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39화 (139/200)
  • # 139

    Chapter 35. 신위(神威)를 보이다 (1)

    하북팽가와 아미파가 하나로 합쳐지자 엄청난 군세로 거듭났다.

    아미파의 병력은 7천, 하북팽가와 무당파가 합쳐진 병력은 1만 5천.

    무려 2만 2천이 넘는 병력이 하나가 되어서 진지를 구축하자 그것만으로도 장관이었다.

    변화된 하북팽가의 모습은 주소용 후작을 놀라게 했다. 언제나 하급 영지로 취급되었던 것과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기사들의 실력이 놀라울 정도군요.”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그래도 어디 아미파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팽선웅 백작은 주소용 후작의 칭찬에 겸손의 말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한껏 묻어나고 있었다. 팽선웅 백작이 생각하기에도 아미파에 전혀 꿇릴 게 없었으니까 말이다. 아미파의 기사들을 확인했지만 하북팽가의 기사들이 훨씬 더 강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또 하나의 이유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실력이 주소용 후작과 견줄 만하다고 판단한 점이다.

    예전에 만났을 때에는 감히 실력을 비교할 수 없었던 주소용 후작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와 마주 서고 보니 그녀의 마나양과 자신의 마나양이 엇비슷하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기분이 좋아진 팽선웅 백작은 한쪽에서 자신의 휘하 기사들과 얘기를 나누며 미소 짓는 정천우를 바라보았다.

    “맹주님, 어째 더 실력이 늘었습니다?”

    팽우룡이 감탄한 얼굴로 정천우를 쳐다보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북팽가에 있을 때와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마치 거대한 산(山)을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정천우가 마스터의 경지에 올라가면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기운이 팽우룡에게 그런 느낌을 주는 것이다.

    “사람 무안하게 맹주님이 뭡니까, 맹주님이! 우룡 경도 그렇고 만리 경도 그렇고, 저만 달라진 게 아닌 것 같은데요?”

    정천우는 팽우룡과 팽만리를 번갈아 쳐다보면서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아닌 게 아니라 두 사람의 경지가 더욱 깊어졌다. 이 정도면 거의 주소용 후작과 맞먹는 수준의 마나양이었다. 하북팽가를 떠나올 때 보았던 두 사람의 수준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의 눈빛을 받은 팽우룡과 팽만리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입을 연 것은 역시나 성질 급한 팽만리였다.

    “으하하하! 과연 천우 경…… 아! 죄송합니다. 과연 맹주님이십니다. 육합권을 열심히 수련하니 마나가 마구마구 쌓이지 뭐겠습니까? 그래서 미친 듯이 수련했습니다. 저쪽을 보십시오.”

    팽만리는 하북팽가의 기사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거기에는 기사들이 갑옷을 입은 채로 육합권을 수련하고 있었다. 기사들이 단체로 모여서 육합권을 수련하자 주변의 기운이 기사들에게로 빨려 들어가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신기한 현상이 아닐 수 없었다. 육합권을 수련한다고 해서 저렇게까지 대자연의 기운이 호응할 줄은 그로서도 몰랐던 것이다.

    놀란 얼굴로 기사들을 쳐다보는 정천우에게 팽우룡이 흐뭇한 표정으로 팽만리의 말을 받았다.

    “여럿이 함께 수련할수록 더욱 많은 마나를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물론 개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풍부한 마나 속에서 수련하니 마나가 빠르게 쌓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저렇게 단체로 육합권을 수련시키고 있습니다.”

    “아…… 정말 대단합니다. 육합권에 저런 효능이 숨어 있을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정천우는 진심으로 탄복했다.

    육합권을 잘 이해하고 실제로 몸에 익힌 정천우가 제대로 가르쳤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존에 전해 내려온 뻣뻣한 육합권이었다면 결코 얻을 수 없는 효과였다.

    기사들의 실력이 늘었다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아미파와 함께 싸운다면 화산파를 치는 게 더욱 쉬워질 테니까 말이다.

    중요한 것은 기사단의 숫자다.

    무당파의 수련기사들을 정예기사로 탈바꿈한 뒤에 썬더 기사단과 타이거 기사단에 배치했다.

    썬더 기사단의 숫자는 무려 100명으로 늘렸고, 타이거 기사단의 숫자는 250명이 넘는다. 아미파의 기사단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 숫자였다.

    게다가 하북팽가에 남겨 둔 라이온 기사단까지 생각한다면 하북팽가의 전력은 아미파를 뛰어넘는 수준이 되었다.

    아미파의 기사단과 하북팽가의 기사단을 합치면 기사의 숫자가 대략 800명에 이른다. 이만한 전력이라면 화산파보다 월등히 많은 숫자다.

    병사들의 숫자가 변수로 작용하겠지만, 일단은 아미파와 하북팽가 연합이 유리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번 전투가 기대됩니다.”

    정천우가 기사들이 수련하는 모습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저도 그렇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하북팽가의 위상을 드높일 생각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무림맹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화산파를 격파하고 수련기사를 흡수하면 전력을 더욱 확충할 수 있을 겁니다.”

    팽우룡이 흐뭇한 얼굴로 수련하는 기사를 같이 쳐다보았다.

    무림맹과 척을 지게 되었지만 후회하진 않았다. 예전부터 하북팽가를 무시한 것도 있지만 이번에 아미파와 함께 도매금으로 버려진 패가 된 것이 불만이었다.

    화산파를 멋지게 해치우고 전력을 확충해서 무림맹을 견제할 생각이었다.

    비록 무림맹이라는 단체가 지닌 기사단이 강력하긴 하지만, 정천우의 신비로운 단약과 육합권이 있다면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무림맹과 정도련이 싸우면서 전력이 약해질 것은 분명할 테니까 말이다.

    팽우룡은 정천우를 바라보면서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희망적인 상황으로 변한 이유가 모두 그의 덕이라는 걸 알기에 그의 눈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맹주님,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어, 어! 이거 왜 이러십니까!”

    정천우는 정중하게 군례를 올리는 팽우룡에게 마주 군례를 올리면서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맹주님.”

    “만리 경까지! 그냥 하던 대로 합시다. 사람 무안하게 뭡니까?”

    정천우가 볼멘소리를 하면 툴툴거렸다.

    그러자 팽우룡과 팽만리의 얼굴에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변하지 않는 그의 모습에 더욱 신뢰가 갔기 때문이었다.

    ***

    “나는 돌레스 마을의 촌장 드간이다! 우리는 이제껏 영주가 요구한 세금을 내놓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전쟁이 벌어지면서 요구했던 무리한 세금까지 모두 냈다. 그런데 영주가 우리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는가!”

    음성 증폭 마법을 받은 드간은 화산파의 영지성을 향해 소리쳤다. 화산파의 영지성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려 7서클의 대마법사가 걸어 준 마법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음성은 울분에 가득 차 있었다.

    성벽 위에 빼곡하게 자리 잡은 화산파의 기사들과 병사들은 드간의 목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가득했다.

    당장 전투를 벌일 줄 알았는데, 웬 늙은이가 앞으로 나와 울분을 토하고 있으니 그게 이상했던 것이다.

    영지성이 너무 멀어 드간의 눈에는 그저 성벽 위에 사람이 꼬물거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이 겪은 일을 알리고 싶었다. 저 영지성에는 돌레스 마을에서 징집된 녀석들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녀석들이 더러운 싸움에 휘말려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나서서 화산파의 만행을 알리는 중이다.

    잠시 숨을 고른 드간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 돌레스 마을에 피닉스 플라워 기사단을 보내 주민을 학살하고, 그것을 아미파에 뒤집어씌우려고 했다. 우리 마을뿐만이 아니다! 게린더 마을에도…….”

    쐐애액!

    파캉!

    드간이 말하는 도중 매직 에로우가 날아와 드간을 강타했다. 하지만 샤칼이 걸어 준 실드 마법에 가로막혀 공중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잠깐이지만 가슴이 철렁했던 드간은 마법으로 보호받고 있음을 확인하고서는 안도했다.

    “내 입을 막는다고 해도 화산파의 영주 임철중 백작 놈이 한 짓을 증명할 사람은 많다! 그 망할 놈은 힘없는 노약자를 앞세워 화살받이로 썼고, 이제껏 성실하게 세금을 낸 우리를 죽였다.”

    화르르륵! 부아앙! 쐐애액!

    펑! 투둥! 쿠궁!

    매직 에로우가 막히자 갖가지 마법들이 날아와 드간을 공격했다. 하지만 7서클 대마법사인 샤칼의 실드는 모든 마법을 퉁겨 냈다.

    그에 드간은 더욱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우리가 학살을 당할 때 바로 여기 아미파의 기사님들이 우리를 구해 주셨다! 저 흉악무도한 임철중 백작 놈은 가족과 이웃들의 원수다! 화산파 영지의 모든 촌장들은 임철중 백작 놈을 영주로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이 천벌을 받을 임철중 백작 놈아! 확 죽어 버려라!”

    드간은 저주의 말을 내뱉으며 악을 썼다.

    마지막에 가서는 숨이 모자라서 헉헉댔지만, 그의 울분은 고스란히 화산파의 영지성에 전달되었다.

    곧 드간이 하북팽가 연합군의 진영으로 돌아왔다. 힘겨운 걸음으로 돌아오는 드간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득의의 미소를 짓는 사람들이 있었다.

    “동요하는 게 보이는군요.”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화산파의 병사들은 인근 마을에서 징집된 병사들의 수가 절반에 이릅니다. 동요하지 않는다면 그게 더 말이 되질 않습니다.”

    주소용 후작의 말을 받아 팽선웅 백작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웃었다.

    돌레스 마을의 촌장인 드간이 전해 준 정보가 상당했다. 거기에는 중요한 정보까지 포함되어 화산파의 전력까지 유추해 낼 수 있었다.

    500명가량의 기사단 전력이 있고, 병사의 수는 정예병이 1만 5천에 징집된 병사가 대략 1만 명이라고 했다.

    절반에 가까운 병사들이 징집되어 영지성을 방어하는 것이다. 그중에는 돌레스 마을 출신의 병사도 있어서 드간의 목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도 있을 터였다.

    화산파의 사기를 죽인다는 의미에서 드간의 활약은 하북팽가 연합에 커다란 도움이 되었다.

    “그나저나 공격은 언제 합니까?”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정천우가 화산파의 영지성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어제 작전 회의를 듣긴 했지만, 솔직히 믿음이 가질 않았다. 하북팽가와 아미파 수뇌부가 내민 작전은 너무나 정석적이었다.

    투석기로 성벽을 때리고 마법을 난사하면서 적의 주의를 분산시킨 다음, 공성 병기인 캣(Cat)을 이용해 성문을 부순다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화산파의 영지성은 너무나 견고하게 지어졌다. 최소한 아미파의 영지성보다 두세 배는 더 튼튼해 보였다. 저런 성벽을 투석기로 공격해 봐야 별다른 타격을 주기가 어려워 보였다.

    운 좋게 성벽 위에 떨어져 직접적으로 인명을 살상하는 게 아니라면 그다지 큰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것은 마법을 사용한다고 할지라도 마찬가지다. 아래에서 위를 향해 마법을 사용해야 하기에 효과를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그게 제아무리 7서클의 마법이라고 해도 말이다.

    병사들의 희생이 클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시간만 질질 끌면서 지지부진 시간만 흐를 게 분명한 작전이었다. 실제로도 성을 공략하는 데 일주일은 필요하다고 했으니까.

    정천우는 주소용 후작을 쳐다보면서 대답을 기다렸다. 주소용 후작은 어째서 정천우가 공격 시기를 묻는지 의문이었지만, 이제는 정천우가 말을 꺼낼 때는 이유가 있어서라고 믿었다.

    “일단은 저들에게 전령을 보내 항복을 권유한 뒤에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할 거예요. 트레뷔셰의 조립도 끝났으니까요.”

    “그렇다면 전령은 언제 보낼 생각이십니까?”

    “지금이요.”

    주소용은 질문에 즉각 대답했다.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백기를 단 채 말을 타고 영지성을 향해 달려가는 전령의 모습이 있었다.

    팽선웅 백작은 그녀의 공손한 태도에 속으로 감탄했다. 정천우를 맹주로 추대했다고 했을 땐 그를 허수아비로 만들 생각인 줄 알았다. 그가 역천검의 주인이었으니 명분으로 삼기 좋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주소용 후작의 정중하고도 복종적인 모습에 팽선웅 백작은 자신의 예상이 틀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와 함께 정천우에 대한 생각도 바꾸었다.

    얼마 전까진 자신과 동격의 존재였지만 이제는 자신보다 우위에 서 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팽선웅 백작이 마음속으로 수긍하는 사이, 정천우가 주소용 후작의 눈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전령이 돌아오면 제가 나서겠습니다.”

    “맹주께서요?”

    주소용 후작이 그게 무슨 얘기냐는 의미로 되물었다. 그러나 팽선웅 백작은 정천우가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단박에 깨달았다.

    “아! 맹주께서는 직접 화산파의 영지성을 공략하실 생각입니까?”

    무당파를 공략할 때 보여 주었던 전광석화와 같은 성문 공략이 떠올라 팽선웅 백작은 희열에 찬 눈으로 물었다.

    “맞습니다. 그럼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정천우는 자신의 말만 내뱉고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저, 저기, 맹주님!”

    “주소용 후작님, 안심하셔도 됩니다.”

    팽선웅 백작은 정천우를 부르는 그녀를 말렸다.

    주소용 후작은 자신을 말리는 팽선웅 백작을 향해 더욱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을 안심하라는 말씀이죠?”

    “맹주님은 움직이는 공성 병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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