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83화 (183/200)
  • # 183

    Chapter 46. 사기꾼 새끼들 (1)

    함선과 수송선을 탄 원정군은 긴장한 얼굴로 갑판 위에 올라온 상태였다.

    원정군은 기사고 병사고 할 것 없이 손에 크로스보우를 쥐고 있었다. 함선과 수송선에 장착한 발리스타를 장전한 채 육지를 향해 겨누었다.

    육지가 1킬로미터 정도 남을 즈음에는 병사들에게도 서대륙의 항구 상태가 보였다. 자신들을 공격하리라는 걸 확연하게 알 수 있었다.

    높다랗게 조립된 트레뷔셰의 위용은 그들이 어떤 마음을 먹었는지 순식간에 드러났다. 다가오면 공격하겠다는 노골적인 뜻이다.

    원정군은 불안하기만 했다.

    배의 속도라는 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무려 오십 척의 배가 항구에 들어가야 한다. 지금의 속도라면 트레뷔셰의 사거리에 들어가는 순간, 엄청난 공격을 당할 게 분명했다.

    싸우는 것이야 그렇다 쳐도, 배에서 내리는 것부터가 위험한 상황이었다.

    가까워지는 서대륙의 항구를 초조한 얼굴로 지켜보던 주소용 후작이 정천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말 괜찮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금 우리의 전력으로 충분합니다. 항구에 500미터 거리까지 접근했을 때 마법사들이 일제히 마법 공격을 퍼붓기만 하면 됩니다. 그 뒤에는 제가 항구에 뛰어들어 공간을 만들 겁니다. 다른 분들은 준비하고 계시다가 항구에 닿고 나서 뛰어들어 주시면 됩니다.”

    정천우는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평온하게 말했다.

    그러나 주소용 후작으로서는 이만저만한 걱정이 아니었다. 정천우의 말은 ‘드래곤을 잡아서 목을 비틀어 죽입니다.’라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드래곤이라고 할지라도 목을 비틀면 당연히 죽겠지만 ‘어떻게?’라는 부분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지금 정천우의 말은 ‘어떻게?’가 빠져 있었다.

    “으음…… 할 수 없다고 생각되면 일단은 대기하도록 하겠어요.”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정천우가 빙그레 미소를 지으면서 서대륙의 항구를 쳐다보았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럴수록 정천우가 탑승한 배 안의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애초에 마법사들만 탄 함선이었는데, 정천우가 마스터급 기사들만 넘어오라고 해서 그대로 실시했다. 정천우가 생각해 낸 방법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트레뷔셰가 날리는 돌덩이에 맞아 배가 침몰할 것만 같았다.

    “으음…….”

    주소용 후작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가장 선두에서 배를 몰고 가는 중이었기에 집중포화가 어디로 향할 것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안다. 항구의 병사들이 꼬물거리는 게 이제는 훤하게 보일 정도였다.

    가뜩이나 심란해 죽겠는데 갑판에 나온 마법사들이 주문을 외우는 소리가 그녀를 더욱 정신 사납게 만들었다.

    “마법을 사용하라!”

    정천우가 나직하지만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명령을 내렸다. 항구와 500미터가량 남겨 둔 시점에서 떨어진 명령이었다.

    마법사들이 일제히 손을 뻗어 항구를 가리켰다. 항구를 향해 형형색색의 마법이 쏘아졌다.

    그중에서 단연 두각을 보이는 것은 샤칼의 7서클 마법이었다. 거대한 불덩이가 회전을 일으키며 날아가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마법 중지! 전속력으로 항구를 향해 간다!”

    정천우는 마법사들에게 공격 중지 명령을 내리고는 배에서 뛰어내렸다.

    “아앗! 천우 경! 천우 경!”

    주소용 후작이 대경실색하며 정천우가 떨어진 곳을 향해 달려갔다.

    “으응? 저, 저럴 수가!”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던 주소용 후작이 입을 쩍 벌리면서 제자리에 멈췄다.

    정천우가 바다 위를 평지처럼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가질 않았다.

    속도도 평범하지 않았다. 건장한 말이 달리는 속도보다도 더 빨랐다. 저런 속도라면 몇 초 만에 항구에 닿을 게 분명했다.

    “오오오!”

    “와아아아아!”

    병사들과 기사들 사이에서 함성이 튀어나왔다.

    무작정 배를 이끌고 돌진할 때는 정천우를 원망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정천우의 실력을 알기에 아무런 걱정이 되질 않았다.

    그가 항구에 도착하면 원거리 무기 따위는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파바바박! 파박!

    정천우는 넘실거리는 파도를 밟으면서 항구를 향해 앞으로 쭉쭉 나아갔다.

    등평도수(登萍渡水).

    내공이 경지에 다다르면 힘을 줄 곳이 약간만 있어도 운신하는 데 무리가 없어진다. 등평도수라는 것은 최상승의 경신법으로, 물 위를 평지처럼 달리는 기술이다.

    그가 발을 디딜 때마다 파도가 부서지면서 하얀 포말이 일어났다.

    서대륙의 항구에선 난리가 났다.

    마법으로 이루어진 불꽃과 얼음이 폭발을 일으키는 바람에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그런 와중에 바다를 육지처럼 뛰어다니는 정천우를 발견하고는 더욱 혼란이 가중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천우는 허리춤에서 역천검을 뽑아 들고 연이어 전방을 향해 휘둘렀다. 오러 블레이드가 역천검에서 불쑥 일어났다.

    “가랏!”

    정천우가 씹어뱉듯이 소리쳤다.

    역천검에서 플라잉 오러가 대여섯 개나 발사되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플라잉 오러와는 미묘하게 달랐다. 이전까지의 플라잉 오러는 날카로운 오러 블레이드가 맹렬하게 회전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역천검에서 발사된 플라잉 오러는 둔탁한 느낌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통나무를 잘라 한쪽 끝을 잡고서 던진 느낌이었다.

    휭, 휭, 휭!

    콰과광! 콰광, 쾅!

    둔탁한 파공음을 일으키며 날아간 플라잉 오러가 굉음을 일으키고 폭발했다.

    폭발에 휩쓸린 서대륙 병사의 몸뚱이가 허공을 날았다. 폭발이 일어난 곳은 흉물스럽게 크레이터가 생겨났다. 그러나 공격은 그게 시작이었다.

    콰광! 콰과광!

    엄청난 폭음이 연달아 터졌다.

    그러는 사이, 항구에 도착한 정천우가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한 움직임을 보였다.

    가장 먼저 그가 노린 것은 트레뷔셰였다. 새롭게 선보인 플라잉 오러를 여섯 개의 트레뷔셰에 사이좋게 두 방씩 쏘아 보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마법사나 실력 있는 기사가 방어할지도 모를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플라잉 오러를 막아서는 존재는 없었다.

    정천우는 몰랐지만 샤칼이 7서클의 마법을 날리는 사이에 서대륙의 마법사들이 캔슬 마법을 시전했다. 그러나 7서클이라는 감당할 수 없는 마력에 오히려 캔슬 마법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런 곳에 정천우가 신형 플라잉 오러를 쏘아 보내는 바람에, 마나 역류에 고통스러워하던 마법사들은 저항조차 못한 채 전멸하고 말았다.

    트레뷔셰가 파괴되는 것을 확인하면서 발리스타를 향해 날아갔다. 트레뷔셰와 비교하면 크기가 작지만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정도련과 싸운 전장에서 쓴맛을 톡톡히 경험했다.

    “걸리적거리는 놈은 다 죽인다아!”

    정천우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의 역천검에 오러 블레이드가 검 끝보다 1미터나 더 높이 솟아났다. 그것으로 풀을 베듯 마구 휘저었다. 기사가 되었든 병사가 되었든 썩썩 썰렸다.

    역천검을 휘두르면 지나가는 자리에는 서대륙 기사와 병사들의 신체 일부가 아무렇게나 피바다 속에 나뒹굴었다.

    “으아아아!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

    “도, 도망쳐!”

    앞을 막아선 기사들마저 몸통이 갑옷째 썩썩 썰리는 것을 본 병사들이 핏기가 빠진 얼굴로 등을 돌렸다.

    정천우가 항구를 휘젓는 사이, 항구에 거의 다다른 원정군 함선에서 마스터급 기사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선두에는 주소용 후작이 오러 블레이드를 생성하면서 달려 나왔고, 팽우룡을 비롯한 나머지 마스터급 기사들이 그 뒤를 따랐다.

    “선박이 완전하게 접안할 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마라!”

    주소용 후작은 겁에 질려 허둥대는 병사들을 오러 블레이드로 학살하면서 소리쳤다.

    무려 7명의 마스터급 기사들이 부챗살처럼 흩어지면서 오러 블레이드를 마구 뿌려 댔다.

    항구를 지키기 위해서 몰려들었던 서대륙의 병사들은 죽음을 몰고 다니는 동대륙의 기사들이 자신이 있는 쪽으로 오지 않기를 빌며 무기를 버리고 내달렸다.

    정천우의 손에 기사들이 가장 먼저 죽임을 당한 탓에 명령권자가 없어 병사들은 더욱 혼란에 빠졌다.

    원정군의 마스터급 기사들은 서대륙 병사들을 학살하고 또 학살했다. 억압당한 지난 세월을 보상 받기라도 하듯 일말의 자비도 망설임도 없었다.

    “우와아아아! 의혈맹! 의혈맹!”

    드디어 접안에 성공한 원정군의 함선과 수송선에서 기사들과 병사들이 대거 밀려 나왔다. 단 한 명의 손실도 없이 항구에 내린 것이다.

    먼저 항구에 내려 학살을 벌이던 정천우와 마스터급 기사들은 원정군이 진을 구축한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기사들은 본진과 합류하라!”

    정천우가 내공을 담아 크게 소리쳤다.

    주소용 후작을 비롯한 마스터급 기사들이 서대륙 병사들의 목을 베면서 본진을 향해 달려갔다.

    원정군의 마스터급 기사들은 무지막지한 신체 능력을 앞세워 순식간에 본진에 합류했다. 하나같이 온몸에 피를 잔뜩 뒤집어쓴 상태였다.

    주소용 후작은 합류하기가 무섭게 잔인한 명령을 내렸다.

    “2열 준비! 1열 발사! 3열 준비! 2열 발사!”

    투두둥! 투둥퉁!

    크로스보우의 시위가 연달아 쿼렐을 발사하는 요란하게 울렸다. 우왕좌왕하던 서대륙의 병사들은 쿼렐에 맞아 우수수 쓰러졌다.

    원정군을 공격하기 위해서 항구에 집결했던 서대륙 병사들은 잇따른 무자비한 공격에 도망치기 바빴다. 긴장했던 것에 비해서 너무나 쉬운 싸움이었다.

    이제껏 공물을 바쳐 가면서 눈치를 보아 왔던 것과는 전혀 다른 허무한 결과였다.

    “사격 중지! 사격 중지!”

    주소용 후작은 사거리 밖에서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치는 서대륙 병사를 확인하고는 공격을 멈추라고 지시했다.

    항구는 엉망으로 변해 있었다. 마법 공격으로 여기저기 그을음과 크레이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사방이 온통 토막 난 시체로 뒤덮였다. 쿼렐에 맞아 죽은 병사들이 그나마 온전한 상태로 죽었다.

    “전진! 전진하면서 확인 사살을 실시한다!”

    “예!”

    “승리의 함성을 질러라!”

    “으아아아! 의혈맹 만세! 만세! 이야아아아!”

    병사들이 우렁찬 함성을 질렀다.

    그들의 함성에는 희열이 가득했다.

    이놈들 탓에 동대륙의 사람들이 언제나 힘겹게 살아왔던 걸 생각하니 용서할 마음이 생겨나지 않았다.

    “멈춰라! 대열을 정비하라!”

    주소용 후작은 원정군의 대열을 확인하면서 명령을 내렸다.

    이제 병력을 나누어야 할 때였다. 동대륙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배를 보전해야 한다.

    지금이야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쉬운 싸움이 될 거라는 기대는 하기 어렵다.

    배를 지키기 위한 병력을 배치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함정을 설치해야 한다. 그래야 후퇴를 하더라도 보다 안전하게 배에 오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우우우웅…….

    병력을 나누려던 주소용 후작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항구에 설치된 공간 이동 마법진에서 진동음이 발생했다. 마나의 흐름이 비틀리면서 진동음이 더욱 커졌다.

    “마법사들은 공격에 대비하라! 1열 조준!”

    주소용 후작이 긴장한 얼굴로 소리쳤다.

    항구에 설치된 마법진을 통해 넘어올 존재들은 어차피 적일 게 분명했다. 나타나면 가차 없이 공격해 죽여 버릴 생각이었다.

    마법진이 한차례 빛을 내더니,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항복! 항복하오! 공격을 멈추시오!”

    마법진을 통해 나타난 사람은 형태가 완전히 드러나기도 전에 백기를 휘두르며 소리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