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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 준비 (26/270)

재회 준비

“그때 그 여자가 다 보고 있었으면 연습 경기 때 들고 나왔던 전술은 안 쓰려나? 아니, 그렇게 핵심 선수가 확실한 상황에선 짧은 시간 안에 바꾸기 쉽지 않으니 그대로 나오려나.”

동민이 집에 도착할 때 즈음에 그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은 오늘의 경기 결과도, 자책도 아니었다.

경태의 위로 섞인 질책을 듣고 남은 것은 당장 내일 있을 BU와의 8강전이었다.

“오늘 경기도 그 사람이 봤으면… 하이고야.”

BU의 매니저였던 수연을 생각하자 동민은 자동적으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개인적으로 스스로가 모자랐던 오늘의 경기를 수연이 보고서 어떤 생각을 했을 지가 무서웠다.

‘실망스러워 했으려나? 아니, 실망했겠지. 전반전 내내 끌려 다니고, 후반전은 팀 전술이 잘 먹혀들어 갔다고 하기보다는 선수 개인 기량이 만들어낸 승리였으니. 그때 잘난 척 그렇게 이것저것 다 이야기해 놓고 보여준 경기가 이거라니 진짜 다시 생각해도 한심하네.’

집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동민은 의자에 쪼그려 앉아 고개를 떨궜다.

‘그쪽에서 오늘 경기를 봤으면 100% 박주현에 대해서는 대비책을 들고 나오려고 할 테고, 그럼 결국 상대의 측면-원톱 공격이랑 우리 박주현-이종환 공격이랑 맞대결처럼 되는 건가. 어떤 식으로 생각을 해야 하나…….’

“너 들어왔으면 인사부터 좀 해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길래 집 오자마자 씻지도 않고 틀어박히니?”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들자 어머니가 그를 빤히 바라보는 중이었다.

“아, 다녀왔습니다. 그냥 내일 경기 생각 좀 하고 있다가요.”

“그래도 정신은 좀 차리고 다녀. 밖에서도 그렇게 멍하니 있다가는 사고 난다. 오늘 했다는 경기는 이겼니?”

“그럼요. 첫 경기에서 질 리가 없잖아요.”

“그래, 잘됐구나. 내일은 휴일이니까 아버지랑 같이 보러 갈게. 일단 가서 씻고 나오렴.”

어머니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서 욕실로 향하는 동민은 재차 다짐했다.

‘내일 진짜 질 수 없어. 어머니 아버지한테 감독으로서 보여 드리는 첫 경기이기도 하니까.’

동민의 손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다들 어제 잘 쉬었지? 어제 말한 대로 상대가 연습 경기 때 이겼던 상대라고 절대 방심하면 안 돼. 먼저 선발 명단부터 부를게. 골키퍼에 이호재, 포백 라인은 우측부터 영우 형, 경태 형, 진규 형, 시영이 형. 우측 빼고는 평소랑 그다지 다르지 않게 뽑았어. 평소처럼만 하면 될 거야. 미드필더는…….”

선발 명단을 말하고 있는 동민을 보며 경태는 어제 동민과 이야기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제처럼 축 처진 목소리가 아니라 천만다행이네. 어제처럼 그러고 있었으면 종환이가 먼저 지랄해 댔겠지.’

경태의 눈이 종환을 향했다. 종환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동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동민에게 이야기를 하려던 사람은 경태 한 명뿐이 아니었다. 동민의 태도가 이상한 것에 대해서 말하려던 또 다른 한 명이 바로 그였다.

‘저놈이 말하면 아무리 사이가 나아졌다 치더라도 말투가 더러워서 쌈박질로 갈 게 뻔할 뻔자니까. 억지로 내가 한다고 하고 말리기야 했다만 오늘도 상태가 안 좋았으면…….’

경태의 눈앞에는 들으라는 듯이 빈정거리는 종환과 거기에 날카롭게 대꾸하는 동민의 모습이 훤히 그려졌다.

“진짜 다행이지, 암.”

경태가 혼자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중 어느새 동민의 선발 명단 발표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공격은 투톱. 종환이 형, 주현이. 저번 연습 경기 후반전에 했던 거 기억하지? 그때랑 같아. 주현이 니가 흔들고 수비진 타이밍 뺏으면 종환이 형이 마무리하면 되는 거야.”

“뭐야, 저번이랑 아예 동일하게 갈 거야? 달라지는 거 하나 없이?”

동민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수환이 손을 들고 물었다.

“저쪽 공격의 핵심인 좌측 윙이나 원톱 위주의 전술이 그렇게 크게 바뀌진 않았을 거야. 수비진 구성도 마찬가지고. 저쪽이 다른 방식으로 바뀌어 있으면 그다음은 내가 따로 지시할게. 그리고 영우 형, 영우 형이 우측 수비하면서 상대 좌측 윙 놓치지 말고 계속 달라붙는 거 잊지 말고. 속도만 따지면 형이랑 비슷하거나 더 빠를 수도 있으니까 정신 팔면 안 돼. 저번이랑 다르게 형이 선발로 나서는 건 속도 때문이니까.”

동민의 전술은 간단했다.

저번 연습 경기 때 보았던 상대 팀의 강점을 막고, 약점을 들춘다. 영우를 우측 풀백으로 두면서 상대 좌측 윙의 속도를 잡고, 주현으로 하여금 뒤로 빠진 상대 수비진에 균열을 만드는 것. 그것이 동민이 BU를 상대로 들고 나온 전술의 핵심이었다.

상대의 주 전술이 이 짧은 시간 내에 바뀌었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미리 상대 팀과 선수들의 장단점을 아는 것은 상상 이상의 메리트였다.

‘미리 상대 팀을 알아두기만 하면 맞춤형 대응 방법이 나오는 거니까. 이번 경기에서 이겨도 4강 상대는 우리랑 동시에 하는 시간표상 볼 수가 없는 게 흠이지만. 일단은 이 경기부터 붙잡는 게 먼저지.’

동민의 눈은 상대 팀이 있는 건너편의 스탠드로 향했다.

‘과연 어떻게 나오려나. 어제 경기를 봤다면 뭔가 생각해 온 게 있긴 할 텐데.’

상대 스탠드, 그중에서도 수연을 바라보는 동민의 눈은 기대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리고 경기가 시작하자, 상대는 동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저 11번 분명히 왼쪽 윙이었는데 왜 저기에 있지?’

동민은 상대의 우측면에 있는 오한석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오한석]

23세

잘 쓰는 발 : 왼발

성장 가능성 8.5/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6.6/20

선호하는 플레이 : 좌측 측면 돌파 선호, 터치라인을 따라 드리블 선호, 빠른 크로스

특성 :

장점 - 스프린터

단점 - 허수아비

현재 컨디션: 7/10

‘그래, 아무리 봐도 그때 그 좌측 윙이야. 왼쪽 서다가 오른쪽 서면서 적합도가 떨어진 것 말고는 그대로네. 근데 왜 우측으로 간 거지?’

그리고 동민의 예상과 달라진 또 한 가지는 본래 공격의 또 하나의 핵심이던 원톱, 정기주가 벤치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예 바꿔서 해보겠다 이건데 평소 하던 걸 두고 얼마나 잘되려나. 포메이션은… 4-5-1?’

어제 경기에서 좌측 윙으로 나왔던 주현을 의식한 듯 측면에서 안쪽으로 몰고 들어오는 공격을 어떻게든 수를 앞세워서 막아낼 생각 같았다.

‘아, 그래서 우측인가. 속도가 워낙 빠르니까 측면 수비 커버하러 와주는 것도 좋고, 거기서 역습하는 걸 노린 건가. 근데 뭔가 애매한데…….’

어렴풋이 상대의 의도가 보이는 것을 느끼며 동민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면…….”

‘되게 자존심 상하는데 이거.’

BU의 11번, 오한석은 입을 삐쭉거리고 있었다.

비록 보기에 비해 몸싸움은 쥐약이지만 속도라는 강점을 가진 이상, 본래 자기 포지션에서 활약하고 싶은 것은 당연했다.

그러나 오늘 그가 맡은 곳은 평소처럼 좌측면이 아닌 반대 방향인 우측면이었다.

‘거기다가 상대 21번 쟤가 좌측 윙어로 나올 거 같다면서 수비 같이 도와달라고 하더니만. 아무리 봐도 지금 쟤는 측면은 아닌 것 같은데.’

본래 측면에서 안쪽으로 공을 몰고 들어올 것이라 예상되던 박주현은 오히려 중앙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덕분에 측면 수비 커버를 위해 우측으로 자리를 옮겨서 나온 한석은 닭 쫓던 개 꼴이나 다름없었다.

“이럴 거면 그냥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왼쪽이 좋았는데. 뭐, 그래도 기주 같은 상황보다는 이게 낫지만.”

한석의 눈이 벤치에 앉아 불만스럽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정기주에게 닿았다.

그는 오늘 전술에서 전반전에는 할 일이 없다고 벤치에 앉아 경기를 지켜보고 있는 상태였다.

‘그 매니저하고 코치하고 의견이라도 확실하게 맞았으면 차라리 나았으려나.’

한석은 작게 푸념하면서도 다시 의식을 경기장 안으로 돌렸다.

‘염병할, 진짜 꼬라지 개 같네. 초장부터 꼬이는데 그냥 평소처럼 나 넣어주면 안 되나? 하여간 그놈의 매니저 년이 문제라니까. 어쭙잖게 상대에 대한 대응이니 뭐니 말하는 바람에 상황 좆 같아졌잖아.’

정기주는 벤치에 앉아 손톱을 물어뜯으며 속으로 온갖 욕설을 다 주워섬기고 있었다.

욕설의 대상은 언제나 지금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었지만 오늘은 특히 매니저와 코치를 향한 욕설이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코치도 그래, 지 줏대 없이 이거 생각해 본다, 저거 생각해 본다 이 지랄 떨더니만 그 결과가 이거냐? 대갈빡에 구멍 난 새끼 같으니라고.’

매니저인 수연이 상대 팀의 전술이니 뭐니 하면서 대응책을 생각한 것을 코치가 해보네 마네 한 것이 지금 이 상황인 것이다.

‘아오 썩을, 빨리 어느 쪽이든 기울어져라. 여기서 가만히 보고 있는 건 진짜 좀 쑤셔 뒤질 거 같으니까.’

기주의 마음속 욕설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운이 안 따라주네.”

전반전도 절반이나 지난 시각, 동민은 골키퍼에게 막히는 종환의 슈팅을 보며 탄식을 내뱉었다.

벌써 세 번째 득점 찬스였지만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불운이 겹쳐 모두 무산되고 있었다.

첫 주현의 슈팅은 골대를 강타했고, 두 번째 슈팅은 수비수 발끝에 걸려 코너킥, 그리고 세 번째인 종환의 슈팅은 상대 골키퍼의 손을 맞고 옆으로 나가 버렸다.

‘분명히 경기는 꽤 잘 끌고 가고 있는데… 저쪽 대응 전술이 어설플 거라고 예상 했는데 생각보다 잘 먹혀들어간 것도 좀 있으려나.’

주현이 측면이 아닌 중앙에서 움직이면서 상대 수비에 혼란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미드필더들까지 돌아가며 주현을 마크하면서 상대 수비수들의 우위는 여전히 지켜지는 중이었다.

“이렇게 되면 역시 영우 형을 올리거나 영진이를 교체시킬까. 아니면 양 측면을…….”

동민은 상대의 수비를 무너뜨릴 방법들을 고심하며 생각에 잠겼다.

‘연습할 시간이 적어서 많이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어찌어찌 잘 막고 있어. 저 21번에 대한 대비는 정말 급조한 거였지만.’

수연은 수세에 몰리면서도 결정적인 기회만큼은 어떻게든 버티고 있는 BU를 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비록 자신이 제안한 전술이 전부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지만 그 일부라도 상대의 계획을 방해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가슴이 뛰었다.

‘그래도 저쪽도 분명히 움직이겠지. 교체야 코치가 알아서 할 테니 내가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역시…….’

수연은 코치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작게 속삭였다.

‘전반전은 이대로 미는 분위기로 가져간다면 후반전에 분명히 이길 수 있어. 그러니까…….’

동민은 자신 있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승부를 건다면 후반전에 걸 거야.”

두 사람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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