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37화 (137/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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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4. 잔인한 화산파 (2)

    “미친놈이라 다행이군. 나머지는 하던 거 마저 해! 이놈들은 우리가 해치운다. 아미파엔 계집만 있는 줄 알았더니 사내놈도 있었어. 근데 생긴 게 영 마음에 안 들어. 일단 목부터 따고 부랄이 달렸는지 확인해 봐야 직성이 풀리겠다.”

    정천우를 도발하던 기사가 안도하면서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혹시 다른 전력을 숨겨 둔 것은 아닌지 떠보았는데 저 순진한 녀석은 곧이곧대로 3명뿐이라고 말했다. 아까 자신들에게 덤벼들었던 놈들도 그렇고 이놈들도 그렇고, 아미파의 기사 놈들은 머저리들만 모아 놓은 것 같았다.

    기분이 좋아진 그는 핏물이 입에 들어가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서 징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귓구멍 후비고 들어라! 나는 화산파의 임호충이시다! 네놈의 목을 따 줄 이름이니 똑똑히 기억해 둬라! 으하하하!”

    임호충은 통쾌하다는 듯이 크게 웃으면서 메이스를 들었다.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메이스보다 훨씬 길었다. 마상(馬上)에서 사용하는 것이라 특별하게 제작된 것이 틀림없었다.

    “샤칼!”

    “네, 주인님.”

    “일단 근사한 걸로 한 방 부탁한다.”

    정천우는 지친듯한 표정을 지으면서 한마디 툭 내던졌다. 그의 얼굴에는 아무런 긴장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20명의 아미파 기사가 전멸하다시피 한 상태로 돌아와서 내심 기대했었다. 적어도 마교 놈들 하나둘쯤은 끼어 있을 거라고 말이다. 하지만 모두 다 그렇고 그런 놈들이었다.

    마교 놈들을 잡아서 그들이 사용하는 무공의 비밀을 좀 더 캐고 싶었는데 헛걸음을 한 셈이다.

    심드렁한 얼굴로 턱짓하는 정천우의 모습에 임호충의 콧김을 내뱉었다.

    메이스 한 방이면 대갈통이 터질 놈이 무게를 잡는 게 못마땅했다. 가뜩이나 잘생긴 놈들만 보면 화가 나는 임호충이다. 드워프 놈은 그나마 자신에게 위로가 되지만 정천우나 샤칼같이 잘생긴 놈들만 보면 일단 모가지부터 부러뜨리고 싶었다.

    “모두 한꺼…… 뭐?”

    임호충이 버럭 고함을 지르다가 눈을 크게 떴다. 샤칼의 손에서 빛이 일어나는 모습을 발견한 탓이다.

    “ЦфЖЙПБЫ…… 라이트닝 캐논!”

    바우우웅! 쿠구궁!

    임호충이 위험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어도 한참이나 늦고 말았다.

    라이트닝 캐논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가면서 화산파의 기사들을 덮쳤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영지민을 학살하려 마을에 진입하려던 기사들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고 말았다.

    “오, 오러 블레이드!”

    “마스터야! 우리의 상대가 아니다!”

    기사들은 정천우의 역천검에 맺힌 검강을 알아보고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몸이 굳어졌다. 말고삐를 잡아당기려고 했지만 정천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살기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가 힘든 지경이었다.

    정적이 흘렀다.

    화산파의 기사들은 누구 하나 움직임을 보이는 사람이 없었다. 궁극의 경지에 이른 정천우의 무위(武威)를 확인한 순간, 석화 마법에라도 걸린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마스터와 상대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은 잔인하고 악랄한 화산파 기사들을 위축시켰다. 도망갈 생각을 하는 기사마저 정천우의 살기에 전신을 압박당했다.

    정천우가 오러 블레이드를 내뿜는 역천검을 쥐고 말에서 천천히 내려올 때까지 화산파 기사들은 꼼짝도 하지 못했다.

    우우웅…….

    역천검에서 벌 떼가 날아다니는 듯한 소음이 일어났다.

    천천히 혼원벽력도법의 자세를 잡은 정천우가 땅을 박찬 순간, 그제야 화산파 기사들이 정신을 차렸다.

    “막아! 아니, 도망쳐!”

    기사 하나가 당황한 음성으로 명령을 바꾸었다.

    그러나 정천우의 움직임은 그의 말보다 빨랐다. 몸이 쭉 늘어진다 싶은 순간, 말 머리와 함께 화산파의 기사 하나가 갑옷째 썰렸다. 뜨거운 피가 사방에 뿌려졌으나 정천우의 몸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화산파의 기사들은 대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도망치기 바빴다. 그러나 극성으로 경공을 발휘하는 정천우의 공격을 벗어날 수 없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면서 역천검에 걸리는 모든 것을 썰었다.

    샤칼의 마법에 살아남은 기사들이 빠른 속도로 숫자가 줄어들었다. 정천우를 피해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려던 기사는 여지없이 통구이가 되었다.

    “벌써 끝인가?”

    정천우가 역천검에 묻은 피를 털어 내면서 싱겁다는 듯 중얼거렸다.

    50여 명의 기사를 해치우는 데 걸린 시간이 10분도 채 되지 않았다. 절정의 경지에 오르면서 비약적으로 능력이 상승한 것이다.

    “으으으…….”

    “너는 왜 도망치지 않았지?”

    정천우는 역천검을 검집에 넣고는 사색이 된 채로 말 위에서 벌벌 떠는 화산파의 기사에게 다가갔다.

    도망치라고 소리치던 화산파의 기사였다. 정작 그 자신은 도망칠 시도도 해 보지 못했다. 정천우의 움직임을 눈으로 보고, 말보다 빠른 인간을 피해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버린 것이다.

    게다가 운 좋게 그의 시야에서 벗어나도 샤칼이 귀신같이 마법을 사용해 죽여 버리니 도망치는 건 무의미한 일이었다.

    그래서 아예 포기해 버렸다.

    죽을 땐 죽더라도 차라리 마지막엔 당당해지자고 마음먹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마저도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았지만 말이다.

    그저 살고 싶었다. 살아서 가족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동료들의 허무한 죽음이 그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 놓았다.

    정천우가 자신을 노려보는 두 눈에 공포를 느꼈다. 이런 상황에 빠질 거라고는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았기에 공포에 쉽게 잠식되고 말았다.

    기사들의 특권.

    버러지 같은 농민들 따위는 아무렇지도 않게 죽여도 되는 권리.

    그래서 죽였다.

    상부의 지시가 아니더라도 살인이 즐거웠다. 사람의 몸에 검을 쑤셔 박았을 때 손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경련이 그의 마음을 즐겁게 했다.

    더 많은 살인.

    벌벌 떨면서 살려 달라 부르짖는 하찮은 것들의 애원이 그를 흥분시켰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바뀌어 자신이 살려 달라고 빌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살려 주시오.”

    “아니, 내가 물어본 건 그게 아니었어. 왜 도망치지 않았냐고 물어봤다.”

    “사, 살려 주시오. 뭐든 다 말하겠소.”

    겁에 질린 기사는 반쯤 넋이 나간 얼굴로 반복해서 애원했다.

    “목이 아프군. 일단 내려와 봐.”

    정천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한심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다. 손에 롱소드를 쥐고 있음에도 무방비 상태인 자신에게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 놈이다. 이런 놈들이 이제껏 악랄한 짓거리를 하고 다녔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콰당탕!

    화산파의 기사는 겁에 질려 말에서 떨어지듯 내려왔다.

    실제로도 말에서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몸이 굳어서 움직임이 둔해진 탓이다.

    정천우는 화산파 기사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고는 투구를 벗기고 턱을 움켜쥐었다. 겁에 질린 20대 후반의 얼굴이 드러났다.

    “살인광의 눈이야.”

    화산파 기사의 눈을 바라본 정천우가 눈살을 찌푸렸다.

    겁에 질려 있지만 광기에 물들어 있다. 이런 눈을 한 놈은 반쯤 미친놈이다. 멀쩡하다가도 갑자기 칼을 빼 들고 발작하는 것들이 보통 이런 눈을 가졌다.

    정천우가 쓰게 입맛을 다시면서 그의 턱을 놓아주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넌 그 말밖에 할 줄 몰라?”

    “아, 아닙니다.”

    “여기 마을을 공격한 이유가 뭐지?”

    “영주님의 지시입니다.”

    “영주의 지시? 어떤 미친 영주가 자신의 영지민을 학살하라고 명령을 내린다는 거야? 어디서 개소리를!”

    영주가 직접 명령을 내렸다는 얘기를 들은 정천우가 의심스러운 기색을 내비치며 언성을 높였다.

    순간적으로 밀려드는 살기.

    화산파의 기사는 사타구니가 찌릿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기사의 살기를 정면으로 받아 내기엔 모든 면에서 부족했다.

    “저, 정말입니다. 저는 피닉스 플라워 소속 기사단의 하운드 림입니다. 영주님의 직속 기사단입니다. 영주님께서 직접 명령을 내렸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큭! 다른 사람의 목숨은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주제에, 재미있어.”

    정천우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놈들이 화산파의 주력이라면 어려운 싸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문제는 마교의 놈들이다. 화산파에 얼마나 많은 마교의 병력이 와 있느냐에 따라 전투의 양상이 달라질 것이다.

    “좋아, 살려 주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운드 림이 구원을 받은 사람처럼 고개를 숙이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나는 괜찮은데, 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

    정천우가 턱짓으로 뒤쪽을 가리키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하운드 림은 뜨악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분노한 얼굴의 영지민들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운드 림은 사색이 된 채 서둘러 허리춤을 더듬었다. 그러나 이내 절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말에서 내리면서 롱소드를 떨어뜨린 걸 잊은 것이다.

    “나쁜 자식들!”

    “죽여 버려!”

    “더러운 놈들! 그렇게 세금을 뜯어 가고도 모자라서 이젠 우리의 목숨까지 빼앗는 거냐!”

    영지민들은 원한에 가득한 얼굴로 하운드 림을 향해 욕을 해 댔다. 그들의 손에는 어느새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다. 분노로 가득한 영지민들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하운드 림을 향해 돌을 던졌다.

    퍼버벅! 빠박! 빡!

    “컥! 으헉! 억!”

    하운드 림은 손으로 머리를 감싸면서 피해를 줄여 보겠다고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영지민은 많고 하운드 림은 혼자였다. 쏟아지는 돌멩이 세례에 하운드의 갑옷은 걸레처럼 변해 가고, 갑옷 사이로 핏물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하운드 림이 돌에 맞아 버둥거리는 사이, 정천우는 어느새 샤칼과 헤이먼의 곁에 돌아와 있었다.

    “차라리 단칼에 보내 주지 그러셨습니까?”

    헤이먼은 비명을 지르면서 꿈틀대는 하운드 림을 바라보면서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영지민들도 쌓인 게 많을 텐데, 한 놈 정도는 분풀이 상대로 남겨 줘야지.”

    “그런데 단장님.”

    “왜?”

    “전 왜 데려온 겁니까?”

    “애들이 이렇게나 약할 줄은 몰랐지.”

    정천우는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였다.

    기사가 50명이 넘는다기에 샤칼과 헤이먼까지 끌고 왔는데, 상대가 너무 허약했다. 혼자 왔어도 충분할 정도로 화산파의 기사들은 실력이 부족했다.

    “내가 좀 강해지긴 한 건가?”

    “그게 조금 강해진 겁니까? 이젠 웬만한 기사들은 단장님의 상대가 못 될 겁니다.”

    헤이먼은 정천우의 황당한 발언에 혀를 내둘렀다.

    마스터의 경지는 아무나 다가갈 수 없다. 이론적으로만 따진다면 마스터급 기사 혼자서 베테랑급 기사 100명은 거뜬히 상대할 수 있다고 전해진다.

    물론 실제로 싸우면 그보다 훨씬 더 적은 수의 베테랑급 기사들에게도 쩔쩔매는 경우가 허다하긴 하다.

    그러나 헤이먼이 보기에 정천우라면 100명보다 더 많은 수의 베테랑급 기사와 붙여 놔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실력이 서대륙에서도 통할까?”

    “서대륙이라면…… 최소 100위 안에는 들 겁니다. 서대륙의 마스터급 기사의 수가 그 정도 된다고 들었습니다.”

    “100명이라…….”

    절정 고수가 되었음에도 서대륙에 넘어가기엔 무리가 있다는 얘기다.

    ‘뭐, 이것만으로도 어디야?’

    심각해지려던 기분을 털어 내며 정천우가 상념을 접었다. 영지민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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