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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전야(2) (21/270)

폭풍 전야(2)

“아, 뭔가 진정이 안 되네.”

사회인 축구 대회 본선 첫 경기인 BU와 태평동 조기 축구회의 경기가 벌어지는 곳에서 동민은 안절부절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우리 경기까지 시간 많이 남았잖아?”

“감독이면 감독답게 좀 침착하게 있던가. 남의 경기부터 긴장하면 어쩌란 거야.”

그와는 대조적으로 경태와 종환은 긴장하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심지어 종환에 이르러서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다리를 꼬고 앉아 편안하게 운동장을 보고 있었다.

“그래도 이거 끝나면 우리잖아요. 아니, 우리잖아. 거기다 어쩌면 여기서 이긴 팀하고 내일 만날 수도 있다고.”

세 사람은 다른 부원들보다 먼저 모여 경쟁 팀이 될 수도 있는 BU의 경기를 보러 온 것이다.

“대진표가 이따 우리가 창원 조기 축구회랑 16강전 하고, 그리고 거기서 이기면 내일 8강하고 4강전. 마지막 날이 결승전이니까 미리 다른 팀 경기는 봐두는 건데 긴장이 되는 게 당연하지.”

동민은 이미 몇 번이나 접었다 펴서 너덜너덜해진 대진표 종이를 붙잡고 말했다.

종이에는 16개의 팀들이 토너먼트 형식으로 서로 맞붙는 대진표가 적혀 있었고, 동민은 거기서 가깝게 만날 가능성이 있는 팀들의 경기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있었다.

“저렇게 긴장은 긴장대로 하고 있으면서, 우리 경기 준비를 하는 것보다 다음 상대가 될 수 있는 팀 경기를 보러 오다니 대체 무슨 신경인지 알 수가 없네.”

“그러게. 그것도 주장하고 부주장은 따로 불러놓고 말이야. 이러고 첫 경기에서 지면 진짜 경태 형 차였던 거 이상으로 쪽팔릴걸.”

“너희들 진짜 그거 언제까지 우려먹을 거야!”

종환의 자연스러운 야유에 두 명의 이야기는 또다시 탈선해 갔다.

‘첫 경기 상대는 미리 볼 수가 없어서 못하지만 그다음 상대는 그래도 준비를 해야 하니까 그렇지.’

동민은 투닥대는 두 사람을 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가능하다면 첫 경기 상대부터 미리 눈으로 보고 준비를 하고 싶었지만 첫 경기인지라 미리 경기를 볼 수 없어 어쩔 수 없었다.

“이제 곧 시작한다. 그만 장난치고 경기나 보자고.”

“야, 근데 진짜로 BU 경기 보러 온 게 다음 경기 대비만 있는 거 아니지?”

경태는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종환과 장난치다 말고 동민을 보며 뭔가 괴상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응? 무슨 소리야?”

“에이, 모른 척하기는. 니가 양심이 있으면 모른다고 못할 텐데.”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동그랗게 뜨는 동민에게 경태는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진짜 몰라서 그러는데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건데?”

“둘만 아는 소리 하지 말고 경기나 보지?”

의문에 가득 찬 동민의 목소리와 그저 귀찮은 기색만 역력한 종환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그런 두 사람의 반응을 보며 경태는 입을 열었다.

“종환아, 얘 저번에 경기하고 나서 부광대에서 얘 보러 찾아온 겁나 이쁜 여자랑 만난 적 있었거든.”

“형, 그거 자세하게 이야기해 봐.”

종환의 말에 경태는 동민이 말리기도 전에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저번 경기 끝나고 나서 그 BU 매니저라는 여자가 동민이 보겠다고 왔었는데 진짜 이쁘더라고. 그 경기 때 전술에 감명 받았다나 뭐라나 하면서 찾아왔는데 얘도 그 여자한테 홀딱 반해서…….”

“이 형이 지금 무슨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거야!”

동민은 신나서 나불대는 경태의 입을 억지로 막았다.

“읍, 야, 이 감독이 주장의 발언권을 무시하는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까 그렇지!”

“그럼 실제로는 뭐였는데?”

경태의 입을 틀어막고 옥신각신하고 있자 종환이 물었다.

“그냥 그때 경기에 대해서 묻고 싶은 게 있다고 온 거 뿐이지, 이 형이 말하는 그런 건 하나도 없었거든! 상대 전술이랑 내가 짠 전술이랑 그런 이야기만 나눴다고!”

“그런 거치곤 반응이 무진장 격렬한데…….”

“아니, 종환이 형, 진짜 그런 게 아니라…….”

동민은 진땀을 흘리며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는 종환에게 설명하려 했지만.

“어, 경기 시작한다. 감독이 다음 경기 준비한다면서 집중해야지 뭐 하는 거야.”

폭탄을 떨어뜨린 장본인이 어느새 자신은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듯 동민을 나무랐다.

“이 형이 진짜!”

경태 자신에게 날아오는 화살을 돌리기 위해 스스로를 팔아먹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분통이 터지는 동민이었지만 지금은 경기를 보는 것이 우선이었다.

‘내가 진짜 저 형 차인 거 앞으로 10년을 놀려먹고 만다.’

결국 동민은 이를 갈며 경태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작게 한숨을 쉬며 운동장을 바라보는 동민의 눈에 양 팀의 스테이터스가 비치기 시작했다.

‘BU는 우리랑 했던 연습 경기 때랑 다르지 않게 나왔나. 그때 그 덩치 큰 윙어랑 성깔 더러운 원톱 쓰는 전술 그대로 같은데.’

BU 쪽을 보자 익숙한 두 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동민이 눈을 돌려 반대편을 보자 또 다른 스테이터스들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반대 태평동 조기 축구회 쪽은… 3-5-2? 그리고 핵심은…….’

그리고 그중 한 명의 스테이터스가 유독 그의 눈에 들어왔다.

[오동준]

37세

잘 쓰는 발 : 오른발

성장 가능성 8.4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8.4 / 20

선호하는 플레이 : 공을 잡고 템포를 조절,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

특성 :

장점 - 플레이 메이커, 정확한 패스

단점 - 종잇장 체력

현재 컨디션: 7/10

‘저 공격형 미드필더 아저씨가 핵심이구먼. 실업팀 선수라도 했던 사람인가.’

30대 중반을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높은 스테이터스를 가진 남자를 보며 동민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야, 니가 보기엔 어디가 이길 거 같냐?”

정신없이 두 팀을 둘러보던 동민은 옆에서 들려오는 경태의 말에 의식을 되돌렸다.

“응?”

“너 묘하게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상대 팀들 잘 파악했잖아. 이번엔 어떻게 될 거 같냐고.”

“음… 글쎄.”

‘저 아저씨가 잘하기야 하겠지만…….’

말을 아끼는 동민을 보며 경태가 웃으며 말했다.

“셋이 마실 거 내기라도 할까? 나는 저 조기 축구회 쪽에 한 표. 부광대 쟤네 저번에 우리랑 할 때 생각하면 질 거 같은데. 종환이 넌?”

“형도 우리 경기 아니라고 진짜 긴장 하나 없네. 난 BU. 그냥 왠지 느낌이 그래.”

“오호라, 야, 동민아 너만 남았어. 어쩔래?”

경태가 재촉하자 동민이 입을 열었다.

“BU가 이길걸.”

‘저 아저씨가 잘해봤자 팀이 구멍투성이니까. 특히 전방이…….’

그의 눈은 태평동 조기 축구회의 최전방 스트라이커 두 명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송병근]

46세

잘 쓰는 발 : 오른발

성장 가능성 4.2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4.1 / 20

선호하는 플레이 : 논스톱 슈팅, 발리슛

특성 :

장점 - 캐논 슈터

단점 - 느린 발, 기름 발

현재 컨디션: 6/10

[차웅준]

44세

잘 쓰는 발 : 오른발

성장 가능성 4.5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4.2 / 20

선호하는 플레이 : 공을 잡고 주위를 살핌, 정확한 슈팅 선호

특성 :

장점 - 타깃맨

단점 - 종잇장 체력, 유리 몸

현재 컨디션: 6/10

‘도저히 BU 수비진을 뚫을 만한 사람들로 안 보이는데. 저 팀을 본선까지 끌고 온 건 그 아저씨 혼자 힘인가. 조기 축구회에선 그냥 나이 많고 욕심 많은 사람들이 공격수 서는 경우도 많다더니 딱 그런가 보네. 킬 패스를 10개쯤 주면 한 두 번은 받아 넣으려나.’

씁쓸한 눈으로 오동준을 바라보는 동민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경태는 가볍게 말을 받으며 웃었다.

“오, 그럼 2 대 1인가? 좋아, 이기면 음료수가 두 배지? 좋네.”

웃고 있던 경태의 표정이 점차 굳어지는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조기 축구회 측은 스피드 대신 경험을 앞세워 정확한 롱 패스로 경기를 풀어나가려 했으나 그것은 최악의 한 수가 되고 말았다.

송병근과 차웅진, 최전방의 투톱은 탄탄한 BU의 수비 앞에서 공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하고 공격권을 헌납했다.

‘거기다가 제대로 된 측면 커버가 부족한 쓰리백이라면 당연히 BU의 좌측 윙이 가만두지 않겠지.’

동민의 예상 그대로 측면은 오한석의 독무대였다. 그의 커다란 덩치는 태평동 조기 축구회 측 선수들이 달라붙기에 꺼려졌고, 이는 그의 단점인 몸싸움을 감추어주었다. 동시에 그의 가장 큰 장점인 스피드를 따라올 사람은 조기 축구회 측에서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측면이 무너지면 어설픈 쓰리백도 속절없이 자멸할 테고. 불 보듯 뻔한 일이지.’

오한석이 측면을 무너뜨리고 올린 크로스는 정기주의 머리를 맞고 그대로 골대 구석으로 빨려들어 가 첫 골이 되었다.

‘이거, 계속 볼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생각보다 너무 무너지니까 내기에서 지는 게 화도 안 나네. 쟤네는 저렇게 잘하면서 그때 우리한테 그렇게 막혔단 말이야? 그때는 쉽게 막은 느낌이었는데.”

경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경태는 미리 사온 음료수를 마시며 한숨을 내쉬었다.

결과는 5-2

BU의 압도적인 승리였다. 태평동 조기 축구회는 동민이 눈 여겨 보았던 오동준의 중거리 골과 개인기에 이은 골로 분전했지만, 무너져 버린 밸런스는 한 명이 바꿀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반대로 BU의 콤비 오한석과 정기주는 다섯 골 중 네 골을 합작하며 그들의 실력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저쪽이 못하던 게 아니야. 우리도 잘못하면 저번하고 다르게 탈탈 털릴 수도 있는 거니까.”

만약 저번 경기 때 자신이 경기가 시작한 직후 BU의 전술을 알지 못했다면 비슷하게 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동민은 새삼 등골이 오싹했다.

‘거기다가 이번엔 또 달라질 수도 있는 거니까. 정신 차려야겠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동민의 옆을 종환이 아무 말 없이 지나갔다.

“음료수 사왔는데 종환이 넌 안 마셔?”

경태의 물음에 종환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저었다.

“이제 곧 우리 시합이야. 빨리 가서 준비나 해야지.”

그리고 그는 사나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좀 전에 저거 보니까 빨리 뛰고 싶어서.”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경태 또한 아무 말 없이 마시던 음료수를 내려놓고 그 뒤를 따랐다.

다음 경기 준비를 위해 경기를 보고자 했던 동민의 생각은 조금은 다른 의미로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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