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프롤로그 (1/270)
  • 더 매니저

    알파카

    프롤로그

    라커룸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누군가는 긴장감에 손에 땀을 쥐고 있었고 누군가는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곧 벌어질 경기가 일생에 한 번뿐일지도 모를 정도로 큰 경기라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다.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 수없이 빛나는 선수들 중에서도 많아봐야 28명만이 밟을 수 있는 꿈의 무대. 그 무게감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다들 너무 얼어 있는 거 아냐?”

    단 한 사람만은 달랐다. 그는 평소와 똑같이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확실히 명성 같은 거야 저쪽이 위지만 실력은 너희가 밀리지 않아. 쫄지 마. 우리가 여기까지 엘리베이터라도 타고 올라왔냐?”

    지금까지 몇 번이나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주었던 그의 목소리에 또다시 그들은 힘을 얻었다.

    “나가서 보여줘. 너희들이 더 위라는 걸. 그리고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줘라!”

    남자는 힘 있게 말을 마치고 몸을 돌렸다.

    그리고 그것은 곧 그라운드에서 벌어질 전쟁의 신호탄이 되었다.

    다 커버린 미운 오리 새끼

    “아, 저거 또 웃기지도 않는 전술로 나오네, 아오.”

    어두운 방안에 동민의 혼잣말이 울려 퍼졌다. 그의 눈은 오직 컴퓨터 화면에만 고정되어 있었다.

    벌써 몇 시간째 그는 게임에 빠져 있었다. 아니, 그의 캄캄한 방 여기저기 널린 쓰레기들이 겨우 몇 시간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동민아! 너 일 가야하는 시간 다 되어 가는데 안 가니?”

    “예, 준비 거의 다 됐어요.”

    바깥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음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머리를 벅벅 긁으며 핸드폰을 보니 벌써 시간은 4시 반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하이고, 이번 판까지는 끝내고 가려고 했었더니만.”

    그는 한숨과 함께 미적거리며 옷을 갈아입고 일터로 향했다.

    버스로 20분 거리인 레스토랑. 그곳의 주방보조가 그의 일이었다.

    “동민 씨, 내일부터는 안 나와도 돼요. 나머지 월급은 똑같은 날에 들어갈 거예요.”

    오늘까지는.

    동민은 방금 들은 매니저의 말을 믿을 수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뇨.”

    “새로 일할 사람 구했으니까 안 나와도 된단 이야기예요. 그럼.”

    “아니, 무슨 일인지 이유는 말해줘야죠. 갑자기 나오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매니저는 동민의 항의에 작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까놓고 말해서 오자마자 자르고 싶었는데 사람이 없어서 안 자른 거예요. 동민 씨 근처 가면 냄새나는 거 알고 있어요?”

    매니저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졌다.

    “거기다가 맨날 이상한 눈으로 여자 손님들이나 보고 있고. 저번에 한 명이 당신 신고한다는 거 내가 겨우 말렸어! 전과자 될 뻔한 거 기껏 막아줬더니! 아무튼 그냥 남은 월급 주고 곱게 보내주는 걸 감사하게 생각해!”

    그녀의 말은 비수처럼 동민의 마음에 꽂혔다. 결국 동민은 더 이상 말하지 못하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는 길에 모두가 그를 보고 속닥대는 것 같았다.

    ‘야, 저 사람 완전 냄새나는 것 같지 않아?’

    ‘생긴 건 또 뭐고. 뒤룩뒤룩 살만 쪄서. 와, 나 같으면 집에 틀어박혀서 안 나온다.’

    ‘나이 서른 넘게 처먹고 아르바이트나 하는 인생. 왜 살지?’

    귀를 막아도 머릿속에서 울리는 속삭임에 그는 결국 편의점에서 소주를 사서 집에 들어갔다.

    “강동민, 너 오늘은 나랑 이야기 좀 하자. 이리 와 봐라.”

    집에 들어가자 퇴근한 그의 아버지가 거실에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지금 아버지의 얼굴을 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나중에 하면 안 될까요?”

    “안 돼. 빨리 이리로 와서 앉아.”

    아버지의 고압적인 말에 동민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밖에서부터 계속 들려오던 속삭임은 집 안까지 따라 들어와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저놈의 새끼도 내 자식이라고. 나이 처먹고 제대로 된 직장도 없으니 내가 명절 때 친척들을 볼 엄두가 안 나.’

    ‘아르바이트도 이제 끝이고. 내가 창피해 죽겠어, 정말. 저딴 것도 내가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니.’

    “제발 오늘만 좀 가만히 두면 안 돼요?”

    “안 돼. 오늘은 정말 너랑 이야기 좀 해야겠다. 너 대체 어떻게 살려고 그러는 거냐?”

    동민의 입에서 흘러나온 절박한 목소리에도 아버지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와 더불어 동민의 귀에 들리는 속삭임의 크기는 더욱 커졌다.

    ‘자식이라고 말하기도 창피한 게 말도 안 듣고!’

    ‘대체 어디서 저딴 게 태어나서 집안을 이렇게 말아먹는지.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시끄러워!”

    동민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울리는 속삭임들을 쫓아내려는 듯 소리를 지르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밖에서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한참 동안 들려왔지만 그는 귀를 막고 술을 들이켰다. 그리고 연거푸 술을 들이켜자 어느새 그 소리도 조용해졌다. 소주 세 병 중 두병을 비우자 세상이 빙빙 돌기 시작했다.

    “젠장, 대체 나한테 왜······.”

    그는 이 거지 같기 짝이 없는 자신의 상황이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생각했다.

    작년에 공무원 시험을 때려치운 이후였을까?

    아니면 졸업하고 아무것도 할 줄 몰라서 공무원 시험 준비나 하던 때부터일까?

    아니면 뒤늦게 공부를 시작해서 대충 점수나 맞춰 대학교를 간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그의 시선이 책장 한구석 상패에 닿았다. 자신이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던 때의 유일한 흔적이었다.

    이사를 하면서 몇 번이고 버리려 했지만 결국 버리지 못한 그 흔적만이 그도 꿈이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신호를 무시하고 달리던 한 자동차에 의해서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네가 그 꿈이 있었던 게 뭐? 지금 넌 그냥 패배자잖아.’

    “아, 진짜!”

    아무리 마셔도 사라지지 않는 환청에 그는 들고 있던 소주병을 던져 버렸다. 짜증과 함께 날아간 소주병이 책장 바로 옆 벽에 맞아 큰 소리를 내며 깨졌다.

    ‘그래, 그때부터였지. 이따위로 망가진 게!’

    새삼스레 그 뺑소니 운전자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 분노도 현재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니 침울함으로 바뀌었다. 어릴 적 꿈이 부서진 이후 완벽하게 망가져 버린 자신의 삶을 생각하니 그저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정도의 체념만이 남았다.

    ‘살고 싶지 않다, 라······.’

    그는 술에 취해 버린 머리로 그 말을 되뇌었다.

    ‘이렇게 더 살아봐야 그냥 숨만 쉬고 눈치 보는 생활의 계속일 텐데.’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길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당장 내일 아침이 되면 그의 아버지는 방문을 부수고라도 들어와 아까 있었던 일을 들이밀 것이 분명했다.

    그는 더 이상 부모님의 눈치를 보는 일에도, 세상의 눈치를 보는 일에도 지쳤다. 아버지의 화난 얼굴과 어머니의 우는 얼굴을 보는 것도 그만두고 싶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병을 들고 방문을 나섰다.

    그는 옥상에 올라와서 보는 서울의 야경에 새삼 신기함을 느끼며 난간에 앉았다. 어쩌면 곧 죽을 거라고 생각하니 그렇게 보이는 걸지도 몰랐다.

    그는 남아 있는 소주를 입에 털어 넣고 병을 내던졌다. 이미 흐려진 정신에도 용케 난간 위에 올라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새벽어둠 속을 다니는 차들의 빛도, 여기저기 보이는 네온사인들도 전부 개미처럼 조그맣게 보였다.

    “하이고, 높긴 조온나 높네.”

    뛰어내리려고 올라왔지만 막상 밑을 보니 갑자기 술이 깨고 공포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그의 손과 다리가 사시나무처럼 떨렸고 흐리멍덩해진 정신으로도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이, 이거 술 처먹고 좀 오, 오버했네. 일단 내려가야······.”

    그가 난간에 쪼그려 앉아 떨리는 다리를 움직이려 할 때, 아직 술에 취한 그의 발이 허공을 헤집었다. 그리고 균형을 잃은 그의 몸이 아래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 뭐 이런 개죽음이 다 있어!’

    떨어지는 와중에도 그는 욕을 내뱉었다. 자살 시도를 번복하려다 실수로 자살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개그였다.

    점점 더 가까워지는 지면을 바라보며 그는 눈을 감았다.

    ‘만약, 만약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음 생에는 이렇게 살지 않았으면.’

    마지막 순간 그의 머릿속에 남은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후회와 미련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의 생각은 멈췄다.

    “으아아아악!”

    동민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는 조금 전까지 옥상에서 떨어지던 것이 생각이 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그의 눈에 비치는 것은 밝은 색의 이불에 감싸여 있는 자신의 몸이었다.

    “꿈··· 인가?”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생생했지만, 옥상에서 떨어지고도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자신의 손을 보았지만 손은 상처 하나 없이 매끈했다.

    “꿈인가, 꿈이지? 하하”

    기쁨과 어이없음이 섞인 웃음이 방안에 울려 퍼졌다.

    “그래, 내 나이가 몇인데 그런 악몽에··· 어?”

    동민은 갑작스러운 깨달음에 말을 멈췄다.

    그는 자신의 손이 평소보다 훨씬 어리고 얇아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분명히 어제까지만 해도 살이 쪄 두툼했을 손은 단단해 보였다. 마치 그가 운동을 하고 있었을 때처럼.

    그가 누워 있는 방도 지금 그의 방이 아니었다.

    책장에 있는 상패는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고, 어두컴컴한 지금의 그의 방과는 달리 밝은 색들로 가득했다.

    ‘아, 여기 옛날 집이네. 잠이 아직 덜 깼나?’

    급하게 몸을 일으키자 언제나 뱃살 때문에 무거웠던 몸도 가벼워져 있었다.

    동민의 마음속에 놀라움이 커졌다가 이내 사그라졌다.

    “뭐야, 아직 꿈이구나.”

    요즘은 꾸지 않았지만 다리를 다치고 한동안 다리를 다치기 전의 꿈을 꾸곤 했었다. 오랜만이지만 지금 이 상황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 증거로 17살부터 계속 있었던 왼쪽 무릎의 상처가······.

    “어?”

    있었다. 그의 꿈이 사라져 버린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동민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하고 있자 문이 열리고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강동민! 너 오늘 학교 안 가는 날이야?”

    “엄마?······.”

    동민이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화가 난 표정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습은 마치 옛날로 돌아간 것처럼 젊어 보였다. 동민이 허송세월을 보내면서 기울어간 가세를 보여주듯 생활에 찌들어 주름이 잡혔던 손도 어린 시절의 기억처럼 매끈했다. 게다가.

    “오늘 일 나가시는 날 아니었어요? 일 안 나가시고 아침 일찍부터 미용실 다녀오셨나?”

    그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부터 익숙하지 않은 식당 일을 시작해 보기 힘들었던 그의 어머니는 식당 일은커녕 나갈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서른 살이 되었을 때부터 거의 매일 식당 일을 나가 아침에 보기 힘들었던 그의 어머니는 식당 일은커녕 나갈 생각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너 일어났으면서 뭐하는 거야? 헛소리 하지 말고 빨리 씻고 나와! 밥 다 식겠다! 너 오늘은 공강 아니잖아!”

    “공강? 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계세요?”

    “너 잠 덜 깼니? 빨리 나오라는 말 안 들려!”

    어머니의 성화에 점점 더 커져가는 혼란은 방을 나서자 절정을 맞이했다.

    눈에 익은 벽 한쪽에 달력이 붙어 있었다.

    20××년 9월.

    그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사고가 난 지 5년이 지난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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