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
Chapter 40. 사악한 자식들 (4)
마틴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어둠 속에서 아무런 기척도 흘리지 않고서 움직이는 것도 대단했지만 사람의 목숨을 끊어 내는 솜씨가 더 대단했다.
자랑 같지만 정찰 3조원은 자신이 직접 키우다시피 훈련시킨 놈들이다. 뛰어나다는 말로도 부족한 조원들이 끽소리조차 해 보지 못하고 죽었다.
자신이 가장 먼저 가르친 것이 바로 생존 능력이다. 그래서 살기에 민감하도록 가르쳤다. 그런 조원들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죽었으니, 저들의 솜씨가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두 번 말하면 입 아플 정도다.
‘지독한 놈들, 내가 저기 있었다면…….’
마틴의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영문도 모른 채 죽은 부하 놈들이 불쌍하지만 자신도 저 자리에 있었다면 똑같은 꼴을 당했을 것이다.
놈들이 사라지기를 기다리며 최대한 조심했다. 혹시라도 기척이 드러날까 두려워 눈알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어째서 놈들이 정찰조를 공격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마침내 놈들이 떠나간 뒤에도 마틴은 기다렸다. 혹시라도 놈들이 멀리 간 것이 아니라면 낭패였으니까 말이다.
‘나갈까?’
30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마틴은 불안함과 두려움을 참지 못하고 은신처를 벗어날 마음을 먹었다.
부하들이 죽으면서 흘린 피가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는 것이 더 큰 이유이기도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에게 불만스러운 눈빛을 보내던 놈들이 시체가 되어 아무렇게나 뒹구는 모습은 맨정신으로 볼 만한 장면이 못 된다.
자신 때문에 죽은…… 아니, 자신을 대신해서 죽은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았다.
‘헉!’
막 몸을 일으키려던 마틴은 속으로 신음을 흘리면서 그대로 멈췄다.
놈들이 다시 나타났다.
조금만 더 일찍 움직였으면 놈들에게 발각당할 뻔했다. 등 뒤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놈들은 한참이나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사라졌다.
놈들이 사라지고서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마틴은 감히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다시 돌아와서 재확인할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은신처 밖으로 나오는 게 두려웠다.
‘제길! 대체 뭣 때문에 이러는 건데!’
마틴은 아예 더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주변에서 풀벌레 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겠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망원경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겼길래 정도련(마틴의 추측이지만) 놈들이 의혈맹의 정찰조를 죽이고 다니는지 의문스러웠다.
달팽이가 하품할 정도로 느릿하게 망원경을 펼치고 주변을 살폈다. 그러고는 사천당가의 영지 성을 살폈다.
그러나 특별한 것은 없었다. 성문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었다.
‘어? 방금 뭐였지?’
망원경을 집어넣으려던 마틴은 무언가 움직였던 것 같은 느낌에 다시 망원경에 눈을 댔다.
움직임이 느껴졌던 곳은 영지 성이 아니었다. 영지 성 밖에서 움직임이 있었던 것 같았다.
과연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시체를 뒤지는 건가?’
사천당가의 영지 성 밖에서 누군가가 꼬물거리면서 움직이고 있었다. 조금 더 세밀하게 관찰하기 위해 움직임이 느껴졌던 곳 주변을 천천히 망원경으로 훑어보았다.
마틴의 얼굴이 점차 경악으로 물들었다.
‘말도 안 돼!’
그는 눈이 찢어질 듯 크게 부릅떴다.
시체를 뒤지는 것 따위가 아니다. 시체가 일어나고 있었다. 부자연스러운 저 움직임은 살아 있는 인간의 움직임이라고는 보기 어려웠다.
언데드.
뻣뻣한 움직임과 느린 발걸음은 언데드의 것이 확실했다. 빛이 있었다면 확실하게 알 수 있었을 테지만 언데드라는 그의 추측은 확신을 더해 가는 중이었다.
간헐적으로 몸을 일으키던 시체가 이제는 동시다발적으로 사방에서 꿈틀대며 일어났다.
이건 더 확인하나 마나 한 일이다.
‘제길!’
마틴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마법사의 존재가 절실해지는 순간이었다. 이럴 때 통신 마법을 사용할 줄 아는 마법사가 있었더라면 쉽고 빠르게 언데드 군단의 탄생 소식을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마법 전력이 귀한 동대륙이었기에 정찰 임무 따위에 마법사가 투입될 일이 없다. 결국은 죽으나 사나 마틴이 직접 본진에 언데드의 출현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얘기다.
은신처에서 기어 나오는 마틴의 움직임은 더할 수 없이 조심스러웠다. 주변에서 우는 풀벌레마저도 그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급이긴 하지만 사일런트 마법이 새겨진 망토의 도움이 상당했다.
긴장감 때문에 온몸의 솜털이 모조리 곤두서는 기분이었다.
‘망할 자식들! 그래 봤자 모든 곳을 다 커버할 순 없을 거다!’
한바탕 속으로 욕설을 퍼부은 그는 정찰조 생활을 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머리를 굴렸다.
소규모로 넓은 지역을 감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서 적이 매복하고 있을 만한 지역을 우회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씨발, 그래서 우리 조에도 기사급 조원을 지원해 달라고 그렇게 요청했는데!’
마틴은 신중하게 이동하면서도 투덜대기를 멈추지 않았다.
만약 기사급 정찰대원이 있었다고 해도 아까 나타났던 3명의 무시무시한 놈들에게는 어림도 없다는 것 알면서 말이다.
속으로 툴툴대면서도 마틴의 움직임은 극도로 절제되어 있었다. 야생 짐승과도 같은 움직임을 보이는 그의 몸은 어느새 어둠을 벗 삼아 숲에 녹아들었다.
***
“헉, 헉…….”
마틴은 숨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로 달리고 또 달렸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에게 들키지 않고 숲을 빠져나온 건 천운이라고 할 만했다.
그러나 운은 완전히 그의 편은 아니었다.
숲만 빠져나오면 될 줄 알았다. 다음 조에게 위기 상황만 알려 주면 그만일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정찰 4조부터 12조까지 모든 정찰조가 시체로 변해 있었다.
사실 그의 눈으로 확인한 건 정찰 4조와 5조다. 나머지를 확인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의혈맹의 정찰조가 배치된 지역을 아예 우회해서 숲을 빠져나왔다.
재수 없게 적에게 걸리면 곧장 시체로 변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숲을 빠져나온 그때부터 한시도 쉬지 않고 달렸다. 그럼에도 너무나 늦었다. 우회하느라 숲을 너무 멀리 돌아 나온 탓이다.
“제기랄! 제기랄!”
숨을 쉬기 어려운 와중에도 욕설이 튀어나왔다.
한계까지 체력을 박박 긁어 쓴 까닭에 뛰는 건지 걷는 건지 구분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훈련된 움직임에 따라 그런 몸 상태로도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게 숲에 의지해 뛰었다.
그 유령처럼 움직이던 적이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했다.
마침내 그의 눈앞에 불빛이 나타났을 때,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멈추는 순간 다시는 뛰지 못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가서 본진에 이 끔찍한 소식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본진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쯤에야 큰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경계병이 허겁지겁 크로스보우를 겨누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멈춰라! 더 다가오면 쏘겠다!”
위협적인 목소리가 마틴의 고막을 두들겼다.
숨이 턱턱 막히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도착했다는 안도감에 절로 마음이 편해진 것이다.
“헉, 헉! 나, 나는 아미파 특수 정찰대 소속 3조장 마틴, 마틴입니다! 헉, 헉…… 언데드, 언데드가 몰려오고 있으니, 어서, 어서, 안에 소식을 알려…… 헉, 헉…… 알려 주십시오!”
마틴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힘겹게 대답했다.
그러자 경계병은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뜬금없이 언데드라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병사들의 동요를 걱정한 수뇌부에서 얘기를 전달하지 않은 까닭이다.
“신분을 증명할 만한 게 있소?”
“내, 내 직속상관은 주영란, 썬샤인 기사단의 주영란 부단장님이시오! 급한 일이니, 여기 정찰대 마크를 가져가시오! 훅, 후욱…… 시간이, 시간이 없소! 어서!”
마틴은 어느 정도 호흡이 진정되자 버럭 고함을 질렀다. 시간을 끌면 위험하기 때문이었다.
그의 서슬 퍼런 목소리에 경계병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같은 병사임에도 마틴의 박력에 밀린 것이다.
“아, 알겠소! 기다리시오!”
경계병은 마틴에게서 받은 정찰대 마크를 손에 쥐고 뛰었다. 아미파의 병력이 머무는 막사를 향해서다.
경계병의 갑작스러운 방문에 불침번을 서는 아미파 병사들과 실랑이가 붙어 소란이 일어났다.
“주영란 부단장님을 불러 주시오! 정찰대 소속이라는 자가 찾아왔소.”
“거참, 새벽에 이게 무슨 무례요! 잠시만 기다리시오.”
경계병이 정중하게 말하자 불침번 역시 불만스러워하면서도 알았다는 듯 몸을 돌렸다.
하지만 불침번이 안으로 들어갈 필요도 없었다. 안쪽 천막 중의 하나에서 출입구가 벌어지더니 갑옷을 입은 여기사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지금 정찰대라고 했는가?”
“그렇습니다!”
“그는 지금 어디 있나!”
“입구에 대기 중입니다.”
경계병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영란이 바람처럼 달려갔다.
가뜩이나 정찰대로부터 소식이 끊겨 걱정하던 그녀다. 혹시 늦게라도 연락이 올까 봐 잠조차 자지 않고 있다가 밖에서 들려온 ‘정찰대’라는 말에 천막에서 뛰쳐나왔던 것이다.
파비스(Pavise : 지면에 세워서 사용하는 거대한 방패의 일종)가 쭉 세워진 진영의 입구에 몇 명의 경계병이 진영 밖에 선 사내에게 크로스보우를 겨눈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주영란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정찰대의 복장과 망토가 틀림없었다.
“충! 정찰 3조장 마틴, 임무를 마치고 복귀했습니다!”
그녀가 입구에 도착하기 무섭게 마틴이 부동자세를 취하며 군례를 올렸다.
“충! 쉬어! 마틴, 그래, 넌 마틴이구나! 다른 사람들은? 정찰대에선 어째서 소식이 없는 것인가!”
주영란은 다급한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어제저녁부터 정찰대에서 보내오던 소식이 뚝 끊겼다. 그렇지 않아도 소식이 궁금하던 참이었기에 그녀는 다그치듯 물었다.
“정찰대는 저를 제외하고 전멸한 듯싶습니다.”
“전멸? 그게 무슨 소린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적들이 정찰대를 습격했습니다. 그보다 언데드가 몰려오고 있습니다.”
“언데드? 언데드라니! 자세히 말해 보라!”
주영란은 뜻밖의 보고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정도련 측에서 언데드를 사용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수뇌부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마틴의 입에서 ‘언데드’라는 말이 나오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는 부단장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야산 중턱에서 사천당가를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틴은 자신이 겪은 일을 빠르게 그리고 최대한 정확하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얘기를 듣는 주영란의 표정이 시시각각으로 변해 갔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이 되었다는 것에 충격을 숨길 수가 없었다.
“……습니다.”
“언데드는 어디쯤 오고 있지?”
“놈들의 속도로 보았을 때, 대략 두 시간 정도가 지나면 이곳에 도착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마틴은 자신의 예상보다 조금 더 빠듯하게 시간을 말했다.
넉넉하게 얘기했다가는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데 늦을 수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괜한 덤터기를 쓰고 싶지 않은 나름의 지혜였다.
“마틴, 수고했다. 후방으로 이동해 쉬도록!”
“충! 감사합니다, 부단장님!”
마틴은 모든 걱정을 다 내려놓은 얼굴로 군례를 마치고는 자리를 벗어났다.
때를 같이해 주영란이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비상! 비상! 어서 비상을 알려라! 어서!”
“옛!”
곁에서 언데드의 얘기를 들은 경계병들은 부리나케 뛰어가 비상종을 마구 두들겨 댔다.
뎅, 뎅, 뎅, 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