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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174화 (174/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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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43. 개나 줘 버려 (2)

    ***

    정천우가 시즈 타워의 이동속도에 속이 터져 미쳐 갈 무렵, 의혈맹의 병사들은 착실하게 전진해 나가고 있었다.

    슈슈슈슝!

    쿼렐이 하늘을 새카맣게 뒤덮으면서 날아왔다.

    간간이 발리스타로 발사한 대형 화살까지 섞여 있었다. 파비스를 앞세워 진격하던 병사들에게는 재앙이었다.

    바바박! 바박!

    파우웅! 꽈지직!

    “크아악!”

    “우왁!”

    발리스타로 쏘아진 대형 화살은 파비스를 박살 내면서 뒤를 받치던 병사의 몸통을 꿰뚫고 땅에 박혔다.

    쿼렐이 파비스를 뚫고 들어오지 못하는 것에 안심했다가 횡액을 당한 것이다.

    “기사! 기사들은 병사들을 지원하라! 진격 속도를 늦춰서라도 파비스를 이중으로 겹치면서 전진한다!”

    주소용 후작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크게 소리쳤다.

    효과는 있었다.

    간격을 좁히면서 파비스를 겹치자 대형 화살이 파비스를 부수고 들어오지 못했다. 그러나 파손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저런 개자식들이?”

    대형 화살이 병사들을 꿰뚫는 모습을 본 정천우가 이를 갈았다.

    대체 대형 화살을 얼마나 많이 준비한 것인지, 정도련에서는 대형 화살을 마구 퍼붓고 있었다.

    만약 아까 몸을 빼는 게 늦었다면 낭패를 당할 뻔했다. 놈들의 대형 화살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 보자고 마음먹은 건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한바탕 휘저어…… 망할 새끼들!”

    대형 화살을 유인하기 위해서 시즈 타워를 벗어나려던 정천우는 인상을 구겼다. 대형 화살이 시즈 타워를 겨냥하고 날아왔기 때문이다.

    화르륵! 콰광!

    파공음을 내면서 날아오던 대형 화살은 샤칼의 마법에 의해 가로막혀 허공에서 폭발을 일으키며 사라졌다.

    시즈 타워가 사정권에 들자마자 위협적인 공격이 날아왔다. 그만큼 시즈 타워는 수성하는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무기였다.

    “방패!”

    정천우가 고함을 질렀다.

    시즈 타워를 밀고 가는 병사들을 향해서다.

    “맹주님, 여기!”

    “최대 속도로 진격하십시오!”

    정천우는 첼시가 내미는 금속 방패를 왼손에 착용하고는 명령을 내렸다. 샤칼 혼자서 대형 화살을 모두 막아 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그는 자신도 한몫 거들어야겠다고 판단했다.

    대형 방패에 내공을 주입해 강기를 덧씌우고 시즈 타워 앞으로 나섰다.

    걸어가면서 내공을 운용한 덕에 내공은 충분했다. 대여섯 개의 대형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확인한 정천우가 역천검을 휘둘렀다.

    맹렬하게 회전을 일으키면서 날아간 강기가 대형 화살을 부수고 날아갔다. 궤도만 바꿔도 시즈타워를 지킬 수 있기에 내공의 소모를 최소화했다.

    “제길! 이거 중노동이잖아!”

    정천우는 또다시 날아오는 대형 화살을 검강으로 요격하며 투덜거렸다.

    이제는 열 발 정도가 기본으로 시즈 타워를 노렸다. 샤칼이 서너 개를 처리하고 정천우가 나머지를 맡았다. 연달아 검강을 쏘아 대면서 대형 화살을 격추시키고 방패를 들어 쿼렐을 막았다.

    그나마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건 시즈 타워를 공격하느라 파비스를 앞세운 병사들에게 발리스타의 공격이 뜸해졌다는 정도다.

    성벽을 향해 다가갈수록 시즈 타워에 대한 공격이 거세졌다. 불붙은 쿼렐이 날아와 시즈 타워에 박혔다. 젖은 천으로 표면을 덮어 두지 않았다면 치명적인 타격을 받았을 게 분명하다.

    “빌어먹을! 너무 느려!”

    정천우가 이를 뿌득뿌득 갈며 검강을 날렸다.

    걷는 것보다도 느린 속도로 진격하는 시즈 타워의 이동 능력에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사력을 다해 적의 대형 화살을 막아 내느라 죽을 맛이었다.

    그럼에도 시즈 타워는 절반 정도의 거리를 이동했을 뿐이다. 무려 한 시간 가까이 이동했는데도 말이다.

    “저 속도만 나와도 좋잖아!”

    정천우가 투덜거리기를 멈추지 않고, 날아오는 대형 화살에 검강을 쏘아 보냈다.

    배터링 램(Battering ram : 성문 파괴용 기둥)을 장착한 캣(Cat : 바퀴 달린 이동 수단)의 이동속도가 부러운 그였다.

    성문을 향해 이동하는 속도가 시즈 타워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파비스를 앞세워 이동하는 병사들보다도 월등히 빠른 속도였다.

    “아!”

    정천우가 뜨악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도 성문을 파괴하기 위해서 접근했던 게 생각난 것이다.

    콰과과곽!

    아니나 다를까, 십여 발의 대형 화살이 캣을 꿰뚫고 빠져나갔다. 성문 안쪽에서 발사된 대형 화살이었다. 움직임을 멈춘 캣에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나왔다.

    “젠장! 갈아 마셔도 시원치 않을 새끼들!”

    정천우는 성문을 건드려 보지도 못하고 파괴된 캣을 쳐다보았다가 이내 역천검을 휘둘렀다.

    지치지도 않고 쏘아 대는 대형 화살을 쳐 내면서 눈에서 살기를 뿜어냈다. 시즈 타워가 성벽에 닿으면 성벽 위로 올라가 모조리 도륙을 내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고 해 댔다.

    ***

    “쏴라!”

    정진석 공작은 시즈 타워를 가리키면서 불호령을 내렸다.

    시즈 타워가 성벽에 닿으면 수성에 실패할 확률이 대폭 상승한다. 좁은 성벽 위로 괴물 같은 위력을 내는 정천우가 나타난다면 몰아내기가 쉽지 않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의 무지막지한 공격을 감당할 사람이 몇 되지 않는다.

    애초에 다가오지 못하게 시즈 타워를 박살 내는 것이 최선이었다.

    “련주님! 발리스타용 화살을 아껴야 합니다!”

    당청서가 대형 화살의 잔량을 확인하고는 우려를 표했다.

    만약에 대비해서 대형 화살을 아껴야만 했다. 의혈맹주가 다시 성문이나 성벽을 도모하려 할 때를 대비해 발리스타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정진석 공작이 시즈 타워를 향해 계속 공격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대형 화살이 급속도로 소진되었다.

    계속 대형 화살을 생산하는 중이지만 지금처럼 쏘아 대서는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큭! 마법! 마법사들은 시즈 타워를 공격하라! 절대로 다가오게 두어선 안 된다!”

    정진석 공작이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명령했다.

    그 역시 대형 화살을 아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의혈맹주의 신기막측한 능력을 아는 까닭에 그를 견제하기 위해선 대형 화살이 필수라고 생각했다.

    남은 공격 수단이라고는 기름과 불을 매단 쿼렐과 마법뿐이었다.

    성벽 위에 마법사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정도련의 모든 마법 전력을 박박 긁어모았다. 대략 70명에 이르는 인원이었다.

    마법사들은 대열을 갖추기가 무섭게 저마다 주문 영창에 들어갔다.

    “기름과 불이 붙은 쿼렐을 발사해 시즈 타워를 공격하라! 어서!”

    정진석 공작은 느릿하게 다가오는 시즈 타워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궁병들이 크로스보우를 시즈 타워에 겨누었다. 쿼렐에는 주먹만 한 기름 주머니가 매달려 있었다. 기름 주머니를 매단 쿼렐이 일제히 발사되면서 시즈 타워를 향해 날아갔다.

    뒤이어서 불붙은 쿼렐이 날아갔다. 때를 같이해 마법사들이 손을 뻗어 시즈 타워를 가리켰다. 그러자 각종 화염 마법들이 파공음을 내면서 시즈 타워를 향해 쏘아졌다.

    하지만 그마저도 소용없다는 걸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제기랄! 그놈이 타고 있다는 말인가!”

    정진석 공작이 분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않으며 분통을 터트렸다.

    그가 떠올린 인물은 바로 샤칼이었다.

    대형 화살을 마법으로 요격할 때부터 수상하긴 했다. 그러나 한 가닥 믿음이 있었다. 겨우 시즈 타워를 방어하는 데 대마법사씩이나 되는 인물을 투입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문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 일이 실제로 벌어졌다는 점이다.

    아군 마법사 70명이 발사한 화염계 마법이 푸른 막에 막혔다. 엄청난 능력의 마법사가 타고 있는 게 분명했다.

    70명의 마법을 실드 마법으로 막아 내는 건 7서클 대마법사가 아닌 바에야 불가능한 일이다. 마법뿐만 아니라 불붙은 쿼렐도 실드에 가로막혀 모조리 튕겨 나간다.

    시즈 타워는 기름에 흠뻑 젖어 불만 붙으면 작살 날 게 분명하다. 그런데 실드 마법 때문에 불이 붙지 않으니 속이 뒤집어질 지경이었다.

    뜨거운 콧김을 내뱉은 정진석 공작은 눈을 부릅뜨며 소리쳤다.

    “창! 기름천을 감은 창을 가져와라!”

    분노에 물든 정진석 공작의 명령에 병사들이 서둘러 창에 천을 감았다. 그러고는 시커먼 기름에 담갔다가 정진석 공작 앞으로 가져왔다.

    “어디, 이것도 막아 낼 수 있는지 보겠다!”

    정진석 공작은 기름천이 감긴 창을 불에 가져다 대었다. 창끝에 불길이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면서 활활 타올랐다.

    “차아앗!”

    기합성을 내지른 정진석 공작이 힘껏 창을 던졌다.

    마나를 담은 창이 대기를 찢어발기면서 시즈 타워를 향해 폭사되었다.

    콰광!

    그러나 박살이 난 것은 시즈 타워가 아니라 불붙은 창이었다.

    “망할 자식! 빌어먹을 자식!”

    정진석 공작이 분통을 터트리면서 시즈 타워를 지키는 정천우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정천우가 플라잉 오러를 발사해 정진석 공작이 던진 창을 박살 낸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시즈 타워는 점점 더 성벽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련주님! 어쩌면 좋겠습니까!”

    시즈 타워를 견제할 수단이 모조리 막히자 당청서가 불안한 얼굴로 물었다.

    이제 방법은 몇 가지 없다.

    시즈 타워가 접근할 예상 지점에 실력 좋은 기사를 배치하고 궁병들을 대거 투입하는 게 그 첫 번째 방법이었다.

    또 하나는 시즈 타워가 더 접근하기 전에 기사단을 급파해 요격하는 것이다. 그나마도 지금이 아니면 방법이 없다.

    시즈 타워가 성벽에 더 접근하면 의혈맹의 기사들이 시즈 타워를 이용하기 위해서 출발할 게 틀림없다. 그전에 기사단을 내보내 요격해야 한다.

    빠른 결정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다면 시즈 타워에서 꾸역꾸역 기어 나오는 기사들을 상대하는 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질 테니까 말이다.

    “으음…… 일이 이렇게 되다니!”

    정진석 공작은 다가오는 시즈 타워를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으로 노려보았다.

    시즈 타워만 파괴하면 수성 시간을 대폭 늘릴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마교의 대규모 지원병이 도착한다.

    “그때까지만 버티면…….”

    “하오나! 시간이 없습니다.”

    당청서는 정진석 공작의 중얼거리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마교의 지원병이 도착하려면 아직도 반나절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고, 적은 코앞에 들어와 있다.

    지원을 믿기보다는 당장의 위협에서 벗어나는 게 먼저다.

    “……빌어먹을! 이젠 어쩔 수 없는 건가? 부련주, 이젠 할 수 없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아니면 막을 수 없으니 나가야지. 나가서 놈들을 저지하고,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최대한 버티는 수밖에.”

    정진석 공작은 허리춤에 달린 롱소드의 손잡이를 으스러져라 움켜쥐었다가 놓았다.

    최대한 버티고 또 버텨서 마교의 지원을 받는 것만이 의혈맹을 물리치고 동대륙을 제패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에 몰렸다. 이제 남은 것은 누구의 숨겨진 패가 더 강력한 것인지 저울질해야 한다.

    “지긋지긋한 자식! 내 진짜 힘을 보여 주겠어! 얼굴이 어떻게 변할지 기대되는군. 후후후…….”

    정진석 공작이 입술을 씰룩였다.

    그러고는 성벽 위에서 잇따라 크로스 보우의 방아쇠를 당기는 병사들을 둘러보다가 성 안쪽을 내려다보았다. 대기 중인 기사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성벽 위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모습과 달리, 기사들은 차분하게 말고삐를 쥐고 말과 나란히 서 있었다. 겉보기에는 차분해도 기사들의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살기가 무시무시했다.

    스르릉!

    기사들을 내려다보던 정진석 공작이 롱소드를 뽑았다. 그러고는 마나를 롱소드에 집중시키면서 크게 고함을 질렀다.

    “내 말을 준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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