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90화 (190/200)
  • # 190

    Chapter 48. 키아벨리아스 (1)

    [지금…… 뭐라고 지껄였지?]

    파지직!

    정천우의 막말에 분노가 치밀어 오른 키아벨리아스의 전신에서 뇌전의 기운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귀가 썩었냐? 네놈이 키아벨리아스라는 빌어먹을 골드 드래곤이냐고 물었다.”

    안에 들어오자마자 키아벨리아스가 아랫사람 대하듯 막말을 해 대는 것에 열 받은 정천우는 싸한 얼굴로 말했다.

    가뜩이나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동대륙에 끌려와 짜증 나는 판이었다. 상황을 이렇게 만든 주범이란 놈이 싸가지 없게 지껄이는 말을 참아 낼 정천우가 아니었다.

    이미 인간계에서는 최고의 무력을 가졌고 스스로도 자신의 무력이 어떠한지 잘 아는 정천우다.

    결정적으로, 키아벨리아스가 시커멓게 뚫린 균열에 힘을 쏟아붓고 있다는 걸 눈치챈 다음이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자신에게 아주 유리한 상황이었다. 정천우는 턱을 치켜들고 키아벨리아스를 올려보았다. 그의 표정이나 눈빛은 아니꼬운 기색이 역력했다.

    [이, 이! 빌어먹을 인간 놈아! 내가 네놈을 얼마나 오래 기다려 왔는지 아느냐!]

    “웃기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누가 기다려 달랬어? 아니지! 왜 부른 건데? 내가 오고 싶다고 했어? 이거 완전히 이기적인 새끼네?”

    [뭣? 호비트 따위가 감힛! 썬더 빔(Thunder Beam)!]

    파즈즈증!

    눈을 부릅뜬 키아벨리아스가 용언 마법을 사용해 뇌전으로 이루어진 광선을 발사했다.

    정천우가 죽어 버리면 곤란해지기 때문에 최강의 마법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그저 따끔한 맛을 보여 주기 위해서 공격한 것뿐이었다.

    정천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마나의 기운이 일반적인 인간의 기준을 넘어서고 있었기에 안심하고 마법을 사용했다. 대신에 최대한 고통스럽게 해 주기 위해서 지속성이 강한 뇌전의 마법을 골랐다.

    지지직…….

    그러나 정천우는 키아벨리아스가 용언 마법으로 발사한 썬더 빔 마법을 역천검으로 간단하게 막았다.

    “먼저 공격했다 이거지? 그래, 나도 처음부터 말로 할 생각 따윈 없었다. 차압!”

    정천우가 콧잔등을 꿈틀대며 역천검에 내공을 담았다.

    키아벨리아스의 마법을 흡수한 역천검이 오러 블레이드의 기운을 더욱 증폭시켰다. 평소와 비슷한 양의 내공을 담았지만 오러 블레이드는 평소보다 두 배 이상 크고 강하게 형성되었다.

    [아차! 라이트닝 인피니티(Lightning Infinity)!]

    자신이 무슨 실수를 저질렀는지 깨달은 키아벨리아스가 급하게 8서클의 마법을 사용했다.

    제아무리 마나를 많이 품고 있어도, 거기에 자신이 만든 아티펙트를 가지고 있어도, 호비트 따위가 8서클의 용언 마법을 견딜 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천우가 살려 달라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 때까지 절대로 마법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엥?]

    키아벨리아스는 헛바람 소리를 내며 정천우를 쳐다보았다.

    벼락이 굉음을 내면서 쉼 없이 내리쳤다. 그 속에서 정천우는 유유자적하게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무시무시한 크기로 떨어지는 벼락은 역천검에 쪽쪽 빨려 들었다.

    단지 벼락을 흡수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역천검에 맺힌 오러 블레이드가 더욱 덩치를 불려 가고 있었다.

    “크흐흐흐…… 넌 뒈졌어!”

    기운을 받아들이면서 힘을 비축하던 정천우가 기합처럼 악을 쓰면서 달려들었다.

    [우욱! 이런 제길! 앱솔루트 실드(Absolute shield)!]

    예상을 벗어난 정천우의 능력에 키아벨리아스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절대 방어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는 사이, 정천우는 빛과 같은 속도로 몸을 날려 신검합일(身劍合一)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몸과 역천검이 하나가 되어 쏘아지는 모습은 뇌전으로 이루어진 창을 보는 듯했다.

    쿠구궁!

    [크윽! 이런 미친!]

    키아벨리아스는 예상치 못한 충격에 욕설을 터트렸다.

    드래곤 하트가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공격이었다. 앱솔루트 실드가 희미해질 정도로 무시무시한 공격이 아닐 수 없었다.

    다행스러운 게 있다면 앱솔루트 실드 마법에 의해 정천우가 튕겨 나갔다는 점이다. 만약 후속 공격이 있었다면 앱솔루트 실드가 깨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심장이 떨린 키아벨리아스가 재빨리 앱솔루트 실드 마법을 한 겹 덧씌우고 9서클의 마법을 준비했다.

    용언으로 급하게 사용하기보다는 주문을 외워 제대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용언으로 마법을 사용하면 속도는 빠르지만 위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ЖЙПБЫЙЭб…… 루인 오브 그라운드(Ruin of ground)!]

    그그그긍…….

    “이건 또 뭐야?”

    정천우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키아벨리아스의 거대한 몸뚱이를 공격한 순간, 엄청난 반탄력이 발생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천근추의 수법을 사용해 날아가는 속도를 줄이지 않았더라면 동굴 벽에 박혔을 게 확실했다.

    신검합일에 의해 호신강기가 몸을 보호하지 않았더라면 심각한 내상을 입었을지도 모를 만큼 끔찍한 반탄력.

    과연 인간계 최강의 생물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괴물이었다. 그런 괴물이 뭐라고 씨부린 순간, 괴상한 현상이 일어났다.

    주변의 땅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갔다. 아니, 썩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달랐다. 썩는 게 아니라 땅바닥이 시커멓게 죽어 가고 있었다.

    [크흐흐흐! 건방진 호비트! 괴로워하라! 살려 달라고 애원해라!]

    키아벨리아스가 통쾌하다는 듯 크게 웃으며 소리쳤다.

    루인 오브 그라운드(Ruin of ground).

    일정 공간을 죽음의 땅으로 만드는 9서클의 궁극기였다. 루인 오브 그라운드의 마법이 걸린 땅바닥과 접촉하면 접촉 부위부터 썩어 들어가고 부스러진다. 인간의 육신 따위는 아무리 단련한다고 해도 난로 위에 얹은 눈 뭉치처럼 녹아내려 사라질 것이다.

    원래는 광역 마법이었지만 자신의 레어 전체에 사용할 수 없었기에 범위를 줄이는 대신 위력을 압축했다.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

    키아벨리아스는 이를 뿌드득 갈았다.

    필요에 의해서 인간을 끌어들였을 뿐이다. 말 잘 듣는 놈을 원한 것이지, 자신에게 덤벼드는 놈을 원한 게 아니다.

    말을 안 들으면 본때를 보여 줘서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야 한다. 울며불며 살려 달라고 애원하는 놈을 구해 주고, 골드 드래곤의 위대함을 알려 줄 생각이었다.

    키아벨리아스는 느긋하게 자신이 만들어 놓은 루인 오브 그라운드의 마법이 펼쳐진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무슨…….]

    키아벨리아스는 입이 떡 벌어졌다.

    빌어먹을 호비트가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는 얼굴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빌어먹을 호비트가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마법? 아니야! 플라이 마법 따위로는 루인 오브 그라운드의 흡인력을 감당할 수 없어! 그럼 뭐지?’

    키아벨리아스는 정천우가 허공에 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분명히 마법은 아니다.

    9서클의 마법 앞에선 허접한 마법 따위가 힘을 쓸 수 없다. 결정적으로, 자신을 건방진 눈깔로 쳐다보는 호비트는 마법사가 아니었다.

    능공허보(凌空虛步).

    정천우가 사용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보법으로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중원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펼쳐진 것이다.

    “개나 소나 마법을 펑펑 사용하네. 하여간 이 동네 놈들은 더럽게 사람 귀찮게 한다니까!”

    정천우가 투덜거리고는 내공을 움직여 루인 오브 그라운드 마법이 펼쳐진 지역을 빠져나왔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장화 바닥이 땅에 닿는 순간 녹는 것을 보고서 재빨리 능공허보를 발휘했다. 만약 멍청하게 그대로 있었다가는 낭패를 당했을 게 분명했다.

    “씨발, 생각해 보니까 더 열 받네? 일단 좀 맞자!”

    정천우가 눈에 힘을 주었다.

    그러고는 빛살처럼 앞으로 튀어 나갔다. 호신강기에 둘러싸인 그의 몸은 빛의 꼬리를 만들었다. 역천검을 한껏 치켜들었다가 금색으로 번쩍이는 키아벨리아스의 몸체를 후려쳤다.

    쾅! 콰광! 쾅! 콰과광!

    [크으윽! 망할 호비트! 죽어랏!]

    키아벨리아스는 앱솔루트 실드를 마구 후려치는 정천우를 향해 꼬리를 휘둘렀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다는 드래곤의 비늘로 둘러싸인 거대한 꼬리가 정천우를 노렸다.

    “흥! 누가 맞아 줄 것 같냐?”

    정천우가 코웃음을 치면서 허공으로 솟구쳤다.

    솟구치는가 싶었던 정천우의 몸은 허공을 훑고 지나간 꼬리를 따라붙으면서 오러 블레이드를 잔뜩 품은 역천검을 마구 내리쳤다.

    [끄와악! 이 망할 호비트가!]

    크훠허헝! 파지직! 파지지직!

    숨을 크게 들이마신 키아벨리아스가 분노의 함성과 함께 입을 쩍 벌렸다.

    싯누런 빛을 발하는 기체가 그의 입을 통해 마구 쏟아져 나왔다. 뇌전의 기운을 잔뜩 품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브레스였다.

    에이션트급 이상의 드래곤만이 사용할 수 있다는 권능이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뇌전의 힘으로 터트리는 무지막지한 위력을 담은, 골드 드래곤의 최종 병기였다.

    쿠구구구궁, 쿠구궁!

    에이션트급 골드 드래곤인 키아벨리아스의 브레스는 파괴적인 기운을 담아 마구 분출되었다. 브레스가 동굴 벽에 부딪치면서 뇌전의 기운이 공동을 가득 채워 나갔다.

    파괴적인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 동굴 벽이 부서지면서 공동이 조금씩 넓어졌다. 동굴이 부서지면서 바닥에 돌조각이 쌓이고, 흙먼지가 브레스와 함께 뒤섞여 날아다녔다. 그럼에도 브레스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영겁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고서야 브레스가 멈췄다. 체내에 쌓였던 기운을 소진한 키아벨리아스가 숨을 헐떡거리면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크르륵, 크륵…… 지긋지긋한 호비트 놈! 내게 덤벼든 대가는 죽음이다! 크하하하하!]

    키아벨리아스는 자신의 브레스에 존재감마저 사라진 정천우를 생각하면서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못했다.

    [비, 빌어먹을! 내가 미쳤지. 또 언제 다른 호비트가 나타나길 기다린단 말인가! 아아아…….]

    키아벨리아스는 후회가 담긴 탄성을 터트리며 자신의 무식함을 원망했다.

    무려 천 년 만에 나타난 구원자를 브레스로 녹여 버렸다. 이제 자신을 도와줄 또 다른 존재가 언제 다시 찾아올지 기약조차 없는데.

    “염병하고 있네!”

    파바방!

    [뭣? 어억! 크아악!]

    “망할 도마뱀 새끼!”

    죽었다고 생각했던 정천우가 먼지 속에서 빛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이며 키아벨리아스의 몸체를 마구 두들겼다.

    자욱한 흙먼지 때문에 정천우를 쉽사리 발견할 수 없었던 키아벨리아스는 속수무책으로 얻어맞을 수밖에 없었다.

    전신에 뇌전의 기운을 가득 품은 정천우의 움직임은 가히 전광석화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키아벨리아스가 뿜어낸 브레스는 정천우의 단전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브레스 역시 대자연을 구성하는 기운의 일종이었다.

    혼원벽력신공이 주변에 넘쳐나는 뇌전의 기운을 더욱 쉽게 받아들였다. 덕분에 브레스의 기운은 정천우에게 아무런 위해도 주지 못했다. 다만 순수한 기운을 받아들이면서 단전에 압박이 가해졌기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뿐이다.

    브레스가 끝난 순간 정천우의 몸도 자유를 되찾았다.

    전신에 솟는 활력은 이제껏 쌓였던 피로를 말끔하게 풀어 주었다. 역천검에 맺힌 오러 블레이드는 처음 마법 공격을 받았을 때보다 몇 배나 더 커져 있었다.

    골드 드래곤의 뼈로 만들었기에 브레스의 기운을 한계까지 쪽쪽 빨아들인 결과였다.

    정천우는 거대해진 오러 블레이드로 키아벨리아스를 사정없이 두들겼다.

    쾅! 콰광! 쾅! 콰과광!

    콰득! 우직, 우지직!

    앱솔루트 실드가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부서진 이후, 키아벨리아스는 지옥을 경험해야만 했다.

    [그만, 그만하라! 멈추란 말이다!]

    정신없이 역천검에 얻어맞은 키아벨리아스가 비명을 질렀다.

    그의 절규를 들었음인지 잠시 공격이 멈췄다.

    키아벨리아스는 안도했다. 그나마 말이 통하는 놈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숨을 헐떡였다.

    그런 키아벨리아스의 앞에 정천우가 거대한 오러 블레이드를 품은 역천검을 들고 나타났다.

    “넌 그 씨발 놈의 주둥이부터 고쳐야겠어.”

    [뭐?]

    키아벨리아스는 정천우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꽈앙!

    정천우의 역천검이 키아벨리아스의 거대한 입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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