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본선에 내딛는 첫걸음(3) (24/270)
  • 본선에 내딛는 첫걸음(3)

    ‘박주현의 스테이터스가 어느 정도든, 확실한 건 [소심함]이 사라진 이상 측면에서 흔들어주는 역할은 다른 사람들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겠지.’

    동민은 날카로운 눈으로 운동장을 보고 있었다.

    남은 후반전 동안 골을 만들어내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박주현이 해주겠지만 그의 움직임을 얼마나 끌어낼지는 동민에게 달려 있었다.

    ‘이종환이 번갈아 가며 양쪽 측면으로 빠지면서 수비만 끌어준다면 분명히 공간은 나올 텐데, 얼마나 거길 파고들 수 있느냐가 문제네. 살펴보면서 전술을 어떻게 바꿔서 상대할지 고민을 해봐야 해…….’

    동민은 몇 분 정도는 지켜보면서 어떻게 박주현의 능력을 극대화할지 고민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고민이 불필요한 것이라고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이상하네. 아까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난 뒤부터 묘하게 몸이 가벼운 느낌인데.’

    주현은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생전 처음 느껴보는 이상한 느낌에 조금 당황하고 있었다.

    ‘아니, 몸이 가벼운 게 아닌가. 어쩐지 다 제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단 말이야.’

    지금까지 미약하지만 드리블과 개인기를 자신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던 그였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 한구석에서는 ‘막히면 어떻게 하지?’라는 의심과 불안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상대 선수들이 달라붙어도 돌파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마음속을 채우고 있었다.

    ‘감독이 그런 이야기해서 그런가. 왠지 불안감이 하나도 없어.’

    주현은 시영의 패스를 받고 잠시 숨을 골랐다.

    주위의 모든 것이 자신의 호흡처럼 느려진 느낌이었다.

    자신에게 달려오는 상대 수비수도, 중앙에서 우측으로 빠지면서 공간을 만드는 종환도, 모두들 느리게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느려진 그라운드 안에서 자신이 움직일 수 있는, 움직여야 하는 방향이 보였다.

    ‘할 수 있을 거야.’

    주현은 지금까지의 자신이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을 입속으로 되뇌는 자신에게 조금 놀라면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창원 조기 축구회 센터백인 이성수는 전반전과는 달라진 상황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그의 눈이 박혀 있는 곳에는 상대의 좌측 윙인 21번이 있었다.

    ‘전반전에도 발재간이나 그런 쪽은 좀 위험하다고는 생각했는데… 이건 아예 다른 사람이잖아. 전반전에 내가 봤던 사람 맞나?’

    전반전에 그가 상대 21번을 보고 든 생각은 ‘발재간은 좋지만 위험 순위는 낮은 사람’이었다.

    자신이나 다른 수비진을 제치려 하면서도 그의 눈은 계속해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자신이 하는 일 자체가 불안하다는 표정 그 자체였다.

    그런 표정을 한 사람들을 성수는 많이 보았다.

    처음 회사에 들어오는 신입 사원들, 그 이전으로 돌아가면 군대에서 보았던 전입 신병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의 반도 발휘하지 못하고 혼자서 무너지기 일쑤였다.

    그의 생각대로 전반전이 지날수록 상대는 제대로 된 찬스 한 번 만들지 못하고 점점 더 표정이 어두워져 갔다.

    오히려 수비진을 계속 노려보면서 이를 갈고 뛰어다니는 상대 원톱이 더 위험하다고 판단하고 그를 막아 세웠다.

    ‘그런데 왜 지금은…….’

    자신의 사람을 보는 눈이 틀렸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어느새 서른 줄을 지난 지도 오래되었고, 곧 있으면 사회생활을 한 지도 십 년 차다.

    스스로를 과신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전 내내 상대가 보여준 모습은 경험과 자신이 부족한 어린 녀석 그 자체였다.

    ‘또다!’

    또다시 측면에서 공을 잡고 달려오는 상대의 모습에서 아까와 같은 불안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이번만은!’

    벌써 몇 번이나 자신을 농락하고 들어간 상대를 보며 결의를 다졌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상대는 그저 가벼운 볼 터치 몇 번만으로 어느새 성수를 뒤로하고 골문으로 달려들고 있었다.

    그러고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골문으로 공을 차 넣었고, 공은 그대로 골대 구석으로 빨려들어 갔다.

    “이건 내 예상하고 완전히 엇나가 버린 수준인데…….”

    동민은 첫 골과 똑같은 패턴과 각도로 상대 골 망을 흔드는 주현을 보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엔 자신의 능력에 오류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현은 그가 본 스테이터스가 거짓이 아님을 보여주는 경기를 펼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측면에서 공을 끌고 들어가서도 무리하게 다른 사람들한테 패스를 주려고 하다가 뺏기거나, 아니면 억지로 슛하려고 하다가 어처구니없는 슈팅으로 날려 먹었을 텐데.’

    그러나 두 번의 골에서 주현은 완전히 다른 움직임을 하고 있었다.

    상대 수비를 끌고 들어가는 드리블에서는 멈칫거리는 모습을 찾을 수 없었고, 골문 앞에서도 침착하게 구석으로 깔아 차는 슈팅으로 마무리 지었다.

    어느 쪽이든 예전의 주현이라면 하지 못할 움직임이었다.

    ‘저 정도의 재능이 특성에 가로막혀 있던 거야?’

    동민은 [소심함]이라는 특성이 자신의 생각보다 엄청난 것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감독.”

    “응?”

    “주현이가 원래 저렇게 잘했었나? 혹시 아까 따로 이야기할 때 뭐 이상한 거라도 했어?”

    옆에서 들려오는 영우의 목소리에 동민은 고개를 돌렸다.

    “이상한 거라니?”

    “골 못 넣으면 변기에 머리 처박아 버리겠다는 협박이라도 한 거 아닌가 싶어서. 아니면 뭐 약이라도 먹였어? 애가 전반전하고 아예 다른 사람이잖아.”

    평소라면 가벼운 농담이 되었을 영우의 말도, 그가 스스로의 눈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다르게 느껴졌다.

    “…아니, 뭔 소리를 하는 거예요!”

    잠시 스탠드에 깔려 있던 침묵을 걷어내며 동민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니, 잘하니까 좋긴 한데 쟤가 우리가 알던 주현이 맞나 싶어서. 드리블은 모르겠고 애가 슛 잘하는 거 보니까 다른 사람 같잖아. 쟤 동아리 들어오고 나서 우리끼리 하는 연습 경기라도 골 넣은 건 한 손으로 셀 수 있을걸. 혹시 니들 기억에는 주현이가 골 넣었던 경기가 다섯 경기 이상이었냐?”

    영우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좌우로 고개를 저었다.

    “잘하는 사람한테 뭔 소릴 하는 거야, 이 사람들은!”

    동민은 짐짓 화를 내는 척을 하면서도 내심 공감하고 있었다.

    ‘특성을 없앤 나도 지금 믿기 힘든 지경이니 이해는 하지만.’

    동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무서운 건 성장 가능성을 보면 이 정도는 새 발의 피도 안 되는 수준이라는 건데…….”

    동민은 주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응?”

    “아녜요. 슬슬 영우 형 몸 풀고 계세요.”

    “어? 나 들어가?”

    “저쪽에서 대응하기 전에 선수 치려고요.”

    동민은 주현에 대한 감탄은 나중으로 미루고 이 바뀐 분위기를 어떻게 주도해 나갈 수 있을지 생각했다.

    ‘벌써 두 번이나 당했으니 분명히 박주현 쪽으로 대비를 하려고 하겠지.’

    한 번은 운에 따른 우연으로 볼 수 있겠지만, 두 번이 반복된다면 그것은 이야기가 다르다.

    동민은 상대 팀이 박주현이 있는 좌측으로 수비를 단단히 할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었다.

    ‘그러면 곧바로 김영우로 교체해서 반대편에서부터 스피드로 뚫고 들어가야겠지. 만약 저쪽에서 끝까지 박주현을 대비 안 한다고 하면 더 좋고.’

    동민은 박주현이 만들어놓은 예상 이상의 효과를 놓칠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양쪽에서 밀어대면 수비 라인이 내려갈 테니까 그다음에는…….’

    동민의 머리는 쉴 새 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정말 어떻게 된 걸까? 전반전이랑 아예 다르게 흘러가잖아.’

    수연은 관중석에 앉아 경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BU의 경기가 끝난 후에도 곧바로 돌아가지 않고 경기를 보러온 이유는 두 가지였다.

    그중 한 가지는 부광대의 8강 상대가 될 팀을 미리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이유는 그것을 떠나서 동민이 이끄는 KFC의 경기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보면서 감탄했던 그 경기를 다시 한 번 보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러나…….

    ‘확실히 어떻게 흘러갈지 기대는 했었지만…….’

    전반전 내내 상대에게 끌려가는 KFC의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실망했다.

    BU와의 경기에서 보였던, 상대의 전술을 빠르게 알아채고 그에 맞춰 자신의 전술을 바꾸던 모습은 없었다.

    상대의 골은 수비진의 실책이라고 볼 수 있어도 그에 따른 대응은 그녀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상대의 전술에 어영부영 대처하는 모습은 그녀의 기대를 무너뜨리기 충분했다.

    ‘그랬던 팀이 후반전에 와서 이렇게 변할 수 있단 말이야?’

    창원 조기 축구회 전술의 중심이 센터백인 4번이라는 것은 그녀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4번이 맡은 역할을 그녀라면 어떤 방식으로 방해할지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공격진에서 계속된 전방 압박으로 방해하는 것까진 생각했지만 오히려 측면에서 무너뜨리는 건 생각 못 했는데.’

    KFC의 21번.

    조금 작은 체구의 그 선수는 창원 조기 축구회의 쓰리백 수비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측면에서부터 파고드는 드리블은 원톱에 집중되어 있던 수비진을 당황하게 만들었고, 뒤이은 날카로운 슈팅은 흠잡을 수 없는 마무리였다.

    그는 그라운드에 있는 수비진들을 자신이 돋보이기 위한 엑스트라들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저 선수, 우리랑 할 때는 저 정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그 21번이 BU와의 경기에서도 나왔다는 것을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도 좌측 윙으로 나와서 개인기와 정확한 패스로 측면 수비를 신경 쓰이게 하던 선수였다.

    하지만 측면에서부터 파고드는 드리블이나 내주는 패스로 수비를 교란하던 모습은 비슷해도, 그때와는 확실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분명히 위협적인 선수였던 건 맞지만, 저렇게 혼자서 수비를 무너뜨릴 만한 선수는 아니었는데.’

    그녀의 머릿속에는 KFC의 21번이 아닌 다른 사람이 떠올랐다.

    그녀는 얼마 전 미니 게임에서 보았던 광경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도 혼자서 수비진을 누비던 사람이 있었다.

    ‘그때의 감독이랑 비슷해.’

    그녀는 놀람을 감출 수 없었다. 그 어린 감독은 그리 오랜 시간을 들이지도 않고 자신의 움직임을 선수에게 주입시킨 것이다.

    혼자서 수비진을 파고드는 모습도, 슈팅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깔끔한 마무리를 짓는 것도 비슷했다. 그는 볼수록 그 미니 게임에서의 동민의 모습이 생각났다.

    “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 짧은 시간 만에 저렇게 바꿀 수 있는 거지?”

    수연은 감탄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끼고 있었다.

    저런 상대를 바로 다음 경기에서 만난다는 것이 무서웠다.

    자신이 직접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도, 저런 상대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강동민, 그 사람 대체 뭘 어떻게 한 거지?’

    끝나가는 경기를 바라보는 수연의 손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생각하는 것이 성대한 착각이라는 사실은 그녀도, 그리고 동민도 알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