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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176화 (176/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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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44. 웃기지 마! (1)

    전신의 근육을 팽팽하게 잡아당긴 정천우는 입에 한껏 비웃음을 담았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욕한다더니, 정진석 공작이 딱 그 꼴이다. 자기 하나 상대하겠다고 우르르 몰려나온 주제에 정면으로 덤벼들지 않았다고 욕을 하고 있다.

    웃기지도 않은 일이다.

    정천우의 상체가 조금 더 낮아졌다.

    “이기적인 새끼들! 이거나 먹어랏!”

    정천우의 상체가 회전하면서 전신에 흐르던 기운이 폭발을 일으켰다.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십 초식, 탄섬(彈閃).

    100년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극강의 무공이 발현되었다.

    슈슈슈슝!

    오러 블레이드로 이루어진 순백색 원반이 맹렬하게 회전을 일으키면서 전방을 향해 날아갔다.

    마교의 기사들이 경악하면서 손에 쥔 파르티잔에 마나를 주입해 저항했다.

    콰각! 스거걱! 스각!

    오러 블레이드 앞에서 마나 쉐도우는 너무나 초라하게 꺾여 나갔다. 회전하는 오러 블레이드에 닿자마자 단번에 깨져 나가면서 파편을 뿌려 댔다.

    비명조차 없었다. 궤적에 걸리는 것들을 순식간에 절단하며 날아가는 오러 블레이드는 비명을 지를 만한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으아압!”

    짐승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기합성이 마교 기사의 고막을 때렸다. 정천우가 혼원벽력도법의 마지막 초식인 탄섬을 사용하고선 곧바로 몸을 날려 온 것이다.

    그의 역천검에는 오러 블레이드가 새하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막앗!”

    정진석 공작이 고함을 질렀다.

    정작 명령을 내린 정진석 공작은 뒤로 몸을 빼고 있었다.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그와 당청서, 그리고 마교 기사단의 단장인 미간 드 렉턴이 행동을 같이했다.

    “왜 하필! 나냐! 제기라알!”

    플라잉 오러의 공격을 겨우 피해 낸 마교의 기사가 와락 인상을 구기면서 소리쳤다.

    겨우 살았다고 좋아하자마자 정천우가 살벌한 눈빛을 쏘아 보내며 달려들었다. 자신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능력자가 자신을 노리자 주눅이 들기보다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역혈대법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마나 쉐도우를 파르티잔에 담아 있는 힘껏 찔렀다.

    다른 동료들이 그를 도와 정천우를 공격했다. 네 자루의 파르티잔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쏘아졌다. 마나 쉐도우가 공명을 일으키면서 벌 떼가 날아다니는 듯한 파공음을 일으켰다.

    “새끼들이 튀어? 쪽 팔린 줄 알아!”

    정천우가 뒤로 빠지는 정진석 공작 일행을 향해 비웃음이 가득 담긴 욕설을 터트렸다.

    마교 기사들이 전력을 다해 찔러 오는 파르티잔을 향해 하얗게 빛나는 역천검이 빛을 뿌렸다.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구 초식, 벽산추룡(霹散追龍).

    전방을 향해 순백색 오러 블레이드의 막이 펼쳐졌다. 공격이면서 방어까지 이루어지는 초식이었다. 단순히 상대의 공격을 막아 내는 일반적인 검막(劍膜)의 효과 외에도 적을 살상하는 능력까지 함께 지니고 있었다.

    꽈드득! 콰득!

    “크아악!”

    “커헉!”

    강기로 이루어진 검막이 파르티잔을 부수고 마교의 기사들을 덮쳤다. 마교의 기사들은 검막에 잡아먹혀 피떡이 되어 쓰러졌다.

    정천우가 일으킨 검막은 마교의 기사 3명을 잡아먹고서야 사라졌다.

    “공격! 물러나지 마라!”

    정진석 공작은 마교의 기사들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겁먹을 시간을 주지 않았다. 마교의 기사들을 보내 정천우의 힘을 빼겠다는 수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천우의 공격은 거침이 없었다.

    “이야아압!”

    사방에서 마나 쉐도우를 담은 파르티잔이 자신을 노리자 정천우가 기합을 지르면서 진각을 밟았다. 땅거죽이 폭발하듯 사방의 흙이 튀었다.

    역천검을 따라 순백색의 빛이 커다랗게 반원을 그렸다. 오러 블레이드와 맞닥뜨린 마교 기사의 몸뚱이가 맥없이 갈렸다.

    진각을 밟았던 오른발을 뒤로 빼면서 다시 한 번 역천검을 휘둘렀다.

    콰가가각!

    새롭게 빛의 반원이 생성되면서 살기를 품은 채 공간을 좁혀 오는 파르티잔을 썽둥썽둥 잘라 냈다.

    정천우의 공격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파르티잔이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또 다른 빛의 반원이 그들을 덮쳤다.

    서걱!

    섬뜩한 절단음이 터졌다.

    3명의 몸뚱이를 베는 데 절단음은 겨우 한 번 발생했다.

    뒤로 몸을 빼려던 마교의 기사 3명이 내장을 쏟아 내면서 상체가 뒤로 넘어갔다. 쓰러진 그들은 어째서 자신의 눈에 하늘이 보이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익숙한 형태의 갑옷을 입고서 다리만 남은 채 서 있는 하체를 발견한 그들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그제야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깨달은 마교의 기사들은 눈을 까뒤집고 기절했다. 하지만 기절하는 것을 끝으로, 그들은 더 이상 숨을 쉬지 못했다.

    “으으으…….”

    “……괴물이야.”

    마교의 기사들이 질린 얼굴로 정천우를 노려보면서 파르티잔을 겨누었다.

    하지만 섣불리 달려드는 사람은 없었다. 그의 역천검이 어떤 위력을 발휘하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다. 자신들의 상대가 아니라는 것쯤은 충분히 깨달았다.

    마교 기사들의 눈이 정천우에게서 기사단장인 미간 드 렉턴에게로 향했다. 상대할 수 없는 강자(强者)를 향해 덤비는 게 부질없는 짓이라고 눈빛으로 말하고 있었다.

    두려워하는 기색은 없었지만 불만스러워하는 기색은 있었다. 의미 없는 죽음을 명령하지 말고 직접 싸울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의미를 담은 시선이었다.

    “련주!”

    “아직 아니오.”

    미간 단장이 부하들의 염원을 담아 정진석 공작을 불렀다. 그러나 정진석 공작은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뿌드득…….

    “빌어먹을! 이 일은 절대로 잊지 않을 거요. 공격하라!”

    미간 단장이 부러질 듯 이를 갈고는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사람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마교였지만 오래도록 손발을 맞춰 온 부하들이다. 아무리 마교라고는 해도 인간적인 정(情)이란 게 있다.

    단장인 미간은 자신의 부하가 정진석 공작의 명령에 죽어 나가는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울러 정진석 공작에게 적극 협조하라고 지시를 내린 마교의 수뇌부에 대해서도 분노가 솟아났다.

    마교의 기사들은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눈빛이 바뀌었다.

    망설임 따위는 사라졌다. 죽음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기에 방어는 배제했다.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상대에게 피해를 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차아아!”

    “니미 씨바알!”

    “성화의 불꽃…… 썅! 좆까라고 해!”

    저마다 기합과 욕설을 터트리면서 정천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죽음을 각오하는 주문을 외우던 마교의 기사는 원색적인 욕설을 터트리면서 파르티잔을 휘둘러 갔다.

    정천우는 그들이 잠시 망설여 준 덕분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비록 얼마 되지 않는 시간이었지만 환골탈태를 거친 그의 육체는 어느 정도 피로를 풀어 낼 수 있었다.

    쿵!

    “끼야압!”

    정천우가 거칠게 기합성을 내지르면서 힘차게 진각을 밟았다.

    진각을 밟은 땅거죽이 움푹 파이고, 사방으로 먼지가 흩날렸다. 어지럽게 빛의 궤적을 만들어 내는 정천우의 주변은 날카로운 파공음으로 뒤덮였다.

    콰과각! 콰각! 파지지직!

    뇌전의 기운이 사방으로 뻗치면서 오러 블레이드가 정천우의 전신을 둘러쌌다.

    마나 쉐도우를 담은 파르티잔이 파고들려 했지만 분쇄기에 집어넣은 것처럼 마구 잘려 나갔다.

    잇따라 비명이 튀어나오고, 마교 기사들의 육신이 마구잡이로 절단되었다.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르고, 팔과 다리 할 것 없이 마구 절단되어 허공을 날았다.

    두개골이 절단된 채로 파르티잔의 창 자루를 휘두르는 마교의 기사들도 있었다. 뒤늦게 바닥에 쓰러져 선홍색 뇌수를 쏟아 내고서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후우…… 지독한 새끼들.”

    정천우가 역천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며 인상을 찌푸렸다. 마지막 한 놈까지 목숨을 도외시한 채 덤벼들 줄은 몰랐다.

    육체적으로 힘든 것은 아니지만 대신에 정신적으로 힘들었다. 죽을 걸 뻔히 알고서 덤벼드는 적을 베는 건 그다지 유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정천우를 바라보는 나머지 세 사람은 기가 질렸다.

    “으으으…… 뭐 저런 놈이 다 있습니까?”

    “그래도 힘이 많이 빠졌을 테니, 이제는 달라지겠지.”

    정진석 공작이 파르티잔을 내버리고 롱소드를 뽑았다. 그런 그를 한차례 노려본 미간 단장 역시 파르티잔 대신에 플랑베르주(Flamberge)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정진석 공작의 행태가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의 판단을 욕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끊임없이 오러 블레이드를 쏟아 내는 정천우였다. 부하들이 희생이 없었다면 싸우기도 전에 전의가 꺾였을 게 분명했다.

    “부하들의 원수를 갚아 주마.”

    씹어 뱉듯이 뚝뚝 끊어서 말하는 미간 단장의 목소리에는 짙은 살기가 물씬 풍겨 나오고 있었다.

    “잠깐! 혼자 덤비는 건 무모한 짓이오! 놈의 힘을 더 빼야 하오!”

    정진석 공작은 앞으로 나서려는 미간 단장을 말렸다.

    마교의 지원을 기다린 것은 바로 이런 이유였다. 자신과 당청서만으로는 정천우를 제압하기가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플라잉 오러를 사용할 정도로 대단한 경지의 기사를 상대하기 위해선 마스터급 기사 3명은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게 지난번 언데드 군단과 의혈맹의 싸움을 관전한 뒤에 얻은 결론이다.

    이제야 겨우 최소한의 틀이 만들어졌는데, 허무하게 한 명을 잃을 순 없었다.

    “큭! 좋소! 하지만 저놈의 목은 내 것이오!”

    “알겠소! 일단 싸움에 집중하시오. 부련주! 엄호해 줘! 공격은 나와 미간 단장이 한다!”

    “네, 련주님!”

    당청서가 신중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벨트에 빽빽하게 꽂힌 나이프들을 점검했다. 그러고는 허리춤에서 두 자루의 나이프를 뽑아 양손에 하나씩 쥐었다.

    정도련의 최고 권력자이면서 최고 실력자인 세 사람이 말을 맞추는 사이, 정천우가 길게 숨을 내쉬면서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하여간 말들은 더럽게 많아. 나야 고맙지만 말이야. 이제 그만 뒈져 줘야겠다, 새끼들아.”

    이제껏 혼원벽력도법의 기수식을 잡은 채 세 사람을 노려보던 정천우가 슬쩍 몸을 풀었다가 다시 싸울 자세를 잡았다.

    놈들이 곧바로 덤벼들었다면 그로서도 벅찬 싸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저것 재느라 시간을 주는 바람에 한결 편해졌다. 마나와 체력을 보충할 시간을 주었으니까 말이다.

    “놈! 허세를 부리는구나!”

    정진석 공작은 비웃음을 담아 정천우를 꾸짖었다.

    이제껏 마교의 기사들과 죽도록 싸우는 걸 보았다. 무려 70명에 이르는 정예기사들을 상대로 혼자서 말이다.

    땀을 비 오듯 흘리는 주제에 큰소리를 쳐 대는 모습이 우습기 짝이 없었다.

    “미간 단장! 갑시다!”

    “기다렸소! 차압!”

    미간 단장은 신호가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갔다. 시커먼 기운을 가득 품은 플랑베르주가 정천우의 머리를 노렸다.

    때를 같이해 정진석 공작이 롱소드로 바닥을 쓸며 뛰어 나갔다.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만일의 공격에 대비했다.

    ‘뛰어오르는 순간이 기회야!’

    정진석 공작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정천우의 다리를 노려보았다. 상체를 노리는 미간 단장에게 보조를 맞추어서 자신은 하단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미간의 공격이야 막아 낼 것이 확실하지만 자신의 공격은 막아 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천우의 무기는 하나지만 상대해야 할 사람은 둘이었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둘 다 마스터의 경지에 들어선 사람이다. 제아무리 마스터의 경지를 초월했다고 하더라도 이번만큼은 피하는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쾅!

    ‘됐어!’

    정진석 공작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폭음이 터졌다. 그것은 정천우가 미간 단장의 공격을 막아 내면서 발생한 폭발음이 분명했다.

    ‘자! 어쩔 거냐!”

    정진석 공작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정천우의 왼쪽 발목을 노리고 롱소드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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