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동대륙의 낭인무사-130화 (13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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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2. 전화위복(轉禍爲福) (5)

    “웬 개소리…… 으윽!”

    버럭 화를 내던 정천우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신음했다.

    몸에서 힘이 빠져나간다. 이런 현상을 일으키는 무공은 바로…….

    “……흡성대법(吸星大法)?”

    “이제 와서 눈치채 봐야 소용없다! 흐흐흐…….”

    아이작은 괴기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정천우를 비웃었다.

    상대의 마나가 빨려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망가졌던 혈맥이 치유되는 느낌이 들었다.

    도박과도 같은 시도였는데, 보기 좋게 먹혀들었다. 만약 정천우가 자신이 손을 댔을 때 곧바로 털어 버렸다면 흡성대법을 시도하지도 못했을 터였다.

    절로 웃음이 나는 상황이라 아이작이 통쾌하다는 듯이 음흉한 웃음을 흘렸다.

    “제, 제기랄! 크윽…….”

    정천우는 자신의 내공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비통에 가득 찬 신음을 흘렸다.

    동대륙에 넘어와서 얻은 내공이 빠져나가는 느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실감과 자괴감을 남겼다. 내공이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피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키운 내공인데! 빌어먹을! 놔! 이 거머리 같은 자식아!”

    정천우가 울분을 토해 내며 욕을 했다.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을 치려 했으나 내공이 흐르는 혈도가 하나로 이어지면서 함부로 몸을 움직일 수도 없는 처지였다.

    억울하고 분했다.

    작은 방심이 이런 결과를 초래하다니…… 이런 상실감을 느끼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렇게 정천우가 절망감에 빠진 사이에도 내공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크흐흐흐! 좋아, 좋아! 네놈을 먹어치운다면 난 더 강해지겠지?”

    아이작은 너무나 기분이 좋아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지경이었다.

    이만한 실력자의 마나를 모두 빨아내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마스터의 경지를 단단하게 다질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마교에서 자신의 입지가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절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에 반해 정천우의 얼굴은 썩은 돼지 간처럼 혈색이 죽었다. 자신의 내공을 상대방이 갈취해 가는 것을 두 눈 뜨고 쳐다본다는 건 지독한 고문이었다.

    둘의 대결을 지켜보는 기사들의 표정 또한 양분되었다.

    아미파의 기사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처음 아이작이 오러 블레이드를 발휘할 때는 정천우를 걱정했다. 그러나 정천우가 압도적인 실력으로 상대를 제압하자 신이 나서 그를 응원했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일어난 또 다른 반전은 그들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어쩌면 자신들이 모시는 맹주의 최후일지도 몰랐으니까 말이다.

    맹주로 추대한 지 하루 만에 이런 위기를 겪다니, 그저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마교의 기사들은 그 반대였다.

    처음 아이작이 수세에 몰렸을 때는 자신들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마스터의 경지에 오른 자신의 단장이 형편없이 밀리는 모습은 충격이었다. 여차하면 튀어 나가 단장의 복수를 하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단장들에게만 허용한다는 흡성대법이 아이작의 손에서 펼쳐지는 순간, 모든 고민은 사라졌다.

    이것으로 인하여 아이작이 더 강해진다면 다크 기사단의 입지 역시 탄탄해질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아미파와 마교 기사들의 심정이 어떻든,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했다. 그것은 아이작과 정천우의 결투를 정당하게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런 기사들의 반응에서 정천우는 체념하고 말았다.

    ‘이제 내공이 쭉쭉 빠져나가겠지? 제기랄…….’

    정천우는 앞으로 이어질 참담한 상황을 생각하면서 속으로 욕을 했다.

    중원에서 들었던 흡성대법의 증상과 지금 상황이 똑같다.

    처음에는 혈도가 마비되면서 몸이 굳어지고, 조금씩 내공을 빼앗기다가 점점 빨려 나가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했다. 최후에는 진원진기까지 갈취당하고 폐인이 된다는 끔찍한 얘기였다.

    당시에야 삼류에 불과했기에 흡성대법을 당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중원과는 다른 세계였기도 하고, 이곳의 사람들은 단전을 구성할 수 없어서 방심한 것이다.

    내공을 빼앗으면서 희열을 느끼는 아이작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건 너무나 역겨웠다. 하지만 고개조차 돌릴 수 없으니 정천우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

    더욱 선명하게 느껴지는 내공이 상실되는 괴로운 감각.

    눈을 감은 정천우의 얼굴이 더욱 일그러졌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는 아이작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크흐흐흐…… 응? 미친 건가?”

    아이작이 음흉한 미소를 짓다가 의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눈을 감았던 정천우의 일그러진 얼굴이 서서히 펴지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감았던 눈을 뜬 정천우의 얼굴에 미소가 생겨났다.

    그래서 아이작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에게 마나를 빼앗기는 중인데도 웃을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왜 웃는 건지 궁금해?”

    “왜지?”

    “네놈의 흡성대법이 짝퉁인 걸 알아 버렸지.”

    “짝퉁? 그게 무슨 개소…… 어헉!”

    아이작이 비웃음을 던지려다가 기겁한 얼굴로 신음했다.

    유입되던 마나가 이제까지와 달리 되돌아가고 있다. 아니, 되돌아가는 것을 넘어서 자신의 마나까지 딸려 나가고 있었다.

    놀랄 일은 그것만이 아니다.

    자신이 빨아들였을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마나가 유출되는 중이다.

    “이제 입장이 바뀌는 것인가? 대화는 이쯤에서 끝내지. 생각 외로 할 일이 많아서 말이야.”

    정천우가 으스스한 미소를 지으면서 전력으로 혼원벽력신공을 전력으로 운기했다.

    흡성대법의 치명적인 약점.

    그것은 바로 상대보다 내공이 낮으면 역으로 내공을 빼앗긴다는 점이다.

    원래라면 아이작이 정천우에게 마나를 빼앗긴다는 지금의 상황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유가 있었다.

    정천우보다 아이작의 마나양이 훨씬 많다. 문제는 내공의 운용 능력이다. 아이작의 마나양이 더 많지만 운용 능력은 초보 수준에도 미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단전이 있고 없고의 차이다.

    중원에서 들었던 것과 달리 내공이 빠져나가는 속도가 일정하다는 것에 의문을 느낀 정천우였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혼원벽력신공을 운용하자 단전에서 내공이 일어나 혈로를 타고 움직였다.

    진짜 흡성대법에 당한 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흡성대법은 상대와 육체적으로 동화하는 종류의 무공이다. 혼원벽력신공을 전력으로 운용하는 순간, 아이작의 몸에 깃든 마나까지 자신의 것으로 인식했다.

    마나 운용 능력이 없는 아이작으로서는 아무리 낑낑거려도 빠져나가는 마나를 어찌할 수 없었다.

    아이작의 마나는 중원식으로 따지면 일 갑자(60년 내공)가 조금 넘는다.

    정신적인 충격은 있었지만 그래도 처음에는 마나가 빠져나가는 끔찍한 현실을 괴로워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그러나 정천우에게 마나를 빼앗기면서 마나양이 역전되는 상황으로 변하는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이제까지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마나가 빠져나갔다.

    “끄으으아아아악!”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이작이 비명을 질렀다.

    그와 반대로 정천우의 얼굴은 뿌듯한 기색이 역력했다. 혼원벽력신공은 아이작의 마나를 내공으로 인식하고 빠르게 동화하면서 소주천의 경로를 따라 단전으로 안착하고 있었다.

    우우우웅…….

    단전으로 흘러간 마나가 정천우의 내공으로 바뀌면서 일 갑자를 넘어서는 그때!

    정천우의 몸에서 빛이 일어났다.

    때를 같이해서 역천검의 검신에 룬어가 떠올랐다.

    역천검과 정천우의 몸에서 동시에 빛이 생겨나면서 주변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이 눈을 가렸다. 워낙 강렬한 빛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

    눈부신 빛 속에서 아이작의 비명이 튀어나왔다.

    다른 사람은 볼 수 없었지만 정천우의 눈에는 아이작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의 마나를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빨아들였다. 그러자 아이작의 얼굴이 괴상하게 변했다.

    이마 양옆에서 작은 돌기가 튀어나왔다. 그것은 마치 짐승의 뿔을 연상케 하는 형태였다. 입이 좌우로 쫙 찢어지면서 눈이 벌겋게 변했다.

    마교의 기사들은 단전 대신에 마족을 단전 위치에 품는다더니 그게 사실이었던 것 같았다. 마나를 모두 빨리면서 봉인해 놓았던 마족이 위기의식을 느끼고 깨어난 것이다.

    그러나 마나를 빼앗기면서 마족과 정천우 사이에 월등한 힘의 차이가 나 버렸다. 마족은 자신의 마나까지 헌납하고는 목숨을 잃었다. 정천우로서는 어마어마한 기연이 아닐 수 없었다.

    모든 생기를 빼앗긴 아이작은 마족의 형상으로 말라비틀어져 미라 신세가 되었다. 손에 힘이 풀리면서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런 동안에도 정천우와 역천검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사라질 기미가 없었다. 오히려 더욱 빛이 밝아지면서 정천우의 몸에 변화를 일으켰다.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바로 단전이었다. 아이작의 마나를 흡수하면서 원래 가지고 있던 내공과 합쳐져 100년 내공을 쌓았다. 내공의 양만 놓고 본다면 중원식으로 따질 때 초절정의 반열에 올려도 될 정도였다.

    그러나 그것은 깨달음의 영역이기에 정천우가 바라볼 수 없는 경지였다.

    절정의 경지에는 확실하게 올라섰다.

    혼원벽력도법을 익히면서 무공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었다. 내공이 부족해 사용하지 못하던 초식들을 이제는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충분한 고민이 있었던 정천우는 내공을 얻음과 동시에 절정 고수로서 가져야 할 깨달음을 어렴풋이 각성한 상태였다.

    피부가 쩍쩍 갈라지고 새로운 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뼈마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가만히 서 있는데도 저절로 몸이 떨렸다.

    환골탈태(換骨奪胎)!

    무공을 배우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소망하는 꿈의 경지.

    정천우의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은 바로 그것을 의미했다. 근육은 더욱 탄탄해지고, 뼈는 전보다 더욱 단단해지면서 동시에 유연해졌다. 무공을 발휘하기에 최적의 몸이 된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모두 마친 뒤에야 정천우와 역천검에서 빛이 사라졌다. 그의 몸에서 빛이 일어난 지 20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무, 무슨!”

    마교의 기사들은 바닥에 쓰러진 아이작의 모습에 경악했다.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미라가 된 아이작의 얼굴은 마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아아아! 맹주님이시여!”

    아미파의 기사들은 정천우의 늠름한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듯 탄식했다.

    마교와 아미파의 기사들이 놀라거나 말거나 정천우의 관심 밖이었다.

    설레고 있었다.

    전신에서 느껴지는 강력한 힘!

    한계를 알 수 없을 만큼 무한한 내공!

    무엇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겨났다.

    정천우가 흐릿하게 미소를 지으면서 역천검의 검자루를 눈앞에까지 올렸다. 그러고는 내공이 웅크리는 단전을 흔들었다.

    구구궁!

    분명 아무런 소리도 나지 않지만 정천우의 귀에는 태산이 무너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엄청난 크기의 내공이 움직이는 것은 느낌부터 달랐다.

    단전에서 빠져나온 내공을 대주천의 경로에 따라 인도했다. 손바닥을 통해 내공을 뿜어 역천검에 주입했다. 누런 뇌전의 기운이 불쑥 이어 나면서 점차 하얀빛으로 변화를 일으켰다.

    슈아아아앙!

    역천검에서 날카로운 진동음이 발생했다.

    뇌전의 기운이 압축되면서 검날을 따라 고속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그것의 정체는 바로 검강(劒剛).

    동대륙에서는 오러 블레이드라 부르는 그것!

    모든 내공을 빼앗길지도 모를 상황에서 벗어난 순간, 정천우는 마스터의 경지를 개척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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