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59화 (159/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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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9. 폭풍전야(暴風前夜) (1)

    바닥에 쓰러진 찰리 단장의 몸에서 짙은 마기가 흘러나왔다.

    중원의 마교 고수와 마찬가지로 생명이 끊어졌음에도 지독한 마기는 시체에서 빠져나가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마교 고수들의 시체가 강시 제조에 잘 이용되곤 한다.

    하지만 정천우가 강시나 언데드 따위를 만들 이유가 없다.

    얼마 전만 같았으면 상대의 마나를 빼앗아 내공을 높였을 테지만 그것도 이젠 의미가 없는 일이다. 이 갑자의 내공을 쌓으면서 더 이상의 내공 증진은 별 효과가 없었으니까 말이다.

    “제길! 이럴 때가 아니지!”

    정천우는 내공을 몇 차례 돌려 내상을 억눌러 놓고는 바닥에 쓰러진 찰리 단장의 시체를 향해 역천검을 치켜들었다.

    투구를 발로 차서 벗겨 내고는 그대로 목을 베었다. 곁에 떨어진 할베르트를 들어 찰리 단장의 수급을 꽂았다.

    “마교의 기사단장을 죽였다!”

    정천우는 할베르트를 들어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찰리 단장의 수급을 내보였다. 마교의 기사들이 동요하는 게 확연히 드러났다.

    지금이 절호의 기회였다. 혼란스러워하는 지금이 마교 놈들을 궤멸시킬 수 있는 최적의 상황이었다.

    파바박!

    정천우가 지면을 박차며 경공을 발휘했다. 시뻘건 눈을 부릅뜬 채로 죽은 찰리 단장의 수급을 흔들면서 정천우가 마교 기사들을 향해 돌진했다.

    의혈맹의 기사들은 정천우가 돌진해 오자 분분히 길을 터 주었다.

    “우와아악!”

    정천우가 괴성을 지르면서 날아올랐다.

    피를 뒤집어쓴 마교의 기사가 이를 갈면서 정천우를 향해 할베르트를 찔러 왔다.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은 역천검이 연속으로 두 번의 칼질을 해 댔다.

    써컹, 써컹!

    마나 쉐도우를 품은 마교 기사의 할베르트가 맥없이 잘렸다.

    마교의 기사는 놀랄 틈도 없었다. 정천우의 역천검이 투구째로 두개골을 쪼개 놓았으니까.

    정천우의 움직임은 더욱 과격해졌다. 마교 기사들의 머리와 어깨를 짓밟으면서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우두둑, 콰득, 꽈직!

    그가 밟고 지나가는 기사들의 몸이 기괴한 현상을 일으켰다. 목이 꺾이고, 어깨뼈가 갑옷과 함께 짓눌리면서 부러졌다.

    단지 그뿐만이 아니었다. 역천검을 휘두르면서 마교 기사를 마구 도륙하면서 날뛰었다. 심지어는 찰리 단장의 수급이 박힌 할베르트를 함께 휘둘렀다.

    마교의 기사들이 마나 쉐도우를 뽑아내며 덤벼들자 정천우가 양손의 무기에 오러 블레이드를 일으켰다.

    순간, 할베르트에 꽂혔던 찰리 단장의 수급이 폭발을 일으키며 사방에 뇌수를 뿌렸다. 그러고는 잔인한 학살이 이어졌다. 마교 기사들의 정중앙으로 뛰어들어 할베르트와 역천검을 마구잡이로 휘둘렀다.

    그의 할베르트와 역천검에 걸리는 것들은 너무나도 쉽게 썰렸다. 갑옷의 존재는 무의미했다. 가끔 실력이 뒷받침되는 마교의 기사가 겨우 몇 번의 칼질을 받아 내는 게 고작이었다.

    마나 쉐도우로 오러 블레이드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았다. 애초에 베테랑급 기사가 마스터급 기사에게 덤벼든다는 게 무모한 짓이다.

    그러나 마교의 기사들은 주저하지 않았다. 정천우의 오러 블레이드가 마나 쉐도우로 바뀔 만큼 지칠 때까지 덤벼들 기세였다.

    비장한 얼굴로 덤벼드는 두 명의 마교 기사를 정천우가 할베르트와 함께 베어 내고는 주저앉듯이 자세를 낮추면서 몸을 회전시켰다.

    슈아악!

    “히히히힝!”

    오러 블레이드로 이루어진 하얀빛의 원이 생겨났다. 정천우의 등을 노리고 달려들던 마교의 기사들이 아니라, 그들을 태운 말들의 앞다리가 사이좋게 잘렸다.

    “우와악!”

    “망할!”

    “공격해!”

    타고 달리던 말이 무너지자 마교의 기사들이 당황한 와중에도 정천우에게 할베르트를 앞세우면서 말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회전을 끝마친 정천우가 몸을 일으켜 세우는 것과 동시에 역천검이 솟구쳐 올랐다. 세 자루의 할베르트가 오러 블레이드에 걸려 맥없이 잘려 나갔다.

    “차앗!”

    정천우가 할베르트를 베어 낸 역천검을 힘껏 잡아당기면서 기합을 내질렀다.

    높이 치솟았던 역천검이 사선으로 떨어지면서 빛을 뿌렸다. 오러 블레이드의 하얀빛이 덮쳐든 순간, 무기를 잃고 당황하던 마교의 기사들은 화끈한 느낌을 받으면서 생기를 잃었다.

    마스터급 기사에게 용감하게 달려들었던 마교 기사 3명은 피와 내장을 쏟아 내며 허무하게 쓰러졌다.

    “의혈맹의 기사들아! 마교 놈들은 지쳤다! 죽여라!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정천우가 사자후를 터트리면서 다시 마교 기사들에게 달려들었다.

    의혈맹주인 정천우가 함성을 지르면서 활약하는 모습은 기사들에게 힘을 주었다.

    적장을 베면서 많이 지쳤을 텐데도 아군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마교의 기사들 한가운데에 뛰어들어 고군분투하다니. 지금 의혈맹주 정천우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맹주님께서 함께 싸우신다! 힘을 내라! 승리는 우리의 것이다!”

    정천우의 말을 받은 팽선웅 백작이 전신에 피 칠갑을 한 채 소리쳤다. 하북팽가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백색의 갑옷이 온통 검붉은 핏물로 뒤덮였다.

    의혈맹의 기사들은 지쳤음에도 힘이 솟는 느낌을 받았다. 의혈맹주를 비롯해 각 영지의 영주들이 솔선수범하면서 전장을 이끄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마교 놈들을 공격하라! 죽여라!”

    “우와아아아!”

    헤이먼이 배틀 액스를 휘둘러 마교 기사의 투구를 곤죽으로 만들며 소리쳤다.

    이종족인 헤이먼까지 적극적인 자세로 전투에 임하자 의혈맹 기사들의 사기가 더욱 크게 올라갔다. 자신들의 싸움에 이종족인 헤이먼까지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에 자극을 받은 것이다.

    의혈맹 소속 기사들의 기세가 이전과 달리 거세게 불타올랐다. 마교의 기사들은 점차 위축되었다.

    안쪽에서는 괴물 같은 정천우가 동료들을 마구 베어 넘겼고, 주변은 의혈맹 기사들이 둘러싼 채로 도망조차 가지 못하게 막았다.

    “개자식들아! 꺼져! 꺼지란 말이다!”

    “으아아아! 성령의 불꽃이여! 타올라라! 타올라라아!”

    마교의 기사들은 저마다 광기에 물든 괴성을 지르면서 악귀처럼 할베르트를 휘둘렀다. 그러나 네 배에 이르는 의혈맹 기사들에게 차륜전을 당하면서 빼앗긴 체력과 마나는 역혈대법을 무력화시켰다. 화력이 약해지기 시작한 마교의 기사단은 의혈맹의 기사들의 먹잇감에 불과했다.

    안팎으로 밀려드는 치명적인 공격.

    마교의 다크 기사단의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었다.

    “밀어붙여라! 적의 사기가 꺾였다! 의혈맹의 기사들이여! 승리가 눈앞에 있다!”

    팽선웅 백작이 기사들을 더욱 독려하면서 호위기사를 이끌고 마교의 기사들을 베어 넘기며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크아악! 막아! 뚫리지 않게 막으란 말이다!”

    마교의 기사가 악다구니를 쓰면서 팽선웅 백작을 가로막았다. 그러나 한번 밀리기 시작하자 하북팽가의 기사단을 막을 수가 없었다.

    하북팽가의 기사들이 마교 기사들의 사이를 점점 더 벌리면서 공간을 잠식해 들어왔다.

    “이미 늦었다!”

    팽선웅 백작은 할베르트를 휘둘러 오는 마교 기사의 가슴에 세이버를 박았다가 뽑으면서 고함을 질렀다.

    전장의 광기가 육체를 강인하고 활발하게 해 주었다. 아무리 싸워도 지치지 않는 기분이었다.

    또 한 명의 마교 기사가 욕설을 퍼부으면서 달려들었다. 팽선웅 백작은 할베르트를 막으면서 세이버를 밀어냈다.

    할베르트의 창대를 따라 세이버가 타고 내려가 창 자루를 움켜쥔 마교 기사의 손가락을 건틀릿과 함께 썰었다. 괴로워하며 입을 쩍 벌린 마교 기사의 목을 쳐 내고, 팽선웅 백작이 살육의 희열에 눈을 번뜩였다.

    다음 상대를 찾아 두리번거리던 팽선웅 백작의 입이 쩍 벌어졌다. 하북팽가의 기사들은 팽선웅 백작의 곁을 보호하면서 진격을 멈췄다.

    여유가 생기자 팽선웅 백작의 시선이 한곳에 고정되었다. 그가 바라보는 방향에서는 끔찍한 살육이 벌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팽선웅 백작의 눈에는 다르게 보였다.

    “아름답구나! 저런 움직임이라니…….”

    팽선웅 백작의 입에서 탄식이 뒤섞인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마교의 기사들 한가운데에서 현란한 움직임을 보이는 정천우가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대여섯 자루의 할베르트가 정천우를 노리고 쏟아졌다. 그러나 눈부신 빛이 터지면서 마교 기사들의 몸뚱이를 절단해 냈다.

    오러 블레이드는 사람이든 말이든 걸리는 것이라면 가리지 않고 절단했다. 말 위에 타고 있음에도 마교 기사들은 위치의 이점을 살리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다.

    정천우의 움직임은 춤을 보는 것 같았다. 공격과 방어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으며, 중간중간 변칙적인 움직임을 보였다.

    “저게 혼원벽력도법이란 말인가!”

    팽선웅 백작이 자신도 모르게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일반적인 기사들이 배우는 도법이 바로 혼원벽력도법이다. 팽선웅 백작 자신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 건곤연환탈백도(乾坤連環奪魄刀)를 익혔다. 무공을 남긴 벽력대제가 특별히 주석을 달아 준 진본(眞本)을 바탕으로 배웠다.

    때문에 그동안 병사들이 배우는 오호단문도나 혼원벽력도법은 수준이 낮다고 생각해 왔었다.

    그러나 정천우가 펼치는 오호단문도와 혼원벽력도는 달랐다. 오호단문도가 그의 손에서 펼쳐지면 뇌전의 샤벨타이거가 전신을 뒤덮으면서 사방으로 위협적인 기운을 쏟아 냈다.

    혼원벽력도를 펼치는 모습은 또 어떠한가!

    신화 속에나 등장하는 번개의 신과 같은 위엄을 보인다. 그의 주변으로 흐르는 번개의 기운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정천우를 중심으로 마교 기사들의 팔과 목이 베이면서 사방으로 흩어졌다. 잔인하다기보다는 차라리 아름다웠다. 역천검을 휘두를 때마다 마교의 기사가 알아서 목숨을 내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바우웅!

    “아!”

    팽선웅 백작의 상념이 깨졌다.

    마교 기사들의 죽음으로 만들어진 피의 길이, 자신의 코앞에까지 쭉 이어졌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정천우가 자신에게 역천검을 겨누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팽선웅 백작님.”

    정천우가 거칠어진 숨을 내뱉으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하마터면 팽선웅 백작에게마저 칼질을 해 댈 뻔했다. 난전 중이었고 주변이 모두 마교의 기사들이었기에 안심하고 초식을 마구 쏟아 냈는데, 하마터면 큰일을 냈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마지막에 역천검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상대에게서 적대감과 살기가 묻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하북팽가의 기사들이 눈앞에 있었다. 마교 기사의 벽을 뚫은 것이다.

    “후우…… 끝이 보이는군요.”

    정천우가 길게 숨을 내쉬며 역천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마교의 다크 기사단은 패색이 짙었다. 의혈맹의 기사들이 의욕적으로 덤벼들고 있어서 그런지 잔뜩 기가 죽어 있었다. 기세에서 밀렸으니 이제는 마무리만 남았다.

    의혈맹의 기사들은 더욱 거세게 마교의 기사들을 압박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정천우는 역천검을 검집에 꽂았다. 굳이 자신이 더 끼어들지 않더라도 전투가 끝날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팽선웅 백작님, 저는 좀 쉬어야겠습니다. 전장을 지휘해 주십시오.”

    “맡겨 주십시오, 맹주님.”

    팽선웅 백작은 군례를 올리면서 눈을 부릅떴다.

    정천우와 같은 사람이 의혈맹의 맹주라는 게 다행이었다. 만약 적이었다면 끔찍한 재앙이었을 것이다. 그가 있었기에 저 끈질기고도 잔인한 마교의 기사들이 무너지는 것이다.

    이건 자멸에 가까웠다. 정천우가 워낙 크게 휘저어 놓았기 때문에 마교의 기사들이 기가 죽었다.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놀라운 무력!

    정천우가 싸우는 모습에서 팽선웅 백작이 느낀 점은 바로 그것이었다.

    “우룡 경!”

    “예, 영주님!”

    “맹주님의 곁을 지키게!”

    “알겠습니다, 영주님!”

    팽우룡은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하북팽가의 기사들 사이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정천우의 뒤를 쫓았다.

    팽선웅 백작은 팽우룡이 정천우의 뒤를 따라가는 것까지 확인하고서는 세이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맹주님께서 내게 전장의 지휘를 맡기셨다! 하북팽가의 기사들이여! 나를 따르라! 마교의 잡놈들을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목이 찢어져라 고함을 지르는 팽선웅 백작의 눈가엔 희열이 스며 있었다.

    맹주인 정천우가 맡긴 전장이다.

    확실하게 정리해서 하북팽가와 맹주인 정천우가 끈끈한 관계라는 걸 의혈맹의 사람들에 각인시킬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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