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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FC의 감독(2) (9/270)
  • KFC의 감독(2)

    “형, 방금은 당황해서 말을 못 했는데 이건 좀 아니잖아. 고작 연습 두 번째 온, 부원도 아닌 놈한테 감독? 장난 까? 미쳤어?”

    “너 말이 좀 험하다.”

    “누가 지금 험하게 만들었는데. 아까 말하려고 했더니 입 틀어막은 건 또 누구고. 아니 씨, 진짜 이해가 안 가잖아, 지금. 우리가 저딴 놈한테 감독해 달라고 하는 이유가 뭐냐고.”

    동민의 소개가 끝나자마자 종환이 경태를 황급히 잡아 스탠드 뒤쪽으로 잡아끌었다.

    붉어진 종환의 입에서는 격한 감정들이 여과 없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말을 듣는 경태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평소에도 말이 험한 종환이었고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경태였지만 지금의 두 사람은 뭔가 달랐다.

    “너 아까 내가 말한 거 못 들었어? 쟤는 고등학교 때 선수 생활 하다가 코치 준비하는 애라고. 그리고 너 저번 연습 때도 쟤 하는 거 못 봤어? 너 쟤만큼 할 수 있어?”

    “아, 그래. 저 새끼 공 존나 잘 차더라. 근데 그럼 선수로 데려오는 게 맞는 거 아냐? 실질적으로 없었던 감독 자리는 왜 만들어가면서 저 새낄 데려오는데. 진짜로 이 상황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아까 애들 표정 못 봤어?”

    종환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지금껏 제대로 된 감독 없이도 그들이 잘해 왔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올해에는 사회인 축구 대회 본선까지 올라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더욱 이제 와서 감독이랍시고 얼굴만 아는 녀석이 갑자기 끼어들어 온 게 불쾌했다.

    경태는 가만히 종환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이종환, 넌 너만 생각 하냐? 예선 때 내내 상대 팀 그나마 분석이랍시고 가서 보고, 연습 게임 물어오고, 연습 코스 짜오고. 그거 죄다 누가 했는지 기억하냐? 나 혼자서 했어. 너희들이 축구한다고 너희들 연습에만 집중할 때 나는 내 연습보다 그 난리 치는 데 더 신경 쓰고 있었다고.”

    경태의 말에 종환은 말문이 막혔다.

    부회장이라는 직함을 달고서도 그가 그런 곳에 신경을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아무 말이 없는 종환을 보며 경태는 말을 이었다.

    “나도 4학년이야. 대학 생활 끝이라고. 취업 준비 해야 할 시기에 아직까지도 이 짓 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올해가 진짜 마지막이잖아. 그리고 그 마지막에 진짜 운 좋게 본선에 갔잖아. 다시는 없을 일이라고. 그럼 씨발, 나도 욕심 좀 부리자. 나도 내 플레이나 내 연습만 신경 써보고 싶어. 그래서 마침 코치 준비한다는 녀석한테 감독해 달라고 하는 게 그렇게 잘못이냐? 그렇게 불만이냐고!”

    경태의 말은 갈수록 커져서 결국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끝났다.

    그 말이 끝난 후,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없었다. 한동안 침묵의 시간이 지나고 입술만 깨물고 있던 종환이 말했다.

    “그래도 난 그 새끼 바로 인정 못 해. 형이 하는 생각은 그 새끼가 그만큼 졸라게 실력이 있다는 가정하에 하는 거잖아. 그 새끼가 실력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잖아. 나머지 애들도 나랑 비슷한 생각 가진 애들이 더 많을걸.”

    그 말을 끝내자마자 종환은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경태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그 뒷모습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감독님, 오늘은 뭘 하면 되는 겁니까?”

    “제발 그렇게 안 부르셔도 된다니까요 형…….”

    감독이 된 지 며칠 후, 운동장에 도착하자마자 동민은 감독님이라 부르며 놀리는 경태 때문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저번에 이 인간을 어떻게든 뜯어말렸어야 하는데.’

    동민이 감독이 되고 난 이후, 경태는 그의 호칭을 ‘감독님’으로 하겠다고 말하고는 그에게 감독님을 연호하고 있었다.

    “감독님보고 감독님이라고 부르는데 왜 그래?”

    “하아… 알겠어요. 어쨌든 오늘은 몸 풀고 몇 명씩 따로 연습할게요. 그리고 경태 형은 저번 같은 연습 경기 좀 자주 부탁드릴게요. 저번에 뛴 분들은 어떻게 뛰시는지 봤는데 후보로 있으시던 분들은 잘 모르니까요.”

    “알았어, 감독님.”

    “먼저 수비 쪽의 경태 형이랑 진규 선배, 그리고…….”

    동민은 가져온 노트를 펼치며 말했다.

    저번에 감독 일을 수락한 직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잊어버리지 않도록 팀원들의 대략적인 스테이터스를 적어둔 것이었다.

    ‘경기를 뛰고 있는 게 아니면 스테이터스를 볼 수가 없으니까 잊어버리면 골치 아프지. 각자 장단점도 모르는 상태에서는 연습이고 뭐고 아무것도 못하니까.’

    신기하게도 그가 본 스테이터스는 복잡한 숫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 잊히지 않았다.

    마치 게임에서 한 번 스테이터스를 본 선수는 절대로 그 스테이터스가 지워지지 않는 것과 똑같았다.

    ‘성장이나 노화, 부상에 따라서 바뀌기는 했지만 본 스테이터스가 사라지진 않았으니까 이것도 비슷하겠지.’

    동민은 자신이 기억하는 스테이터스들을 공책에 적고 각 포지션마다 나눠, 누구에게 어떤 방식의 연습이 가장 필요한지를 고민했다.

    ‘이 이종환이란 사람은 원톱이면서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가 낮았으니 마무리랑 연계 연습을 같이 시켜야 할 테고, 미드필더에서는…….’

    그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할지 정했지만 난관이 남아 있었다.

    ‘박주현 얘는 진짜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동민은 공책 속 스테이터스를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저번 연습 경기 때 그가 가장 놀란 일은 이 박주현이라는 사람의 스테이터스를 봤을 때였다.

    [박주현]

    20세

    잘 쓰는 발 : 왼발

    성장 가능성 6.5[현재 정체]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6.2[현재 정체] / 20

    선호하는 플레이 : 수비의 틈 사이로 침투[현재 정체], 아래쪽에서부터 공을 끌고 올라옴[현재 정체]

    특성 :

    장점 - 타고난 골잡이[현재 정체], 왼발의 마법사[현재 정체] 단점 - [소심함]

    현재 컨디션: 5/10[현재 최대]

    경기 중반에 후보 선수로 등장한 그의 스테이터스를 보고 동민은 소리를 지를 뻔한 것을 간신히 참았다.

    ‘죄다 [현재 정체]? 이게 대체 뭔데?!’

    동민은 당황했지만 곧 그의 얼굴을 보자 그가 평소에 구석에 가만히 서 있던 조용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기억했다.

    ‘아, 이건 그거구먼.’

    [소심함]이라는 특성을 보자 동민은 점점 머릿속에서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본 [현재 정체]라는 말은 그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멈춰 있다는 말이겠지.

    그리고 그 이유는…….

    ‘특성에 있던 소심함 때문인가…….’

    그가 기억하는 과거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분명히 재능이 있고 하면 잘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도 심리적으로 짓눌려 결국 일을 망치는 타입들.

    동민은 그 후로 내내 박주현에 대해 고민했지만 지금 당장 뾰족한 수가 나오지 않았다.

    ‘전부 다 [현재 정체]니 이건 특성이 사라지거나 바뀌지 않는 이상 지금으로선 어쩔 수 없네.’

    장단점을 아는 것에서는 말도 안 되는 사기인 그의 능력이지만, 그 장단점을 극대화시키고 없앨 수 없다면 도움이 되질 않았다.

    적당히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연습시킬 수도 있겠지만 도움이 되지 않는 연습을 시킨다는 것은 동민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결국 동민이 택한 방법은…….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현 선배는 저랑 같이 모든 그룹 연습 같이 돌게요. 이상 오늘 연습 스케줄이었습니다. 혹시 질문 있으신 분 있어요?”

    “궁금한 게 있는데. 박주현 쟤는 왜 따로야? 그리고 그런 식으로 나눠서 무슨 장점이 있는데?”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종환이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동민은 적의에 찬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종환의 표정을 보며 마음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딱 예상한 대로구먼. 어쩜 이런 예상은 빗나가질 않냐. 저 인간, 소개하자마자 경태 형 끌고 나가는 걸 봤을 때부터 이렇게 될 줄이야 알았지만.’

    동민은 집단의 존속에 가장 위험한 건 다른 집단과의 경쟁이 아니라 누군가가 특별 취급을 받을 때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별다른 의미 없이 특별 취급을 받기 시작하면 그 집단이 제멋대로 찢어져 서로 물고 뜯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고등학교 생활에서도, 대학교 생활에서도, 그리고 그 이후의 아르바이트 생활에서도 그것을 뼈저리게 알고 있던 동민이었다.

    ‘누가 특별 취급 당하면 100에 99는 다 그 사람을 깎아내리기 바빴으니까.’

    게다가 지금 박주현을 특별 취급 한 사람은 갑자기 들이닥쳐 제대로 권위도 잡히지 않은 동민이다. 동민은 종환의 적의가 자신을 향한 것인지 주현을 향한 것인지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해결 방법이야 똑같으니까. 거기다가 저 사람만 저런 것도 아닌 거 같고.’

    동민은 종환 외에도 자신을 향한 호의적이지 않은 몇몇 시선들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갑자기 감독 자리에 오른 자신을 향한 적의라면 자신의 능력을 내보이는 것 외에 방법은 없다.

    반대로 특별 취급 받는 주현을 향한 적의라 해도 자신이 주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말고는 해결 방법이 없다.

    그런 것을 오랜 경험에서 알고 있던 동민은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감독으로서의 제 판단입니다. 제 판단이 맞는지 어떤지는 본선 첫 경기 이후에 확실하게 알게 되실 거예요.”

    웃음기 없는 동민의 딱딱한 말에 그를 노려보던 종환까지도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혹시 제 판단 자체에 의구심이 드시는 거라면 내기라도 할까요? 제가 선배들을 우승까지 못 끌고 가면 우승 상금만큼 한우 집에서 회식 쏠게요. 어때요? 이거면 좀 믿을 만해 보여요?”

    그리고 동민은 그 침묵을 틈타 쐐기를 박았다.

    그 말은 반드시 우승을 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오만한 선언이었으며, 동시에 종환처럼 그에게 적의를 품는 팀원들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동민, 아니, 감독님. 그건 너무 큰 거 같은데. 상금은 분명히 200만 원이…….”

    “상관없어요. 저한테 내세울 만한 경험 그런 게 없어서 믿음직해 보이지 않다는 건, 저도 알고 있으니까요. 이 정도는 내걸어야죠. 반대 없으시면 내기 성립으로 알게요. 그럼 일단 조금 전에 말한 대로 모여 서주세요. 전 화장실 잠깐 갔다가 금방 다시 올게요.”

    동민은 폭탄선언에 멍해져 있는 부원들에게서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

    “하이고, 심장 떨려 죽는 줄 알았네.”

    동민은 떨리는 손으로 세면대를 붙잡고 거울을 노려보고 있었다.

    과거로 돌아와 한동안 활발한 생활을 했다지만 자신에게 적의를 보이는 사람들을 상대로 배짱 있게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팀원들에게 당당하게 말을 한 지금도 아직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열등감에 가득 차 있던 35살의 강동민이 웅크리고 있었다.

    “거기다가 200만 원이라니. 내가 진짜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먼.”

    분명히 첫 연습인 오늘 기선 제압 정도는 해두려 생각하긴 했었다. 앞으로의 연습과 전술, 지휘에 있어서 팀원들의 인정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까지 말할 생각은 없었는데… 만약 우승 못 하면 집에서 쫓겨날지도 모르겠네. 아니면 급하게 아르바이트라도 찾아봐야 하나.’

    동민은 말을 하면서 분위기를 타버린 조금 전의 스스로가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그러나 한숨만 내쉬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지금 이렇게 화장실에 있는 시간에도 팀원들은 그를 기다리느라 연습을 하지 못하고 있을게 분명했다.

    게다가 방금 전 그런 소리를 하고도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모습을 팀원들에게 보여줘야 자신에 대한 평가가 오르는 것을 동민은 알고 있었다.

    “그럼 늦기 전에 후딱 가볼까. 빨리 안 가면 뒤에서 무슨 말들이 오갈지 모르니까.”

    동민은 조금 전까지 한숨을 쉬던 표정을 지우고 자신만만한 미소를 억지로 얼굴에 만들었다.

    ‘돈이 얼마든 우승시키면 되는 거야. 쫄지 말자. 어디 한번 해보자고.’

    주먹을 굳게 쥐며 그는 화장실을 나섰다.

    그의 발걸음은 앞으로 그가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자 그의 꿈을 위해 반드시 품어야 할 팀원들이 있는 운동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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