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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167화 (16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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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40. 사악한 자식들 (5)

    “비상! 비상이다! 전투를 준비하라! 언데드가 몰려온다아!”

    경계병들이 주영란의 명령을 받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병사들을 깨웠다.

    곤히 잠을 자던 기사들과 병사들은 잠에서 깨어나 허겁지겁 복장을 갖췄다. 경계병들이 이리저리 다급하게 뛰어다니는 게 심상치 않다고 느낀 것이다.

    “또 무슨 일이지?”

    정천우는 명상에 잠겼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떴다. ‘비상’이라 외치는 병사의 목소리가 너무나 절박해서 명상을 유지하기가 껄끄러웠다.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는데 주소용 후작이 천막을 걷으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맹주님, 비상입니다. 언데드가 몰려오고 있다고 해요.”

    “언데드?”

    정천우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그녀의 말을 따라 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어제 꺼냈던 얘기가 현실이 된 모양이었다. 4만이나 되는 언데드 군단이 몰려온다면 보통 큰일이 아니었다.

    “신관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어제 성수를 만들어 놓긴 했습니다만 언데드 군단을 상대하기에는 어림도 없을 것 같아요. 더러운 놈들, 이렇게나 빨리 공격해 올 줄은 몰랐어요.”

    주소용 후작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분하다는 듯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정천우는 서둘러 갑옷을 차려입고 밖으로 나섰다.

    “샤칼! 샤칼!”

    그는 밖으로 나오기가 무섭게 샤칼의 이름을 불렀다.

    이제는 곤란한 일이 생기면 전가의 보도처럼 샤칼부터 찾고 보는 정천우였다.

    “주인님, 여기 갑니다!”

    샤칼은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정천우의 앞으로 빠르게 달려왔다.

    “언데드를 마법으로 처리할 수 있겠어?”

    “물론입니다. 일정 수준 이상의 마법이라면 언데드에게 상당한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제인 마법사에게 마법병대를 집합시키라 일러두었습니다.”

    “잘했다! 마법병대를 서둘러 본진 입구에 배치시켜!”

    “예, 주인님!”

    정천우는 샤칼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고개를 돌렸다.

    헤이먼 역시 정천우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항상 샤칼과 같이 행동하고 있어서 이럴 땐 아주 편하다.

    “헤이먼, 기사단을 끌고 성수를 입구에 배치시켜!”

    “예, 단장님!”

    헤이먼은 샤칼과 마찬가지로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샤벨타이거 기사단이 대기하는 곳으로 달려갔다.

    “부맹주님께서도 기사단을 총집결해서 입구로 보내시고, 병사들의 지휘를 부탁합니다.”

    “알았어요. 그럼 실례할게요.”

    주소용 후작 역시 급하게 말을 마치고 어디론가 달려갔다.

    그녀에게 대부분의 일을 떠넘긴 정천우는 경공을 발휘해 본진 입구로 달려갔다.

    “충! 맹주님을 뵙습니다!”

    “팽선웅 백작님, 지금은 예의를 따질 때가 아닙니다.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상황이 어떻게 된 겁니까?”

    사람들에게 생각나는 대로 지시를 내리긴 했지만 정확한 상황을 몰랐던 정천우가 이제야 궁금증을 드러냈다.

    “정도련 측에서 기사를 풀어서 아미파 소속 정찰대를 습격했답니다. 유일한 생존자가 복귀했는데, 사천당가의 영지 성 앞에서 시체들이 일어나 이곳으로 진격해 오고 있다는 정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요? 으음…….”

    정천우는 사천당가가 위치한 방향에 기감을 집중했다.

    확실하진 않지만 뭔가 음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다. 마기를 품은 존재였더라면 확실하게 알 수 있었을 텐데, 죽은 자의 사기(死氣)는 느끼기가 어려웠다.

    다만 아스라하게 생명체와는 다른 존재가 내는 이질적인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그것이 언데드의 소리라는 걸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그가 언데드의 존재를 감지하려 애쓰는 사이, 샤칼이 마법병대를 이끌고 나타났다. 그 뒤를 따라 헤이먼이 샤벨타이거 기사단과 함께 성수를 들고 완전무장한 채 도착했다.

    “시야를 확보하는 게 우선인 듯합니다. 샤칼!”

    정천우는 팽선웅 백작에게 필요한 말만 하고는 샤칼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가 부르기도 전에 샤칼은 눈치 빠르게도 이미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ЦЭЖЭбД…… 라이트!”

    그가 손바닥을 펼치면서 주문을 외우기가 무섭게 1킬로미터쯤 떨어진 거리에 파르스름한 빛의 거대한 구체가 허공에 생겨났다.

    과연 7서클의 마스터다운 신속하고도 놀라운 크기의 라이트 마법이었다. 대낮처럼 밝은 빛은 아니었지만 어스름한 달빛 정도의 밝기는 되었다.

    “저건…….”

    정천우는 라이트 마법이 생성되는 것을 구경하다가 이내 안색을 굳혔다. 라이트 마법의 빛이 닿을락 말락 하는 위치에서 무언가 꾸물거리는 것이 보였다.

    거리가 멀어서 자세히 보기가 어려움을 깨달은 정천우가 내공을 움직였다. 눈에 내공을 집중한 그의 얼굴이 똥 씹은 듯한 표정으로 변했다.

    “제기랄…… 못 봐 주겠군.”

    질색한 얼굴의 정천우가 신음하듯 중얼거렸다.

    역겨운 꼴을 보고야 말았다. 바로 언데드라는 것들의 모습을 말이다.

    한쪽 팔이 잘린 채 머리통이 반쯤 깨진 놈이 걸어오는 건 그나마 양반이다.

    시커멓게 썩어들어 간 내장을 매단 채 걸어오는 놈과 뻥 뚫린 눈구멍에서 구더기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놈.

    가슴팍에 창날을 박고서도 무표정하게 걷는 놈이 있는가 하면 온몸에 쿼렐을 수십 발이나 박은 채 뻣뻣하게 걷는 놈까지 너무나 다양한 시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확실한 공통점은 다들 눈뜨고 봐 줄 만한 모습이 아니라는 점이다.

    언데드가 몰려오면 힘든 싸움이 될 거라는 수뇌부의 예측은 정확했다. 저런 몰골을 하는 놈들과 싸운 뒤에 정도련 놈들이 들이닥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혈맹의 기세는 크게 꺾일 것이 분명하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지는 정천우였다.

    “주인님, 뭐가 보이십니까?”

    “그래, 아주 오늘 제대로 좆됐다. 조금 있으면 너도 볼 수 있을 거야. 언데드 놈들이 잔뜩 몰려오고 있다. 놈들을 확실하게 보내 버릴 수 있는 방법이 뭐지? 한 번 죽은 놈들이 칼침 한 번 더 담근다고 뒈지진 않을 것 같은데?”

    속이 느글거리는 것을 애써 참으며 정천우가 물었다.

    “언데드는 보통 머리 부분에 마력의 원천이 들어 있습니다. 머리를 파괴하거나 완전하게 행동 불능의 상태로 만들면 됩니다. 성수에 적신 무기로 공격해도 느리긴 하겠지만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수가 필요한 거였어?”

    “부정한 것을 정화하는 데 성수만큼 확실한 것도 없습니다.”

    정천우가 이제야 알았다는 듯이 말하자 샤칼은 고개를 끄덕여 의문을 풀어 주었다.

    “먼저 마법으로 언데드의 수를 줄인 다음, 성수에 적신 쿼렐로 공략한다. 헤이먼!”

    “예, 단장님.”

    “성수는 충분한가?”

    “신관들에게 알려 더 준비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당장은 5천 명의 궁병대가 스무 발 이상 사격할 수 있는 양 정도 됩니다. 그러나 전투가 길어지면 부족할 수 있습니다. 근접 무기에도 성수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피가 묻으면 무기를 교체해 주어야 하기에 성수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헤이먼은 한쪽을 손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거기에는 말에게 물을 먹일 때 사용하는 말구유 안에 성수를 채워 쿼렐을 담가 둔 상태였다. 효과가 느린 만큼 쿼렐 전체를 성수에 적시는 것이다.

    “좋아, 헤이먼은 주소용 후작님이 병력을 배치하면 쿼렐을 나눠 주고, 샤칼! 마법 준비해! 곧 놈들의 모습이 보일 거다.”

    “예, 주인님! 마법병대, 앞으로!”

    샤칼이 명령을 내리자 마법병대에 속한 마법사들이 비장한 얼굴로 걸어 나왔다.

    광범위한 공격은 마법사가 발휘하는 마법만 한 게 없다. 마법사들의 얼굴엔 비장한 각오와 함께 자부심이 넘치고 있었다. 이때만큼은 기사들보다 자신들이 전장의 중심이 된다는 걸 알기에 전투 의지가 하늘을 찌를 듯했다.

    “세상에…….”

    “오, 신이시여…….”

    그러나 마법사들은 이내 얼굴이 핼쑥하게 변했다. 7서클의 마스터가 만든 라이트 아래로 서서히 드러나는 언데드를 발견한 탓이다.

    숫자를 헤아리는 건 의미 없는 짓이다. 언데드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샤칼은 마법사들이 위축되기 전에 명령을 내렸다.

    “화염계 마법을 위주로 사용하라! 서클이 낮아도 상관없다! 공격하라! ЖФБЙЦфЛ…… 파이어 필드!”

    명령과 함께 샤칼이 주문을 영창하자 언데드가 밀려오는 위치에 불바다가 만들어졌다.

    7서클의 마법인 인페르노 혹은 파이어 스톰을 사용하면 더욱 큰 위력이 나오겠지만 효율적인 면에서 파이어 필드가 훨씬 더 유용하다.

    게다가 다른 마법사들과의 연계도 생각해야 한다. 불필요하게 강력한 마법을 사용하면 마나의 간섭이 일어나 다른 마법사들의 마법이 무효화될 확률이 높아진다.

    “ЭДЁФБЙ…… 파이어 버스터!”

    “ЭДЁФфЛ…… 파이어 봄!”

    “ЭДЁЙб…… 파이어 에로우!”

    마법병대의 마법사들은 샤칼의 마법이 완성되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각자 마법을 발사했다.

    쿠르르르…… 바바방! 투두두둥…….

    수백 개의 불덩이가 허공을 가르면서 언데드를 향해 날아가고, 마법의 불화살이 발사되었다.

    언데드가 꼬물거리면서 무너지는 듯한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마법사들이 용기를 얻어 마법에 한층 정성을 쏟았다.

    “크롹! 크롸락!”

    “쿠워어어어…….”

    “크웨엑!”

    아련하게 언데드의 비명이 들려왔다.

    자신들의 마법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깨닫자 마법사들은 더욱 힘을 냈다. 수없이 날아가는 파이어 볼과 화염을 담은 마법이 폭발하면서 불꽃이 터졌다.

    의혈맹 사람들은 밀려오던 언데드가 주춤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희망에 부풀었다. 이대로라면 저 끔찍한 놈들과 직접적으로 교전을 벌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오래가지 않았다.

    “키히히힝!”

    샤칼이 만든 파이어 필드를 뚫고 말을 탄 언데드 기사가 튀어나왔다. 말의 울음소리였지만 쇳소리가 섞여 있었다.

    불의 장막을 뚫고 나온 언데드 기사를 따라 또 다른 언데드 기사들이 속속 튀어나왔다.

    문제는 언데드 기사들이 튀어나오면서 파이어 필드의 불이 사그라진다는 점이다.

    “썅! 뒈져서도 도움 안 되는 새끼들!”

    정천우가 이를 빠드득 갈며 씹어뱉듯이 중얼거렸다. 그의 옆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수뇌부 사람들도 침음을 흘리면서 안타까워했다.

    불의 장막을 뚫고 나온 것은 무림맹의 갑옷을 입고 나온 언데드 기사들이었다.

    그들은 반쯤 썩어들어 가는 말을 타고 피와 흙으로 더럽혀진 갑옷을 입은 채 롬파이어(전체 길이의 절반가량이 칼날로 이루어진 창)를 들고 있었다.

    “공격! ЖФБЙЦфЛ…… 파이어 필드!”

    “ЭДЁФфЛ…… 파이어 봄!”

    “ЭДЁФБЙ…… 파이어 버스터!”

    “ЭДЁЙб…… 파이어 에로우!”

    샤칼이 다시 한 번 파이어 필드 마법을 사용하면서 공격 명령을 내렸다.

    콰과광! 퍼버벙!

    요란한 폭음이 터졌다.

    시뻘건 화염이 사방으로 불을 토하면서 이미 죽어 버린 존재인 언데드 전투마와 언데드 기사를 집어삼켰다.

    의혈맹 사람들은 이번 공격으로 언데드 기사들이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염과 연기가 걷히고 드러난 상황은 그들의 믿음을 배신했다.

    “뭐 저런 것들이 다 있어? 정도련, 이 사악한 새끼들!”

    정천우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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