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살의 하루(1)
동민은 도무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꿈인가 싶어 자신의 뺨을 꼬집어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뺨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아픔과 빨리 씻으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뿐이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어머니에게 등을 떠밀려 욕실로 들어서자 그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은 배 나온 아저씨 그 자체인 30대 모습도, 아직 어린 티가 남아 있는 17살의 모습도 아니었다.
그가 본 달력의 연도 그대로, 22살의 그가 멍하니 거울 앞에 서 있었다.
눈앞의 모습에 동민은 정말 자신이 제정신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뺨은 조금 전에 꼬집어봤으니 이번엔 허벅지라도 꼬집어봐야 하나?’
멍한 머리로 허벅지를 꼬집어봤지만 이번에도 돌아오는 것은 생생한 아픔이었다.
“너 진짜 빨리 안 나오니!”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욕실 밖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나가자 잔뜩 화가 난 모습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너 오늘따라 왜 이렇게 늑장 부려! 또 1, 2학년 때처럼 성적 엉망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야? 한동안 마음잡은 것 같더니 또 게을러졌어? 너 벌써 3학년 2학기야. 알기나 해? 남들 군대 갈 때 안 가니까 시간이 남아도는 것 같니!”
어머니의 말을 들으며 동민은 자신의 대학교 생활을 생각했다. 생각 없이 점수 맞춰 들어간 대학교에서 제대로 공부할 리가 없었고, 그의 대학 생활은 어영부영 지나가는 무의미한 시간이었다.
‘지금 이게 꿈이라도… 내가 예전으로 돌아온 거라면… 이제라도 바뀔 수 있을까?’
지금 자신이 있는 상황이 꿈인지 아니면 죽기 전에 보는 환상인지는 몰라도, 바뀔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바꾸고 싶었다.
자신이 떨어지면서 바랐던 것처럼 제대로 살아보고 싶었다.
그는 작게 숨을 들이쉬고 입을 열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 제대로 살게요. 앞으로는 어머니한테 걱정 안 끼치게 할게요.”
“어, 어… 그래. 너 무슨 일 있었니?”
동민의 입에서 나온 예상외의 무거운 말에 어머니의 분노는 걱정으로 바뀌었다.
“아뇨, 그건 아닌데 그…….”
“왜? 말해봐. 무슨 일이니?”
어머니의 목소리는 아까보다 훨씬 부드럽게 변해 있었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었죠?”
“진작 핸드폰부터 확인했어야 하는데. 아으, 아직도 따갑네.”
생각 없이 물어본 질문 하나에 어머니의 분노는 다시 하늘을 찔렀고, 그 결과는 등에 남은 붉은 손자국이었다. 시간표나 달력이 핸드폰에 있었다는 것을 미리 기억했다면 이렇게 맞을 일은 없었을 거라며 동민은 투덜거렸다.
“그나저나 진짜 꿈이 아닌가.”
등에서 아직도 느껴지는 따끔함도, 오랜만에 집 밖에 나와 보는 풍경도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다. 이사 간 뒤로는 한 번도 들러보지 않았지만, 지금 눈앞의 모습은 옛날 자신이 어릴 때 보던 풍경 그대로였다. 흐릿했던 자신의 기억도 조금씩 선명해지고 있었다.
“아니, 됐다. 꿈이니 뭐니가 중요한 게 아니지.”
사실 지금이 꿈이라도 좋았다. 죽기 전에 보는 환상이라도 상관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후회를 남기지 않는 것뿐이었다.
그는 고개를 흔들고는 버스에 올랐다.
“야, 어디 가냐?”
학교에 도착해 기억이 흐릿한 강의실을 찾아가던 도중, 어깨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고개를 돌리자 누군가가 웃으며 서 있었다.
‘이 사람이 누구였지? 분명히 선배 같긴 한데…….’
졸업한 지 10년이 넘었으니 사람들을 전부 기억할 리가 만무했다. 게다가 대학에서 좋은 기억이 거의 없었던 그였기에 더욱 그랬다. 매일매일 그저 술자리에서 술을 들이붓거나 피시방에서 게임으로 시간을 보냈으니까.
만나던 사람은 많았지만 졸업 후에도 연락을 주고받던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어, 그…….”
“뭐야, 술 덜 깼냐? 요즘 덜 마시는 것 같더니만 학기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또 마신거야?”
그 사람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키가 그리 작지 않은 동민도 올려다볼 정도의 큰 덩치와는 반대로 순박해 보이는 얼굴이 어딘가 낯이 익었지만 이름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아니, 술은 안 마셨는데 그게 좀…….”
“안 마셨어? 그럼 이따 축구하는데 좀 보러 와라. 응?”
그 이야기를 듣자 그제야 동민은 눈앞의 사람이 누구였는지 기억났다.
“경태 형, 그 말 안 질려요?”
동민은 벌써 먼 옛날에 잊어버렸다고 생각한 말이 새삼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것을 느끼며 그리운 기분에 휩싸였다.
술자리에서 고등학교 때 축구부였다는 말을 한 이후, 그를 볼 때마다 자신이 동아리 장인 축구 동아리로 들어오라고 말하던 선배였다.
뛰지 못하는 자신을 놀리는 것 같아 언젠가 한번 화를 내고 더 이상 말을 섞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 전인 듯했다.
“질리는 게 어디 있어. 아무튼 올래?”
예전의 자신은 몰랐지만, 그 말을 하는 경태의 표정은 놀리는 표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그냥 내가 화풀이한 것뿐인가……. 차라리 한 번쯤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이따가 시간 나면 가볼게요.”
동민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왔다.
말을 한 본인도 놀랐지만 경태의 표정은 충격 그 자체였다. 동민이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는 것이 얼굴에 그대로 다 드러나 있었다.
경태의 동그랗게 커진 눈이 이윽고 함박웃음으로 바뀌었다.
“야! 이따 5시 반 운동장이니까 그때 와! 아니면 나한테 연락해! 늦으면 찾아가는 서비스해 줄 테니까!”
경태의 기쁜 목소리에 담긴 친절을 느끼며 동민은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곧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310-A 강의실이 대체 어디 붙어 있던 거지? 조금 전에 경태 형 만났을 때 넌지시 물어봤어야 했는데!’
결국 그가 강의실을 찾아 들어간 것은 강의가 시작하고 5분이 지난 뒤였다.
“이렇게 구개음화의 개념에 대해서 알아보았으니 프린트 5쪽의 문제들을…….”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지. 이놈의 입이 방정이지 정말.’
어느새 5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을 보며 동민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끝나가는 강의는 어느새 그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경태에게 미안한 마음과 후회를 남기지 말자는 생각에 수락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머릿속만 복잡해진 동민이었다.
‘하필 축구냐. 아, 진짜 돌겠네.’
부상 이후로 축구는 동민에게 복잡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아르바이트 시간 빼고 대부분의 시간을 투자하던 게임도 축구 게임이었을 정도로 축구는 아직도 마음에 남아 있었다.
‘좋아하냐, 싫어하냐’라고 물어본다면 물론 좋아하고 게임으로라도 계속할 만큼 미련이 남아 있지만, 아직도 막상 직접 보거나 뛰라고 하면 어딘가 꺼림칙한 그였다.
‘관둔 지 거의 20년이 가까운데 가서 뛰어보자고 하면 어쩌지? 그냥 거절할 걸 그랬나.’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짐했지만 그래도 축구는 그에게 아직 예민한 부분이었다.
“이상으로 오늘 수업을 마치겠습니다. 다음 시간까지 교재 28쪽의 예문들을 미리 읽고 오시길 바랍니다.”
동민의 고민은 계속됐지만 수업은 어느새 끝나고, 동민은 결국 운동장으로 향했다.
“어, 시간 맞춰서 왔네? 혹시나 안 오는 거 아닌가 했어.”
“오기로 했는데 튀진 않아요.”
동민이 무거운 발걸음을 끌고 운동장에 도착하자 몸을 풀고 있던 경태가 반색을 하며 반겼다.
“야, 인사해. 우리 과 후배야. 오늘은 연습 경기 있는 거 한번 구경 왔대. 잘하면 가입할 수도 있고.”
경태는 싱글벙글 웃으며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했다.
“무슨 가입이에요! 형이 하도 오라고 하니까 한번 들른 거지.”
“보고 재밌어 보이면 하면 되잖아. 뭐 어때.”
“하이고, 안녕하세요. 강동민이라고 합니다. 경태 형 같은 과 후배인데 견학차 왔습니다.”
동민은 경태의 성화에 못 이겨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그냥 구경이나 하다 갈 생각이었는데…….’
“동민이 너 축구화나 운동복 있냐?”
“예? 그게 왜 필요해요?”
어색한 인사가 끝나고 스탠드 자리에 앉으려는 동민에게 경태의 말이 날아들었다.
“몸 푸는 거나 같이 하자고. 경기 시작까지 한 30분 이상 걸리는데 그동안 혼자 앉아 있으면 심심하잖아. 없으면 대충 비품에서 빌려줄게. 너 대충 280 정도면 맞냐?”
경태의 두 번째 폭탄에 동민은 어이가 없었다. 그냥 구경이나 오라더니 갑자기 이게 무슨 말인지 쇠몽둥이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결국 동민은 목소리를 낮추고 입을 열었다.
“형. 저 사실 고등학교 때…….”
“사고 나서 십자인대 박살 났었단 거 술 마실 때 자주 들었어. 두 번 정도 더 들으면 귀에 딱지 앉을걸. 그래도 요즘에는 뛰고 그런 거 잘하잖아.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해보자고.”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잘리자 동민은 말문이 막혔다.
“네가 축구 좋아하는데 지금 못 하는 것도 너 꽐라 될 때마다 너한테 들었고. 너 니가 필름 끊길 때 마다 나한테 그 이야기하는 거 모르지?”
‘내가 이 나이 때 술 마시고 그랬단 말이야?’
동민은 이불이 있다면 당장 걷어차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 자신을 위해 같이 축구하자고 말해준 사람에게 화를 냈던 거란 걸 깨닫자 자괴감은 더욱 심해졌다.
“아무튼 요즘엔 뛰거나 그런 것도 꽤 하는 거 보니까 나아졌다 싶어서. 무리 안 하고 그냥 가볍게 연습하는 정도라면 직접 뛰어도 될 테고, 동아리 구경 정도는 너한테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 뭐냐. 혹시 화났냐? 너 놀리려고 이런 건 아닌데.”
말이 없는 동민을 보며 경태의 목소리는 점차 줄어들었다.
“…아뇨, 감사합니다.”
동민은 가슴 한쪽이 찔려왔다.
사실 다시 생각해 보면 경태뿐만이 아니었다. 자주 달라붙어 이야기하던 동기도, 술 마시러 가자고 꼬이던 후배도 마찬가지였을 터였다.
자신이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선의를 내팽개치고 살아왔는지 조금 알게 된 기분이었다.
“축구화는 275 있으면 그걸로 주세요. 280은 좀 클 거 같아서.”
동민은 경태에게 고개를 돌리고 밝게 말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도 목 메인 소리는 숨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