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55화 (155/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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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8. 아는 만큼 보인다 (2)

    찰리 단장이 찢어질 듯 눈을 부릅떴다.

    분명 상대가 들고 있는 창에선 이렇다 할 만한 변화가 없었다. 그저 하북팽가 놈들의 창과 똑같은 모양이었다.

    오러 블레이드가 덧씌워져 있었다면 이해나 할 수 있었다. 아니, 마나 쉐도우라도 잔뜩 품었다면 황당함이 조금 덜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범하다.

    창날에서 뭔가 잠깐 빛이 난 것도 같았지만, 찰리 단장이 발견하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에 일어난 변화였다. 아니, 발견했다고 해도 그렇게 미약한 변화는 찰리 단장이 무시했을 게 뻔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찰리 단장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마교에서 난다 긴다 하는 15명의 마법사들이 마나홀을 쥐어짜서 만들었건만 너무나 허무하게 부서졌다. 여러 겹으로 이루어진 마법 실드가 산산이 부서지면서 비산하는 모습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마법 실드가 부서진 것은 현실이었으니까 말이다.

    “할베르트를 들어라! 충격에 대비하라!”

    찰리 단장은 부하들이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마나를 담아 외쳤다.

    마법 실드를 파괴한 놈을 중심으로 양쪽에서 의혈맹의 기사단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빌어먹을!”

    욕설을 내뱉은 찰리 단장은 두 손으로 창 자루를 꽉 움켜잡았다.

    자신의 적이 누군지 명확하다. 살기를 뿜어내면서 자신을 노려보는 기사, 마법 실드를 단번에 파괴한 괴상한 능력의 소유자.

    그를 피해 좌우로 나뉘어 뛰어드는 의혈맹의 기사들조차 찰리 단장을 피해 돌진하고 있었다. 자신의 존재는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대체 정체가 뭐지?’

    마른침을 삼키면서 찰리 단장이 마나를 끌어올렸다.

    자신을 노려보는 의혈맹의 기사는 마법 실드를 한 자루의 창으로 박살 낸 인물이다.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그는 해냈다.

    분명 뭔가가 있는 놈이 틀림없다.

    하지만 무슨 꼼수를 사용했든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법 실드를 한 방에 박살 낼 정도의 저력을 가졌다는 게 중요하다.

    상대를 얕보다가 뒈지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면, 그 사실만으로도 경계해야 할 이유가 충분하다.

    찰리 단장은 상대를 노려보며 전신에서 용솟음치는 마나를 한꺼번에 터트렸다.

    “이야아압!”

    찰리 단장의 입에서 벽력과도 같은 기합성이 터졌다.

    순간적으로 그의 눈빛이 붉게 물들었다. 전신에 흐르던 기세가 난폭하게 변화하면서 주변의 대기를 일그러뜨렸다.

    역혈대법.

    몸속에 품은 마족의 힘을 일깨워 육체적 능력과 마나양을 높이는 기술이 순식간에 펼쳐졌다. 정천우가 지금껏 마주쳤던 마교의 기사들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로 역혈대법을 사용한 것이다.

    할베르트에서 맺혔던 마나 쉐도우가 크게 흔들리더니 변화가 생겼다.

    츠즈즛! 파직, 파지직!

    칠흑 같은 암흑을 품었던 마나 쉐도우가 회색으로 물들었다.

    단지 빛깔이 변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완전함을 추구하는 파괴적인 기운.

    오러 블레이드.

    마족의 기운을 빌려서 발휘하는, 마교 기사의 최고 단계라 할 수 있는 마스터의 경지다.

    전투마 위에서 마법 실드를 파괴하느라 무리가 온 육체를 다스리던 정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제기랄! 아주 가지가지 한다, 가지가지 해!’

    찰리 단장이 일으키는 변화를 지켜보던 정천우가 툴툴거렸다. 상대방의 기세가 순간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게 놀라웠다.

    그래서인지 마법 실드를 파괴하면서 자신의 돌진이 멈춰진 게 아쉬웠다. 그렇지 않았다면 놈이 개수작을 벌이기 전에 추진력을 이용해 들이받았을 텐데 말이다.

    찰리 단장이 역혈대법을 사용해 육체적 능력이 상승하는 것을 막지 못한 것은 크나큰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빌어먹을! 역시 마교의 기사라는 건가?’

    정천우는 의혈맹의 기사들이 추진력을 잃고 난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고는 쓰게 입맛을 다셨다.

    마법 실드를 믿고 대기하던 마교의 기사다. 그들은 마법 실드가 무너지는 것을 눈으로 보았음에도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의혈맹의 기사들에게 비웃음을 날렸다.

    언덕 위에서부터 가속도를 받으면서 충돌했는데도 돌파는커녕 허둥대는 모습에 마교의 기사들이 기가 살았다.

    “우리는 강하다! 떨거지들을 해치우고 마교의 기상을 보여 줘라! 성령의 불이여, 영원하라!”

    “영원하라!”

    의혈맹 기사의 목을 단번에 날린 마교의 기사가 살기를 내뿜으며 소리쳤다. 그러자 마교의 기사들이 함성을 지르면서 의혈맹의 기사들을 힘껏 밀어붙였다.

    “퉤! 하여간 되는 일이 없어!”

    정천우는 의혈맹 기사들이 위태롭게 흔들리는 모습을 확인하고는 바닥에 침을 뱉으며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히 마교의 기사들은 의혈맹 기사들에 비해 강하다. 의혈맹 기사들이 조를 이루어 상대하는데도 오히려 밀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마교 기사들의 눈이 붉게 물들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마교의 역혈대법을 사용하는 듯 보였다. 비웃음을 머금은 채 자신을 쳐다보는 찰리 단장처럼 말이다.

    “더 기다려 줘야 하나?”

    찰리 단장은 느긋한 얼굴로 물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경악하면서 역혈대법을 급하게 끌어올렸던 모습과는 대조적이었다.

    ‘시시한 놈들이었군. 전투를 쉽게 끝낼 수 있겠어.’

    찰리 단장은 입가에 흐릿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거창하게 마법 실드를 파괴하면서 달려들었던 것과는 다르게 자신의 부하들을 뚫지 못하고 낑낑대는 모습이 우스웠다. 말과 하나가 되어 가속도를 붙인 채로 달려들고서도 멈춰 선 부하들을 뚫지 못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한 가지다.

    의혈맹의 기사단이 다크 기사단보다 한참이나 실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그래서 찰리 단장은 여유가 생겼다. 부하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이제는 자신만 잘 싸우면 끝이니까 말이다.

    ‘이런 놈들로 요격이라…… 우습군.’

    찰리 단장은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요격전(邀擊戰)은 정예를 이끌고서 감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자신과 다크 기사단을 공격하는 병력이 최정예라는 말과 다르지 않다.

    비록 일반 병사들의 피해가 크지만 상대가 이런 정도의 수준이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도련의 병력을 지원받으면 쉽게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았다.

    “덤벼라!”

    찰리 단장은 한층 여유롭게 미소 지으면서 정천우를 향해 검지를 까딱거렸다.

    ‘저게?’

    정천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평소라면 앞뒤 잴 것도 없이 달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찰리 단장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그래서 지금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분명 다크 기사단의 단장이라는 놈은 죽었는데…….’

    정천우는 아이작 단장을 떠올리면서 찰리 단장을 세심하게 살폈다.

    아이작 단장을 죽이면서 자신은 힘을 얻었다. 덕분에 가로막혔던 벽을 부수고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눈앞의 찰리 단장은 아이작 단장보다 최소 한두 단계 높은 수준의 기세를 내뿜는다.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보통 최고의 실력자가 단장의 자리에 오르는 게 이쪽 세계의 법칙이었으니까.

    어째서 이런 인물이 아이작보다 낮게 평가됐는지 이해할 길이 없었다.

    “아이작이라는 놈이 단장 아니었나?”

    “아이작? 네가 그를 어떻게 알지?”

    “내 손에 죽었으니까.”

    정천우는 역천검이 장착된 창을 들어 올리면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상대가 보통을 넘어섰기에 처음부터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

    그러자 찰리 단장이 눈에 이채를 발했다.

    “호오? 제법이군. 아이작이 네 손에 죽었다고? 네놈 정도의 실력이라면 가능했겠지. 아첨꾼에 불과한 쓰레기가 다크 기사단의 단장 자리에 앉았다는 것부터가 말도 안 될 일이지.”

    찰리 단장은 코웃음을 치면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평온한 듯 말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분노의 기색이 잔뜩 묻어나고 있었다.

    그런 직후, 찰리 단장이 전신에 힘을 주었다.

    “무, 무슨…….”

    정천우는 막 전투마의 배를 걷어차려다가 이내 안색을 바꾸었다.

    상대의 기운에 한차례 더 변화가 생겼다.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기세였다. 겨우 숨 한 번 갈아 쉬는 사이에 찰리 단장의 전신에서 흐르던 기운이 묘하게 바뀌었다. 커다란 변화는 아니었지만 어쩐지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정천우가 침음을 흘리면서 곤란한 표정으로 찰리 단장을 바라보았다.

    “흐음…… 아예 마족이 된 건가?”

    “헛소리! 마교의 기사는 절대로 마족 따위한테 먹히지 않는다! 오히려 마족을 내 힘으로 바꾸어 놓지! 바로 이렇게!”

    찰리 단장은 정천우가 볼 수 있도록 왼손을 들었다. 손바닥이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점차 그의 손에 검은 기운이 엉겨 붙었다.

    [크워어어어! 캬아아악!]

    괴기스럽게도 그의 손바닥에서 생성된 검은 연기가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러고는 조금씩 어떠한 형상을 만들어 냈다.

    마침내 검은 연기가 하나의 형상으로 바뀌었다. 놀랍게도 마족의 모습과 똑같았다.

    검은 연기로 이루어진 마족은 고통스러운 듯 연이어 괴성을 질렀다. 마치 손바닥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치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찰리 단장은 전혀 놔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정천우를 슬쩍 바라보며 마족이 깃든 왼손을 자신의 가슴에 가져대 대었다.

    [쿠와아악! 캬악! 크아아아!]

    검은 갑옷에 짓이겨지듯 비벼지는 찰리 단장의 손바닥.

    연기로 이루어진 마족이 괴로운 듯 비명을 지르면서 마구 날뛰었다. 어찌나 반발이 거센지 찰리 단장의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마침내 그가 가슴에서 손을 떼었다.

    그 광경에 정천우가 혀를 내둘렀다.

    “이 동네는 참, 괴상한 게 너무 많다니까? 저건 또 뭐냐고? 제기랄! 물어볼 사람도 없네.”

    정천우가 입맛을 쩍 다셨다.

    찰리 단장의 검은색 갑옷에 마족이 깃들었다. 가슴 부근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얼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분명 조금 전까지 찰리 단장의 손바닥 위에서 꿈틀거렸던 마족의 모습과 일치했다.

    “아직도 싸울 마음이 나질 않나? 얼마나 기다려 줄까? 뭐, 기다릴수록 내가 더 유리한 듯한데 말이야.”

    찰리 단장은 비웃음을 잔뜩 머금은 채로 비아냥거렸다.

    기다리기 지루해 죽겠다는 얼굴로 할베르트를 허공에 몇 차례 휘두르는 여유까지 보여 주었다.

    “이 새끼 봐라? 사람 성질 건드리네?”

    정천우는 고개를 좌우로 꺾으면서 눈을 부라렸다. 숨겨 둔 게 더 있을까 싶어서 조금 망설였을 뿐인데, 상대가 자신을 무시하자 기분이 더러워졌다.

    그래 봐야 아이작보다 조금 더 강한 기운을 뿌리는 게 고작이다. 물론 ‘조금 더 강하다’라는 기준이 모호하긴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놈의 기세를 먼저 꺾어 놓아야 할 필요성이 있겠다 싶었다.

    다크 기사단은 동대륙을 집어삼키기 위해서 마교가 보낸 전력이다. 그리고 동대륙에 남은 마지막 마교 전력이기도 하다. 다크 기사단만 해치운다면 동대륙은 더 이상 마교 때문에 몸살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정천우가 역천검이 장착된 창 자루를 쥐고서 찰리 단장을 가리켰다. 하얗게 빛나는 오러 블레이드가 위협적인 기세를 사방에 뿌려 댔다.

    “흥!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찰리 단장이 콧방귀를 뀌면서 할베르트를 좌우로 한 차례씩 휘두르면서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좀 맞자! 하아!”

    정천우가 입술을 실룩이고는 전투마의 배를 걷어찼다.

    오러 블레이드를 품은 그의 창이 하늘을 꿰뚫을 듯 높이 솟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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