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43화 (143/200)
  • # 143

    Chapter 35. 신위(神威)를 보이다 (5)

    급격하게 향상된 마나와 육체적인 능력을 믿는 것인지 임철중 백작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내비쳤다.

    “아니? 난 계획대로 된 것 같은데?”

    정천우가 느긋하게 미소 지으며 역천검의 검날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마치 임철중 백작이 역혈대법을 사용하길 기다렸다는 태도였다.

    임철중 백작은 그런 정천우를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 놈의 여유가 우스웠기 때문이다.

    역혈대법을 사용하면 평소의 능력보다 1.5배쯤 강해진다. 그것은 경지가 높아질수록 효율이 더 높아진다. 마스터에 근접한 그가 역혈대법을 사용하면 1.7배가량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임철중의 입가에 살기를 품은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현재 자신의 능력은 마스터의 수준을 가뿐히 넘어선다. 정천우가 비록 대단한 능력을 보여 주지만 지금의 자신이라면 그다지 위협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정천우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전혀 없었다. 역혈대법을 사용하기 전에는 절망적으로 느껴지던 정천우의 기세가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여유 얼마나 오래가는지 보겠다.”

    임철중 백작은 비웃음을 던졌다. 상황이 역전되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정천우가 바보 같았다.

    제아무리 마스터면 뭐 하는가!

    자신과 상대의 역량을 파악하지도 못할 정도로 둔감하다면 마스터의 실력을 지녔다고 해도 끝장이다. 그리고 자신은 저 멍청한 마스터급 기사에게 참패의 쓴맛을 보여 줄 것이다.

    바로 죽음이라는 이름의 치명적인 쓴맛을 말이다.

    그오오오오…….

    임철중 백작이 전신에 충만한 마나를 끌어모아 롱소드에 집중하자 주변의 공기까지 빨려 드는 듯 바람이 불어 그의 머리칼을 흩날렸다.

    롱소드의 검날에 하얀빛의 오러 블레이드가 생성되었다. 정천우가 보여 주었던 것처럼 롱소드에 맺힌 오러 블레이드는 날카롭고도 강렬한 기세를 풍겼다.

    “크흐흐흐! 이거였어, 이게 바로 오러 블레이드야. 네놈! 날 건드린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임철중 백작은 자신의 롱소드에 맺힌 오러 블레이드를 감상하다가 정천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꼴 같지 않은 잡소리 그만하고 덤벼.”

    정천우는 검지를 까딱거리면서 임철중 백작을 도발했다.

    저 혼자 웃고 떠들고 지랄하는 꼴을 구경하는 것도 지겨웠다. 차라리 화끈하게 싸우는 편이 더 나았다.

    “건방진 자식, 죽어랏!”

    정천우의 방만한 태도에 임철중 백작은 스산한 미소를 날려 주고는 빠른 속도로 돌진했다.

    육체적인 능력이 보강되어서 그런지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전신의 힘을 롱소드에 집중한 채로 정천우를 압박하며 들어왔다.

    부와앙!

    오러 블레이드를 품은 롱소드가 공간을 부수면서 정천우를 향해 난폭한 이를 드러냈다.

    그럼에도 정천우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오히려 비웃는 듯한 미소만 더욱 짙어졌을 뿐이다.

    가슴을 노리고 휘둘러 오는 롱소드를 향해 역천검을 가볍게 올려쳤다.

    캉!

    오러 블레이드를 품은 무기가 마주치면서 눈이 부시는 빛과 함께 날카로운 충돌음이 일어났다.

    “큭! 우와아악!”

    임철중은 손아귀에 찢어질 듯한 통증을 참으면서 기합을 터트렸다.

    갑옷 속에 가려진 근육이 마구 꿈틀거렸다. 그와 동시에 롱소드가 연달아 정천우를 향해 뻗어 나갔다.

    쾅! 카강! 캉!

    상하좌우로 공격해 오는 임철중 백작의 롱소드를, 정천우는 어렵지 않게 쳐 냈다.

    두 손에 무기를 쥔 자와 한 손으로 무기를 쥔 자의 차이였다. 제아무리 역혈대법으로 육체적인 능력이 상승했다지만 두 손으로 단단히 거머쥔 역천검을 밀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칫!”

    임철중 백작은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자 크게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는 바닥에 떨어진 방패를 집었다. 방패를 함께 사용해 정천우를 압박하는 게 훨씬 더 유리하겠다는 생각에서다.

    상대의 그런 행동에도 정천우는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오히려 더 잘되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미소 지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덤벼 봐.”

    “이익! 그 주둥아리를 확 찢어 버리겠다!”

    임철중 백작은 마족처럼 붉게 물든 눈으로 정천우를 노려보며 인상을 구겼다.

    다시 한 번 전신의 마나를 끌어올린 그는 방패에 마나를 듬뿍 담은 채로 돌진했다. 방패를 들었음에도 돌진 속도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방패로 정천우를 터트려 죽일 듯이 밀고 들어왔다.

    “멍청한 자식!”

    정천우는 한마디 툭 내던지고는 임철중 백작의 방패가 코앞에까지 왔을 때쯤 보법을 발휘했다.

    “으응?”

    임철중 백작은 상대가 방패를 두들기는 틈을 타고 롱소드로 공격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눈앞에서 정천우의 모습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쐐애액!

    “허헛!”

    임철중 백작은 뒤통수가 찌릿한 느낌에 급하게 몸을 돌렸다.

    돌진하던 와중이었기에 재빨리 지면에 발을 붙이고 방패에 마나를 퍼부었다. 그러나 제동이 걸리지 않아 바닥에 고랑을 만들어 냈다.

    밀려나는 임철중 백작을 향해 역천검이 날아들었다.

    콰앙!

    오러 블레이드가 덧씌워진 역천검이 방패를 두들기자 방패가 부서질 듯 진동을 일으켰다.

    밀려나던 임철중 백작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공격을 받은 덕분에 간신히 멈출 수 있었다.

    “아쭈? 이것도 막아 봐라!”

    기습과도 같은 자신의 공격을 임철중 백작이 방어하자 정천우는 재미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연달아 역천검을 휘둘렀다.

    쾅, 콰광, 쾅!

    정천우가 승기를 놓치지 않고 방패를 두들겼다. 역천검이 때리는 곳마다 방패가 움푹움푹 파였다.

    공격이 이어질수록 임철중 백작의 얼굴은 흉하게 일그러졌다. 잠깐의 틈도 허용치 않는 공격에 치가 떨렸다. 조금이라도 방패에 보내는 마나가 약해지면 어김없이 뇌전의 기운이 파고든다.

    그저 전력으로 마나를 사용해 방패를 보호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었다. 뚫리는 순간 자신의 목숨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쾅! 콰광, 쾅!

    “커헉! 우웁! 웨엑…….”

    정천우의 공격이 이어질수록 임철중 백작은 몸이 망가지고 있었다.

    충격으로 인해 내상을 입으면서 핏물이 꾸역꾸역 입 밖으로 기어 나왔다.

    “죽겠지?”

    정천우는 그가 괴로워하는 모습에 즐거운 듯한 목소리로 약을 올렸다.

    주변에서는 끊임없이 비명이 튀어나왔고, 쇠와 쇠가 부딪치는 소리로 시끄러웠다.

    하지만 임철중 백작과 정천우의 주변으로는 아무도 다가오지 않았다. 두 사람에게서 퍼지는 충격파가 다른 사람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마나 쉐도우를 사용하는 기사의 주변에 잘못 다가서도 위험한 일이 벌어지는 마당에, 무려 오러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기사끼리 대결하고 있으니 가까이 오고 싶어도 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불리해진 것은 임철중 백작이었다.

    두 사람이 싸우는 주변에서 안타까운 얼굴로 쳐다보는 마교의 기사들은 특히나 더했다. 임철중 백작을 도와야 하는지, 그게 아니라면 화산파의 기사들을 도와야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도주를 위한 이동 마법진을 완성할 마법사가 죽은 마당이었기에 혼란이 더욱 가중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새 파죽지세로 병사를 뚫고 온 하북팽가의 기사들 때문이었다.

    “어때? 화산파가 무너지는 걸 보니 즐거워?”

    정천우는 쉬지 않고 방패를 두들기면서 임철중 백작을 도발했다.

    “쿨럭! 쿨럭! 개, 개자식! 죽여 버리고 말겠어!”

    임철중 백작은 핏빛으로 물든 눈을 부릅뜨면서 정천우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았다.

    그러나 단지 노려본다고 해서 지금의 상황이 바꿀 수는 없었다. 정천우의 공격은 몸을 뺄 틈조차 주지 않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미치도록 화가 나서 죽겠는데, 정작 자신은 공격을 막아 내는 것만으로도 죽을 맛이었다.

    답답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귀에서 연기가 나올 지경이었다.

    “병신, 영주란 새끼가 영지를 버리다니. 네놈은 화를 낼 자격도 없는 새끼다.”

    쾅! 콰광, 쾅!

    “쿨럭! 닥쳐! 닥치라구! 닥치란 말이다! 으아아악!”

    분노에 휩싸인 임철중 백작은 마침내 폭발하고야 말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정천우를 죽이고 말겠다는 분노가 그를 폭주하게 만들었다. 분노로 인해 이성이 무너지자 그의 몸에 또 다른 변화가 찾아왔다.

    핏물을 흘리면서도 분노를 참지 못하고 이를 드러낸 그의 송곳니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게 자라나고 있었다. 붉게 물들었던 눈은 이제 눈동자마저 벌겋게 변해 갔다.

    “그르륵! 후와! 후와!”

    괴상하게 변해 버린 임철중 백작이 숨을 몰아쉬면서 희열에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변했나?”

    정천우가 히죽거리며 물었다. 공격마저 멈추고서 반갑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얼굴의 형태가 바뀐 임철중 백작은 정천우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크흐흐흐…… 그래, 이 분노의 원인은 네놈이었군. 인간의 몸을 내게 준 답례로 넌 고통 없이 죽여 주도록 하지.”

    뇌를 잠식당해 마족으로 각성한 임철중 백작은 정천우 정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래, 헛소리는 자유지! 타아합!”

    정천우가 눈을 빛내며 기합을 터트렸다. 도끼로 장작을 패는 것과 다름없는 공격이었다.

    임철중 백작은 방패를 들었다가 이내 눈을 부릅떴다. 동공조차 없는 붉은 눈에서 당황한 기색이 드러났다. 역천검에 생성된 오러 블레이드의 위력이 더욱 증폭되었기 때문이다.

    “미, 미친!”

    쾅!

    이제까지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굉음이 터졌다.

    정천우가 전력을 다해 후려친 까닭이다. 임철중 백작의 몸속에서 돌아가는 상황만 지켜보았던 마족으로서는 뜻밖의 공격이 아닐 수 없었다.

    잘 단련된 인간의 육체를 얻었다고 좋아했다. 이런 육체라면 자신의 능력을 마계에서 활동하던 때의 70% 정도까지 사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본래 힘의 70% 정도면 정천우 따위는 쉽게 해치울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랬는데……

    이건 위력 자체가 달랐다.

    이제껏 공격해 왔던 것은 장난이었다는 듯 엄청난 압력이 전신을 짓눌렀다. 견딜 수 있을 만한 정도의 위력이 아니었다.

    “왜? 고통 없이 죽여 준다며? 미친 마족 새꺄!”

    정천우는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다시 한 번 역천검을 들어 올렸다.

    부와아앙! 콰광!

    우두둑!

    “크아악! 이건 사기야!”

    “닥쳐!”

    비명을 지르는 마족에게 정천우가 코웃음을 쳤다. 터트려 죽일 것처럼 역천검을 연속으로 내려쳤다. 그럴수록 마족의 얼굴은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충격을 견디지 못한 마족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럼에도 정천우의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쾅, 콰광, 쾅, 콰광!

    콰득!

    “그만, 그마안…….”

    마족은 괴로운 얼굴로 애원했다. 정천우의 공격에 방패를 잡은 왼쪽 어깨가 탈골되고 말았다. 인간 세상에 나오기가 무섭게 죽어야 한다니 기가 막히고 억울했다.

    마족의 애원이 통했는지 정천우의 공격이 거짓말처럼 딱 멈췄다.

    “뭐든지, 뭐든지 하겠다. 살려만 다오!”

    마족은 긍지 높은 자부심을 꺾고 정천우를 향해 애원의 말을 늘어놓았다.

    정천우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러고는 마족이 쥔 롱소드를 빼앗았다. 이미 전의를 상실한 마족이었기에 정천우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난 네놈이 튀어나오길 기다렸다.”

    “워, 원하는 것이 뭔지 말하라. 내 능력이 허락하는 한 뭐든지 다 들어주겠다!”

    마족은 행여 정천우가 자신을 죽일까 봐 재빨리 말했다.

    정천우는 바닥에 주저앉은 마족의 가슴에 손바닥을 얹었다. 그러고는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너의 힘이다.”

    “그래, 내가 너의 힘이 되어 주겠다.”

    마족은 괴로운 와중에도 한 가닥 희망을 가졌다.

    죽는 것보다는 일단 눈앞의 인간을 안심시켜야만 했다. 몸이 회복될 때까지는 숙여 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맙다.”

    “당연히 해야…… 헛! 뭐, 뭐지?”

    마족은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는 정천우에게 맞장구를 쳐 주다가 이내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자신의 가슴에 닿은 인간의 손바닥에서 기이한 흡인력이 생겨났다. 손을 뿌리치려고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혈도를 제압…… 뭐, 못 알아들을 테니 생략하고. 이제 네놈은 내 힘이 되어 줘야겠어.”

    “아, 안 돼애!”

    마족은 자신의 가슴을 통해 대량의 마나가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한번 빠져나가기 시작한 마나는 마족이 통제하려 할수록 오히려 더욱 세차게 빨려 나갔다. 마족의 몸에서 점점 생기가 빠져나가더니 마지막에는 핏기마저 잃고 피부가 허옇게 변했다.

    모든 힘을 빼앗긴 마족은 결국 고개를 떨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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