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강동민의 첫 경기(3)
“모두들 잘하고 계세요. 특히 완벽하게 저쪽 공격을 막은 건 대단해요. 그리고 골이 없는 것도 그냥 운이 없던 거지 못한 게 아니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동민은 밝은 표정으로 전반전 내내 상대에게 단 한 번의 찬스도 허용하지 않은 팀원들을 향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저쪽 공격은 완벽하게 막았지만 문제는 역시 공격 쪽인가.’
말은 가볍게 했지만 동민의 머리는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상대의 장점을 알면 비교적 쉽게 막아내는 수비와, 상대의 단점을 찾아내도 그것을 어떻게든 파고들어야 하는 공격은 다르다.
다시 말해, 상대의 단점을 안다고 해도 그것을 파고들 자원이 마땅치 않다면 공격은 성공하지 못한다.
상대 수비가 아예 예상치도 못한 실수를 해서 일대일 찬스 같은 천재일우의 기회가 온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저쪽 수비에 이렇다 할 큰 단점이 없는 게 문제지. 포백 수비에, 구멍이 될 만한 선수도 없어, 그렇다고 실수를 기대할 만한 이상한 특성을 달고 있는 놈도 없어. 진짜 장점은 모르겠지만 큰 단점을 안 보이네.’
부광대 팀의 전술은 주로 선수비 후 역습이였다.
그 말은 곧 후 역습을 완벽하게 봉쇄했다고 해도 선수비의 튼튼함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탓에 원톱인 종환의 움직임에도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
즉, 수비 라인을 내려 수적 우위를 바탕으로 하는 상대의 지역 수비를 뚫을 방법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이럴 때는 역시 박주현이 아쉬운데…….’
동민의 눈이 물을 마시려고 우물쭈물거리며 기다리는 주현에게 향했다.
그는 박주현이 가진 특성 중 왼발의 마법사가 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가 본 선수들 중 그와 똑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던 사람은 블루 데빌즈의 간판스타 심형만이었다.
슈퍼 매치 때 보았던 그의 깔끔한 돌파와 군더더기 없는 패스, 그리고 현란한 드리블은 그 경기를 블루 데빌즈의 승리로 만들었다. 그것들은 정말 말 그대로 마법 같아서 동민의 머릿속에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오롯이 새겨져 있었다.
밀집된 수비 가운데에서도 한순간 빛나 완벽한 찬스를 만들어주는 플레이어, 그것이 마법사라는 특성을 가진 선수들이 가진 힘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 박주현도 [소심함]이라는 족쇄만 풀린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말이었다.
‘심형만 같은 플레이는 아예 바라지 않지만 조금이라도 저 왼발의 마법사 특성이 눈만 뜬다면 좋을 텐데. 지금 공격에서는 드리블로 상대 수비를 휘젓거나 저쪽에서 생각 못 할 정도의 창의적인 패스가 필요한데… 에휴, 됐다. 지금 당장 안 되는걸 생각해 봐야 별수 없지.’
그는 아쉬움을 넘겨둔 채로 다른 방법을 강구했다. 그의 눈은 박주현을 넘어 굳은 표정의 이종환을 향했다. 이젠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른 이종환의 스테이터스를 생각하며 그는 생각에 잠겼다.
[이종환]
24세
잘 쓰는 발 : 오른발
성장 가능성 7.4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5.5 / 20
선호하는 플레이 :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 정확한 슈팅 선호
특성 :
장점 - 골 게터
단점 - 트러블 메이커
현재 컨디션: 5/10
‘전반전에 몇 번 실수했지만 지금은 이종환을 믿는 수밖에 없나. 사람 자체는 마음에 안 들지만 오늘 컨디션이 그렇게 나쁜 것도 아니고, 전반전의 실수들이야 혼자서 저쪽 수비를 다 뚫으려고 발악하다 보니 나온 거니까.’
원톱이라는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는 낮다 하더라도 그가 가진 특성들은 스트라이커라는 포지션에 잘 들어맞았다.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해 공을 받는 것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정확한 슈팅으로 마무리하는 것도 모두 스트라이커에게는 필수적인 움직임이었다.
동민에게 종환은 ‘어렵지만 기회만 온다면 한 번은 해결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선수’ 정도로 박혀 있었다.
‘뭐야, 저건 왜 저래?’
종환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동민의 얼굴을 보고 가슴이 뜨끔했다. 전반전에 있었던 자신의 실수들을 떠올리자 자신을 쳐다보는 동민의 눈빛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역시 빼려고 하는 건가…….’
종환은 자괴감에 이를 갈았다.
감독으로서 동민의 실력을 믿지 못하겠다고 경태에게 말했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오늘따라 수비가 튼튼한 느낌이었지만 그것은 분명 상대 공격이 무딘 탓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떠나, 오히려 오늘 경기에서 그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은 자신이었다.
동민이 발 빠른 전술 변화로 상대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경기 분위기를 가져갔지만, 아직까지 그들에게 골이 없는 것은 대부분 종환의 실수들 탓이었다.
전반전 내내 상대 수비들의 조직적인 압박에 평소라면 하지 않을 트래핑 실수나 힘 조절에 실패한 슈팅들이 나와 버린 것이다.
‘젠장할, 쪽팔리게 이게 무슨 꼴이람.’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고 있는 그를 보는지 마는지 동민은 입을 열었다.
“그럼 후반전 때 전술에 대해서 설명할게요. 먼저 요한 선배, 영진 선배랑 교체해서 중앙 같이 맡아주세요. 그리고 주현 선배, 좌측에서 좀 더 가운데로 들어가서 종환 선배랑 투톱 구성해 주세요.”
KFC의 모두는 연습 때도 듣지 못했던 투톱이라는 말에 귀를 의심했다.
“그리고 좌측 빈 공간은 시영 선배가 약간 더 올라가고요. 어차피 상대 우측 공격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테니까 병원 선배가 약간만 내려가서 우측 같이 커버해 주시면 우측이 뚫릴 일은 거의 없을 거예요. 혹시 상황 달라지면 바로 말씀드릴게요. 포메이션으로 따지면 변칙 쓰리백이네요.”
동민은 수첩에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후반전에 쓸 전술을 설명했다.
“뭐?”
종환은 동민의 지시에 어안이 벙벙해져 있었다.
‘전반전에 부진한 내 교체가 아니라 투톱? 그것도 아까 나랑 하나도 호흡이 맞지 않았던 주현이랑?’
종환의 머릿속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동시에 주현 또한 종환과 마찬가지로 놀라고 있었다.
마무리가 하나도 되지 않아 좌측 윙에서도 한계가 있는 그를 톱으로 올리다니, 예상외의 사태라는 말로도 부족했다.
“제, 제가 톱으로요? 그, 그렇지만 전 톱을 본 적도 없고 조, 종환이 형이랑 제대로 맞춰본 적도…….”
“괜찮아요. 꼭 슈팅으로 마무리 지으라는 말을 하는 게 아니에요. 평소 하는 플레이랑 크게 다를 거 없이 공 가지고 흔들어주면 그걸로 충분해요. 계속 원톱으로 하다 보면 아예 숫자에서 너무 차이가 나서 답이 안 나올 것 같거든요. 그럼 준비하고 나가주세요. 파이팅!”
막무가내에 가까운 말이었지만 전반전 내내 상대를 압도했던 것은 동민의 전술 덕이었다는 것을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하던 종환을 제외한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사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릿속에 의문을 가지고도 운동장으로 발걸음을 향하게 만들었다.
단 두 사람만 빼고.
“저, 저기 역시 저는…….”
“너 뭐냐?”
종환이 우물거리면서 동민에게 향하는 주현의 말을 단숨에 자르고 동민에게 따지고 들었다.
“뭐가요?”
분명 자신의 말뜻을 모를 리가 없지만 천연덕스레 되묻는 동민에게 종환은 이를 갈았다.
“아니, 씨발. 내가 못미더우면 그냥 진호랑 교체를 시키든가 하면 되잖아. 연습 때도 없었던 이 투톱은 뭔데? 그것도 손발 안 맞는 얘랑? 지금 나랑 장난하냐? 괜히 사람 기분 맞춰준다고 이러는 거야? 만약 그래서 이딴 식으로 하는 거면……!”
“그럼 나와요. 뺄 테니까.”
날이 서 있는 종환의 말을 동민이 막았다.
말투까지 날카로워진 동민의 눈에 그들이 처음 보는 차가운 빛이 어른거렸다.
아니, 그들은 그것을 본적이 있었다.
그 눈빛은 첫 연습 때 내기를 걸던 눈빛 그대로였다.
“본인이 못하겠다는데 내가 어쩌겠어요?”
말을 잃고 있는 종환에게 동민은 냉정한 목소리로 선고했다.
“그게 아니면 뛰어요. 책임은 감독인 내가 질게요.”
그 말은 동민의 나이에 맞지 않게 무거운 울림으로 종환에게 다가왔다.
“그게 무슨…….”
“말 그대로예요. 난 선배가 투톱으로 할 만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전술을 짜서 넣은 거고, 이대로 해서 제대로 안 되면 책임은 내가 진다고요. 근데 그게 아니라 본인이 자신 없으면 그냥 교체해 달라고 하세요. 그럼 교체할 테니까.”
싸늘한 동민의 말에 종환은 말을 잃고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잠시 후, 결국 그는 그 말의 무게에 눌려 끝내 아무 말 없이 운동장을 향했다.
“그리고 주현 선배, 아니, 지금만 말 편하게 할게요. 지금 뭘 걱정하시는지는 대충 알아. 근데 나는 부담 주고 싶은 게 아니야. 최전방이라고 꼭 마무리 지으려고 안 해도 돼. 평소처럼 그냥 넘겨도 상관없어.”
동민은 종환의 뒷모습에서 눈을 돌리고 분위기를 바꿔 가볍게 말했다.
조금 전까지 종환을 향한 말에 함께 압도되고 있던 주현은 동민이 말투까지 바꿔가며 말하자 정신을 차렸다.
“근데 이거 하나는 확실해. 너는 제가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에서 축구 제일 잘하는 사람이고,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야. 투톱으로 나서도 잘할 거야. 내 말을 믿어.”
“제, 제가요? 어, 어…….”
조금 전까지 무거운 표정이 거짓말인 것처럼 동민은 친근한 태도로 말하고 있었다. 동민의 눈빛은 감독이 아니라 마치 친한 친구와 같았다.
“부담 가지지 말고 그냥 평소 하시던 것처럼 하면 돼. 난 니 능력에 기대를 걸고 있는 거니까. 그럼, 너무 늦기 전에 나가서 자리에 있어 주세요. 쫄 필요 없어요.”
“어… 네. 알겠습니다. 가, 감사해요.”
마지막에 다시 감독으로서 말을 마치고 동민은 미소를 지었다.
‘하이고, 힘들다 힘들어.’
조금은 어깨에 힘이 빠진 듯 들어올 때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운동장을 향하는 주현을 보면서 동민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가능한 감독님처럼 해봤는데 잘 먹힌 것 같아 다행이다. 그나저나 저 정도로 성격이 맞지 않는 투톱도 참 드물 거야.’
자존심이 세고 말이 험한 종환과 소심하기 짝이 없는 주현. 이 둘의 투톱은 자신이 생각했지만 참 피곤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그 성격의 차이를 넘을 정도의 전술적 효과가 있을 거라 믿기에 전술을 짠 결과였다.
주현이 공을 받고 몇 번 흔들어준다면 종환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충분히 나올 것이다.
원톱에서 투톱으로 전술이 바뀌면서 달려드는 인원수가 확 줄어들 테니, 그것을 종환이 그것을 놓칠 리 없었다.
‘그나저나 둘 다 서로 다른 쪽으로 손이 많이 간단 말이야.’
한쪽은 말을 듣게 하기 위해서 억지로 도발을 걸고, 한쪽은 좋은 말로 어떻게든 달랜다.
“둘 다 잘 알아들었을라나 모르겠네. 알아듣고 잘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동민은 서로 정반대의 말을 듣고 운동장으로 뛰어나간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투덜대던 말과 달리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