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54화 (154/200)
  • # 154

    Chapter 38. 아는 만큼 보인다 (1)

    “역시 동대륙 놈들은 너무 순진해.”

    찰리 단장이 한쪽 입술을 말아 올리면서 비웃음을 흘렸다.

    어째서 그가 비웃음을 흘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던 러셀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단장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우습지 않은가 말이다. 길은 한쪽으로만 뚫려 있고, 사방이 숲으로 둘러싸였어. 매복하기엔 최고의 장소가 아니겠나. 그런데 굳이 수성전을 하겠다니 멍청…… 으음…….”

    즐거운 표정을 지으면서 의혈맹을 비웃던 찰리 단장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져 갔다.

    “단장님, 무엇 때문에 갑자기, 응……?”

    의아한 얼굴로 찰리 단장을 바라보던 러셀의 얼굴도 급격히 굳어졌다.

    갑작스러운 존재감.

    이제껏 아무도 없었는데, 수많은 사람의 기척이 전방에서 느껴졌다.

    “크아악!”

    “아악!”

    전방에서 희미하게 비명이 들렸다. 척후로 내보낸 아군의 비명이 틀림없었다. 찰리 단장은 지금 상황이 이해되질 않았다.

    언덕 너머에서 들려온 아군의 비명은 처절하기 짝이 없었다. 척후조가 도망칠 수도 없을 만큼 상황이 나빴다는 의미다.

    찰리 단장은 손을 높이 들어 진격을 멈췄다. 더 진격했다가는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기 때문이다.

    “단장님, 어쩌는 게 좋겠습니까?”

    “가 봐야지. 감히 꼼수를 부리다니, 약삭빠른 놈들!”

    찰리 단장은 이를 뿌드득 갈아붙이고는 말의 배를 가볍게 걷어찼다.

    지금까지 의혈맹을 비웃어 놓고는 정작 매복에 당하자 욕을 했다. 자신이 생각한 일이 실제로 벌어지자 화가 치밀어 오르는 모양이었다.

    “러셀! 박쥐에게선 연락이 없었나?”

    “딱히 연락은 없었습니다.”

    “분명 수성전을 준비한다고 했었는데 어째서 놈들이 요격에 나선 것이지? 통신을 연결해 봐!”

    “알겠습니다, 단장님!”

    러셀은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말 머리를 틀어 뒤쪽으로 이동했다.

    “이놈들이 어떻게 눈치챈 거지?”

    찰리 단장은 의혈맹이 대기하고 있을 언덕 너머를 노려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진 상태였고 마교는 졸지에 기습을 당한 꼴이 되었다.

    전투를 준비한 자와 준비하지 않은 자는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하루 정도를 더 행군한 뒤에야 싸움이 벌어질 거라 생각했던 마교의 군대였기에 지금 상황은 의혈맹이 더 유리했다.

    언덕을 노려보며 생각에 빠져 있는 찰리 단장에게 러셀이 말을 몰고 달려왔다.

    “알아봤나?”

    “연락이 되질 않습니다. 통신 자체가 연결이 되질 않습니다.”

    “놈들이 눈치챘다는 말이군. 마법사는 죽였겠지. 골치 아프게 됐군.”

    찰리 단장은 이를 드러내며 언덕을 노려보았다.

    정진석 공작이 성공적으로 박쥐를 적진에 넣었다고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들통 나다니, 그저 기가 막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단장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러셀은 언덕 위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의혈맹의 기사들을 바라보며 명령을 기다렸다.

    “큭! 애초부터 쓸데없이 잔머리 좀 굴려 보려고 한 게 우리와 어울리지 않았다. 뭘 고민하는가! 전투를 준비하라!”

    찰리 단장은 말안장에서 할베르트를 뽑았다.

    거무튀튀한 마나 쉐도우가 할베르트의 도끼날을 감싸면서 음침하고도 살벌한 기세를 사방으로 뿌렸다.

    ***

    “자식들이 헤매는구나, 헤매! 샤칼!”

    “네, 주인님!”

    “잘했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충심을 다하겠습니다.”

    샤칼은 정천우가 칭찬하기 무섭게 고개를 숙였다. 상당히 가식적인 모습이었지만, 정천우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샤칼의 마법으로 인하여 마교의 군대가 아무런 의심 없이 매복 장소에 들어왔다.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성과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마법 전력의 활약은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이제부터가 더 본격적인 싸움이 될 예정이었다.

    “준비는?”

    “완벽하게 끝났습니다.”

    샤칼의 한쪽 입매가 위로 쭈욱 올라갔다. 확실하게 명령을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찬 모습이었다.

    “화끈하게 조져 봐!”

    “예, 주인님!”

    샤칼은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고개를 숙이고는 뒤로 물러났다. 뒤에 대기하던 마법병대가 비장한 각오로 샤칼을 맞이했다.

    의혈맹의 마법병대는 새롭게 구성되었다. 샤칼을 주축으로 하북팽가와 아미파, 그리고 무당파와 남궁세가의 마법사들을 모조리 하나로 모았다.

    마법사의 숫자만 해도 80명에 이른다. 그들 대부분이 3~4서클 마법사였다. 상위 10명 정도가 5서클 마법사였다. 이런 마법병대를 샤칼이 이끌고 있었다.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마법사들도 정천우의 단약을 먹었다. 크게 효과를 본 마법사는 없지만 최소한 몸속에 깃든 마나만큼은 확실하게 정화되었다.

    전체적인 전력이 상승한 만큼 예전보다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횟수가 증가한 상태였다. 그런 마법병대를 이끌고 샤칼이 앞으로 나섰다.

    언덕 밑에서 꼬물거리는 마교의 군대가 눈에 들어왔다. 마법으로 1차 피해를 입히고서 의혈맹의 기사들이 본격적인 전투를 벌일 작정이었다.

    정천우의 뒤에 늘어선 기사들의 숫자만 해도 1천 명.

    마법 공격 후 2차 피해를 주기에는 과한 숫자였다. 이번 요격전에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가 드러나는 것이기도 했다.

    “공격하라!”

    정천우가 마법병대를 향해 커다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마법병대에 속한 마법사들이 저마다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주변에 떠도는 대자연의 기운이 마법사들의 주문에 따라 크게 출렁거렸다.

    “이, 이런! 마법사다! 러셀! 우리 마법사들을 데려와라! 빨리 서둘러라! 시간이 없다!”

    찰리 단장은 대경실색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대기가 일그러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엄청난 크기의 기운이 마구 일렁이면서 언덕 위에 모습을 드러낸 의혈맹 기사들에게 빨려 들었다.

    인위적인 기운이라는 것을 눈치챈 순간, 마법사들이 마법을 발휘하기 전에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러셀에게 급하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그러나 굳이 명령을 내릴 필요도 없었다. 15명에 달하는 마법사가 벌써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찰리 단장이 느낄 정도의 마법적인 기운을 마법사들이라고 못 느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마교의 마법사들은 찰리 단장의 앞으로 나서서 빠른 속도로 주문을 외워 갔다. 몇 명의 마법사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서 마법진을 그렸다.

    “라이크낙! 놈들이 무슨 마법을 사용하려고 하는 것인가!”

    “네, 단장님! 워낙 여러 가지 마법이 뒤섞여 있어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기에 7서클급 마법이 포함되어 있다는 겁니다!”

    “7서클? 동대륙에 대마법사가 있었다고?”

    찰리 단장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라워했다.

    서대륙에도 7서클 마법사면 대마법사다. 미개한 동대륙에서 7서클 마법사가 등장할 줄은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찰리 단장이다.

    분명한 것은……

    7서클 마법에 무방비로 당한다면 제아무리 마법 저항력이 있는 기사라고 할지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방어는! 방어는 가능한가?”

    “준비 중입니다. 기사단을 기점으로 대단위 실드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라이크낙! 자네도 도와주게!”

    “알겠습니다, 단장님!”

    마교의 마법사 라이크낙은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휘하 마법사들에게 달려가 자신의 힘을 보탰다. 자신들보다 몇 배에 달하는 마법사들이 마법을 사용하고 있으니 서둘러야만 했다.

    다행히 공격보다는 방어에 마나가 덜 들지만, 불안하기만 했다. 워낙 엄청난 양의 마나가 언덕 위에 집중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들만으로 무사히 막아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에 무작정 마나를 끌어올려 실드에 퍼부었다.

    차가운 느낌이 묻어나는 푸른색 덩어리가 마법사들의 앞에 생겨났다. 그때부터 마법사들이 전력을 다해 마나를 집중시켰다. 마나를 빨아들인 푸른색 덩어리가 넓게 펼쳐지면서 다크 기사단을 감쌌다.

    7서클의 마법을 감당하려면 더 강력한 실드가 필요하기에, 마교의 마법사들은 처음으로 생겨난 실드 위에 몇 겹이나 더 새로운 실드를 입혔다.

    쏴아아아!

    “뭐지?”

    “놈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거지?”

    마교의 마법사들은 황당한 얼굴로 의혈맹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의혈맹 마법병대의 공격에 대비하던 마교의 마법사들은 이 황당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의혈맹의 마법병대가 사용하는 마법은 죄다 엉터리였다.

    3서클의 아쿠아 볼.

    4서클의 워터 스트라이크.

    그렇게 두 가지였다.

    물 덩어리가 어지럽게 하늘을 날고, 물기둥이 맹렬한 기세로 하늘 높이 날았다. 그렇게 뻗어 올라간 물 덩어리와 물기둥은 한계에 다다르자 제멋대로 분해되면서 비를 뿌렸다.

    강력한 마법 공격에 대비했던 마교의 마법사들은 그저 황당하고 허탈하기만 했다.

    “긴장을 풀지 마라! 7서클의 마법이다! 모두 방어할 준비해!”

    라이크낙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러자 마교의 마법사들은 공격에 대비해 마나를 잔뜩 끌어모았다.

    다크 기사단을 공격한다면 반드시 막아 내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

    쿠르르릉!

    “대, 대체! 대체 뭐냐!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라이크낙은 기가 막힌 상황에 분노했다.

    두 번이나 낚였다.

    공격 마법이 날아올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엉뚱하게도 먹구름이 생성되었다. 그것도 다크 기사단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일반 병사들의 머리 위였다.

    쿠구궁! 콰광, 쾅! 콰광!

    “크아아악!”

    “끄어어어…….”

    “드아아아악…….”

    라이크낙의 분노가 경악으로 바뀌는 데는 불과 3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이제야 놈들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라이트닝 스페이스(Lightning space)!

    일정 공간에 번개를 치게 하는 7서클의 고위 마법이지만 위력이 분산되어 실제로 사용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마법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물 속성 마법으로 마교의 병사들은 흠뻑 젖은 상태였다. 땅과 함께 흠뻑 젖은 병사들은 라이트닝 스페이스 마법에 의해 생성된 번개가 땅에 꽂힐 때마다 비명을 질렀다.

    직접 번개에 맞지 않았음에도 연기를 피우면서 바닥에 풀썩풀썩 쓰러졌다. 질척하게 젖은 땅바닥을 통해 번개가 흘러들어 병사들을 감전시키고 있었다.

    “이, 이런 빌어먹을 놈들! 병사를 노리다니!”

    찰리 단장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

    기사단인 자신을 노릴 줄 알았는데 그들의 목적은 병사들이었다.

    정작 몇 겹의 실드를 치고서 마법 공격에 대비한 다크 기사단에게는 아무런 마법 공격도 없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귀에서 연기가 나올 정도로 흥분한 찰리 단장의 눈에 기겁할 일이 하나 더 들어왔다. 의혈맹의 기사단이 창을 겨누면서 언덕을 내려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었다.

    “준비! 모두 적의 공격에 대비하라!”

    찰리 단장은 다크 기사단원들에게 크게 소리쳐 경각심을 일깨웠다.

    “놈들이 실드와 충돌하는 순간을 노린다! 마법사들은 놈들의 돌진이 막히는 순간을 노려 실드를 거둔다! 라이크낙!”

    “예, 단장님!”

    “부탁한다!”

    “알겠습니다.”

    라이크낙은 이를 뿌득 갈면서 대답했다.

    허를 찌르는 공격에 너무나 어처구니없이 병사들을 잃었다. 그게 찰리 단장의 화를 돋웠다.

    놈들의 마법 전력은 이제 거의 소모되었다. 이번 기사단의 돌진만 실드로 막아 내면 마법의 무서움을 알게 해 줘야겠다고 독하게 마음먹었다.

    두두두두두두!

    마갑까지 씌운 전투마가 기사를 태운 채 언덕을 내려오고 있었다.

    숫자가 엄청났다.

    다크 기사단보다 두 배는 넘어 보이는 숫자였다.

    하지만 실드를 유지하는 라이크낙이나 할베르트를 든 채 기회를 노리는 찰리 단장이나 전혀 겁을 먹지 않았다.

    물리 공격까지 막아 주는 실드를 몇 겹이나 쳐 둔 상태였기에 의혈맹의 돌진은 그저 멍청한 짓으로만 보였다.

    “멍청한 자식들! 우릴 건드린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해 주마!”

    찰리 단장은 헬베르트의 창 자루를 힘껏 움켜쥐면서 선두에서 달려오는 기사를 노려보았다.

    다른 기사와 달리 용병 느낌의 갑옷을 입은 놈이었다. 하북팽가 특유의 창을 들고 돌진하는 모습이 그저 우습기만 했다. 네댓 겹으로 이루어진 실드를 향해 달려오는 꼬락서니라니…….

    마침내 언덕을 다 내려온 선두의 기사가 창을 앞으로 내밀면서 실드와 충돌했다.

    순간, 찰리 단장이 예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창날과 실드가 맞닥뜨린 순간, 대여섯 겹으로 강화된 실드가 거짓말처럼 부서졌다.

    파캉! 콰과광!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