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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강동민의 첫 경기(4) (13/270)
  • 감독 강동민의 첫 경기(4)

    ‘이런 망할! 이놈은 왜 가운데로 들어와 있는 거야!’

    BU의 센터백인 오재석은 짜증을 감출 수 없었다.

    파트너와 함께 전반전 내내 상대 원톱을 철저히 막아내던 그였지만 후반전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이게 또!’

    그 상황을 바꾸고 그에게 짜증을 주는 장본인은 그런 그의 마음을 모르는 듯 또 공을 잡고 드리블을 시작했다.

    전반전에 공을 잡았을 때 유일하게 수비진의 가슴을 철렁하게 만들던 상대의 좌측 윙이 자리를 옮겨 투톱으로 나와 있는 것이다.

    전반전 내내 패스를 받아줄 공격수를 마크해서 그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 막고 있었지만, 이 사람의 드리블이나 발 기술은 충분히 위협적이어서 재석의 골치를 썩였다.

    ‘그런데 이젠 가운데라니 더 번거로워졌잖아! 아오, 진짜!’

    재석의 필사적인 태클이 또다시 슈팅 직전의 주현의 공을 따냈다.

    재석과 우영은 어떻게든 주현이 슈팅만은 못하게 막고 있었지만, 그만큼 종환 대신 주현에게 신경이 쏠리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시영아!”

    상대의 공이 나가서 드로잉을 준비하던 시영은 경태의 부름에 고개를 돌렸다.

    ‘또 감독이 뭐라고 이야기한 모양인데.’

    전반전 내내 상대의 공격이 경태의 말 한마디에 막히는 것을 보고 경태에게 감탄하던 그였지만, 그것이 전부 동민의 지시였다는 것을 경태에게 듣고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경기장 밖에서 상대를 그 정도로 파악하고 경태에게 지시를 내리는 것을 생각하니 지금까지 별 볼 일 없어 보이던 동민이 뭔가 다르게 보였다.

    그렇기에 갑자기 후반전에 위치를 올리라는 동민의 지시에도 아무 말 없이 따른 것이다.

    “무슨 일이에요?”

    “드로잉은 진규한테 맡기고 올라가. 그리고 공 잡으면 빠르게 주현이 쪽 위로 넘겨서 종환이 주고.”

    “종환이요? 주현이가 아니라?”

    시영은 경태의 말에 무심코 되물었다.

    마무리를 못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공을 잡았을 때 팀에서 가장 위협적인 것은 주현이었다. 그런데 종환에게 주라니.

    게다가 전반전 내내 수비에 막혀 실수만 하던 종환이 아니던가. 공을 잡는다 해도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감독이 그렇게 말한 거야.”

    경태의 한마디에 시영은 입을 다물었다.

    몇 분 만에 상대를 파악하고, 완벽히 압도한 전반전을 만들어낸 동민이었다.

    ‘분명히 이번에도 뭔가 본 거겠지.’

    경태의 말만 듣고 움직이던 팀원들이 조금씩 동민에 대한 믿음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씨발, 진짜.”

    종환은 짜증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민이 그를 교체하지 않은 것이 전반전 내내 부진했던 자신을 위한답시고 하는 일이라 생각해서 화를 냈지만 그에 대한 동민의 대답은 전혀 달랐다.

    그리고 그 말을 하던 동민의 눈빛은…….

    ‘동정이니 뭐니 하는 미적지근한 감정은 하나도 없는, 괜히 말한 내가 쪽팔려지는 눈이었어.’

    오히려 동민은 그런 눈으로 그를 도발하고 있었다.

    동민의 싸구려 도발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종환은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종환이 동민의 그 도발을 무시하면 그것은 자신의 실력이 그것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밖에 되지 않았다.

    ‘진짜 더럽게 짜증나네. 이게 뭐하는 꼬라지야.’

    자신이 그렇게 무시하던 동민의 생각대로 본인이 움직인다는 사실에 그는 짜증을 참을 수 없었다.

    몇 번이나 갈 곳 잃은 분노를 욕으로 내뱉던 종환은 마침내 조용하게 결론을 냈다.

    ‘그래, 니 새끼가 생각한 투톱이 나보고 엿이나 처먹으라는 게 아니라, 정말로 감독으로서의 판단이라고 한다면…….’

    종환은 이를 갈면서도 시영이 올려 보낸 크로스가 슬로 모션처럼 천천히 주현의 머리 바로 위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각자 자리를 지키던 수비들은 튕겨 나가는 공을 잡아내려 주현에게 접근했고, 그와 동시에 종환은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그 수비 사이의 틈으로 파고들었다.

    공은 주현과 재석의 바로 위를 스치며 종환의 앞으로 다가왔다.

    종환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종환은 날아오는 공이 자신의 오른발에 닿는 것을 느꼈다.

    ‘이번 딱 한 번만큼은 그 졸라 재수 없는 판단이 틀리지는 않았단 걸 보여주겠어.’

    종환의 오른발에 강하게 걸린 공은 골키퍼가 반응하기도 전에 골대 구석으로 빨려 들어갔다. 골대가 출렁거리는 것을 끝까지 보지 않고 종환은 몸을 돌렸다.

    그의 시야 끝에는 동민이 주먹을 움켜쥐고서 기쁨의 세리머니를 하고 있었다.

    “이건 인정하고 뭐고 하는 게 아니야. 니 판단이 틀렸으면 내가 더 쪽팔려지니까 그런 거지.”

    그의 중얼거림은 동민에게 닿지 않고, 주위로 몰려오는 팀원들에게 둘러싸여 사라져갔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동민의 목소리가 운동장 한 구석에 울려 퍼졌다.

    총 스코어 1 대 0.

    종환의 결승골로 KFC는 승리를 거둔 것이다.

    “포백 모두들 마지막까지 집중력 잃지 않고 잘 해주셨고, 공격도 상대 수비 때문에 어려웠을 텐데 멋있었어요! 물론 가장 많이 뛰어다니면서 고생한 미드필더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다시 한 번 고생하셨습니다!”

    동민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이번 경기는 자신이 감독으로서 거둔 첫 승리라는 것 이외에도 큰 수확이 있었기 때문이다.

    ‘드디어 포인트를 얻는 방법을 알았으니까!’

    경기를 이기고 나자 그의 눈앞에는 보일 리 없는 문장이 보였다.

    [포인트를 2 획득하셨습니다.]

    그것을 보고 동민을 깨달았다.

    새로운 포인트를 얻는 방법은 다름 아닌 바로 그가 감독으로서 경기를 승리했을 때라는 사실을.

    첫 승리와 동시에 포인트의 수집 방법을 알아냈다는 두 가지 사실에 동민의 얼굴은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걸로 박주현의 [소심함]이라는 특성을 지울 수 있을지도 몰라.’

    그는 근거는 없지만 반드시 그럴 수 있을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던 거야?”

    “예?”

    그는 기쁨에 차 경태의 목소리를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경기 시작하자마자 상대 애들 뭐가 장점이고 어떤 전술로 나온 건지 죄다 알았잖아. 뭐야, 그거? 진짜 장난 아니더라. 축구 코치 준비하려면 다 그 정도는 하는 거냐?”

    경태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웅성거리며 동의했다.

    “아하하, 그게…….”

    동민은 어색하게 웃으며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말해야 하나. 스테이터스가 어쩌니 할 수도 없고…….’

    잠깐 동안 고민하던 동민은 말을 이었다.

    “나중에 알려 드릴게요! 지금은 우선 이긴 거나 즐겨요. 제가 말했잖아요, 꼭 우승시킬 거라고! 아, 종환 선배 아까 발리슛 진짜 멋있었어요. 완벽한 골이었다니까요. 아, 시영 선배가 올린 크로스도 깔끔했고요.”

    동민은 웃으며 말을 종환에게로 돌렸다.

    “입에 발린 소리 하지 마.”

    갑자기 날아온 말에 종환은 고개를 돌리며 얼버무렸다. 고개를 돌린 종환의 귀는 옅게 붉어져 있었다.

    ‘하이고, 스물넷이면 내 앞에서 아직 핏덩이지 뭐. 짜식 귀엽기는.’

    동민은 그 모습을 보며 마음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이제야 겨우 조금은 그를 인정하는 듯한 종환의 모습이 동민이 보기에는 그저 웃길 뿐이었다.

    ‘본인한테 물어보면 죽어도 아니라고 하겠지만, 뭐 물어볼 것도 아니고 상관없지. 괜히 쓸데없는 자존심 세울라.’

    동민은 그런 종환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입을 열었다.

    “이긴 기념으로 회식이나 하고 가요. 경태 형, 오랜만에 고기뷔페라도 가서 밥 먹고 갈까요?”

    “후문 쪽 거기? 그럴까. 술도 한잔하면 더 좋고.”

    “그거 좋죠. 가요!”

    동민의 말에 모두들 웃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수연은 조금 전 자신이 본 경기를 믿기 힘들었다.

    축구 동아리 매니저라는 이유로 귀찮음을 참으며 나온 경기였지만 지금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연습 경기에, 그렇게 잘하는 팀도 아니라고 해서 별거 아닐 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녀가 본 것은 전혀 달랐다.

    BU의 장점인 촘촘한 수비와 빠른 역습을 완벽하게 봉쇄한 상대의 움직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내가 상대 감독이어도 빠른 역습을 사전 차단하고 수비를 뚫으려고 고민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오랫동안 BU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녀가 낼 수 있는 답안지였다. 매니저로서 BU를 잘 아는 그녀와는 다르게, 상대 팀은 말 그대로 처음 보는 상태에서 똑같은 답을 들고 나온 것이다.

    오늘 처음 본 상대가 BU의 매니저로 몇 년이나 지낸 그녀와 똑같이 생각한 것이라는 점에서 그녀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전반전이 시작하고 얼마 되지도 않아서 선수들 위치 바꾼 걸 보면 정말로 보자마자 알아챘다는 건데.’

    직접 보고도 믿겨지지 않을 정도의 사실에 그녀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경기 결과는 스코어로만 봤을 땐 1 대 0이라는 비등비등한 경기로 생각할 수 있지만, 경기 내용을 생각하면 그 스코어가 무참할 정도로 일방적인 게임이었다.

    ‘한 골만 먹힌 게 기적일 정도로 완전히 두들겨 맞은 게임이었지…….’

    자랑하던 빠른 측면 공격은 막혔고, 그에 따라 중원에서 공격 진형을 향해 길게 올리는 롱 패스로의 전환도 오히려 상대에게 공을 내줄 뿐이었다.

    수비들의 몸을 아끼지 않는 플레이와 운이 따라준 덕분에 1골만 실점했지만 저쪽에 있었던 찬스들을 생각하면 세, 네 골 이상 차이가 더 벌어질지도 모르는 경기였다.

    ‘대체 누가 전술을 짜고 있던 거지?’

    저 정도로 상대에 대한 파악이 빠른 사람은 들어본 적도 없었다. 축구 코치를 준비하고 있는 그녀는 자연스럽게 상대 감독에 대한 호기심이 솟구쳤다.

    “금원대학교라고 했나? 누가 감독인지 나중에 한번 알아볼까.”

    그녀는 이미 멀어져 가는 상대 팀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얼굴도 모르는 상대 팀의 감독이 짓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보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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