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56화 (156/200)
  • # 156

    Chapter 38. 아는 만큼 보인다 (3)

    “단번에 썰어 주마! 이랴아!”

    찰리 단장이 할베르트의 창 자루를 양손에 쥐고서 전투마의 배를 걷어찼다.

    아픔을 참지 못한 전투마가 앞발을 들었다가 힘차게 뛰쳐나갔다. 하단으로 내린 할베르트의 창날에선 회색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이글거리면서 타올랐다.

    정천우와 찰리 단장이 상대를 향해 살기를 뿌려 대며 각자의 무기를 힘차게 휘둘렀다.

    콰앙!

    “히히히힝!”

    “썅!”

    정천우가 당황한 음성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격돌의 순간, 그가 탄 전투마가 구슬프게 울부짖으면서 주저앉았다. 정천우는 말에게 깔릴 것을 우려해 재빨리 말에서 뛰어내렸다.

    전투마의 한계였다. 마법 실드를 파괴하면서 받은 충격이 쌓인 상태에서 오러 블레이드를 담은 찰리 단장의 공격과 부딪힌 탓에 튼튼한 뒷다리가 엉망으로 파열되었다. 무리하게 충격을 견디려다가 뼈가 부러져 살갗을 뚫고 튀어나왔다.

    “제기랄! 수고했다!”

    정천우는 애처로운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보며 울음을 흘리는 전투마의 목을 단번에 베었다.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위기였다.

    어느새 찰리 단장은 말머리를 돌려 정천우를 노려보는 중이었다. 그의 말은 튼튼해 보였다. 전신에 마갑을 두르고서도 움직임이 가볍기 짝이 없었다.

    “크하하하! 네놈은 이걸로 끝이다!”

    찰리 단장이 잇몸을 드러내면서 할베르트를 들었다. 말과 함께 달려오는 그의 모습은 위협적이었다.

    위에서 아래로의 공격을 감당하는 건 위험천만한 짓이다. 그러나 정천우에게는 동대륙 사람들이 지니지 못한 무기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파바박!

    경공이었다.

    땅거죽을 찢어발기면서 정천우가 지그재그로 몸을 날렸다. 찰리 단장은 잔상을 남기면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적의 모습을 좇느라 바쁘게 고개가 돌아갔다.

    마침내 격돌의 순간,

    파방!

    정천우의 발밑에서 폭발음이 터졌다.

    사방으로 비산하는 흙먼지와 함께 정천우의 몸이 날아올랐다.

    “으윽! 받아랏!”

    찰리 단장이 급하게 할베르트의 궤도를 바꾸면서 튀어 오른 정천우를 공격했다. 회색으로 빛나는 오러 블레이드가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상대의 목을 노렸다.

    쐐에엑! 콰광!

    정천우가 창 자루를 수평으로 휘둘러 할베르트의 도끼날을 후려쳤다.

    시퍼런 불꽃과 함께 오러 블레이드가 폭발하면서 마나의 파편이 마구 날아다녔다.

    두 사람은 동시에 인상을 찡그렸다. 손아귀에서 느껴지는 묵직하고도 고통스러운 반발력 때문이었다.

    “우욱!”

    찰리 단장은 대경실색하면서 상체를 뒤로 젖혔다.

    정천우의 발이 맹렬한 바람 소리를 내면서 아슬아슬하게 얼굴 앞을 스쳤다. 직접 맞지 않았음에도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엄청난 위력을 담고 있었다.

    공격을 피했다고 안도할 틈도 없었다.

    퍼걱!

    “푸륵!”

    정천우의 목표는 애초부터 찰리 단장의 얼굴이 아니었다.

    찰리 단장이 상체를 뒤로 숙이는 순간, 그의 발에 말의 머리가 걸렸다. 마갑을 쓰고 있음에도 내공을 담은 발차기를 감당하지 못했다. 전투마의 두개골이 박살 나면서 찰리 단장을 태운 채 기우뚱거렸다.

    몸뚱이가 기울어지면서도 전투마는 스스로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다리를 계속 움직였다.

    “치잇! 차압!”

    찰리 단장은 할베르트를 쥔 채로 말에서 훌쩍 뛰어올랐다. 말에 미련을 두었다가는 함께 땅바닥을 뒹굴 판이라 미련 없이 포기했다.

    역혈대법을 두 차례나 사용한 찰리 단장의 몸놀림은 훌륭했다. 비록 정천우와 같이 안정적이지는 않았지만 전투를 위한 움직임으로서는 최적의 동선을 만들었다.

    지면에 빨리 착지하기 위해 몸을 숙이면서 주변을 살폈다. 정천우가 자신을 노린다는 사실을 알기에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마침내 발바닥이 지면에 닿는 것을 깨닫고서야 한시름 놓았다.

    할베르트를 쥔 손에 마나를 불어넣으면서 후방을 향해 휘둘렀다. 정천우를 발견할 수 없으니 그렇게라도 후방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쾅!

    “이크! 이 자식, 눈치챈 거냐!”

    정천우가 십년감수한 얼굴로 소리쳤다.

    기척을 죽이고 따라붙었는데, 상대가 그것을 눈치채고 할베르트를 휘둘러 왔다. 기척을 죽이는 것엔 자신이 있었던 정천우였기에 놀람은 더욱 컸다.

    공격에 실패한 것을 깨닫자마자 보법을 발휘해 뒤로 물러났다. 그의 얼굴엔 당혹한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실패할 거라곤 생각하지도 않았기에 상실감이 더욱 컸다.

    “훗! 그따위 수법에 당할 것 같으냐?”

    찰리 단장은 이글거리는 눈으로 정천우를 노려보았다.

    겉으로는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철렁했다. 습관적으로 후방의 안전을 확보하려고 할베르트를 휘둘렀을 뿐인데 묵직한 충격이 밀려왔다.

    진짜로 정천우가 자신의 뒤에까지 접근해 왔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전투마를 타고 달린 거리와 자신이 말에서 도약한 거리를 순식간에 따라잡고 달려들었다는 의미다.

    ‘이게 인간의 몸으로 가능한 일인가?’

    찰리 단장은 긴장감으로 인해 입안이 바싹 마르는 느낌이었다.

    정천우가 말을 잃고 덤벼들었을 때도 느꼈지만 그의 움직임은 상식을 초월하고 있었다. 말을 타고 덤벼든다고 해도 그런 움직임을 보여 주기는 불가능하다.

    찰리 단장이 아는 한, 그런 움직임을 보이는 인간은 정천우가 유일했다.

    ‘할 수 없지! 이판사판이다.’

    이를 뿌드득 갈아붙인 찰리 단장은 다시 한차례 마나를 심장에 집중했다.

    구구궁…….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찰리 단장의 귀에는 무언가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역혈대법의 마지막 단계가 풀렸음을 의미하는 소리였다.

    마족의 능력을 빌려 쓰기 위해서 마나의 제한을 풀었다.

    엄밀히 말하면 역혈대법은 아니다. 다만 역혈대법으로 제어하는 마족을 한 차례 더 쥐어짜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역혈대법이 해제되었을 때 자신은 물론이고 몸속에 가둔 마족까지 후유증 때문에 당분간은 아무런 힘도 쓸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감당하기 어려운 적을 상대로 뒷일을 걱정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당장 눈앞의 것만 생각하기에도 지금은 정신이 없었다.

    두둑, 두두둑!

    “또 뭐야?”

    정천우는 이를 드러내며 짜증을 부렸다.

    찰리 단장의 몸에서 시커먼 연기가 흘러나오는 것이 신경 쓰였다.

    단순히 검은 연기가 흘러나온다고 해서 정천우가 짜증을 내는 게 아니다. 그의 갑옷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마법이냐?”

    그랬다.

    중원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마법적인 기운이 찰리 단장의 몸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법에 대해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그에게는 위화감이 생길 뿐이었다.

    ‘이제야 겨우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제길!’

    정천우는 죽일 듯이 찰리 단장을 노려보았다.

    사방에서 비명과 신음이 난무하고 있었지만 정천우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그의 신경은 오직 찰리 단장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말에서 끌어내리는 것까지 성공했으니 어쨌든 일차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차아아아!”

    죽느냐 사느냐다.

    정천우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의 창 자루에 달린 역천검에서 하얀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뿜어져 나와 파괴적인 기운을 뿌려 댔다.

    그러자 찰리 단장 역시 마주 달렸다. 그의 할베르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 역시 만만치가 않았다.

    정천우가 보법과 신법을 발휘해 방향을 꺾었지만 찰리 단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움직이건 현혹되지 않고 헬베르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마지막에 어디로 오는지만 잡으면 돼!’

    찰리 단장이 눈매를 좁히면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상대의 움직임에 휩쓸리는 순간 위험하다. 위험성은 자신의 전투마가 죽음으로 검증해 주었다.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던 20여 미터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다.

    끓어오르는 살기.

    상대를 죽이겠다는 이기적인 집념과 집념이 마주쳤다.

    캉! 콰광, 쾅!

    정천우의 창과 찰리 단장의 할베르트가 연달아 마주치면서 굉음과 불꽃을 토했다.

    찰리 단장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짐승 같았다. 역혈대법에 의해 육체 능력이 한계를 벗어나도록 상승한 상태였다.

    그가 평생을 갈고닦은 마교의 검술을 사용하기에는 그의 정신이 받쳐 주지 못했다. 정천우의 물 흐르는 듯한 창술을 오로지 즉흥적인 감각만으로 쳐 내고 반격까지 해 댔다.

    단순한 동작이었음에도 정천우는 답답함을 느꼈다.

    상대의 공격이 어설프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쉽게 승기를 잡지 못했다. 짜증이 치밀어 미칠 것 같았다. 후딱 해치운 다음에 쉬고 싶은데 적의 능력이 예상외였다.

    “에라이!”

    정천우가 짜증을 담아 소리치고는 창을 크게 수평으로 휘둘렀다.

    전력을 다한 공격이었기에 찰리 단장은 감히 막아 내지 못하고 훌쩍 뒤로 물러났다. 정천우가 그 틈을 타고 뒤로 몸을 뺐다. 이대로라면 언제 승부가 날지 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천우의 한쪽 입술이 씰룩거렸다.

    딸칵!

    비장한 얼굴로 역천검과 창 자루가 맞물린 이음새를 비틀었다. 이제껏 창을 들고 싸운 게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주특기는 근접전이다. 애초부터 도법을 사용하는 무인이었다. 창술은 그저 마상 전투를 위해 보조 수단으로 익혔다.

    말을 탄 것도 아닌데 어째서 창을 사용하고 있었는지 자신이 생각해도 바보 같았다.

    창 자루를 바닥에 집어 던지고 검 자루를 움켜쥐었다. 창을 사용할 때보다 훨씬 더 감각이 섬세하다. 마나가 역천검에 흘러들어 가는 것과 마나가 되돌아 나오는 것까지 모두 느껴질 정도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진작에 이럴 걸 그랬어.”

    정천우가 자신감을 드러내며 잇몸을 드러냈다. 그의 눈이 향하는 곳엔 찰리 단장이 있었다.

    찰리 단장 역시 정천우가 역천검을 직접 쥐는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 신중하게 할베르트의 창 자루를 움켜잡았다.

    “자, 이제 2차전 시작해야지?”

    정천우는 혼원벽력도법의 기수식을 잡았다.

    이제껏 답답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안정되면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기본만 대충 배우고 넘어갔던 창술을 펼칠 때와는 위압감부터 달랐다. 전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찰리 단장을 찢어발길 듯이 예리했다.

    “흥! 건방 떨지 마라!”

    정천우가 여유로운 표정을 짓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찰리 단장의 시뻘건 눈이 가느다랗게 좁혀졌다. 그러고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폭발적인 속도였다.

    회색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순간적으로 크기를 키웠다. 할베르트의 도끼날을 뒤덮고서도 여력이 남았다. 마치 오러 블레이드로 이루어진 거대한 도끼가 생겨난 듯한 모습이었다.

    한 방에 상대를 핏물로 만들어 버릴 기세로 찰리 단장이 할베르트를 수직으로 내려찍었다.

    정천우는 그때까지도 혼원벽력도법의 기수식을 잡은 상태 그대로였다.

    할베르트가…… 아니, 할베르트에 맺힌 오러 블레이드가 정천우의 머리에 떨어지려는 그때, 정천우의 몸이 움직였다.

    콰광!

    역천검이 하얀빛을 뿌리면서 초승달과도 같은 오러 블레이드의 궤적을 두 개나 만들었다. 두 번의 칼질에 헬베르트에 맺힌 오러 블레이드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회심의 일격이라고 생각했던 찰리 단장의 얼굴이 시커멓게 죽었다.

    그러나 이내 질 수 없다는 듯 더욱 두 팔에 힘을 주었다. 정천우의 공격에 튕겨 나갔던 할베르트를 두 손으로 잡아당겨 다시 한 번 장작을 패듯 내리찍었다.

    “이야아아아압!”

    찰리 단장의 입에서 비명처럼 기합성이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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