도 뛰어서 다들 힘들겠지만 힘내고 이기자. 일단 몸부터 풀고 있어.”

    동민의 말에 모두들 거리를 벌리고 몸을 풀기 시작했다.

    ‘4강전이라…….’

    동민은 힘주어 주먹을 쥐고는 상대 쪽을 보았다.

    상대측도 경기를 앞두고 몸을 푸는 모습을 보자 동민의 가슴이 조금씩 더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생각보다 나이는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데. 체력 쪽에서의 우위는 그렇게 크게 잡지 못하려나. 길게 보면 웬만하면 쉬운 편이 좋은데… 뭐 됐어. 어떻게든 이기면 되니까.’

    작게 푸념을 토한 동민의 눈은 관객석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그는 익숙한 얼굴들을 보았다.

    늦게라도 오겠다던 그의 부모님이 구석 자리에 앉아 그를 보고 손을 흔들고 있었고, 반대편에는…….

    “어?”

    동민은 생각지 못한 얼굴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분명히 대회가 있다고는 했었지만 어떤 대회인지, 언제 어디서 하는 건지도 말씀 안 드렸었는데?’

    관객석 한쪽 끝에서 자신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향하고 있는 병렬을 보자마자 동민은 당황했다.

    ‘따로 묻지도 않으셔서 그냥 나중에 결과 보고나 드리려고 했는데… 말씀 안 드렸다고 나중에 한 말씀 하시려나. 아이고야…….’

    먼 거리에서도 느껴지는 병렬의 시선에 동민은 등골을 타고 짜릿한 느낌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저번에 만났을 때에도 자신을 더 이용하라고 말했던 병렬이었지만, 그 이후 동민이 병렬에게 따로 도움을 청한 것은 없었다.

    ‘거기다가 대회에 대해서도 따로 이야기를 안 했으니 이따가 혼날지도 모르겠네. 감독님도 은근히 귀찮은 성격이시란 말이야.’

    끝나고 병렬의 잔소리가 날아올 것을 예상하며 동민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그의 입꼬리는 분명히 올라가 있었다.

    ‘그 외에는…….’

    관객석을 훑고 있던 동민의 눈에 또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오전까지 눈에 익던 모습에 동민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진짜로 무조건 이겨서 결승까지 가야겠네.”

    자신을 보고 있는 수연을 마주 보면서 동민은 중얼거렸다.

    “어째 표정이 기합이 빡 들어가 보인다?”

    몸 풀기가 끝난 후 동민의 표정을 본 경태가 물었다.

    “경기 앞두고 당연히 그래야지. 여기서 지면 200만 원이 날아가는 건데.”

    “그냥 그것만 이유가 아닌 것 같은데? 응?”

    “아니긴 뭐가 아냐. 쓸데없는 소리하지 마. 아무튼 다들 모여 봐! 지금부터 포지션이랑 전술 설명할 테니까.”

    동민은 경태의 말을 억지로 얼버무리며 팀원들을 불러 모으고 입을 열었다.

    “상대측에서 어떻게 나올지 아직 잘 모르니까 경기 시작 후에 내가 전술을 바꿀 수도 있어. 그거 미리 말해둘게. 먼저 경태 형부터 말하면…….”

    동민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다른 사람들 모두는 집중하고 귀를 기울였다.

    “…이상이야. 혹시 질문 있어?”

    동민은 고개를 젓는 팀원들을 보며 사납게 미소 지었다.

    “그럼 됐어. 나가자. 전술에 변화가 있으면 바로 이야기할 거야. 힘내자고.”

    동민의 흥분이 전염된 듯 웃고 있는 그들을 보며 동민의 미소는 한층 짙어졌다.

    ‘무조건 이번 경기에서 이겨서 결승에 간다. 부모님에게, 선생님에게, 그리고 자기 팀 경기가 끝나도 남아 있는 저 사람한테도 내 능력을 보여주자.’

    동민의 가슴 속 고동은 심판의 휘슬이 울리자 최대급으로 커졌다. 그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상대 진영으로 눈을 돌렸다.

    ‘전체적인 스테이터스는 엇비슷한가. 어제 경기 상대처럼 조기 축구회는 특출한 한두 명한테 집중되는 편이 많은가 본데. 아니면 어제 생각했던 것처럼 적어도 여기까지 올라올 팀들은 에이스 역할 하는 사람 몇 명 정도는 있는 거거나.’

    [신정훈]

    38세

    잘 쓰는 발 : 오른발

    성장 가능성 8.4/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7.8/20

    선호하는 플레이 :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공을 잡고 템포를 조절

    특성 :

    장점 - 정확한 패스, 플레이메이커

    단점 - 느린 발

    현재 컨디션: 8/10

    [조규현]

    29세

    잘 쓰는 발 : 왼발

    성장 가능성 7.9/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7.5/20

    선호하는 플레이 :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 강한 슈팅 선호

    특성 :

    장점 - 스프린터

    단점 - 기름 발

    현재 컨디션: 6/10

    ‘제일 위험한 인물은 발이 조금 느려도 확실한 패스를 전해줄 수 있는 플레이메이커에 발 빠른 공격수라… 투톱이니까 저쪽에 흔들리다가 실수로 실점하기 딱 좋네.’

    동민은 요 몇 경기 동안 자주 있었던 실점 상황을 떠올렸다.

    수비의 집중력 부족이나 생각지 못한 롱패스에 따른 허무한 실점이 주를 이루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 상대 팀은 충분히 그런 상황을 만들어낼 수 있어 보였다.

    “오히려 그런 상황을 만드는 게 전문 같은데… 지금까지처럼 하다간 오히려 얻어맞고 저쪽은 걸어 잠글 게 뻔하겠네.”

    동민은 한숨을 내쉬며 혼잣말을 했다.

    그러나 그렇게 이야기하는 동민의 입가에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기회지.’

    그는 오히려 결승에 가기 전에 이런 팀을 상대하게 된 것을 행운으로 여겼다.

    측면을 거치지 않고 중원에서 곧바로 전해지는 롱패스와 발 빠른 공격수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결승에서 어찌 될지 모른다.

    차라리 지금 맞부딪치면서 대응을 고민하고 익숙해지는 것이 그에겐 다행이었다.

    ‘그러면 대응은…….’

    맨 처음 그가 생각한 것은 오프사이드 트랩으로 상대 공격수의 발을 묶는 것이었지만 곧바로 고개를 흔들고 생각을 바꾸었다.

    ‘경태 형의 선호하는 플레이에 수비진 컨트롤이 있다지만 그걸로 실수가 없을 거라고 기대하긴 힘들어. 아무리 조금이나마 훈련을 했다고 해도 지금 우리 같은 레벨에서 실수가 안 나오는걸 기대하느니 차라리 복권을 사는 게 나을걸.’

    오프사이드 트랩은 분명 효과적인 방법이었지만 단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곧바로 골키퍼와 공격수의 일대일 상황으로 이어진다. 실수가 안 날 거라고 믿으며 하기에는 연습도 부족했고, 지금까지 나왔던 수비진의 실수들도 마음에 걸렸다.

    ‘애초에 수비진 실수나 집중력 부족에서 이어진 실점이 많은데 거기에서 오프사이드 트랩을 쓰자는 건 자살행위나 다름없지, 뭐.’

    동민 자신은 공을 빼앗아 오는 것을 위해서라면 오프사이드 트랩이 더 좋았지만 상황상 어쩔 수 없었다. 오히려 상대에 대한 대응이랍시고 전술을 내놨다가 실수로 무너지면 본말전도가 따로 없었다.

    ‘그러면 그냥 쪽도 아니고 진짜 개쪽이지. 차라리 더 우리 팀에 맞는 걸 고를 수밖에. 욕심 부려봐야 좋을 게 없어. 신중하게 가자, 신중하게.’

    결국 동민은 마음을 정하고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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