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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을 위하여(5) (18/270)
  • 본선을 위하여(5)

    ‘이거 어딘가 이상한데.’

    8번이라는 번호가 의미하듯 신영대의 수비와 공격의 시작을 책임지고 있는 홍시원은 경기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변을 느끼고 있었다.

    ‘아까까지는 박스 근처에 있는 저쪽 원톱한테 무턱대고 패스를 넘기려고 했는데 저 녀석이 움직이는 게 더 커졌어. 거기다가 공을 잡기만 하면 저쪽에서 바로바로 달려들고.’

    후반전이 시작하자마자 쓰리백으로 바꾼 상대는 아까와는 다르게 원톱에게 패스하는 것을 고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원톱이 먼저 패스를 받아 곧바로 슈팅을 날릴 수 있는 위협적인 장소가 아닌, 공을 받기 쉬운 장소를 찾아 움직이고 있었다.

    ‘뭘 노리고 있는 거지? 하나뿐인 공격수가 내려와 버리면 자기가 공을 받아도 직접 슈팅은커녕 위협적인 장면 하나도 못 만들 텐데.’

    갑자기 바뀌어 버린 상대의 전술이 신경 쓰이는 그였지만 결국 그가 해야 할 역할이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니었다.

    ‘저쪽이 바뀌어 봤자 결국 공을 뿌리는 게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

    시원은 왠지 모르게 가슴속에서 생기는 불안감을 억지로 털어내며 공을 차냈다.

    ‘무슨 수비가 끝이 없어!’

    신영대의 7번, 정윤석은 제쳐도, 제쳐도 남아 있는 수비의 숫자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전반전에는 측면 수비를 제쳐놓으면 곧바로 허둥대는 중앙 수비와 맞붙을 수 있었지만 후반전이 되자 늘어난 수비 숫자에 그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중앙 수비 한 명만 더 늘어난 게 아니라 곧바로 공간을 커버하는 녀석까지 생기니까 진짜 귀찮아졌는데.’

    숫자로는 그저 한두 명이 늘어났지만 체감하는 그로서는 난이도가 급하게 늘어난 느낌이었다.

    ‘거기다가 지원하러 나와 줘야 할 풀백인 정환이도 나오질 않으니 이건 답이 안 보이네.’

    수비를 제치고 안쪽으로 파고들어 가도 결국 슈팅 직전에 뺏기고 마는 상황이 계속되자 점점 더 그의 체력은 떨어져 갔다.

    “이거 한 방 먹었는데. 세 명이나 교체하면서 윤석이랑 시원이를 괴롭히려 들 줄이야.”

    신영대 축구부의 감독인 하광규는 반대편에 위치한 상대 스태드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어려 보이는 학생 중 한 명이 자신이 감독이라는 말을 해서 그저 자신들끼리의 감독놀이인가 했지만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고작 친선 경기인데도 이런 승부수를 띄웠단 말이지. 거참 당돌한 어린 녀석인데.’

    그는 상대 스탠드에 앉아 있는 동민을 바라보며 쓰게 웃었다. 저런 어린 학생에게 작게라도 한 방 먹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됐다. 빠른 시간에 터진 두 골로 이미 승기는 잡아둔 상태에, 저쪽은 쓰리백으로 전환하면서 공격은 더 힘들어졌어. 더 이상 얻어맞기 싫다는 식으로 수비적으로 바꾼 거겠지. 우리 팀 에이스 두 명을 위한 대책을 마련한 것은 칭찬할 만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승리를 포기한다면 주객전도겠지. 전술을 짜는 것은 꽤 흥미롭지만 역시 어린 학생의 한계인가.’

    광규는 쓴웃음을 미소로 바꾸며 지시를 내렸다.

    “윤석이 들어오라고 하고, 영수 너는 몸 풀어라.”

    ‘어차피 경기도 거의 정해진 이상 이런 연습 경기에 두 에이스를 풀타임으로 쓸 생각도 없었다. 이참에 바꾸면서 다른 녀석들 뛸 수 있는 기회라도 줘 볼까. 저쪽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이미 승부는 정해진 거나 다름없으니.’

    광규는 미소를 지으며 시원을 불러들이고 누구를 내보낼지 생각을 펼쳤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 이 경기에서 본인의 가장 큰 실수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좋아! 활로가 보인다!’

    동민은 그라운드를 나서는 상대의 7번과 8번을 보며 주먹을 굳게 쥐었다.

    ‘7번은 특성에 단점으로 체력 문제가 있어 언제쯤 교체할까 했더니 역시 막히니까 바로 교체해 주는데. 이러면 수비에 치중하던 정수환도 조금씩 전진시킬 만한 여유가 생길 거야. 거기다가 팀 중원의 중심인 8번까지 나가다니.’

    그는 자신의 생각이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크게 웃고 싶은 것을 꾹 눌러 참았다.

    ‘아니, 아직이야. 웃는 건 경기를 이기고 나서 해도 충분하니까.’

    “수환 선배! 이제 우측 커버보다는 전방 압박에 같이 참여해주세요! 측면은 이제 윙백인 민혁 선배로 충분해요!”

    동민은 기다렸다는 듯 미드필더의 진형을 바꾸었다.

    후반전이 시작하고 343포메이션을 하면서 계속 우측 후방으로 치우쳐져 있던 정수환이 전진하면서 정수환과 박병원, 두 명의 미드필더는 일직선으로 자리를 바꾸었다.

    그것은 한 명이 압박에 나설 때 한 명이 나머지 공간을 막는,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편한 위치였다.

    ‘원래 주로 쓰던 4-2-3-1에서도 주로 2의 역할을 맡던 두 사람이니까. 거기에 그 뒤에는 쓰리백이라서 평소보다 더 전진할 수 있는 경태 형까지 있으니 마음도 편하겠지. 이제야 제대로 된 반격 시작이야.’

    동민의 생각처럼 그 순간부터가 KFC의 반격의 서막이 되었다.

    ‘시작은… 역시 김영우 쪽부터가 되려나.’

    동민의 눈은 측면에서 계속해서 뒤를 노리고 있는 영우에게 닿았다.

    [김영우]

    24세

    잘 쓰는 발 : 오른발

    성장 가능성 6.3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6.2 / 20

    선호하는 플레이 :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우측면을 따라 드리블 선호

    특성 :

    장점 - 스프린터

    단점 - 기름 발

    현재 컨디션: 7/10

    ‘일단 측면부터 자꾸 찌르다 보면 벌어지게 되어 있지.’

    동민은 영우를 보며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이쪽!”

    신영대 좌측 풀백인 유정환은 또다시 자신의 뒤를 노리는 상대를 보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후반전이 시작되고 들어온 상대는 자신의 뒤 공간을 노리는 것만 생각하고 있는지 시도 때도 없이 콜을 외치며 뒤 공간으로 뛰어들었다.

    ‘대체 몇 번째야. 제대로 된 패스가 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본인이 아래쪽에서 공을 잡아서 끌고 오는 스타일도 아니고. 이 녀석은 대체 뭐지? 그냥 측면에서 시선이나 끌라고 넣은 건가.’

    자꾸만 뛰는 상대에게 정환이 짜증을 내는 것은 그것이 위협이 된다거나 자신이 막을 수 없는 상대여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상대의 뻔한 패턴은 갈수록 정환이 뒤 공간을 내주지 않도록 하고 있었고, 계속해서 들리는 상대의 콜은 그가 언제 뛰어드는지 이야기해 주는 것과 같았다.

    그는 그저 위협도 되지 않는 상대에게 자신의 신경이 계속 쓰인다는 것이 짜증 날 뿐이었다.

    ‘어차피 윤석 선배도, 시원 선배도 교체된 걸 보면 감독님은 그냥 적당히 끝내시겠단 것 같은데 이런 쓸모없는 일을 계속 하느니 빨리 경기가 끝나 집에서 쉬고 싶다.’

    정환은 그런 생각을 하며 또다시 들리는 상대의 콜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그는 그것 때문에 알지 못했다.

    상대의 콜이 계속될수록 정환의 위치가 점점 더 센터백과 멀어져 사이드라인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을.

    “여기!”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지만 영우는 공을 달라는 신호를 하며 사이드라인을 따라 달려 나갔다. 거기까지는 지금까지 상대의 수비를 귀찮게 하는 일 외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공격과 같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딱 한 가지, 그러나 완벽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이거지!”

    지금까지 뒤로 빠져 있었던 수환에게서 영우의 머리를 넘기는 롱 패스가 날아온 것이다.

    상대 풀백은 분명 영우보다 조금 앞서서 뛰었지만 빠르게 가속이 붙어 튀어나가는 영우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신영대의 최대의 약점이 되었다.

    영우는 나가기 직전의 공을 잡고 곧바로 낮은 크로스를 올렸고, 그 크로스는 쏜살같이 종환 쪽을 향했다.

    두 명의 중앙 수비수 모두 자신이 직접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종환 쪽으로 붙었지만, 종환은 처음부터 계획했었다는 듯 그대로 공을 통과시키고 골대 측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런 종환을 스쳐 지나가는 공의 도착점에서는 이미 그대로 공을 찰 만반의 준비가 끝나 있는 주현이 서 있었다.

    “그렇지! 내가 잘할 줄 알았다니까!”

    동민은 결국 터진 만회 골을 보며 환호를 질렀다.

    자신감 부족으로 슈팅은 젬병이라고 하던 주현이 골을 넣었다. 그것도 자신이 이야기한 대로 측면에서 중앙으로 파고들면서 크로스가 올 위치를 미리 잡고 있다가 논스톱으로 때려 넣은 것이다.

    ‘이제 한 골이지만… 이 경기 확실히 이길 수 있어!’

    동민의 입가에는 미소가 어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경기를 끝내는 휘슬이 운동장에 울렸다.

    그리고 그 소리를 들은 동민은.

    “이거지! 잘했어! 진짜 잘했어!”

    소리를 지르며 운동장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경기의 결과는 3 : 2로 KFC의 승리였다.

    전반전에 두 골을 연달아 당한 것을 후반전에 들어 터진 주현의 골과, 골키퍼를 맞고 튕겨져 나오는 세컨드 볼을 가볍게 밀어 넣은 종환의 골, 그리고 코너킥에서 나온 경태의 골을 합쳐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동민은 자신의 전술이 맞아떨어졌다는 사실보다도, 그리고 승리로 포인트를 얻었다는 사실보다도 전반전 내내 밀리고 있던 경기를 뒤집었다는 사실에 더 기뻤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문장을 신경 쓰지도 않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가 선수들을 얼싸안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잘했어! 주현아, 진짜 잘했어! 내가 말했잖아! 진짜 잘할 수 있을 거라니까!”

    동민은 선배라는 호칭을 붙이는 것도, 존댓말을 하는 것도 잊은 채 주현은 껴안고 방방 뛰고 있었다.

    “어… 감독?”

    “진짜 잘했어! 못한다, 못한다 그렇게 말했었지만 넌 진짜 할 수 있는 녀석이라니까!”

    “동민아?”

    “진짜 깔끔하게 넣었…….”

    “강동민!”

    동민은 주현의 어깨를 치고 있다가 별안간 들리는 큰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경태가 한숨을 내쉬며 서 있었다.

    “기분 좋은 건 알겠는데 인사는 해야 하지 않냐?”

    뒤쪽을 가리키는 경태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얼굴을 굳힌 채 서 있는 광규가 동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많이 배웠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배운 쪽이죠. 후반전에 들어서 그렇게 급격하게 경기를 뒤집을 줄 몰랐으니까요.”

    광규의 목소리는 자신들의 패배가 아직 실감나지 않는다는 듯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아뇨, 저는 아직 배울 게 많으니까요. 덕분에 좋은 경험이 되었습니다.”

    동민은 다시 한 번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부원들이 모인 곳을 향했다.

    “저기, 잠시만요.”

    “네?”

    뒤에서 그를 붙잡는 광규의 목소리에 동민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 코치를 본격적으로 준비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그 말을 들은 동민은 잠시 고민하고는 짧게 대답했다.

    “한 달 정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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