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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192화 (1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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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48. 키아벨리아스 (3)

    [누가 널 속였다는 것이냐! 단지 조금 얘기를 덜했을 뿐이다. 건방진 호비트 놈! 감히 나에게 대들다니! 크하하하!]

    키아벨리아스는 균열을 막느라 뇌전의 기운을 뿌리던 손을 거둬들이고는 통쾌하다는 듯 더 크게 웃었다.

    “으윽! 네, 네놈은 약속을, 커헉! 약속을 지키지 않겠다는 거냐! 끄으으으…….”

    정천우는 자신의 몸을 타고 흘러들어 오는 엄청난 기운에 맞서며 힘겹게 대답했다.

    [누가 약속을 어긴다더냐!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

    “아아악! 중원으로 보내 주겠다고 하지 않았느냔 말이다!”

    [큭! 내가 당장 보내 주겠다고 했나?]

    키아벨리아스는 조롱기가 다분한 목소리로 약을 올렸다.

    “……빌어먹을 도마뱀 자식아! 크으윽!”

    정천우는 놈에게 속았다는 걸 깨달은 순간 치밀어 오르는 분노 때문에 하마터면 주화입마에 빠질 뻔했다.

    [수고해라! 난 그동안 밀린 잠이나 좀 자야겠으니까. 대신에 네놈이 죽지 않도록 영구 회복 마법진을 설치해 주도록 하지. 크하하하!]

    키아벨리아스가 크게 웃으며 손을 내밀자 정천우가 앉은 자리에 룬어로 이루어진 기하학적인 형태의 문양이 만들어지면서 빛을 발했다.

    “……개자식아! 으윽! 야!”

    정천우가 이를 뿌드득 갈며 소리쳤지만 키아벨리아스는 듣기 싫다는 듯 사일런트 마법을 걸고는 그대로 코를 골았다.

    “크악! 개, 개 같은 도마뱀 새끼! 으아악!”

    정천우가 비명을 지르면서 괴로워했다.

    마계와 지상계를 잇는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마기는 그가 이제껏 경험했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그의 육체를 바스러뜨릴 듯 파괴적인 기운이 손바닥을 타고 흘러들어 왔다.

    아무리 키아벨리아스를 불러도 소용없었다. 동공이 울릴 정도로 코를 골아 대는 빌어먹을 도마뱀은 전혀 그의 고통을 덜어 줄 생각 따윈 없는 게 분명했다.

    “끄으윽! 망할 도마뱀 새끼야아!”

    으드득!

    정천우가 잇몸을 드러내며 필사적으로 고통을 참았다.

    믿을 건 오직 혼원벽력신공밖에 없었다. 무지막지하게 밀려드는 마기에도 용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혼원벽력신공 덕분이었다.

    ‘죽인다! 살아 나가기만 하면 네놈을 가만두지 않겠어!’

    정천우는 육체가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받는 와중에도 좌절하기보다 분노하며 상황을 헤쳐 나가려고 버둥거렸다.

    파괴적인 마기에 의해 파손된 육체는 환골탈태를 거치면서 지니게 된 엄청난 회복 능력과 키아벨리아스가 설치한 회복 마법진의 힘으로 자가 복구에 들어갔다.

    정천우는 육체가 짓이겨지는 고통을 참아 내면서 혼원벽력신공을 전력으로 운용했다.

    파지직, 파직! 파지지직!

    정천우의 육체에서 뇌전의 기운이 뻗어 나와 스파크를 일으켰다.

    혼원벽력신공의 기운이 최고조에 달하면서 마기에 의해 손상을 입는 것보다 신체가 복구되는 속도가 빨라졌다.

    칠공(七空)에서 흐르던 피가 멎고, 혈맥을 찢으면서 파고들던 마기가 혼원벽력신공과 조화를 이루어 가려는 조짐이 나타났다.

    고오오오오…….

    균열에서 흘러나오는 마기가 일정한 흐름을 만들면서 정천우의 몸으로 빠르게 흡수되었다.

    마법진 위에 앉아 있던 정천우의 몸이 들썩이더니 허공에 떠올랐다. 그의 전신에서는 뇌전의 기운이 마기를 정화시키면서 대기 중으로 되돌렸다.

    단지 정화한 기운을 대자연의 품으로 돌려보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과포화 상태의 단전이 조금씩 변화를 일으켰다.

    투둑, 툭…… 투두둑…….

    포화 상태를 이기지 못한 단전이 형태를 변화시키면서 진동을 일으켰다.

    그 소리는 오직 정천우의 귀에만 들렸다. 밖에서 보면 정천우의 몸이 조금씩 흔들린다는 정도의 변화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의 내부에서는 끊임없이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마기를 정화한 기운이 단전을 자극하고, 단전은 어떻게 해서든 정화된 기운을 몸으로 받아들이려 진화를 시도했다.

    압력을 견디다 못한 하단전은 새로운 저장 창고를 요구했다. 방법을 강구하던 하단전은 가느다란 출구를 발견하고서는 단전에 쌓인 막대한 기운으로 새로운 출구를 두들겼다.

    중단전.

    무인이라면 누구나 개발하기를 바라는 두 번째 단전이었다. 무림 역사상 중단전을 개발했다는 인물은 손에 꼽을 만큼 어려웠다.

    신인(神人)의 경지에 오르는 바탕이라고 여겼을 만큼 개발하기 난해한 게 바로 중단전이었다.

    유입되는 마기의 양이 많아지면서 단전에서 출발한 내공은 중단전으로 이어지는 경맥을 더욱 세차게 뚫어 댔다.

    두두둑!

    “푸확!”

    하단전에서 가슴 부근의 명치까지 쇠꼬챙이가 관통하는 것만 같은 고통을 받으면서 정천우가 입으로 검붉은 핏물을 토했다.

    츠즈즈즛…….

    하단전에 가득 찼던 내공이 급격히 중단전을 향해 빠져나갔다.

    좁은 듯했던 중단전은 하단전의 내공을 모조리 받아들였다. 그러자 혼원벽력신공은 마기를 정화해 대자연의 품으로 보내는 대신에 하단전에 밀어 넣었다.

    내공이 충만하게 차오르면서 정천우의 몸에서 뇌전의 기운이 더욱 거세지고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피부가 쩍쩍 갈라지고 전신에서 뼈가 부서지는 소음이 연달아 흘러나왔다.

    두 번째 환골탈태.

    정천우가 겪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고 생각했던 건 착각이었다. 한계를 넘어서는 기운이 끊이지 않고 쏟아져 들어오는 바람에 육체는 필요에 의해서 변화를 일으켜야만 했다.

    괴로움에 얼굴을 일그러뜨리던 정천우가 점차 평온한 모습으로 바뀌어 가기 시작했다.

    ***

    키아벨리아스는 꿈을 꾸고 있었다.

    연구실에서 새로운 마법을 창조하던 천 년 전의 모습이 꿈이라는 형태로 재현되고 있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말리고 싶군.’

    키아벨리아스는 꿈을 꾸면서도 후회의 감정을 드러냈다. 엄청난 정신력을 자랑하는 드래곤이었기에 꿈을 꾸면서도 이렇듯 생각까지 할 수 있었다.

    꿈속에서 키아벨리아스는 황금색 머릿결을 가진 인간의 모습으로 마법 연구를 진행하는 중이었다.

    그가 시도하려는 마법은 다른 차원의 에너지를 자신의 레어에 끌어와 자신의 드래곤 하트를 더욱 강화하는 것이었다.

    이미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실험은 성공을 거두었다. 직접 다녀오기까지 했다. 자신이 사는 대륙과는 달리 마법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 곳이었다.

    바로 중원이라는 곳이었다.

    특이한 세계를 경험하면서 유희를 즐겼는데, 그 과정에서 무공이라는 것을 배워야만 했다. 그러나 단전이 없는 키아벨리아스는 막대한 마나를 이용해 강호인들을 농락했다.

    그가 사용했던 마법들은 고스란히 강호인들에게 전설로 남았다.

    블링크 마법은 이형환위(移形換位)라는 보법의 최상승 경지를 뜻하게 되었다. 플라잉 마법은 신법의 최상승 경지라는 능공허보(凌空虛步)가 되었다.

    ‘맞아! 그런데 그걸 진짜로 해내는 놈이 있을 줄이야. 인간이라는 호비트는 정말 가끔 날 놀라게 해.’

    키아벨리아스는 꿈에서조차 감탄했다.

    균열을 봉쇄하는 임무를 강제로 떠넘긴 중원인이 보여 준 수법은 마법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인간 호비트는 육체의 단련을 통해 실제로 그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 줬다.

    ‘아…… 정말 내가 미쳤지!’

    키아벨리아스가 탄식을 터트렸다.

    꿈속의 금발 사내가 마법진을 완성한 다음에 벌어질 일을 미리 알고 있다. 마계에 엿(중원이라는 곳에서 배운 말이다)을 먹이려고 했다가 외려 자신이 엿을 먹게 될 거라는 미래를 안다.

    금발 사내가 마법진을 활성화시킨 순간, 시커먼 공간이 열리면서 마신이 튀어나왔다.

    마신의 힘은 엄청났다. 금발 사내의 마법은 맨몸으로 받아 냈다.

    어쩔 수 없이 본체로 몸을 돌리고서야 마신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마신은 또 튀어나왔다.

    ‘빌어먹을…… 끔찍했지.’

    키아벨리아스가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며 마신과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니 참으로 멍청했다. 마신이라는 존재에 당황해서 불필요한 마법을 남발하느라 효율적으로 싸우지 못한 게 티가 났다.

    ‘이쯤에서 크게 한번 당하지.’

    키아벨리아스는 더욱 마음이 착잡해졌다.

    두 번째로 튀어나온 마신은 육체 능력이 엄청났다. 드래곤의 마법쯤은 맨몸으로 버티면서 뚫고 나왔다.

    마신은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번개들을 뚫고 나와 기어이 본체로 변신한 키아벨리아스의 몸에 주먹을 날리고 있었다.

    꽈앙!

    ‘헉! 꿈이 너무나도 생생하구나!’

    키아벨리아스는 마신의 주먹이 등을 두들기는 것과 동시에 몸에 진동이 일어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쾅! 쾅! 쾅!

    ‘이, 이건 꿈이 아니야! 대체 누가!’

    키아벨리아스는 재빨리 의식을 일깨워 가기 시작했다.

    단순히 꿈이라면 몸 전체를 울리는 진동이 일어날 수가 없다. 이건 꿈에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현실에서 누군가 자신이 여러 개로 겹쳐 놓은 앱솔루트 실드를 공격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조급한 마음에 키아벨리아스는 잠에서 깨어나면서부터 주문을 외웠다. 정신을 온전히 수습해야만 용언 마법을 사용할 수 있기에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크와아악! 웬 놈이냐! 라이트닝 인피니티(Lightning Infinity)!]

    키아벨리아스는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마법부터 사용했다. 자신의 주변 공간을 번개가 몰아치는 지역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망할 놈의 도마뱀 새끼! 죽어라!”

    대답은 즉시 들려왔다.

    [헉! 네, 네놈이!]

    키아벨리아스는 헛바람을 집어삼키면서 놀라워했다.

    자신의 마법이 발현된 것까지는 좋았는데, 인간 놈의 역천검으로 모조리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거의 5~6미터까지 뻗친 역천검을 들고 자신을 후려치고 있었다. 안전한 수면을 위해서 여덟 겹이나 둘러쳤던 앱솔루트 실드는 겨우 두 겹밖에 남지 않았다.

    잠결에 느꼈던 진동은 앱솔루트 실드가 파괴되면서 일어난 진동이었던 것이다.

    [브, 블링…… 크아악!]

    콰과광!

    레어 밖으로 몸을 피하려던 키아벨리아스가 비명을 질렀다.

    마법은 완성하지도 못했다. 앱솔루트 실드를 파괴하고서 박혀 든 오러 블레이드는 무지막지한 고통을 선사했다.

    “이 개 같은 도마뱀 새끼! 나를 물 먹여? 죽어! 확 뒈져 버려!”

    쾅, 콰광! 쾅!

    [크악! 아아악! 우워어!]

    키아벨리아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비명을 질러 대는 게 고작이었다.

    숨 쉴 틈 없이 날아드는 오러 블레이드는 단단하기 그지없는 자신의 비늘을 부수며 살 속에 푹푹 박혔다가 빠져나갔다. 시뻘건 핏물이 사방으로 튀었다.

    “다져 버리겠어!”

    정천우는 눈이 반쯤 돌아간 채로 연달아 혼원벽력도법을 사용했다. 뇌전의 기운이 이글거리는 오러 블레이드로 키아벨리아스를 손쉽게 쑤셔 댔다.

    뇌전의 속성을 지닌 키아벨리아스였지만 속성력은 아무런 의미를 발휘하지 못했다. 감당할 수 없는 뇌전의 기운이 몸속을 휘젓고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고통을 줄여 보고자 몸을 웅크리는 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러나 워낙 거대한 덩치였기에 웅크려 봐야 의미가 없었다.

    콰광! 쾅!

    [사, 살려 줘…….]

    키아벨리아스는 급기야 눈물을 펑펑 흘리며 애원했다. 애원이 통했는지 갑자기 공격이 뚝 끊겼다. 살았다고 생각한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키아벨리아스의 눈은 공포로 물들었다.

    허공에 떠서 살기를 풀풀 날리면서 자신을 내려다보는 정천우의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킥! 아주 가루로 만들어 주지. 기대해.”

    정천우가 역천검을 들었다.

    그 순간 주변의 모든 기운이 역천검으로 빨려 들어가는 착각이 일어났다.

    [자, 잠깐!]

    역천검에 흐르는 기운을 읽은 키아벨리아스가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런 걸 맞으면 제아무리 드래곤의 몸이라고 하더라도 한순간에 가루가 될 것 같았다. 마치 브레스를 몇십 개나 압축한 듯 파괴적인 기운이 역천검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닥쳐! 죽을 준비나 해!”

    [나만이 널 중원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 으으으아아악!]

    꽈과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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