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40화 (140/200)
  • # 140

    Chapter 35. 신위(神威)를 보이다 (2)

    주소용 후작은 확신 있게 말하는 팽선웅 백작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눈만 껌벅거렸다.

    “그게 무슨…….”

    “직접 보시는 편이 낫겠습니다. 우선 부하들에게 전투를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우룡 경, 알지?”

    “옛, 영주님!”

    팽선웅 백작이 미소 띤 얼굴로 말하자 팽우룡이 군례를 올리고는 날랜 움직임으로 기사단을 향해 달려갔다. 팽우룡이 기사단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기사들이 분분히 전투마에 올랐다.

    주소용 후작은 영문을 몰라 하북팽가의 사람들이 움직이는 걸 멍하니 쳐다보기만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북팽가의 기사단이 정천우의 뒤에서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도열해 있었다. 정천우의 바로 뒤에 선 것은 바로 샤벨타이거 기사단이었다.

    최정예라는 썬더 기사단을 제치고 가장 먼저 달릴 권리를 얻은 것이다. 그들이 바로 정천우의 직속 기사단이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주소용은 점점 더 알 수 없는 정천우의 행동에 고개를 저었다.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부단장인 주민하에게 하북팽가의 기사단과 함께 행동하라고 전했다. 그러나 기어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맹주께서는 왜 말에 오르지 않는 거죠?”

    “맹주님이 말보다 빠르기 때문입니다.”

    팽선웅 백작은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는 얼굴로 빙그레 웃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화산파에서는 전령의 항복 권유를 거절했다. 백기를 걸고 갔던 전령이 말을 타고 빠른 속도로 되돌아왔다.

    전령이 하북팽가 연합군의 진영에 도착하는 순간에 맞추어 정천우가 몸을 움직였다.

    투하학!

    잔뜩 힘을 비축했던 정천우가 지면을 박차고 나가면서 흙먼지가 풀썩 일어났다.

    마치 마법으로 인한 폭발처럼 땅거죽이 움푹 파였다. 그러고는 길게 흙먼지로 꼬리를 만들면서 달려 나갔다.

    엄청난 속도가 아닐 수 없었다.

    전령의 항복 권유를 거절하고 사기 진작을 위해 함성을 지르던 화산파의 병사들의 함성이 그 때문에 잦아들었다.

    웬 미친 인간 하나가 갑옷을 입은 채로 달려오는 모습이 기가 막혔던 것이다. 기사가 말을 타지 않고 두 다리로 달려오는 모습을 그들로서는 처음 보는 희한한 광경이었다.

    “와하하하! 미친놈이잖아?”

    “말은 어디다 팔아먹었냐!”

    “그쪽 영지는 말 한 마리 사 줄 돈도 없는 거냐?”

    성벽 위에 선 기사들은 달려오는 정천우를 향해 야유를 퍼부으면서 낄낄거렸다.

    “저 자식, 무늬만 기사인 거 아니…… 어엇!”

    덩달아 야유를 퍼부어 대던 기사 중의 하나가 경악한 얼굴로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그냥 웃을 일이 아니었다.

    정천우가 달려오는 속도가 너무나 엄청났기 때문이었다. 바로 뒤에서 말을 달리는 기사단과의 거리가 쭉쭉 벌어지고 있었다.

    “궁병대! 쏴!”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낀 기사 중의 하나가 사격을 명했다.

    투두둥! 투두둥퉁!

    수천 발의 쿼렐이 정천우를 노리고 쏘아졌다.

    “흥!”

    정천우는 하늘을 새카맣게 수놓으면서 날아오는 퀘렐을 발견하곤 코웃음을 쳤다.

    내공을 끌어올려 극성으로 경공을 발휘했다. 그러자 정천우의 몸이 엿가락처럼 쭉 늘어나는 듯한 착시 현상이 일어났다.

    파바박! 파바바박!

    정천우가 지나간 자리에 쿼렐이 박히면서 땅거죽이 고슴도치처럼 흉물스럽게 변했다.

    정천우의 몸은 어느새 성문 앞에 도달해 있었다. 역천검을 두 손으로 움켜쥔 그는 혼원벽력도법의 기수식을 취하면서 내공을 끌어올렸다.

    우우웅!

    역천검이 진동을 일으키면서 밝은 빛을 뿜어냈다. 뇌전의 기운을 담은 검강이 일어나 역천검을 뒤덮으면서 파괴적인 기운을 사방에 뿌려 댔다.

    혼원벽력도(混元霹靂刀) 제일초식, 일월섬전(日月閃電).

    역천검에 맺힌 검강이 쭈욱 늘어나는 것과 동시에 오른쪽 하단에서 왼쪽 상단으로 대각선 올려베기를 시도했다.

    그가각!

    잇따라 상체를 비틀면서 이번엔 반대로 올려 벴다. 쭉 뻗어 올라간 검강이 거대한 성문에 X자 형태로 흔적을 만들었다.

    정천우는 철산고의 수법을 사용해 어깨와 등으로 성문을 들이받았다.

    콰지직! 쿠구궁!

    철판을 덧댄 두꺼운 성문이 맥없이 부서져 나갔다. 3미터에 이르는 성문이 넘어가면서 엄청난 양의 흙먼지를 피워 올렸다.

    정천우의 돌진은 단순히 성문을 파괴한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흙먼지 속에서도 안력을 돋워 철살문(Portcullis : 쇠창살로 이루어진 문)까지 돌진해 혼원벽력도법의 삼 초식인 무음벽력(無音霹靂)을 펼쳤다.

    역천검이 검강을 간직한 채 마구 움직였다. 역천검은 철살문을 베면서 시퍼런 불똥을 사방에 쏟아 냈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소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무음벽력이라는 초식이 가지는 고유의 효과였다. 소리까지 끊어 버리는 쾌검(快劍)의 묘리가 연달아 펼쳐지면서 소리가 퍼지지 않게 막는 것이다.

    쿠당탕탕!

    정천우가 초식의 운용을 마친 뒤에야 철살문이 갈라지면서 쇳조각이 돌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서, 성문이 뚫렸다! 성문이 뚫렸다!”

    성문 앞에 대기하던 병사가 먼지구름과 함께 튀어나오는 정천우를 발견하고 비명처럼 경고성을 보냈다.

    츠걱!

    정천우의 역천검이 병사의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의 손에 들린 역천검은 검강 대신에 검기가 자릴 잡았다. 동대륙에선 마나 쉐도우라고 부르는 그것이었다. 오러 블레이드를 보여 주었다가는 기사들이 경계할 것을 염려한 것이다.

    정천우의 움직임은 현란하기 그지없었다. 그의 앞을 가로막은 병사들의 몸이 쩍쩍 갈라졌다. 마나 쉐도우로 강화된 그의 역천검은 난폭했으며 무정했다.

    누런 뇌전의 기운이 꼬리를 만들면서 지나치는 궤적에 따라 병사들의 몸이 후두둑 썰렸다. 머리통이 날아간 병사는 흰색과 선홍빛이 뒤섞인 뇌수를 흘리면서 쓰러졌다

    창으로 공격하던 병사들은 자신의 손목이 창과 함께 떨어져 나가는 끔찍한 경험을 해야만 했다.

    “기사단은 뭘 하는가! 어서 성문을 봉쇄하라! 상대는 고작 하나다!”

    주황색 깃털 장식의 투구를 쓴 보병 지휘관이 정천우를 롱소드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홀로 성문을 부수고 성문 중앙을 가로막는 철살문까지 파괴할 줄은 정말 몰랐다. 저지할 사이도 없이 벌어진 일이었기에 병사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보병 지휘관은 50여 명의 아군 기사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며 겨우 안도할 수 있었다. 기사들의 빠른 발이라면 10여 초 안에 도착할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내 퍼렇게 질린 얼굴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비, 빌어먹을! 적의 기사단이 몰려온다! 궁병대! 궁병대!”

    보병 지휘관은 먼지가 옅어 가는 성문 밖의 풍경에 버럭 고함을 질렀다.

    마나를 제대로 수련했다면 목소리에 마나를 담아 소리쳤을 테지만 그는 비록 지휘관이라 할지라도 기사가 아닌 병사에 불과했다.

    “서둘러! 적이 온다! 빨리 장전해라, 이 망할 자식들아!”

    궁병 지휘관은 피가 마르는 심정으로 병사들을 닦달했다.

    기사 하나가 허락도 없이 명령을 내리는 바람에 궁병대원들이 모조리 쿼렐을 발사하고 말았다. 그 탓에 재장전하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멍청한 자식들!’

    궁병대 지휘관은 아군 기사들을 힐끔 쳐다보고는 이를 갈았다. 아무리 기사가 일반 병사들의 위에 있다지만 이건 엄연히 월권행위였다.

    하지만 지금은 원망이나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적 기사단이 벌써 코앞에까지 달려오고 있었다.

    “제기랄! 1열 발사!”

    투두두둥!

    명령과 함께 장전을 마친 궁병대원들이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나 두터운 금속 방패로 머리 위를 가린 적 기사단에게 효과가 있을 거라고 기대하긴 어려워 보였다.

    더욱 그를 절망케 하는 것은 적 보병이 진격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들의 진격은 빠르진 않았지만 두려웠다.

    두꺼운 나무로 만든 맨틀릿(Mantlet : 받침대가 있는 대형 방패)에 의지해 보병들이 진격하고, 성벽과 거의 비슷한 높이의 시즈 타워가 천천히 움직이는 중이다. 그것도 화려한 마법을 쏘아 보내면서!

    뭐가 어떻게 된 건지도 모를 만큼 빠르게 전투 상황으로 만든 당사자인 정천우가, 쏟아지는 창날을 쳐 내면서 성 안쪽으로 뚫고 들어갔다.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성문 주변에서 얼쩡거리면 아군 기사단이 방해를 받을 거라 판단했다. 병사들의 저항 따위는 그의 진격을 막을 수 없었다.

    카라랑!

    스거걱!

    역천검이 수평으로 휘둘러지기가 무섭게 달려들던 병사들의 허술한 갑옷들이 쩍쩍 벌어지면서 핏물을 쏟아 냈다.

    “모두 물러나랏!”

    수많은 병사의 희생 끝에 도착한 화산파의 기사들이 버럭 고함을 질렀다.

    병사들은 죽다가 살아난 얼굴로 황급히 물러났다. 그 빈자리를 기사들이 채우면서 마나 쉐도우가 깃든 롱소드로 정천우를 겨누었다.

    그러나 정천우는 당황하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자신에게 직접적인 공격이 가능한 기사의 숫자는 기껏해야 서너 명이다. 게다가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모르는 이상 화산파의 기사들에게 승산 따위는 없다.

    슈슈슉! 바우웅!

    요란한 파공음과 함께 화산파 기사들의 롱소드가 공간을 찢어발겼다.

    그러나 정천우의 움직임이 한 박자 더 빨랐다. 화산파의 기사들이 롱소드를 휘두르던 그때, 정천우는 그들을 꿰뚫고 지나가는 중이었다.

    “으헉! 쳐라!”

    화들짝 놀란 화산파의 기사가 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동료가 공격하는 걸 분명히 지켜보았는데 어떻게 공격을 무산시킨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른 기사들 역시 서둘러 정천우에게 롱소드를 휘둘렀다. 하나같이 시퍼런 마나 쉐도우를 머금은 강력한 일격이었다.

    순간, 정천우의 역천검에 변화가 일어났다. 누런 뇌전의 기운이 하얗게 변했다.

    “오러 블레이드?”

    동료들에게 명령을 내렸던 기사가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순식간에 나타났다 사라진 현상이었기에 자신의 착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눈을 크게 떴다. 마나 쉐도우를 품은 자신의 롱소드가 맥없이 반으로 잘려 나가는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천우에게 롱소드을 휘둘렀던 동료들의 갑옷에 붉은 선이 생겨나더니 우르르 쓰러졌다. 비현실적인 상황에 기사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머, 멈춰!”

    화산파의 기사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정천우를 향해 당황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상대는 거리낌 없이 돌진해 왔다. 황급히 반 토막 난 롱소드를 휘둘러 견제하려고 했다. 그러나 몸에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자신을 지나치는 정천우에게 고개를 돌린 순간 그의 세상은 거기에서 막을 내렸다. 투구의 광대뼈 부분부터 시작된 균열이 반대쪽 관자놀이까지 가로지르면서 피 분수를 뿜어냈다.

    고통을 인지할 사이도 없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차아앗!”

    정천우는 머리통을 날려 버린 기사를 지나치면서 커다란 기합을 토해 냈다. 화산파의 기사들을 향해 먼저 달려들었다.

    홀로 뛰어들고 있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아니, 수가 많은 화산파의 기사들이 오히려 주춤거리면서 뒤로 물러났다. 동료들을 순식간에 해치우고 달려드는 모습에서 자신들과는 차원이 다른 강자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정천우가 강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해서 화산파 기사들에게 도움될 일은 없었다. 그의 손에는 일말의 망설임조차 없었다. 그저 적이 앞을 가로막으니 공격을 가할 뿐이다.

    순간적으로 검강을 일으켜 세 명의 화산파 기사를 베어 낸 정천우가 역천검을 허공에 휘둘러 검신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저곳인가!’

    정천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시선이 향한 곳에서 음습하고 더러운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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