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41화 (141/200)
  • # 141

    Chapter 35. 신위(神威)를 보이다 (3)

    “으으으…….”

    “이길 수 없어!”

    “우리 상대가 아니야!”

    기사들은 정천우의 엄청난 무력에 겁을 집어먹었다.

    수를 믿고 자신 있게 달려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동료의 반이 시체가 되어 바닥을 뒹굴었다. 이건 차원이 다른 강함이었다. 더 놀라운 건 그럼에도 정천우에게서 지친 기색을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그런 화산파의 기사들에게 더 절망적인 상황이 이어졌다.

    “단장님! 헤이먼입니다!”

    “맹주! 여기 팽우룡이 왔습니다!”

    “으하하하! 팽만리도 같이 왔습니다!”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쿼렐의 비를 뚫은 하북팽가의 기사들이 성문 앞에 포진한 병사들을 베어 내며 우르르 몰려들고 있었다.

    “이곳을 부탁합니다!”

    정천우는 때마침 도착한 하북팽가의 기사들에게 크게 소리치고는 겁에 질려 주춤거리는 화산파의 기사들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목표는 마교의 기사!

    정확히 말하자면 상급 마족을 품은 기사!

    승부를 결하기 위해서는 마교의 기사들을 해치우는 게 가장 빠른 길이었다.

    정천우는 경공을 발휘하면서 마구 역천검을 휘둘렀다. 길을 막는 병사들을 풀 베듯 쳐 내면서 길을 뚫었다. 역천검이 지나가는 궤적에 병사들이 일부러 목을 들이미는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헉, 헉! 진짜 더럽게 거치적거리네!”

    정천우는 병사들의 틈바구니를 빠져나오면서 숨을 헐떡였다.

    육체가 강화되었다지만 오랫동안 쉬지 않고 내공과 체력을 쏟아 내느라 약간의 무리가 간 것이다.

    “우우우…….”

    “인간이 아니야!”

    “저건 괴물이야!”

    병사들은 질린 얼굴로 정천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등을 돌리고 있음에도 병사들은 감히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역천검이 지나간 자리에는 피와 시체의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다가가는 순간 목숨을 잃으리라는 걸 알기에 병사들은 공포를 느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병사들은 안심했다.

    차라리 정천우가 병사들을 일직선으로 뚫고 나간 게 다행이라는 생각까지 할 정도였다. 그가 빠져나간 방향에 진을 친 존재들 때문이다.

    “무, 물러나!”

    “시체들 때문에 안 돼!”

    “미친 새꺄! 대충 아무 데나 집어던져! 저 괴물들한테 휘말리면 다 뒈진다고!”

    “그래! 물러나! 피해야 해!”

    병사들은 위기감을 느끼고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성문 쪽에서도 아군의 비명이 들려왔지만 거기에는 아직 자신들보다 먼저 죽을 아군이 많다. 그러나 정천우가 있는 방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곁에 다가가는 것조차 꺼림칙한 존재들.

    다른 사람의 목숨은 아군이든 적군이든 신경조차 쓰지 않는 잔인한 존재들.

    바로 마교의 기사들이 운집한 곳이었다.

    병사들이 겁에 질려 물러나는 모습을 바라본 정천우는 오히려 홀가분하다는 표정이었다. 애꿎은 생목숨을 끊어 내는 게 질려 가던 참이었다.

    점점 짙어져 가는 마기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때려치우고 하북팽가의 기사단에 합류해 차근차근 진격하는 걸 택했을 것이다.

    그가 마교의 기사를 만나려 하는 이유?

    단순하다.

    그들의 기운을 흡수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지난번에 해치운 아이작에게 입증되었다. 놈들은 단전의 위치에 마족을 품고 있다. 그놈들이 품고 있는 기운을 흡수하면 비약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강해지기 위해서라면 이것저것 따질 때가 아니다.

    드디어 그가 원하던 마교의 기사들을 발견했다.

    정천우는 지친 와중에도 한 가닥 미소를 베어 물었다. 그러자 정천우가 돌진해 오는 모습을 이제껏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마교의 기사들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주 죽으려고 발악하는 놈 아니야?”

    “막내가 처리해!”

    마교의 기사들은 우습지도 않다는 듯이 한마디씩 툭툭 내던졌다.

    정천우가 병사들을 뚫고 자신들이 있는 곳까지 온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약하기 짝이 없는 병사들을 뚫고 나오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 눈앞에까지 굴러온 정천우와 같이 숨을 헐떡이는 게 더 창피한 일이다.

    “귀찮은 일은 왜 죄다 저한테 시키십니까?”

    시커먼 갑옷을 입은 마교의 기사 하나가 입을 댓 발이나 내밀며 툴툴거렸다.

    느긋한 걸음걸이로 다가오는 마교의 기사를 향해 정천우의 눈이 번뜩였다. 뒤이어 누런빛이 피어났다가 사라졌다.

    “엇?”

    긴장을 풀었던 마교의 기사들이 일제히 정천우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아보지도 못했다.

    누런빛이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을 뿐인데 막내 놈의 목이 잘렸다. 잘려 나간 머리는 아직도 툴툴대는 표정이었다.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고 숨이 끊어졌다는 말이다.

    “이제 좀 긴장돼?”

    정천우가 마교의 기사들을 향해 한마디 하고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 꺾었다.

    “겨우 약해 빠진 막내 놈을 해치웠다고 아주 기가 살았군.”

    아까 막내 기사에게 명령을 내렸던 마교의 기사가 눈을 부라리며 거대한 할베르트를 두 손으로 잡아 휘둘렀다. 거대한 덩치답게 할베르트가 완전히 휘둘러지기도 전에 둔중한 파공성이 일어났다.

    때를 같이해 정천우의 역천검이 쏜살같이 뻗어 나갔다.

    쉬이익!

    투강! 서걱!

    금속성과 함께 살이 베이는 섬뜩한 소리가 섞여 나왔다.

    “크헉?”

    할베르트를 휘두르던 마교의 기사가 괴상한 소리를 냈다. 그의 상체가 허리부터 절단되었다. 허리부터 잘린 상체가 힘차게 휘두른 할베르트에 이끌려 한쪽 구석에 처박혔다.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야?”

    “잠깐! 나 방금 뭐 이상한 걸 본 것 같아?”

    “나도!”

    “아니겠지?”

    “아닐걸?”

    “설마…….”

    마교의 기사들은 찜찜한 얼굴을 한 채로 정천우를 향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순간이지만 오러 블레이드가 생성되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정천우의 움직임에 주시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무언가 굉장히 위험한 기운이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러고는 지금의 상황이다.

    동료가 무기조차 휘둘러 보지 못하고 몸이 두 조각으로 갈라져 죽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맞을걸?”

    정천우는 장난스럽게 대답하고는 경공을 발휘했다.

    그의 몸이 잔상을 남기면서 흐릿해지기가 무섭게 마교의 기사들에게 파고들었다.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의 일이다.

    투가! 츠가각!

    “크아악!”

    처절한 비명과 함께 세 명의 마교 기사가 사방으로 피를 뿌리면서 나자빠졌다.

    “공격해!”

    “쳐라!”

    정천우의 기습을 받은 마교의 기사들이 그제야 무기를 뽑으며 소리쳤다.

    그러나 늦은 감이 있었다. 정천우는 이미 싸울 준비를 단단히 한 상태였다. 마교의 기사들이 무기를 뽑는 순간에도 벌써 네댓 명을 저세상으로 보낸 다음이었다.

    그들이 무기를 뽑았다고 해도 달라질 게 없었다.

    목표 지점에 도착한 다음이었기에 무공을 숨길 이유가 없었다. 뇌전의 기운을 품은 건 똑같지만 전혀 다른 위력을 선보이는 검강이 역천검에 자라나 있었다.

    “오러 블레이드! 마스터다!”

    “조심해!”

    마교의 기사들은 혼비백산해 소리쳤다.

    정천우는 혼원벽력도법을 펼치면서 마교의 기사들을 마구 베어 넘겼다. 병사들을 뚫고 진격할 때와 거의 차이가 없는 움직임으로 마교의 기사들을 도륙해 나갔다.

    세상에서 가장 단단하고도 날카로운 보검에 검강이 더해지자 마교 기사들의 무기는 너무나 쉽게 썽둥썽둥 잘려 나갔다. 양 떼 속에서 날뛰는 한 마리의 호랑이와 다름없었다. 마교의 기사들이 전력을 다해 정천우에게 달려들었지만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다.

    ‘약해! 이놈들이 아니야!’

    정천우는 마교의 기사들을 베어 넘기면서 뒤쪽을 노려보았다.

    짙은 마기가 느껴지는 곳은 자신에게 부나방처럼 달려드는 기사들 너머에 있었다. 상당한 수준의 마족을 품고 있을 게 틀림없었다.

    투강!

    “크윽!”

    잠시 한눈을 판 대가였을까.

    등에서 강렬한 통증이 느껴졌다. 내공을 갑옷에 주입해 두지 않았었다면 중상을 입었을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었다. 사방에서 공격이 들어오고 있음에도 한눈을 판 게 실수였다.

    그의 등에 공격을 성공한 마교의 기사는 의아한 얼굴이었다. 전력을 다해 일으킨 마나 쉐도우를 담았음에도 정천우의 얇은 철판을 꿰뚫을 수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천우가 검에 맞아 쓰러지듯이 주저앉으면서 역천검을 수평으로 휘둘렀다.

    스캉, 캉!

    “우아악! 내 발! 내 발!”

    정천우의 등을 공격한 마교의 기사가 두 발목을 잃고 바닥에 쓰러지면서 비명을 질렀다.

    퍼걱!

    “그륵…….”

    몸을 일으킨 정천우가 역천검을 거꾸로 쥐고서 괴성을 지르는 마교 기사의 가슴을 꿰뚫었다.

    부르르 경련을 일으킨 마교의 기사는 입을 뻐끔거리며 핏물을 게워 내다가 이내 몸이 축 늘어졌다.

    “괴물 같은 놈!”

    마교 기사 중의 하나가 눈에 독기를 품으면서 중얼거렸다.

    이렇게 된 바에야 최후의 수단을 사용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오랫동안 후유증에 시달려야겠지만 지금은 이것저것 뒤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모두 역혈대법(逆血大法)을 사용…….”

    “멈춰라!”

    악독한 눈빛으로 씹어뱉듯이 말하던 마교 기사의 어깨를 붙잡는 사람이 있었다.

    “드디어 등장했나?”

    정천우가 피곤한 기색을 숨기지 않으면서 중얼거렸다.

    마교 기사들의 뒤에서 무게만 잡아 대던 놈 중의 하나가 드디어 무거운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 것이다.

    “네놈! 하북팽가의 기사인가?”

    정천우의 검술이 혼원벽력도법이라는 것을 알아본 마교의 기사가 잔뜩 갈라진 목소리로 물었다. 원래 목소리가 그런 건지 알 순 없지만 그의 음산한 분위기와 묘하게 잘 어울렸다.

    다른 기사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나름 고위급 기사인 것 같았다.

    “알면서 왜 묻지?”

    “뭐, 쓸데없는 소릴 했군. 곧 죽을 놈한테 말이야.”

    “개소리!”

    정천우는 놈이 방심한 틈을 타고 혼원벽력도법의 제이초식인 벽력섬광(霹靂閃光)을 사용해 역천검을 휘둘렀다.

    “워! 워! 이봐, 그런 건 애들한테나 통하는 거야.”

    정천우를 주시하고 있었던 마교의 기사는 장난스럽게 손바닥을 내보이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정천우가 공격해 올 줄 알았다는 듯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사실은 애초부터 단단히 준비하고 있었다. 정천우의 공격이 심상치 않은 것을 깨닫고 능력을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제법 빠른 것 같았지만 충분히 감당한 만한 정도의 스피드였다. 괜히 긴장한 것 같아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순간적으로 마스터급에 준할 만큼 마나양이 증폭되기에 확인하기 위해서 직접 나선 거였다.

    분명 자신을 공격할 때에도 기이한 느낌이 들긴 했지만 피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교의 기사가 표정을 바꾸었다. 롱소드에 손을 가져가면서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함부로 날뛴 대가를 치러야겠지?”

    섬뜩한 눈빛을 보내면서 마교의 기사가 정천우를 향해 살기를 흘렸다.

    하지만 정작 정천우는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러고는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다가갔다.

    “이거 골 때리는 놈이네? 둔한 거야, 멍청한 거야?”

    “무슨 개소리냐?”

    마교의 기사는 얼굴을 굳히면서 정천우를 노려보았다.

    롱소드의 검자루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조금만 더 다가오면 단번에 베어 버릴 생각이었다. 손가락 끝이 찌릿거렸다. 공격하기 전에 느끼는 긴장감과 기대감의 결과였다.

    마교의 기사는 정천우가 한 걸음 더 다가오는 순간 롱소드를 뽑으며 쾌검식을 사용했다.

    아니, 쾌검식을 사용하려고 했다.

    푸시식…….

    “어? 어? 이게 무슨…….”

    마교의 기사는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옆구리까지 쭉 이어지는 고통과 뜨끈한 느낌에 눈을 크게 떴다.

    롱소드를 뽑아 쾌검식을 사용하려는데,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넌 죽은 놈이야, 이 둔한 자식아.”

    정천우는 마교 기사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누르면서 혀를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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