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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157화 (157/200)
  • # 157

    Chapter 38. 아는 만큼 보인다 (4)

    회색으로 빛나는 오러 블레이드가 더욱 크기를 부풀리면서 할베르트를 뒤덮었다.

    이번 일격에 모든 힘을 다하려는 듯 찰리 단장의 입가에 핏물이 내비치고 있었다. 그럼에도 더욱 마나를 퍼부어 넣었다. 정천우를 보내 버리겠다는 의지를 가득 담은 회심의 일격이었다.

    길이가 긴 할베르트를 사용하는 자신도 속이 미식거릴 정도로 내상을 입었다. 역천검과 같은 짧은 무기를 사용하는 정천우라면 더 큰 내상을 입었을 거라는 계산을 깔고서 혼신의 힘을 다해 내리찍었다.

    혼원벽력도의 기수식을 잡은 채 눈을 빛내던 정천우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머리를 노리고 정직하게 내리꽂히는 할베르트를 향해 정천우의 몸에서 빛의 화살이 만들어졌다.

    카가강! 콰광! 쾅!

    일순간에 뻗어 나온 하얀빛은 찰리 단장의 할베르트를 정확하게 두들겼다.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제육초식, 육섬뢰(六閃雷).

    여섯 번의 칼질이 오러 블레이드를 간직한 채 할베르트를 난타했다.

    “우웨에엑!”

    전력을 다해 공격했던 찰리 단장은 여섯 번이나 중첩된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마침내 피를 토하고 말았다.

    “크으…….”

    정천우라고 무사한 것만은 아니었다.

    손아귀가 찢어질 것처럼 아팠다. 공격하면서 내상을 입었는지, 그의 입가에서도 한 줄기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크아아악!”

    찰리 단장은 입으로 핏물을 쏟아 내면서도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고통을 즐기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시커먼 갑옷 위에 핏물을 도배하면서 할베르트를 사선으로 올려쳤다.

    “지랄!”

    정천우는 만신창이가 된 찰리 단장이 숨조차 고르지 않고 곧바로 달려들 줄은 몰랐다.

    손아귀를 비롯해 어깨와 가슴이 뻐근한 상태였다. 이런 자신도 움직이기 힘든데 뇌전의 기운에 노출되어 충격을 받은 찰리 단장이 저돌적으로 달려드니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최소한 찰리 단장의 정신력만큼은 높게 살 만했다.

    차장!

    정천우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나면서 역천검을 할베르트에 가져다 대고 착(着)의 수법과 퇴(頹)의 수법을 이용했다.

    “우욱! 어디서 괴상한 수작을!”

    찰리 단장은 낭패한 얼굴로 급하게 자세를 가다듬었다.

    끈끈한 거미줄에 붙은 것처럼 상대의 검이 할베르트에 들러붙는 느낌이 든다 싶더니 제멋대로 튕겨 나갔다. 순간적으로 손아귀에 힘을 주지 않았다면 할베르트를 잃고 위기에 빠질 뻔했다.

    그의 눈이 빛났다. 전의를 잃기는커녕 오히려 투지가 불타올랐다.

    경험해 보지 못한 수법을 사용하는 정천우의 싸움 방식이 혼란스럽다. 하지만 그래서 더 싸우는 맛이 났다.

    “우와아아! 죽어라!”

    찰리 단장이 호통을 치면서 달려들었다.

    광기에 물들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할베르트를 곧장 뻗었다. 회색빛 오러 블레이드를 담은 도끼날이 정천우의 심장을 노리고 쏘아졌다.

    과도한 마나의 사용으로 그의 팔에서 혈관이 터져 나갔다. 그럼에도 찰리 단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역혈대법의 효과로 고통에 무뎌진 것이다.

    으드득!

    정천우는 이를 갈아붙이고 전신의 내공을 모조리 끌어올렸다.

    상대의 공격이 거세진 것은 분명하지만, 그와 비례해 빈틈 또한 커졌다.

    절호의 기회!

    공간을 부수면서 일직선으로 찔러 오는 할베르트를 향해 정천우가 역천검을 어지럽게 휘둘렀다.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제삼초식, 무음벽력(無音霹靂).

    금속과 금속이 부딪치면서 시퍼런 불똥이 마구 휘날렸다. 그렇지만 오러 블레이드가 폭발하면서 발생하는 굉음은 들리지 않았다. 폭발음이 발생하기도 전에 새로운 충돌이 일어나면서 소리가 상쇄되고 있었다.

    고요함 속에서 이루어지는 치열한 공방(攻防)!

    찰리 단장의 얼굴이 더욱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정천우의 얼굴에도 괴로움이 묻어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찰리 단장이 우악스럽게 힘으로 밀고 들어와 기어이 심장에 할베르트를 쑤셔 넣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콰과광!

    “크억!”

    “으으윽!”

    무음벽력의 초식을 완성하면서 마지막 격돌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가로막혔던 폭음이 한꺼번에 터졌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음을 흘리면서 뒤로 밀려났다. 폭발의 여파에 밀려 어쩔 수 없이 뒷걸음질을 치는 것이다.

    찰리 단장은 입에서 핏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덩어리 피까지 간간이 섞여 있었다.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는 증거다. 그럼에도 그의 표정은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징그러운 새끼!’

    정천우가 속으로 찰리 단장을 저주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이건 기세 싸움이다. 약한 모습을 보이면 상대가 미친 듯이 달려들 것은 뻔한 이치다. 괴롭고 힘들어도 인내하고 다시 싸울 준비를 해야 한다.

    최소한 찰리 단장보다 내상이 적다는 것을 위안 삼았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기가 질린다. 저만한 내상을 입고서도 전혀 투지가 줄어들지 않다니…….

    위축되는 기분을 날리면서 정천우가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뻐근해지는 어깨를 한차례 돌려 몸을 풀고 내공을 끌어모았다.

    아직도 의혈맹의 기사들이 마교의 기사들을 어쩌지 못하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이런 멍청한!’

    정천우가 뜨악한 얼굴로 혀를 찼다. 찰리 단장에게 집중하느라 의혈맹의 기사들을 너무나 오래 방치했다.

    단전에 힘을 준 그는 사자후의 수법을 사용했다.

    “진겨억!”

    정천우의 입에서 우렁찬 함성이 튀어나왔다.

    “갑자기 왜 개수자악…….”

    찰리 단장이 할베르트로 정천우를 겨누면서 고함을 지르다가 이내 안색이 창백하게 바뀌었다.

    양옆의 숲을 뚫고 튀어나오는 기사단을 발견한 것이다.

    “와아아아! 진격하라!”

    “하북팽가의 기사들이여! 적을 죽여라!”

    “아미의 기사들은 적의 퇴로를 끊어라!”

    주소용 후작과 팽선웅 백작이 기사단을 이끌고 튀어나와 각각 다크 기사단의 퇴로를 막고 측면을 치고 들어갔다.

    “비, 빌어먹을! 병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냐!”

    자신의 부하들이 의혈맹 기사들에게 둘러싸이는 모습을 보면서 찰리 단장이 절망스러운 얼굴로 이를 갈았다.

    “미안, 일찍 알려 주고 싶었는데 좀 바빴잖아. 그지?”

    정천우는 느긋한 태도로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꼼수를 쓰다니…….”

    “작전이란 거다, 작전!”

    역천검을 두 손으로 움켜쥔 정천우가 이를 드러내면서 찰리 단장의 말을 받았다.

    “죽인다! 죽여 버리고 말겠어! 으아아아!”

    기합인지 비명인지 모를 애매한 괴성을 내지르는 찰리 단장.

    할베르트에 맺힌 오러 블레이드가 더욱 크기를 키우면서 사방으로 무시무시한 기파를 흘렸다. 붉게 물든 그의 눈은 아예 핏빛으로 변해 괴기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고 있었다.

    ‘저 눈빛은…….’

    정천우는 긴장감을 이기지 못하고 마른침을 삼켰다. 찰리 단장이 보여 주는 모습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의 모습에서 느낀 것은 한 가지다.

    동귀어진(同歸於盡)!

    중원에서 피치 못할 상황에 처했을 때 무인들이 보여 주는 가장 극단적인 행동이다. 정천우 역시 숱한 고비를 경험하면서 동귀어진을 선택했던 적이 많다.

    지금 찰리 단장의 눈빛은 함께 죽겠다는 각오를 담고 있었다. 예전 정천우가 치열한 낭인의 삶을 살았던 그때와 같이 독기 가득한 눈빛을 하고서.

    “와 봐!”

    정천우는 오히려 도발을 택했다.

    동귀어진을 택한 놈들의 공통점은…… 궁지에 몰렸다는 점이다. 찰리 단장 역시 마찬가지다. 정천우 자신의 월등하게 유리한 상황.

    아쉬운 건 자신이 아니다.

    검지를 까딱거리면서 찰리 단장을 향해 비웃음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혼원벽력도법의 기수식에 충실했다.

    “차아압!”

    찰리 단장이 커다란 고함을 지르면서 돌진해 왔다.

    온몸이 빈틈투성이였다. 가슴을 훤하게 드러내 놓고 달려드는 행동에 정천우는 순간적으로 맥이 탁 풀릴 지경이었다.

    저래서야 동귀어진이고 뭐고 의미 없는 일이었다.

    사삭!

    궁보(弓步) 형태로 자세를 잡았던 정천우의 왼발이 바닥을 끌며 반 걸음 미끄러져 나아갔다. 뒤를 따라 오른발이 끌려가면서 정면을 향해 겨누어졌던 역천검이 빛을 뿌렸다.

    후발선지(後發先至)!

    정천우가 노리는 것은 그것이다.

    대각선으로 공간을 갈라 오는 할베르트를 향해 역천검이 아래에서 위로 뻗어 올라갔다. 아름다운 반원을 그리면서 솟아오른 역천검이 할베르트의 도끼날을 정확하게 두들겼다.

    쾅!

    회색의 오러 블레이드와 하얀색의 오러 블레이드가 마주친 순간 대폭발이 일어났다. 폭발과 함께 일어난 빛이 두 사람의 모습을 집어삼켰다.

    순간적으로 일어난 눈부신 빛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두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큭…….”

    찰리 단장의 입에서 비틀린 신음이 흘러나왔다. 웃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고통스러워하는 것도 아닌 듯한 신음이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역천검이 오러 블레이드를 머금은 채 박혀 있었다. 갑옷을 뚫고 검날이 그의 등 뒤로 삐죽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꽤 힘들었어.”

    정천우는 역천검의 손잡이를 두 손으로 움켜쥔 채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음에도 이렇게나 힘겹게 싸워야 할 상대가 있을 줄은 몰랐다. 실제 무기를 마주 대고 싸운 것은 솔직히 말하면 몇 차례 되지 않았지만 피로도가 달랐다. 자잘한 내상이 쌓여 속이 미식거렸다.

    처음 동대륙에 와서 목숨 걸고 싸우던 때보다 더 피곤한 느낌이었다.

    “크크크크…… 걸렸어.”

    “뭐? 우와악!”

    정천우는 음침하게 웃음을 터트리는 찰리 단장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비명을 질렀다.

    가슴에 역천검을 박은 채로 할베르트를 들어 올리는 찰리 단장의 모습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서둘러 역천검을 뽑아내려고 했지만 할베르트가 떨어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역천검을 뽑으려다가는 머리가 날아갈 판이다.

    정천우는 이를 악물고 왼팔을 들었다. 억지로 내공을 왼팔에 집어넣어 호신강기를 더욱 강화했다.

    그런 정천우의 왼팔에 오러 블레이드를 품은 할베르트가 떨어졌다.

    콰앙!

    “커헉!”

    정천우가 괴로운 신음을 토하면서 날아갔다.

    충격을 받으면서 역천검이 뽑혀 나온 것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일부러 더욱 뒤로 몸을 날렸다. 그의 몸을 따라 핏물이 꼬리를 물었다.

    “쿨럭, 쿨럭…….”

    정천우는 역천검으로 전면을 가리며 격하게 기침했다. 핏물이 콸콸 쏟아져 나와 갑옷을 적셨다.

    “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정천우는 입안 가득 고인 핏물을 바닥에 뱉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분명 역천검이 상대의 가슴을 관통했다. 그런데 손해를 본 것은 자신이다.

    급한 마음에 호신강기를 왼팔에 둘러서 막았다. 하지만 날붙이 무기를 호신강기로 막아 낸다는 것 자체가 솔직히 미친 짓이었다. 만약 중원이었다면 왼팔이 썽둥 잘려 나갔을 것이다.

    다행히 마나 운용 능력이 젬병인 동대륙이었기에 왼팔이 날아가지 않을 수 있었을 뿐이다.

    왼쪽 어깨가 부서져 나갈 듯 욱신거렸다. 왼팔은 관절이 빠져나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정천우는 땅바닥에 역천검을 꽂아 넣고는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잡았다.

    우두둑!

    “크아악!”

    찰리 단장을 노려보면서 정천우가 비명을 질렀다.

    빠져나갔던 관절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면서 끔찍한 고통을 선사했다.

    “크흐흐흐…… 이제 3차전인가?”

    찰리 단장이 징그럽게 웃으면서 할베르트를 들어 정천우를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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