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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에 내딛는 첫걸음(1) (22/270)

본선에 내딛는 첫걸음(1)

“이제 곧 경기 시작이야. 이렇게 사람들 많은 곳에서 뛰는 게 처음이라 긴장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지금까지 했던 연습 경기랑 같아. 그 점만 잊지 말고 움직이자.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을 테니까.”

본선 첫 경기인 창원 조기 축구회와의 경기를 앞두고 동민은 팀원들에게 말했다.

“그리고 경기 시작하고 나서 또 지시 사항 바로바로 전달할 테니까 집중 잃지 말고 제대로 따라줘. 힘내자. 경태 형, 뭐 할 말 있어?”

“감독님이 말한 대로야. 다들 정신 차리고 확실하게 이기자고. 끝.”

경태가 평소보다 딱딱한 말투로 말을 마치자 다른 팀원들 사이에서 약간의 웅성임이 일었다.

‘조금 전 BU 경기에 자극받긴 한 모양이네.’

경태뿐만 아니었다. 종환 또한 평소보다 날카로운 표정으로 상대 팀 쪽을 쏘아보고 있었다.

‘자극 받는 건 좋은데 다들 너무 긴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필요 이상의 긴장은 오히려 평소보다 실력 발휘를 힘들게 만들고는 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동민은 슬쩍 시선을 한 사람에게 돌렸다.

‘특히 박주현은…….’

동민은 아직 특성을 바꾸지 못한 상태인 주현이 더욱 신경 쓰였다. 소심한 성격인 사람이 지나친 긴장으로 인해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보아왔기에 동민의 걱정은 주현에게 집중되었다.

‘첫 경기부터 뛰어주면서 익숙해져야 한다는 생각에 선발로 넣은 거지만. 잘 해낼 거라 믿어야지.’

동민은 고개를 흔들고 걱정을 몰아냈다.

그리고 동민의 그런 마음과 기대를 품은 채로 휘슬 소리가 운동장을 관통했다. 동시에 동민의 눈은 빈틈없이 양 팀의 선수들을 포착했다.

“조기 축구회는 쓰리백이 유행인가. 3-4-3 포메이션에… 아까 같은 쉬운 팀은 아닌가. 확실히 본선까지 올라온 팀이면 한두 명쯤은 핵심 선수들이 있게 마련인가 보네.”

작게 투덜대면서도 동민의 눈은 쉴 새 없이 경기장을 훑고 있었다.

‘이렇다 할 구멍도 따로 없고… 그중에서도 팀의 핵심이 되는 건 저 센터백인가.’

[손형민]

29세

잘 쓰는 발 : 오른발

성장 가능성 7.4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7.4 / 20

선호하는 플레이 : 공을 잡고 템포를 조절, 롱 패스 선호

특성 :

장점 - 정확한 패스, 캐논 슈터, 플레이 메이커

단점 - 느린 발

현재 컨디션: 8/10

스테이터스에서 보이는 장점은 수비적인 장점보다는 오히려 패스와 슈팅이라는 공격적인 면면이라 동민은 조금 혼란에 빠졌다.

‘스테이터스만 보면 오히려 미드필더 쪽에 더 가까운 타입인데 쓰리백에서 정 가운데라… 어떻게 쓰려는 거지? 아직 확실치 않아. 조금만 지켜보고 결정해야지.’

상대 중심축인 선수는 알아냈지만 그 정확한 역할을 알 수 없어 동민은 조금 더 지켜보고 대응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동민의 의문은 오래 지나지 않아 풀리게 되었다.

동민에게 가장 나쁜 방향으로 풀렸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이런 망할.”

전반전이 시작한 지 20분도 되지 않아 KFC가 한 골을 헌납한 것이다.

동민이 의문스럽게 생각하던 손형민의 롱 패스가 상대 공격수 쪽으로 정확히 떨어졌고, 이를 조민혁이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생긴 골키퍼와의 단독 찬스를 손형민이 그대로 골로 연결시킨 것이다.

‘샌터백이면서 공격 가담에 패스 담당이라고? 리베로로 움직이는 건 생각 못 했는데!’

골의 직접적인 원인은 조민혁의 실수였지만 동민은 그보다 자신이 상대 에이스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충격받고 있었다.

리베로는 샌터백이면서, 동시에 대인 방어보다는 자신의 포지션에 얽매이지 않고 공격 가담, 수비 조율 등을 맡는 선수를 의미한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떠올리며 동민을 머리를 부여잡고 싶은 것을 참았다. 그런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가 떠올리지 못한 이유는 단순했다.

“아, 조기 축구회 수준에서 저런 역할을 맡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지…….”

동민은 풀 죽은 목소리로 푸념하듯 혼잣말을 뱉어냈다.

리베로는 공격의 시발점이 되기도 하고 수비의 컨트롤 타워가 되기도 하며, 동시에 한순간 중거리 슈팅 등으로 직접 골문을 노리는 등 공수 양면에서 뛰어나야 했다.

또한 그런 개인적인 것을 넘어 팀 자체가 그것에 익숙하지 않다면 오히려 혼선만 야기할 뿐인 복잡한 포지션이기도 했다.

‘진짜 오랫동안 발 맞추던 팀 아니고는 그렇게 맞추기 힘드니까 조기 축구회에서 저런 방식을 쓸 거라곤 생각을 못 했으니…….’

작게 한숨을 내쉬던 그는 고개를 가로저어 정신을 차리려 했다.

‘아냐, 한 골 먹은 정도로 낙담하면 안 되지. 이미 문제는 나와 있는 거야. 어떤 방식으로 대응할지를 생각하자.’

동민의 머릿속은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일단 이영진을 조금 더 올려붙여서 패스를 방해하는 건 확정사항이고 다른 것은… 어? 저건…….’

방식을 고민하며 팀원들을 바라보던 동민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어리고 그 미소는 이내 함박웃음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박주현]

20세

잘 쓰는 발 : 왼발

성장 가능성 6.5[현재 정체]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6.2[현재 정체] / 20

선호하는 플레이 :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현재 정체],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현재 정체]

특성 :

장점 - 타고난 골잡이[현재 정체], 왼발의 마법사[현재 정체]

단점 - [소심함]

현재 컨디션: 5/10[현재 최대]

조금 전까지 상대 팀의 스테이터스와 움직임을 보느라 신경 쓰지 못하던 팀원들의 스테이터스 중 박주현의 스테이터스가 눈에 띈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이젠 친숙한 박주현의 스테이터스 밑에 다른 글자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특성 삭제에 필요한 포인트 : 10]

[현재 포인트 : 10]

[10포인트로 삭제 가능]

‘저번 경기에서 2점을 얻어서 9점이라고 생각했는데… 평균 스테이터스가 밀리는 경기였는데 승리해서 3점을 얻은 거였나? 아니, 그거 외엔 설명할 길이 없는데.’

생각지 못한 행운에 동민의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그리고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의 입이 열리고 굳은 의지가 말이 되어 흘러나왔다.

“사용하겠어.”

그러나 그의 말은 단 한 문장에 막혔다.

[삭제 조건 : 신체 접촉을 통해 강한 충격을 줄 것]

‘또 이거야?! 두들겨 패란 소린가.’

한창 경기 중인 지금 박주현을 불러 예전 이차주의 컨디션을 올릴 때처럼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자연스러웠다. 게다가…….

“관객들 보는 앞에서 경기 중에 선수 불러서 때리는 사람 있으면 진짜 미친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잖아.”

그는 주저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이렇게 된 이상 전반전을 어떻게든 더 이상의 실점 없이 마치고, 박주현의 특성을 없앤 다음 후반전에 반격을 할 수밖에 없는 건가.’

조금 전 박주현의 특성을 지울 수 있다는 생각에 멈춰 있던 동민의 머리가 다시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영진아!”

영진은 스탠드에서 자신을 부르는 동민의 목소리에 잠시 공이 나간 틈을 타 달려갔다.

“무슨 일로…….”

“길게 설명할 시간 없어. 지금부터는 저쪽 상대 4번 있지? 저 사람이 공 잡고 패스 못하게 들러붙어. 지시 사항은 이것뿐이야. 빨리, 잠깐이라도 저 사람을 프리하게 내버려 두지 마. 자, 빨리 가서 달라붙어.”

동민은 급박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달라붙으라고? 상대 센터백한테?’

물론 상대 4번이 공을 잡고 롱 패스로 연결하는 일이 잦았고, 첫 골도 그 과정에서 터진 것이지만 영진에게 그 지시는 생소한 것이었다.

수비수가 공격수를 쫓아 방해하는 것은 언제나 있는 일이었고, 공격수 또한 전방 압박의 일부로 상대 수비수에게 접근하는 일은 있었지만 아예 계속 들러붙어 있으라는 지시는 처음 듣는 일이었다.

수비수는 공격수가 패스나 슛을 하기 힘들게 쫓고, 공격수는 그것을 피해 공간을 만들고 패스 길을 열어 골을 노리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지금의 지시는 완전히 반대로 보였다.

‘내가 저 사람한테 일대일 마크를 하면 종환 선배랑 위치가 겹칠지도 모르는데…….’

영진은 힐끗 종환을 보고 생각에 잠겨 있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그래도 따라봐야지 뭐. 나 참,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건지 원.’

영진은 이해하기 힘든 지시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이미 형민을 향해 뛰고 있었다.

본선 전의 연습 경기 내내 동민의 지시에 시달렸던 그대로 영진의 몸은 군말 없이 움직이는 중이었다.

‘뭐야, 얜 왜 자기 자리 두고서 여기까지 올라와?’

종환은 어느 샌가부터 자신이 있는 위치까지 움직이는 영진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수비수들 사이에서 공간을 찾아 만들어내려 움직이는 중이었는데 영진까지 올라오면서 공간을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야, 이…….”

평소처럼 정신을 차리라고 소리를 지르려 했지만 머릿속 한 구석에 다른 무언가가 스쳐 지나갔다.

‘이 새끼가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돌발 행동 할 놈이 아닌데.’

종환이 생각하는 영진은 대단한 실력을 가진 동료는 아니더라도 스스로의 역할에 대한 개념은 확실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영진이 갑자기 자신의 자리까지 이탈해 가며 이 곳으로 온 것은 분명 평소 영진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항상 좋게도 나쁘게도 예상외의 행동을 지시하고 그것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뽑아내는 인물, 그 사람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종환의 눈이 스탠드 쪽을 향했다.

‘저건 또 뭔 지시를 했길래.’

스탠드를 보자 자신을 바라보며 손을 열심히 돌리고 있는 동민과 눈이 마주쳤다.

“저건 직접 전하지도 않고 뭔 수화를 하고 있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어이없는 목소리가 입을 타고 흘러나왔다.

‘뭐 몸이라도 돌리라고? 아니면 바깥쪽으로 빠지라고? 직접 이야기할 것이지 왜 저 지랄을 하고 있는 거야, 대체.’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는 결국 동민을 흘겨보며 고개를 돌렸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공간 내주고 바깥쪽으로 돌아서 움직여야지. 그 이야기가 아니었다고 나중에 말해도 난 몰라.’

전반전이 끝나는 즉시 저 인간의 멱살을 잡고 말 거라며 종환은 이를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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