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75화 (175/200)
  • # 175

    Chapter 43. 개나 줘 버려 (3)

    “와아아아!”

    기사들이 함성을 내질렀다.

    전쟁이 벌어졌는데 성안에 갇혀서 대기만 하고 있으려니 좀이 쑤셔 미칠 지경이었다는 표정들이었다.

    “차아앗!”

    정진석 공작은 성벽 위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떨어지는 도중, 중간 정도 되는 지점에서 성벽을 박차고 몸을 한차례 띄웠다. 떨어지던 속도가 확연하게 줄어들면서 정진석 공작이 기사단 앞에까지 날아갔다.

    중간에 성벽을 박차면서 낙하 속도가 줄어들어 실제로는 5~6미터 높이에서 뛰어내린 셈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일반 기사들이 보기에는 엄청난 몸놀림이었다.

    중원의 경신술에 비한다면 어림도 없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우오오오오!”

    “련주님, 만세! 만세!”

    “만세!”

    기사들은 정진석 공작의 신기에 가까운 몸놀림에 찬사를 보냈다.

    기사들이 보기에는 정천우나 정진석 공작이나 믿기지 않는 움직임의 소유자들이었다. 그저 정진석 공작이 자신들의 주군이라는 것에 감동할 뿐이었다.

    “오늘! 우리는 동대륙을 평정한다!”

    “평정한다! 평정한다!”

    정진석 공작이 말 위에 올라 롱소드를 치켜들고 소리치자 기사들이 저마다 무기를 들어 각오를 다졌다.

    “성문을 열어라!”

    ***

    “후와! 이제 포기한 건가?”

    정천우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으면서 중얼거렸다.

    마법이 하늘을 뒤덮으면서 날아올 때는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죽어라 끌고 온 시즈 타워가 부서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샤칼이 펼친 투명한 푸른 막에 마법이 소멸하는 것을 보고 안도했다.

    마지막 공격이었는지, 마법 공격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쿼렐도 날아오지 않았다.

    “뭐라도 상관없어! 서두릅시다!”

    “네, 맹주님! 자! 힘들 내라! 성벽이 얼마 남지 않았다!”

    첼시가 병사들을 다그치면서 말 엉덩이에 열심히 채찍질을 해 댔다.

    ‘너무 느려! 적의 공격이 없으니 나도 밀어야겠어!’

    정천우가 잘되었다는 얼굴로 시즈 타워 내부에 들어가려고 했다.

    힘이라면 자신 있었다. 내공이 늘어나고 환골탈태를 거치면서 일반인과는 비교가 안 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자신이 시즈 타워를 민다면 조금이라도 더 빨리 성벽에 도착할 수 있을 게 분명했다.

    막 시즈 타워를 밀려고 첼시에게 다가가려던 정천우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의 귀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드드드드…….

    쇠사슬이 감기는 소리.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창살문이 열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껏 원거리 공격 수단만 사용하던 정도련이 무슨 일을 꾸미나 싶어 정천우는 상황을 지켜보기만 했다.

    활짝 성문을 통해 정도련의 기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뭐야? 기사단을 내보냈어? 왜지?”

    정천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장의 변화는 기사단의 등장만이 아니었다. 성벽 위에서 쏜 쿼렐이 하늘을 가르면서 본대에 쏟아졌다. 시즈 타워를 공격하던 궁병대를 의혈맹의 방패병에게로 돌린 모양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정천우는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고민하다가 이내 역천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정도련의 기사단이 무얼 노리는지 알 것 같았다.

    쿼렐과 대형 화살이 통하지 않고 마법마저도 막히자 기사단이 직접 시즈 타워를 공략하러 나선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처음부터 지금까지 시즈 타워를 공격하던 쿼렐과 대형 화살이 끊길 이유가 없다.

    궁병들이 공격 대상을 바꾼 이유는 아군 기사단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임이 틀림없다.

    정천우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기다렸다. 만약 그의 생각대로 시즈 타워를 공격하러 오는 게 확실하다면 약간 곤란한 상황이었다.

    시즈 타워를 밀고 가는 병사들은 무장 상태도 엉망인 데다가 힘이 빠져 있어서 공격당하면 버티지 못할 것이다.

    “헤이먼! 샤벨타이거 기사단과 함께 시즈 타워를 지켜라!”

    정천우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시즈 타워의 이동속도가 느려서 멀게 느껴진 것뿐이다. 말을 타고 달려온다면 400미터 안팎의 거리는 그야말로 순식간이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편도 마찬가지다. 성문에서 시즈 타워까지의 거리는 기껏해야 200미터 정도다.

    그렇다는 것은…….

    “네놈들 마음대로 될 것 같아? 어림없다!”

    정천우가 역천검을 뒤로 늘어뜨린 채 경공을 발휘했다. 놈들이 대열을 갖추기 전에 먼저 치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의혈맹주다! 쏴라!”

    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려오는 정천우를 발견한 정도련의 기사가 고함을 질렀다.

    그러자 먼저 나와 대열을 갖추고 섰던 기사들이 말 등에 건 크로스보우를 풀어 쿼렐을 장전했다. 얼마나 훈련을 받았는지, 경고성이 떨어지기 무섭게 쿼렐이 쏘기 시작했다.

    “쳇! 눈치 빠른 새끼들!”

    정천우가 혀를 차며 방패를 앞세웠다. 그 때문에 속도가 떨어졌다. 방패로 앞을 가리는 바람에 공기의 저항에 더해 쿼렐이 박히면서 속도를 떨어뜨렸다.

    평소라면 순식간에 도착할 거리를 몇 배나 시간을 들여 도착했다.

    “한번 네놈들도 당해 봐라! 차앗!”

    정천우가 강기를 담은 방패를 크게 휘두르면서 몸을 회전시켰다.

    전방에서 쏟아지던 쿼렐이 방패에서 튀어나온 호신강기에 맞아 우수수 튕겨 나갔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방패가 지나간 공간에 초승달 형태의 검강이 길게 늘어졌다가, 역천검에서 꼬리를 끊고 앞으로 발사되었다.

    위, 윙, 위잉…… 투과가가각!

    날아오는 쿼렐을 쪼개면서 플라잉 오러가 날아갔다. 정천우는 그사이 한 바퀴 더 회전했다. 플라잉 오러가 또다시 튀어나왔다.

    “크아악!”

    “막아! 방패에 마나를 집어넣고서 막앗!”

    쿼렐을 쏘아 보내던 기사들 사이에서 난리가 났다.

    정천우가 쏘아 보낸 플라잉 오러에 몇 명의 기사가 피를 뿌리고 쓰러졌다. 쿼렐을 뚫고 오면서 위력이 약해지지 않았다면 기사 몇 명의 피해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안심할 수도 없었다. 정천우의 몸이 연속으로 회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번 회전할 때마다 어김없이 하나의 플라잉 오러가 날아왔다.

    “허둥대지 마라! 차아앗!”

    기사들이 대열을 갖춘 뒤에야 시커먼 갑옷을 입은 기사들과 함께 정진석 공작이 등장했다. 그는 파르티잔(Partisan : 창의 일종)에 마나를 담아 정천우에게 집어던졌다.

    뒤따라 나온 검은 갑옷의 기사가 당청서와 함께 파르티잔에 마나를 담아 던졌다.

    쿼렐을 쳐 내면서 플라잉 오러를 날리던 정천우가 기겁한 얼굴로 방패를 들어 올렸다.

    콰과광!

    “큭! 빌어먹을 자식들!”

    정천우가 방패로 전면을 가리면서 욕을 했다.

    몸을 꿰뚫을 기세로 날아오는 세 자루의 파르티잔에는 무시할 수 없는 위력이 숨어 있었다. 방패에 강기를 둘렀음에도 왼팔이 은은하게 저릴 정도였다.

    정천우가 급하게 뒤를 돌아보았다.

    “후우! 그랬단 말이지?”

    정천우가 혀로 아랫입술을 핥았다.

    헤이먼이 샤벨타이거 기사단을 이끌고 달려와 시즈 타워에 자리 잡은 모습을 확인한 것이다. 샤벨타이거 기사단 외에도 의혈맹의 기사단이 뒤늦게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정도련이 기사전을 준비하는 줄로만 알고 대비 중이었다. 그런데 정천우가 헤이먼을 부르는 소리를 듣고서야 정도련의 기사단이 시즈 타워를 노린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아주 늦은 것은 아니라서 정천우가 안도했다.

    “화룡 기사단과 내가 놈을 맡겠다! 당청곤 너는 기사를 이끌고 시즈 타워를 파괴하라!”

    “충! 돌진하라!”

    “돌진하라!”

    정진석 공작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정도련의 기사단이 일제히 말고삐를 휘둘러 진격했다. 둘로 쪼개진 정도련의 기사단은 정천우를 가운데로 놓고 지나쳤다.

    정천우가 공격을 가하려고 했지만 정진석 공작이 가만히 두고 보지 않았다. 공격하려고 할 때마다 파르티잔에 마나를 집어넣어 던져 대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치고 방어에 전념했다.

    ‘젠장! 거리부터 좁혀야겠어!’

    정천우는 이를 갈며 다리에 힘을 주었다.

    검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들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안다. 바로 마교의 기사다. 놈들은 정진석 공작을 비롯한 실력자 3명이 창을 던지는 동안에 끊임없이 쿼렐을 쏘아 다른 짓을 할 수 없게 방해하고 있었다.

    거리를 좁혀 놈들이 원거리 공격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 관건이었다.

    터더덩! 터덩, 텅!

    “개자식들아아아!”

    정천우가 방패를 앞세워 내달렸다.

    강기를 듬뿍 담은 방패가 날아드는 쿼렐과 창을 튕겨 냈다.

    “바람구멍을 만들어 주마!”

    자신을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하는 정천우를 향해 정진석 공작이 으스스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는 손아귀에 쥔 파르티잔을 뒤로 한껏 젖혔다가 정천우를 향해 내뻗었다. 다른 기사들과는 흘러나오는 기운부터가 달랐다.

    파르티잔의 창끝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위협적으로 변해 갔다. 하얀빛을 발하는 그것은 바로 오러 블레이드였다.

    “이런 썅! 실력을 숨겼어? 개자식!”

    정진석 공작이 말 위에서 정천우를 찍어 누르기 위해 파르티잔을 치켜들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정천우가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나 한가하게 욕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정진석 공작 말고도 2명의 실력자가 더 있다.

    정천우는 방패를 전방에 집어던지고 나려타곤(懶驢打滾)의 수법으로 몸을 던졌다. 방패에 둘렀던 호신강기를 전신에 두른 채 바닥을 구르면서 적의 공격권을 벗어났다.

    투두둥, 터더덩!

    “크악! 빌어먹을 자식들!”

    정천우가 바닥을 뒹굴면 괴로워했다.

    호신강기를 전신에 둘렀지만 근거리에서 쏘아진 쿼렐은 호신강기를 흔들어 댔다. 튼튼한 갑옷이 아니었다면 호신강기를 뚫고 몸에 박혔을 게 뻔했다.

    땅바닥을 뒹굴며 일어나던 정천우는 자세를 잡기보다 한 번 더 몸을 날렸다.

    “쏴! 죽여!”

    “으아! 놈이 말을 공격한다!”

    마교의 기사들이 기겁해 소리쳤다.

    땅바닥을 뒹굴던 정천우가 기사단 속으로 뛰어들어 마갑으로 보호되지 않는 말의 발목을 역천검으로 공격한 탓이다.

    “창! 창을 사용해! 크로스보우는 버려!”

    마교의 기사들이 다급하게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고함만 요란했지, 보법을 발휘해 기사들 사이로 빠르게 움직이는 정천우를 어찌하지는 못했다.

    마교의 기사들이 허둥대는 동안 피해는 점점 늘어만 갔다.

    자의였든 타의였든 말에서 내린 마교의 기사는 정천우의 신출귀몰한 움직임에 너무나도 허무하게 목이 달아났다. 말 위에 있었을 때와 달리 시선이 낮아지면서 동료 기사의 말 때문에 정천우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았다.

    정천우가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기도 전에 동료가 탄 말 사이에서 그가 불쑥 나타나 치명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상대가 죽었거나 말거나 관심도 주지 않는다. 찔렀다 싶으면 미련 없이 이동했다.

    마교의 기사가 말에서 떨어질수록 혼란은 점차 가중되었다. 은밀하게 움직이는 정천우 때문에 같은 편을 공격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 말을 버리고 내 뒤로 와라!”

    정진석 공작이 마나를 담아 소리쳤다. 지원 나온 마교의 기사들이 더 당하기 전에 정천우를 고립시키기 위함이었다.

    명령을 받은 마교의 기사들이 정진석 공작의 뒤로 달려가는 와중에도 정천우의 공격이 이어졌다. 나중에는 플라잉 오러를 쏘아 보내기까지 했다. 앞만 보고 달리던 마교의 기사는 영문도 모른 채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어 내장을 쏟아 내며 바닥에 너부러졌다.

    마교의 기사들이 정진석 공작의 뒤로 모두 물러났을 때는 20여 명의 기사가 죽은 다음이었다.

    정진석 공작은 이를 뿌드득 갈아붙였다. 말을 타는 게 훨씬 불리하다고 느꼈는지 그 역시 땅에 내려선 상태였다.

    “명예도 긍지도 없는 자식! 의혈맹의 맹주라는 놈이, 하는 짓은 파렴치하기 짝이 없구나!”

    분노한 그가 파르티잔의 창끝으로 정천우를 가리키며 꾸짖었다.

    하지만 정천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어깨를 한차례 으쓱해 보였다.

    “명예? 긍지? 미친 새끼, 어디서 헛소리야?”

    정천우가 웃음기를 지우고는 불량기 가득한 목소리로 비아냥거렸다. 그러고는 역천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채 혼원벽력도법의 기수식을 잡았다.

    천천히 역천검의 손잡이를 잡은 정천우가 으스스한 미소를 지었다.

    “그따위 거, 개나 줘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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