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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륙의 낭인무사-152화 (152/200)
  • # 152

    Chapter 37. 마교의 진격 (2)

    “정도련주는 들으시오!”

    “듣고 있으니 얘기하시오!”

    정도련주는 한껏 여유를 부리면서 정진석 공작의 말을 기다렸다.

    어차피 네까짓 것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느냐는 태도였다.

    “우리는 정도련주의 이야기를 전부 믿을 수 없소. 만약 진심으로 무림맹과 정도련의 최강자들끼리 승부를 가릴 것이라면 사천당가 영지 성의 모든 병력과 영지민을 성 밖으로 나오게 해야 할 것이오.”

    “꼭 그래야만 하오?”

    “만약 그대들이 결과에 승복하지 않는다면 다시 공성전이 벌어질 것이 아니오? 그리고 그대들이 마교와 관계를 끊었다는 것을 증명하려면 그편이 깔끔하지 싶소.”

    “……좋소! 내 그리하리다! 승부는 5판 3선승제로 하겠소! 장소는 무림맹의 진영과 영지 성의 중간 부근에서 실시하는 것으로 하겠소!”

    “그렇게 합시다! 두 시간 후에 시작하는 것으로 하고 중간에서 봅시다. 얕은수를 쓴다면 무림맹에서는 결코 지켜만 보고 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시오!”

    “흥! 무림맹이 엉뚱한 짓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정도련에서도 지저분한 짓을 하지는 않을 거요!”

    “그 말! 한번 믿어 보겠소!”

    정진석 공작은 한 차례 다짐을 더 받아 내고서야 말을 끝맺었다.

    성벽 위에 올라섰던 정도련주가 내려가는 모습을 확인한 그는 이내 몸을 틀어 수뇌부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모두 들었을 것이오. 준비하도록 합시다. 무림맹의 마법사들에게 저들이 꼼수를 부리는지 확인하라 전하시오.”

    “예, 맹주님!”

    주지린이 앞으로 나서서 대답하고는 빠르게 자리를 벗어났다.

    정도련 사람들이 영지 성에서 빠져나오는 즉시 ‘뷰 마나 포스’를 사용해 남은 인원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마법사들이라면 손쉽게 성안에 살아 있는 생명체가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최대한 빠르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마법을 사용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적들이 마법을 사용해 생명의 기운을 지울 수도 있으니, 다각도로 마법을 사용해 세심하게 조사해야 하는 일이다.

    주지린이 빠르게 마법사들을 향해 가는 것을 확인한 정진석 공작은 수뇌부 사람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총력전을 벌이기로 했다가 대결로 승부를 보기로 했으니 그만큼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무대는 즉석에서 만들어졌다.

    결투를 위한 무대를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도 않았다.

    그저 기둥 몇 개 박아 놓고서 밧줄로 결투 공간을 표시한 게 전부였다. 쓸데없이 도망 다니면서 승부를 질질 끄는 것을 방지하는 용도가 전부였다.

    대결 장소가 만들어지는 동안에 무림맹의 마법사들은 마나를 쥐어짜면서 열심히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성 안쪽에 혹시나 사람이 남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뷰 마나 포스’와 ‘뷰 매직 포스’ 마법을 사용해 마나를 담은 생명체가 있는지 확인하고, 마법적으로 무언가 숨겨 놓은 게 있는지 확인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가축 외에 생명 반응, 이상 없습니다.”

    “마법적인 은폐 시도가 없습니다.”

    무림맹의 마법사들은 사천당가 영지 성을 꼼꼼히 살피면서 계속 마법을 사용했다. 자신들이 실수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알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마나가 고갈될 때까지 수차례나 검색을 마친 마법사들은 더 이상은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최종적으로 주지린에게 보고를 올렸다.

    보고를 받은 주지린은 정진석 공작에게 달려갔다. 그 역시 대결에 나서야 할 인물이었기에 빨리 일 처리를 마치고 대결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맹주님, 마법병대로부터 이상 없다는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다행이오. 그럼 지린 경도 준비하시오. 저쪽은 벌써부터 단단히 준비한 모양이오.”

    정진석 공작은 반대편을 손으로 가리키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러시지?’

    주지린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동대륙 최고의 기사인 정진석 공작을 긴장시킬 만한 인물이 정도련에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그였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내 눈살을 찌푸려야 했다. 정진석 공작이 어째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는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진석 공작을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정도련주 외에는 없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정도련주 당청서 공작이 끌고 나온 사람들이 문제다.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이제껏 정도련에 대한 정보를 담당했던 주지린이다. 당청서 공작이 데리고 나온 사람들은 오랫동안 취합했던 정도련의 인물 정보에 없다. 그렇다는 것은 정도련의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다.

    “……당한 겁니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생각하네. 정도련에 저런 인물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아주 오늘로 끝장을 볼 생각인 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무리수를 둘 리가 없지.”

    정진석 공작은 굳은 얼굴로 대꾸했다.

    주지린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자신보다 실력이 월등하게 높은 정진석 공작이다. 그가 긴장했다는 것은 자신이 감당하기가 어려우리라는 생각일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일단 싸워 봐야 결과를 알겠지만,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일세. 최악의 경우에는 우리 쪽에서 말을 바꿀지도 모르겠어.”

    “으음…….”

    침음을 흘린 주지린은 정도련 측의 사람들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나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싸우기도 전에 기세가 밀리면 끝장이다.

    “일단 몸을 풀어 두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야. 우리가 지면 여러모로 불리해진다는 걸 알아 두게.”

    “네, 맹주님!”

    결투에 참가할 무림맹 최정예 기사들이 굳은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진석 공작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만약 결투에서 진다면 총력전이 벌어진다고 해도 아군의 사기가 떨어질 것이 분명한 일이다. 총력전을 벌이려면 최소한 무림맹이 승리하고 난 뒤에 벌어져야 한다. 그래야 아군의 사기가 높을 테니까.

    “모두 준비됐는가!”

    “예, 그렇습니다!”

    결투에 나가는 기사들은 정진석 공작의 눈을 마주 보면서 필승을 다짐했다.

    이제껏 무림맹을 이끌어 온 자신들이다.

    오랜 세월 동안 준비한 전쟁을 자신의 손으로 망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젖 먹던 힘까지 모조리 다 쏟아붓고, 후회 없는 대결을 펼치겠다고 마음먹었다.

    “우릴 기다리는군. 가지!”

    “예, 맹주님!”

    주지린을 비롯한 4명의 결투 인원은 정진석 공작에게 군례를 올리고는 비장한 얼굴로 결투장을 향해 걸어갔다.

    결투장에서는 정도련주인 당청서 공작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의 얼굴에 드러난 것은 자신감이었다. 질 거라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결투장을 중심으로 50미터 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직 결투를 벌일 10명의 기사들만이 존재했다.

    “오랜만이오, 정도련주!”

    “하하하! 그러게 말이오. 정말 오랜만이외다. 싸울 준비는 끝나셨소? 어차피 싸울 거라면 화끈하게 후딱 해치우고 끝냅시다.”

    당청서 공작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마치 다 이긴 싸움이라는 듯이 그의 얼굴에는 여유로움이 잔뜩 묻어나고 있었다.

    “그게 낫겠지?”

    정진석 공작은 허리춤에 걸린 롱소드를 천천히 뽑았다.

    손아귀에 롱소드를 쥐기가 무섭게 선명한 푸른색 마나 쉐도우가 검날을 타고 피어올랐다.

    “오오오…….”

    주지린을 비롯한 무림맹의 기사들이 감탄성을 흘렸다.

    조만간 마스터의 경지에 오를 거라는 소문의 주인공답게 시리도록 푸르고 강렬한 마나 쉐도우였다.

    이글거리는 마나 쉐도우를 생성해 낸 정진석 공작이 무림맹의 결투 참가자를 향해 몸을 돌렸다. 단지 몸을 돌린 것만이 아니다. 그의 손에 쥐어진 롱소드가 푸른색의 아름다운 초승달을 만들어 냈다.

    가가각!

    마나 쉐도우가 깃든 롱소드가, 정진석 공작의 무위에 감탄하던 무림맹 소속 결투 참가자의 갑옷을 긁으면서 지나갔다.

    “무, 무슨…….”

    “맹……주…….”

    갑작스러운 상황에 무림맹 소속 결투 참가자들은 가슴이 쩍 벌어진 채 핏물을 쏟아 내면서 정진석 공작을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러나 채 말을 잇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 오직 주지린만이 가슴을 부여 쥐며 비틀비틀 뒷걸음질을 쳤다.

    “과연 무림맹의 무력 서열 두 번째라는 건가? 제법이야.”

    정진석 공작은 주지린에게 미소를 지으면서 실력을 칭찬했다. 하지만 주지린으로서는 그의 칭찬이 전혀 달갑지가 않았다.

    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이 누구던가! 무림맹이 자랑하는 ‘TOP 5’다. 그 가운데 무려 3명이 정진석 공작의 어이없는 기습에 목숨을 잃었다.

    자신의 상태 역시 절망적이다. 오른쪽 어깨에서부터 왼쪽 어깨까지 갑옷째 베였다. 이상함을 느끼고 순간적으로 피했지만, 완전히 피해 내지는 못하고 말았다.

    더욱 절망적인 건 도망치기 위해서 몸을 돌리는 순간 죽을 거라는 점이다.

    정진석 공작은 멀쩡한 몸 상태로도 이길 수 없는 상대다. 그런 상대를 두고서 등을 돌렸다가는 단칼에 목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싸울 수 있는 상태도 아니다. 생존의 길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이었다.

    주지린은 롱소드를 뽑아내고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맹주! 아니, 정진석 공작! 왜 이러는 겁니까! 이제, 이제 동대륙의 통일이 코앞인데!”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롱소드를 겨누며 주지린이 물었다.

    무려 무림맹주다.

    동대륙 세력의 절반에 해당하는 무림맹의 맹주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짓을 벌이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것은 무림맹 소속 군대 역시 마찬가지였다. 기사들과 병사들은 뜻밖의 상황에 어찌 된 영문인지 몰라 그저 입만 쩍 벌린 채 ‘우우우’ 하는 소리만 내고 있었다.

    그러나 야유를 받는 정진석 공작의 표정은 평온하기만 했다.

    “동대륙의 통일이 코앞이라고 했나? 훗! 우습군. 이 좁디좁은 동대륙에서 안주하는 게 즐겁나? 나는 전혀 즐겁지 않아. 더 넓은 세상이 있는데, 왜 내가 이런 미개한 곳에서 썩어야 하는가!”

    “그게 무슨…….”

    “동대륙과 서대륙을 하나로 만들 생각이야. 사내라면 그만한 야망쯤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정진석 공작이 상황과 어울리지 않게 푸근한 미소를 지으면서 주지린을 달래듯이 말했다.

    “……그래서 마교와 손이라도 잡았다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그런 셈이지. 무림맹 사람들은 너무 고지식해. 전설의 계승자? 개똥 같은 얘기지. 무림맹 사람들이 좀 더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면 내가 굳이 마교와 손을 잡지는 않았을지도 몰라. 뭐, 이미 늦은 얘기긴 하지만 말일세.”

    정진석 공작은 양심에 거리낌 없이 평온하게 말했다.

    정도련과 함께 마교와 손을 잡은 걸 전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배신자!”

    “마음대로 생각하게. 그럼 이만 헤어질 시간이 되었군. 잘 가게!”

    이글이글 타오르는 롱소드를 높이 치켜든 정진석 공작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사선으로 손을 움직였다.

    시퍼런 마나 쉐도우를 담은 롱소드가 주지린을 향해 쏟아졌다. 주지린은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자신을 향해 내리꽂히는 롱소드를 막으려 했다.

    파캉! 스각!

    주지린의 롱소드와 갑옷이 거의 동시에 부서지면서 붉은 피가 치솟았다.

    롱소드를 휘둘러 피를 털어 낸 정진석이 그 자세 그대로 고개만 돌렸다.

    “당청서 공작!”

    “예, 주군!”

    놀랍게도 당청서 공작은 이제까지와 달리 지극히 공손한 몸짓으로 부름에 답했다.

    당청서 공작의 주변에 있던 정도련의 수뇌부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어벙벙한 얼굴로 정진석 공작과 당청서 공작을 번갈아 쳐다보기 바빴다.

    주군이라니!

    이제껏 적대시하면서 피 튀기게 싸웠던 무림맹의 맹주에게 주군이라니!

    정도련의 ‘TOP 5’는 머리가 터질 듯한 지금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러나 이내 머리를 비워야만 했다. 정진석 공작의 천둥과도 같은 명령 때문이었다.

    “무림맹 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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