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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길(1) (4/270)
  • 또 다른 길(1)

    다음 날, 동민은 자신이 잠에서 깨도 아직도 과거에 있는 것을 깨달았다.

    ‘역시 정말로 내가 과거로 온 건가.’

    아무리 의심을 하려 해도 동민 주위의 상황은 점점 더 현실이 되어갔다.

    ‘아냐, 더 의심하지 말자. 오늘은 하나 더 확인할 것도 있으니까.’

    동민은 머리를 흔들어 잡생각을 쫓아내고는 곧바로 씻고 나갈 준비를 했다.

    그가 이제 의심하고 고민할 것은 과거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어제 본 광경, 축구를 하는 부원들 머리 위에 보이던 숫자들을 확인해야 했다.

    동민은 수업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대학교를 나와 다른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가 도착한 곳은.

    “히야, 생각해 보면 여기도 졸업하고 한 번도 안 왔던 거네.”

    동민은 이제는 추억에 담아둔 풍경을 보며 새삼 미소를 지었다.

    현성고등학교. 동민의 꿈이 부풀었던, 동시에 꿈이 깨졌던 장소인 그의 모교였다.

    “오랜만에 연락을 해서 무슨 문제라도 있나 했다. 안 하던 짓을 하면 갈 때가 다 된 거라던데 앞길 새파란 놈이 무슨 일이냐?”

    학교에 도착하자 딱딱한 목소리가 그를 반겨왔다.

    목소리의 주인은 그가 있는 현성고 축구부의 감독인 병렬이었다.

    “안녕하세요. 잘 계셨죠?”

    “괜히 나이 먹은 척하지 마라. 꼬맹이가 철든 척이나 하고 있어.”

    병렬은 그의 밝은 대답에도 휙 고개를 돌리며 무뚝뚝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가 축구부에 있을 때에도, 그가 사고를 당한 뒤에도 병렬은 한결 같이 무뚝뚝한 태도로 동민을 대했다.

    하지만 졸업하고 몇 년이 지나서도 병렬은 가끔씩 전화를 걸어 몸 상태나 축구를 다시 하지 않는지 물어보곤 했다.

    ‘그때까지도 몰랐었지만 적어도 지금은 잘 알 것 같네.’

    그는 고개를 돌리고 있는 병렬의 모습을 보며 가슴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뭔 일로 이렇게 찾아오기까지 했어?”

    “아뇨, 그냥 잘 계신가 해서요.”

    “별 어울리지도 않는 짓을 다 하네. 시간 있으면 애들이나 보고 가던가 해라. 오늘 연습 경기하기로 했는데 얼굴은 몰라도 선배가 보러왔다고 하면 애들 정신은 들 거 아니냐.”

    병렬의 말에 동민은 미소가 지어지는 것을 참고 말했다.

    “제가 방해되지 않을까요?”

    “방해는 무슨. 보는 게 방해되는 경우도 있냐.”

    무뚝뚝한 병렬의 말이었지만 그는 그 안에 들어 있는 병렬의 호의를 느낄 수 있었다.

    “네. 감사합니다.”

    동민은 병렬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현성고 축구부의 연습 경기, 그것이 바로 동민이 정말로 여길 찾아온 이유였다. 어제 자신이 본 것이 정말로 자신에게 생긴 능력이라면 이 연습 경기를 볼 때도 분명히 보일 것이다.

    ‘가능하면 그냥 애들 공식 경기 하는 걸 보면서 확인하면 좋겠지만 여기저기 막 들어갈 수도 없으니까.’

    동민은 기대로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끼며 운동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의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이차주]

    19세

    잘 쓰는 발 : 오른발

    성장 가능성 8.8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5.6 / 20

    선호하는 플레이 : 우측 측면 돌파 선호, 얼리 크로스 선호, 몸싸움 선호

    특성 :

    장점 - 강철 몸

    단점 - 아둔함

    현재 컨디션: 6/10

    부원들과의 간단한 인사 후 경기가 시작되자, 동민은 또다시 기묘한 두통과 함께 그들의 머리 위로 숫자가 떠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어제보다도 선명한 숫자와 글자들의 모습에 이번에는 동민도 차분하게 그것들을 읽을 수 있었다.

    ‘이게 정말로 내가 가진 능력이란 거지…….’

    동민은 그것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거라면 어쩌면 선수로 복귀하지 않아도 쓸 수 있는 방법이 생길지도 몰라.’

    자신의 능력을 다시 한 번 본 동민에게 이제 남은 것은 확인뿐이었다.

    그 결과 며칠 만에 그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첫째, 내 눈으로 직접 봐야만 보인다는 점.’

    그가 임시로 명명한 스테이터스는 티비나 인터넷으로 보는 유명 축구 선수들에게선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방과 후에 초등학생들끼리 하는 축구라도 직접 볼 때에는 분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둘째, 축구를 하고 있을 때만 보인다는 점.’

    경기 중에 스테이터스가 보이던 사람도 경기가 끝나면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하나뿐이다.’

    며칠간 학교도 빼먹고 근처 운동장을 돌아다니며 다른 학생들의 모습을 보았지만 그에겐 아직 확인할 것이 하나 남아 있었다.

    그것은 실제 프로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보는 것. 지금까지 그가 봐온 것이 프로 선수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인지가 가장 중요했다.

    만약 프로 선수들의 시합에서 스테이터스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가 가진 능력은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능력이 되고 말 것이다.

    ‘그냥 축구부원들이나 동네 애들 스테이터스나 볼 수 있어봐야 아무 도움이 안 되겠지.’

    중, 고등학교 학생들을 보고 성장 가능성을 알아내서 스카우터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는 곧바로 그 생각을 접었다. 그의 능력을 설명할 길이 없는 이상 어느 팀이 그를 쓸 리가 없었다.

    그는 진지한 눈으로 눈앞의 경기장을 바라보았다. 서울 월드컵 경기장은 곧 벌어질 경기로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하이고, 이거 미리 구하길 잘했네.’

    그가 보러온 경기는 K리그에서 손꼽히는 명문 구단인 레드 윙즈와 블루 데빌즈의 슈퍼 매치였다.

    ‘두 팀 다 그렇게 좋아하는 팀은 아니지만 두 팀 경기만큼 수준 높은 선수들을 볼 기회도 별로 없으니까…….’

    그는 손가락에 쥐가 나도록 인터넷을 돌아다녀서 구한 표를 꼭 쥐고 경기장 안으로 향했다. 자리를 찾아가는 길 또한 바글거리는 사람들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사람들 사이를 힘들게 빠져나와 자리에 앉아 보니 주위에는 온통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뿐이었다.

    ‘아, 급하게 사느라고 어느 석인지 제대로 확인을 못 했는데.’

    그가 앉아 있는 곳은 홈팀인 블루 데빌즈 응원석의 한복판이었다. 그러나 오늘 그가 입고 있는 옷은 아무 생각 없이 입고 나온 붉은색 트레이닝복이었다.

    그는 자신의 옷차림을 떠올리자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오늘 경기 결과에 따라서 잘못하면 엄청 꼬이겠는데.’

    그제야 주위에서 쏟아지는 눈총을 깨닫고 머리를 움켜쥐었다. 그는 K리그에서 가장 사이가 안 좋은 두 팀의 경기를 보러오면서 이런 점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망할 중고세상! 파는 좌석이 어디 좌석인지 정도는 적어놔야 할 거 아냐!’

    그가 마음속에서 절규를 내지르고 있는 사이,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요.”

    “네?”

    그가 고개를 돌려보자 뒤에서 푸른 옷을 입은 여성이 그를 째려보고 있었다.

    “여기 데빌즈 응원석인데요.”

    지나가던 사람들 열 명 중 7, 8명은 되돌아 볼 정도로 예쁜 얼굴이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표정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눈빛으로 사람 한 명은 잡을 것만 같은 모습이 그 미모를 덮고 있었으니까.

    “아, 예, 알고 있어요. 저 진짜 레드윙즈 팬 아니거든요? 이건 그냥 오늘 아무 생각 없이 입은 옷이 이거라서 그렇지 사실…….”

    “흥, 뭐라는 거야.”

    그가 장황한 변명을 늘어놓는 사이, 이미 그녀는 얼굴을 돌려버렸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어? 얼굴만 예쁘면 단가!’

    그는 황당했지만 꾹 참고 시선을 그라운드로 돌렸다. 지금 저런 여자랑 시비 붙어봐야 그에게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됐다, 됐어. 지금은 경기 보는 거나 집중하자. 지금 중요한 거에 신경 써도 모자랄 판에 뭐하는 짓이람.’

    그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라운드에 시선을 집중했다.

    곧 사람들의 환호와 함께 양 팀의 선수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경험에서 그가 추측했듯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온 것만으로 스테이터스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경기를 시작한다면…….’

    그리고 경기 시작을 알리는 휘슬 소리가 들리자 그의 예상은 보기 좋게 맞아떨어졌다. 양 팀의 골키퍼부터 공격수까지 22명 선수들의 스테이터스 전부가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놀라 숨을 들이켰다.

    병렬을 만나러 간 이후 며칠간 계속해서 제대로 보려고 노력한 덕분인지, 그는 처음과는 다르게 스테이터스를 봐도 큰 두통을 느끼지 않았다.

    그가 놀란 이유는 단순히 프로 선수들의 스테이터스를 볼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뭐야, 이거?’

    [심형만]

    25세

    잘 쓰는 발 : 왼발

    성장 가능성 14.8 / 20

    현재 포지션에 대한 적합도 12.9 / 20

    선호하는 플레이 : 좌측면에서 안쪽으로 드리블 선호, 공을 잡고 템포를 조절, 정확한 슈팅 선호

    특성 :

    장점 - 정확한 패스, 왼발의 마법사

    단점 - 불같은 성격

    현재 컨디션: 8/10

    그가 지금까지 본 사람들 중 평균적인 능력치가 가장 높았던 이는 병렬을 만나러 갔을 때 본 축구부의 이차주였다. 다른 사람들이 5나 6 정도. 심지어 축구 동아리의 주장인 배경태조차도 해봐야 7 정도였지만, 이차주는 8 혹은 10정도의 능력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있는 선수들은 아예 차원이 다른 수준이었다. 경기장에 뛰는 선수들 모두 10 이하의 능력치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게 프로라는 건가…….’

    그는 자신이 다치지 않았어도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기는커녕, 저런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나 있었을지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희망적으로 생각해도 그건 쉽지 않아 보였다.

    이 경기장에 나선 선수들은 모두 그야말로 괴물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였다.

    ‘K리그에서 이 정도라면 진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은…….’

    경기는 바쁘게 흘러갔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동민의 표정은 복잡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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