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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강동민의 첫 경기(1) (10/270)
  • 감독 강동민의 첫 경기(1)

    “진규 선배! 받고 투 터치 내에 보내야죠! 진규 선배 아웃!”

    “지승 선배 패스, 시영 선배 발 닿았어요! 지승 선배 아웃!”

    동민이 감독이 되어 연습을 지도한 지 어느덧 여섯 번째, 이제야 KFC의 선수들도 동민의 연습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동민의 연습은 좋게 말하면 변화무쌍했고, 나쁘게 말하면 중구난방이었다.

    자신들끼리 팀을 나누고 연습 게임을 하거나, 콘을 두고 드리블을 하는 정상적인 훈련들도 있었지만 아닌 것들도 많았다.

    수비수끼리의 론도(여러 명의 선수들이 공을 가지고 패스를 하고, 한 명의 선수가 공을 뺏는 술래 역할을 하는 놀이) 같은, 연습이 맞나 싶은 훈련도 있었고, 윙으로 뛰던 영우와 풀백으로 뛰던 재원을 바꾸는, 본인들에게는 의미 모를 훈련도 있었다.

    이러한 연습이 계속될수록 종환을 비롯한 몇몇 부원들의 불만은 뚜렷해졌다.

    “아니, 이런 걸 대체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해가 안 가네 진짜.”

    종환은 휴식 시간이 되자마자 운동장을 나와 불만을 토해냈다.

    “저도 솔직히 경태 형이 왜 그렇게 그 사람 편을 드는지 모르겠어요. 듣기로는 지금 제대로 된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라면서요.”

    그런 종환에게 담배를 건네주며 경수도 짜증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그들은 어째서 동민이 감독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기대 이상의 결과인 사회인 축구 대회 본선에 올라갔다는 사실에 경태가 오버하고 있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너희들은 그나마 낫지. 나는 갑자기 풀백으로 뛰라잖냐. 이게 지금 뭐하는 짓인가 싶다고. 아, 배경태 그 형이 앞에서 그 지랄을 하고 있으니 대놓고 뭐라 깔 수도 없고. 아니, 좆도 등신 같은데 왜 그렇게 싸고도는 거람?”

    영우는 그런 그들을 보며 한탄을 쏟아냈다. 동아리에서 가장 빠른 달리기를 자랑하면서 언제나 우측 윙 자리의 붙박이 주전이었던 그는 지금 상황이 짜증 날 뿐이었다.

    세 명은 동민에 대한 불만을 직접적으로 표출하고 싶었지만, 그러기엔 주장으로서 솔선수범한다며 먼저 나서는 경태가 눈에 걸렸다.

    “싸고돈다고 하니까 생각났는데 그 인간, 박주현 걔 유난히 싸고돌지 않냐? 그냥 이도 저도 아닌 놈인데 겁나 챙기는 거 보면 겁나 웃긴다니까.”

    “아, 그건 그래. 첫 연습 때부터 그랬지. 윙이란 놈이 골문 앞에 슈팅 각 다 나와도 어물거리다가 패스하기 바쁜 놈인데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대화의 화살은 어느새 동민을 넘어, 주현을 향해 있었다.

    “내버려 둬. 지가 돈 이백 날려먹겠다고 용을 쓰고 있는데 뭐. 나중에 가서 돈이 없네, 어쩌네 하면 진짜 두들겨 패야지. 왜 다들 그놈 구라를 들어주는지, 나 참.”

    그들 세 명은 동민이 실패할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사회인 축구 대회라고 하면 별거 아닌 느낌이 들지만, 실상은 달랐다.

    프로팀이나 실업팀이 아닌 이상, 대학 동아리부터 동네 조기 축구회까지 온갖 팀들이 다 참가하는 꽤 큰 대회였으니 거기서 우승을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진짜 다들 그런 개구라를 왜 믿어주고 열심히 하는지 모르겠어요.”

    경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그러나 그들을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우승을 호언장담하며 200만 원 상당의 내기를 거는 동민의 기세에 홀린 듯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내일은 경태 형이 잡아온 부광대 축구 동아리와의 연습 경기가 있습니다. 고생해서 연습 경기를 잡아준 주장님에게 다들 박수 한번 쳐주세요!”

    “뭘, 평소에도 하던 건데… 그런데 최대한 빨리 연습 게임 잡아 달라고 해서 여기저기 부탁해 잡긴 했는데 진짜 괜찮을까?”

    경태는 박수를 받으면서도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아직 동민이 와서 훈련을 한 건 고작 열흘 정도, 아직 선수들에 대한 판단도 제대로 되었을지 모를 정도로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동민은 경태에게 최대한 빨리 연습 게임을 잡아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괜찮아요. 최대한 실전처럼 밀고 나가는 게 편하잖아요? 그럼 내일 경기 선발 명단부터 말씀드릴게요. 먼저 골키퍼에 호재 선배, 수비에는 오른쪽부터 민혁 선배, 경태 형…….”

    동민은 요 며칠간을 떠올렸다.

    누가 어느 부분이 장점인지, 어느 부분이 단점인지 안다고 해도 그것을 극대화시키거나 없애기는 쉽지 않은 법이었다.

    그가 자신이 아는 여러 가지 훈련을 구성하고, 여러 방법으로 변화를 유도 해봐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게다가 자신이 생각하는 전술을 시도해 보기엔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면.

    ‘상대에 맞춰서 변하면 되는 거야.’

    스피드를 무기로 하는 팀에게는 그 스피드를 활용할 공간을 내주지 않는 방법으로 짓누른다.

    공격수의 마무리가 좋은 팀에게는 그 공격수에게 갈 패스를 막아서 공조차 잡기 힘들게 만든다.

    이렇게 동민은 자신의 눈으로 상대 팀을 보고 거기에 맞는 방법으로 경기를 이길 생각이었다.

    “…그리고 원톱에… 종환 선배. 이상이 내일 선발 명단이에요. 나머지 분들은 벤치고요. 아, 물론 이건 기본 선발 명단이니까 내일 급작스럽게 바뀔 수도 있는 거 알아두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집 가서 쉬시고 내일 뵐게요!”

    동민은 침대에 누운 채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일단 지금 선발 명단이 어떻게 나와도 바꿔 넣기 쉬운 명단이지만 이런 연습 경기는 상대 팀을 미리 알 수가 없어서 불안하네. 미리 거기 연습 하는 거라도 좀 볼 걸 그랬나.’

    동민은 첫 연습 경기지만 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어떻게든 이겨서 팀원들이 자신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 버리게 만들고 싶었다.

    ‘만약 진다고 해도 상대에 맞춰서 변하는 거에 익숙해졌으면 좋겠는데…….’

    그는 자신이 짜놓은 선발 명단을 생각했다.

    ‘발이 좀 느린 대신에 킥이 좋은 조민혁이나, 마무리는 잘 안 되지만 전후반 내내 뛰어다닐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좋은 이영진이나 다 괜찮은 애들이지.’

    그가 선발로 생각한 11명은 모두 상대가 나오는 방식에 따라서 어떻게든 위치를 바꾸어줄 수 있는 선수들이었다.

    물론 위치를 바꾼다고 어떤 방식의 팀이든 다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메리트를 가진 것은 확실했다.

    ‘그리고 박주현도…….’

    아직도 [현재 정체]가 사라지지 않아 쓰기 애매한 박주현이었지만 그래도 결코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끝까지 파고들지 않고 빠르게 패스를 내주는 한정된 역할을 맡긴다면 효과적인 선수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래서는 그만큼 막히기도 쉽다는 게 문제지.’

    저번 연습 게임에서 본 것처럼 상대가 박주현 본인을 막는 대신, 그의 패스가 갈 곳을 막아버리면 박주현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게다가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하다간 특성의 [소심함]을 지우는 일은 요원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든 박주현을 더 잘 써먹을 방법이 있을 텐데. 가능하면 [소심함]을 없앤다면 더 좋고…….’

    동민은 침대를 이리저리 굴러다니면서 고민을 거듭했다.

    그날 밤, 동민의 방은 한참이 지나도록 불이 꺼지지 않았다.

    다음 날, 연습 경기를 하기로 한 운동장에 모인 팀원들을 보며 동민은 입을 열었다.

    “제가 오고 나서 첫 연습 경기지만, 우승을 위한 첫 경기이기도 해요. 어떻게든 이겨보자고요.”

    “말은 참 쉽구먼.”

    뒤쪽에서 종환의 빈정거림이 작게 들려왔지만 동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잠을 제대로 못 잔 듯 눈 밑에 다크서클이 내려오고 어딘가 퀭해 보이는 얼굴이었지만 그의 입에는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경기 중에 제가 전술을 갑자기 바꿀 때도 있을 거예요. 그건 제가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라 바꾸는 게 상황에 더 맞다고 생각한 겁니다. 그러니 기분 나빠하지 말아주세요.”

    그 말을 마친 동민은 팀원들을 향해 한 손을 내밀었다.

    “화이팅 한번 하고 가요. 하나, 둘, 셋!”

    “화이팅!”

    동민과 모두의 목소리가 겹치고 다들 운동장으로 나가려 할 때.

    “경태 형, 잠시만요.”

    “어?”

    동민의 목소리가 경태를 붙잡았다. 나가려다 다시 돌아온 경태에게 동민은 웃으며 말했다.

    “제가 경기 중에 팀원들한테 전해야 할 게 있으면 그때그때 형한테 말씀드릴게요. 그것 좀 그대로 전해주세요.”

    “어? 왜 직접 안 부르고?”

    ‘내가 말하면 안 들어 처먹을 몇 명이 눈에 보이니까 그러죠.’

    “제가 한 명씩 불러서 말하면 좀 늦을 것 같아서요.”

    동민은 차마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말을 둘러댔다.

    영문을 알 수 없는 동민의 말에 경태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일단 알았다고 하고 운동장의 동료들을 향했다.

    그리고 휘슬 소리와 함께 경기가 시작되자…….

    ‘자, 그럼 어떻게 바꿀지 한번 볼까.’

    동민의 눈에는 상대 팀 11명의 스테이터스가 비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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